2008년 1월 5일. 연길에 도착했다. 연길에서 오래 사셨던 분들은 “연길에 가면 서울보다 많이 추울 텐데”라는 걱정 및 경고를 하시곤 했다. 하지만,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두텁게 끼어 입은 옷 덕분인지, 밤바람도 그다지 차갑지 않았다.
도착한 후 첫 이틀 동안, 2004년 재외동포법 개정 농성 참여자였던 A씨 가족--부인과 딸, 장모님--과 함께 지냈다. A씨가 살고 있는 집은 공장에 다니다가 미국으로 간 A씨 부인의 오빠의 집이었는데, 그 오빠는 미국에 간 이후 10년 이상 동안 한 번도 중국에 방문한 적은 없다고 했다. 장모님은 아들과 손자가 보고 싶다고 매우 아쉬워 하셨다. A씨 역시 1994년부터 2006년까지, 한국에 “불법체류자”로 일하면서 한 번도 중국에 방문한 적이 없고, 결국 2006년 불법체류자 단속에 걸려 “추방” 당했다.
한국에 다시 가고 싶지도, 갈수도 없게 된 A씨는 다른 “방법”을 모색 중이었다.
A씨는 1994년 연수생 신분으로 한국에 입국했다. 1990년대 초, 주위의 친척 및 친구들이 “친척초청”으로 한국에 다녀온 후 빠른 시간 내에 경제적 형편이 나아지는 것을 보면서, A씨는 공장을 다니면서, 한국으로의 입국수속을 시작했다. 당시 5천원(중국위안화) 수속비에, 1만원 “야진”을 한 후 화성의 한 공장 연수생으로 일하게 되었다.
연수생으로 받은 첫 기본급은 25만원. 휴일 없이 잔업에 잔업을 거듭해서 100만원까지 벌었고, 그때 집을 마련했다. 하지만, 장시간 노동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 때문에 그 공장을 그만두게 되면서, A씨는 “불법체류자”가 되었다. 불법체류자가 된 이후,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주로는 건설현장의 일용직 노동자로 일을 했지만,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불법체류자 단속과 1990년대 후반 한국의 경제위기 속에서 A씨는 그야말로 “돈도 못 벌고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측근 누군가의 신고였는지, 갑작스레 들이닥친 단속반에 걸려 중국으로 “추방”되었다.
중국에 돌아오니, 다섯 살이었을 때 헤어졌던 딸은 열일곱 살이 되었고, 부인의 건강도 좋지 않아졌다. 중국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고,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으러 다녀도 보았지만, 한국에서의 월급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아서 일을 시작하기도 마땅치 않았다. 본인을 “내친” 한국에는 다시 가고 싶지도, 갈 수도 없게 되어서, A씨는 다른 나라로의 이민을 계획하고 있다. 미국이 나을까, 일본이 나을까, 호주가 나을까. 갈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서 모으고 정보화하고 있다. 당장의 생활은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우리 딸내미가 제 힘으로 먹고 살 수 있도록 교육은 시켜줘야 할 거 아니냐”며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A 씨에게 중국에서는 별다른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A씨에게는 특별한 취미가 하나 있다. 중국식 복권(彩票)을 구입하는 것이다. 중국 거리를 지나다보면 미닫이 유리문에 “彩票”라고 쓰인 유리 미닫이문을 종종 보게 된다. 이 장소는 사람들이 모여 복권의 “행운의 번호”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고, 이야기를 나누며, 복권을 사는 곳이다. 벽에 빼곡이 적힌 번호들을 쳐다보면서, 사람들은 그 숫자들의 규칙을 발견하고자 한다. 즉, 대박의 행운에는 규칙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A씨 역시, 밤이면 그 전날의 행운의 번호들을 정리하고 체계화하면서, 대박의 규칙들을 발견하는데 여념이 없다. A 씨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설을 지내려면 설 대박”이 터지면 좋을 텐데 라고 “彩票”에 희망을 걸지만, “본전치기”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것을 스스로도 인정한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彩票에서처럼 행운의 규칙은 있는 것일까, 또는 찾을 수 있는 것일까. 한국에 일하러 가는 것이 “행운”이고 “대박”이었을 때가 있었으면서도(또는 그렇게 믿었을 때가 있었으면서도), 그 대박은 위험과 위기를 내포하고 있다. A 씨 역시 본인을 추방한 “고국”에서 “대박”과 “위험”을 동시에 경험했다. 이제, A 씨는 또 다른 곳에서 행운을 찾고자 한다. 그곳에 위험이 있지만 희망이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40년 이상 살아온 중국도, “고국”인 한국도 이제 더 이상 A 씨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 A씨는 대박의 규칙을 찾아내기를 바라면서, 희망의 공간을 발견하기 위해 또 다른 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곳이 어디이던지.
<다음에 계속> 중국동포타운신문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