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흙을 빚어서 사람을 만들었다. 그런데 첫 번째에는 너무 일찍 구어 내서 하얗게 되었다. 그래서 두 번째에는 시간을 더 두었더니 검게 되었다. 세 번째에는 그 중간 시간으로 구어 내서 알맞게 되어 누렇게 만들어졌다. 그래서 백인종․흑인종․황인종이 생겼다. 홍인종은 네 번째로 하다가 꺼낼 시간을 깜빡 잊고 조금 늦게 꺼내서 붉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우스갯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의 피부색이 어찌 인간 창조설과 관계가 되겠는가? 황인종이 가장 최상품이란 내용으로 보아 이 이야기는 아마 황인종 사이에서 꾸며내진 것으로 생각된다.
사람의 피부색은 기상과 관련된다. 특히 햇볕은 아주 큰 요인이다. 피부색은 수많은 세월 동안 얼마의 햇볕을 계속적으로 쬐며 살아왔는가에 따라 몸에 착색된 결과이다. 이런 사실은 세계 여러 지역을 다녀 보면 더욱 뚜렷하게 알 수 있다.
백인들은 주로 유럽에서 살았다. 유럽은 안개와 구름이 많아서 흐린 날이 대부분이다. 해가 나와도 햇볕이 강하지 않다. 그래서 백인들은 언제나 햇볕 부족을 느끼며 살았다. 이런 기상 관계로 유럽 사람들은 오랜 기간 햇볕을 많이 쬐지 못하고 살아와서 피부가 하얗게 된 것이다. 골방에 틀어박혀 햇볕을 쬐지 못하고 공부만 한 사람의 얼굴이 하얀 것을 보아도 이런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시골 사람들에 비해 도시인들의 얼굴이 보다 하얀 것도 햇볕 부족이 한 원인이라 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흑인들은 주로 아프리카 열대 지방에서 살았다. 그곳은 항상 날씨가 좋고 언제나 태양이 뜨겁게 내리쬔다. 비가 와도 한 줄기 소나기로 지나가면 그만이다. 그래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언제나 햇볕 과잉에 살았다. 그래서 그들의 피부가 검게 착색된 것이다. 우리가 여름철에 해수욕장에서 몇 일 지냈을 때 피부가 까맣게 타고, 허물이 벗겨진 뒤에도 살갗이 검은 것을 보아도 이런 점을 알 수 있다.
황인종은 이들에 비해서 적당한 햇볕을 받으면서 살았다. 그들이 사는 동아시아 지역의 기상이 바로 그들의 피부색을 누렇게 만든 것이다. 실제로 황인종들의 거주 지역은 네 계절이 뚜렷하고, 눈비와 바람 구름과 햇살이 해마다 번갈아 가며 적당히 교체되는 곳이다. 겨울에 햇볕이 부족해도 그 기간이 짧아 피부가 탈색되지 않고, 여름에 뜨거운 햇살을 받아도 곧 가을이 와서 검어지는 일이 그때일 뿐 변색될 수가 없다.
이와 같이, 햇볕과 사람들의 피부색과는 밀접한 관계에 있다. 백인종이 햇볕 부족에서, 흑인종이 햇볕 과잉에서, 황인종이 그 중간의 햇볕 영향에서 각기 피부 빛깔이 달리 생겨진 것이다. 인도 사람들의 피부가 거무틱틱하고, 홍인종들의 살갗이 붉은 구릿빛인 것도 각각 햇볕의 영향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하얀 피부색을 선호하는 것 같다. 피부 빛깔이 하얘야 보다 예쁘다거나 멋지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도나도 살갗을 하얗게 만들려고 애쓴다. 탈색 크림을 바르기도 하고, 흰 분가루를 칠하고 다니기도 한다.
피부색에 대한 우리들의 전통적인 기본 인상은 이와는 다르다. 피부가 좀 하얀 경우에는 약한 체질이거나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 성격도 소극적이고 지구력이 적다고 생각한다. 비교적 검은 경우에는 오히려 건강하게 보고, 성격도 적극적이며 억센 것으로 여긴다. 전체적으로 황인종다운 누런 피부일 때 한국인들은 가장 안정감을 주고, 건강 상태도 양호하고 성격도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얼굴빛의 경우도 일방적으로 백색을 선호하지 않는다. 얼굴이 하야면 도리어 병들거나 쇠약한 사람으로 여긴다. 창백한 빛은 핏기가 없을 때 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얼굴이 노라면 환자로 본다. 역시 아프거나 건강 상태가 나쁠 때 나타나는 색이기 때문이다. 검으면 내장이 좋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 파라면 놀람과 두려움으로, 붉으면 부끄러움이나 분노로 생각한다. 붉으락푸르락 하면 화가 몹시 난 것으로 여긴다. 정상적인 얼굴빛은 역시 자연스런 누런빛인 경우이다.
미인의 피부색도 무조건 하얗기만 한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뽀얀 얼굴’도 안개가 낀 것 같이 약간 흰 것을 가리킨다. 하얗기는 하나 젖빛 같은 백색, 조선 백자의 흰빛인 것이다. 오히려 빛깔보다 주근깨 하나 없는 티 없이 맑고 깨끗하며, 촉감이 매끄럽고 보드라운 것을 더 꼽았다.
따라서, 현대인들이 하얀 피부를 선호하고 얼굴이 하얘야 미인이라는 생각은 문제가 있다. 한때 젊은이들 사이에 검은 색이 건강미를 나타낸다고 하여 너도나도 살갗을 태우고 검게 화장을 하고 다닌 적도 있다. 하얀 색은 도리어 너무 약하거나 귀신처럼 보인다고 해서 피하기도 했었다.
미인(美人)은 인종이나 피부색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미인은 빛깔이나 색감(色感)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종은 인종마다 나름대로 미인이 있고, 피부색은 피부색 나름대로 멋진 면이 있다. 세계적인 미녀 선발대회에서 때로는 동양계나 흑인이 제일로 뽑히는 것을 보아도 이해될 수가 있다.
인간의 피부색, 그것은 햇볕과의 오랜 삶과 관계된 것이어서 선천적인 것이다. 따라서 피부색은 미인과 직결되지 않는다. 백인종도, 흑인종도, 황인종도 각기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근래에 높아진 백색 선호도는 혹시 선진국 백인문화에 대한 우월 인식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심리에서 생겨진 것은 아닐까? 유별나게 하얀 피부, 흰 얼굴을 선호할 까닭은 없다.
겉 좋고 속 나쁜 사람이 얼마나 추하게 보이며, 겉은 별로이나 속마음씨가 고운 사람이 얼마나 우리를 감동시키는가? 미인(美人)이란 겉모습보다 속마음이 보다 예쁘고 아름다운 사람인 것을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