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류수(리동렬 장편소설 연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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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류수(리동렬 장편소설 연재 4)
  • 이동렬
  • 승인 2009.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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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씨는 나에게 한 녀인의 얼굴을 상기시켜주었다. 때때로 눈앞에 얼른거리며 심심잖게 내속을 태우던 그녀, 간밤에는 꿈속에 나타나 새벽녘까지 심신을 괴롭혔었다.


악몽속의 그녀의 얼굴은 괴이한 화상이였다. 입술이 반쪽, 코구멍이 하나, 눈과 이마와 머리가 역시 반이였다. 가운데를 칼로 베듯 한일자로 자르지 않았고 톱날로 알맞춤 켜놓은듯 인중과 이마에 괴상한 무늬마저 나있었다. 나는 무심결에 보이지 않는 그 반쪽을 만져갔다. 손바닥이 허전했다. 썰렁한 기운이 엄습해왔다. 그쪽은 원래 없었던것, 마치 찬바람이 회오리치는 밑창없는 묘혈만 같았다. 깨고보니 잔등에 소름마저 돋아났었다.


언젠가 그녀는 자기 반면초상화를 보여주며 야릇하게 웃었다.


“진수오빠가 그랬거든요. 이만하면 충분하다. 니 모습이 잘보인다. 니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다 그려놓으면 넌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 않겠어요? 정말 그런가요?”


화백은 나의 둘째형 진수요, 그녀는 나와 이상한 관계로 어울어진, 복선화였다.


아침에 늦게 깨웠다고 나는 괜히 와이프한테 짜증을 냈다.


밖의 날씨는 화창해질것 같았다. 기분이 조금 풀리였다. 이제 바쁜 하루가 시작될것이다. 공항까지 가는데 택시로 40분 족히 걸렸다. 세수를 하고 짐을 챙기고 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고 식구들과 작별인사도 해야 했다.


와이프의 까꾸장해진 눈살이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누구 탓임까. 깨워도 안일어나는거 어쩜까? 그눈이 그렇게 항변해왔다.


나는 와이프를 가만히 끄당겨 품어주었다.


“미안해. 부러 그런게 아니잖아? 그놈 악몽때문열”


그녀는 나를 가볍게 밀어내고 입을 비쭉해보였다.


“애 보는데 무슨 장난임까? 빨리 준비하기쇼.”


“그럼 공항까지 바래다줄거지?”


나는 어린애처럼 금방 마음이 약해졌다. 좀더 살갑고 애틋함을 가졌으면 했다. 귀가 약간 쳐들린 와이프의 입술에 설핏한 웃음이 실렸다. 나의 그녀는 적어도 사리가 밝고 속이 똑똑하고 차분하고 명철한 타입을 갖고있다. 렬도의 땡볕과 바다바람에 잘 다듬어진 희고 투명한 살갗과 미끈한 몸매가 내 마음을 또한번 흔들어놓았다. 오사카에 가있는 몇년사이 사람이 그렇게 그리울수 있을까? 그리움이 불같다는 말을 뼈속까지 체험해본 나날들이였다. 이제는 절대 갈라져 살지 말자 와이프한테 다짐까지 받아두었던것이다.


귀국후 와이프는 작은 별장을 구입했다. 앞뜰에 꽃을, 뒤뜰에는 남새를 심었다. 오월중순이 되니 가까운 산에 사과배꽃이 만발했다. 승용차 하나 빼면 나들이가 문제되지 않았다. 친구 남수가 와보고 혀를 찼다. 도연명의 도화원생활을 꿈꾸느냐고?


그런데 몇달 지나지 않아 와이프는 그걸 되팔았다. 알고보니 나 몰래 재삼 일본수속을 밟고있었다. 나는 완연 미궁에 빠져들었다. 불행의 그림자가 섬뜩한 그늘을 던져왔다.


그날 잔뜩 취해 들어온 와이프가 내목을 부등켜안고 등을 다독거렸다.


“미안, 미안함다. 어쩌다 그렇게 됐슴다. 그러니 이번에 서울가면 돌아오지 않음다 예? 제가 방법 대 일본에 데려오든지 어쩌든지 할검다. 거기선 일본에 수이 나올수 있을검다. 좀만 참으쇼, 네?”


