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바위와 황금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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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바위와 황금닭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9.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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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의 수필 136

 

申 吉 雨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skc663@hanmail.net

 

옛날 어느 마을 뒷산에 '쌀바위'라는 바위가 있었다. 그 바위에는 조그마한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는데, 그곳에서 매일 한 차례씩 쌀이 나왔다.

이 바위 부근에 작은 절이 하나 있었다. 그래서, 절의 식구들은 매일 ‘쌀바위’에서 나오는 쌀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먹고살았다.

그런데, 쌀은 언제나 필요한 만큼만 나왔다. 식구가 많아지면 더 나오고 줄면 준 만큼 나왔다. 식구 수에 맞추어서 항상 나오는 것이었다.

어느 날 공양주가 쌀을 가지러 왔다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구멍을 크게 뚫으면 쌀이 더 많이 나올 것이 아닌가? 그러면 담아놓고 편하게 쓰고,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공양주는 쌀 구멍을 징으로 쪼아 넓혀 놓았다.

그러자, 쌀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쌀 구멍을 아무리 쑤셔 보아도 쌀은 한 톨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쌀바위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이솝우화에도 이와 비슷한 황금알 낳는 닭 이야기가 나온다.

매일 황금알을 낳는 닭이 있었다. 주인은 좋아라고 그 닭을 온갖 정성을 다하여 길렀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하였다.

‘매일 황금알을 하나씩 낳으니 뱃속에는 황금이 가득할 것이다.’

그래서, 주인은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고 싶어 황금닭의 배를 갈랐다. 그러나 닭은 평범한 보통의 닭과 똑같았다. 황금은 고사하고 닭까지 죽이고 만 것이다.

사람들은 복을 복으로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복이란 어떤 특별한 혜택이요 큰 이익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횡재 같은 것을 복으로 잘못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복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고 앙앙거리며 살기도 한다.

더구나, 어떤 것은 자기에게만 주어진 것인데도 고마워할 줄을 모른다. 오히려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받지 못해서 안달한다.

사실 우리는 매일 끝없이 복을 받고 있다. 때때마다 먹을 수 있다는 것도 복이요, 입고 나갈 옷이 있는 것도 복이다. 잘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복된 일인가? 만날 사람이 있고 함께 일할 사람들이 있는 것도 복이다. 무엇보다도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엄청난 복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고마워할 줄 아는 마음부터 가질 일이다. 마음에 차든 안 차든, 많든 적든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이 다 복이다. 따라서 주어진 자체를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고맙기에 삶이 즐겁고, 감사할 줄 알기에 정겹게 살 수가 있다. 굶어 보아야 음식이 소중한 복인 줄 알고, 외로울 때에야 안부 편지 한 장이 얼마나 반가운 것인 줄을 깨닫게 되며, 병상에 누워서야 사람들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복은 달라고 빌고 조른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것도 아니다. 먹고 자고 입는 것에 별로 구애받지 않고, 일하며 살아가는 데에 크게 어려움이 없다면 그것이 곧 복을 받은 것이다.

받은 은혜와 공덕을 감사하는 마음부터 가질 일이다. 억지로 쌀바위의 구멍을 뚫고, 황금닭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음은 저지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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