“허, 날 또 얼리려 드네. 당신 많이 변했어, 욕심 너무 많아졌다구! 아직도 뭐가 부족해서 그러지? 이제 좀 편히 살면 안되오, 청춘이 얼마인데 응?”


“호, 편히­?∼ 당신은 글 쓴다지만 정말 생활을 모름다. 편한것이 유일한 기준은 아님다. 이제 나가보면 알게 될겁니다. 제말 듣슴다, 꼭 명심함다 네?”


와이프는 이번 기회를 생활의 어떤 반전의 기회로 삼으려 했다. 불법체류를 하더라도 남아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명색이 문인인데 체면마저 구겨버릴까? 아무려 구슬려도 먹혀들지 않자 와이프는 또박또박 선을 분명히 그어왔다.


“당신, 왜 자꾸 그리 엇먹임까? 기회니까 알아서 어찌하세요∼ 애한테도 이미 말했슴다. 우리 진이는 착하고 똑똑하니까 괜찮슴다. 전혀 문제없슴다. 지금까지 우린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음까?”


와이프는 랭정했다. 말에 살얼음 껴있었다. 무엇이 우리 사이를 이렇게 만들어놓았는지 나는 몰랐다. 우리가 겪어나갈 고비가 섬뜩해왔었다.

 

딸 진이는 초중2학년생이니 열여섯살. 그런데도 내 눈에는 유치원생으로 보였다. 토요일이면 저녁약속을 하고 밥을 사주었다. 외할매가 아무리 잘해준다고해도 집 떠나면 고생이다. 가슴이 아프나 와이프를 이길수 없다. 애 데리고 살림하는 꼴 보기 싫단다. 외할매가 외손녀를 무척 고와해주어 다행이였다.


딸애는 밥을 먹다가 외려 나를 위안했다.


“아버지, 내가 아직두 어린애인가 함다? 아버진 아버지 몸만 돌보시오. 어머니가 잘벌잖슴까? 저한텐 돈만 푼푼히 주면 됨다. 돈만 있으문 얼마든지 혼자 살만함다.”


환장할 노릇이다. 애가 훌쩍 커버린듯싶었다. 나는 몹시 놀랐다. 애가 낯설어보이기까지 했다. 어린것이 홀로서기를 서슴치 않으니 대견하나 한편 너무 계산적이지 않는가! 돈맛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도 되였다.


이제 나도 와이프도 딸애도 가고나면 빈집만 남게 된다. 와이프가 없던 세월, 나는 빈집과 많은 대화를 가졌다. 없는것과 있는것, 빈것과 찬것, 부족한것과 충족한것에 관해 사고를 수없이 했다. 그런건 어차피 철학의 범주에 속했다. 나는 철학은 잘 몰랐다.


딸애가 어디서 16×16 절지의 그림 한폭을 가져왔다.


“아빠, 이 그림도 가져감까?”


유화속의 주인공은 내 꿈자리를 어지럽힌 녀인이였다. 와이프가 짐을 챙기다말고 묻는듯 쳐다보았다. 누구? 당신 아는 녀자? 왜 그런 얼굴을 그렸슴까?


“글쎄, 가져가야 하나 어쩌나? 진수형의 작품이요.”


나는 더수기를 긁으며 해명했다. 얼굴이 금시 별로 고와지지 않았다. 싫다면 그냥 싫어하는 성격이다. 진수형한테 생긴 선입겸을 좀처럼 바꾸지 않았다.


딸애가 제꺽 판결을 내려주었다. 드러내놓고 이죽거렸다.


“헤, 이게 무슨 그림임까? 너무 심했다. 가져가든 누굴 주든 맘대로 함다 예?”


결국 나는 그 유화를 챙겨넣었다. 빈집에 아무렇게 버려두기가 싫었다. 궤에 넣어둔다는것도 그랬다. 주인없는 집에 그런 얼굴이 나를 기다리고있다 생각하면 가슴이 섬뜩해난다. 나는 결코 그녀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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