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류수(리동렬 장편소설 연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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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류수(리동렬 장편소설 연재 3)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09.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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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로비커피숍에서 나는 웬 미모의 중년부인과 마주앉았다. 내가 미소짓자 그녀가 못본척 슬쩍 외면을 했다. 참말 보지 못했을수도 있다. 우리는 As비행기탑승을 기다리다 잠간 짬을 낸것이였다.

 

그녀가 곧 레지를 불렀다.

“커피, 모카요.”

 

모카(Yemen Mokha)라? 영어식발음이 조금 생경했다. 커피를 유달리 좋아하는 나는 모카가 커피의 귀부인으로 인정받고있는 예멘커피임을 알고있고 한번 마셔본적도 있었다. 과일향 와인향 초콜렛향이 묘하게 어울어져있고 구수한 슝늉을 마시고난것과 같은 뒤맛을 주고있는 커피중 진품이였다.

 

나는 슬그머니 그녀를 뜯어보았다. 손에 턱을 고이고 눈길을 조금 내리깐채 약간 시름에 겨운듯 앉아있는 그녀는 또 다른 모카였다. 사십미만의(혹은 그보다 나이 더 많을수도 있다.) 깔끔한 부인이였다. 아가씨들 못지 않게 잘빠진 다리우에 까만 스커트가 흰살결을 선명하게 잘라놓았고 잔꽃무늬가 돋친 남색블라우스에 단아하게 어울리는 가는 은목걸이며 귀볼에 붙은 구슬붕어무늬의 금잎도 세련미를 더해주었다.

그녀는 곁눈 한번 흘리지 않고 레지가 갖고온 커피를 조심스레 마셨다. 엄지와 중지로 잔을 잡고 무명지와 약지를 약간 벌린 그녀의 왼손은 단아한 자세와 어울려 무르익은 녀인의 품위를 슬거머니 과시해왔다. 한참 기다려도 바래주러나온 손님이 없는것을 보아 나와 마찬가지로 싱글인것 같았다. 해서 그녀가 자꾸 의식되며 기분이 묘해갔다.

 

모카(Yemen Mokha)라?∼

내 마음에는 급기야 이상한 향기가 차올랐다. 또 약간 쓸쓸하고 씁쓸해나기도 했다. 잘가라 어쩌라 전화하마 기다릴께 하는 누구도 베푸는 사랑이 없으니까! 가는것과 남아있는 사이에 우리는 방불히 이 세상에서 잊혀진것 같았다.

나를 향한 그녀의 반쪽얼굴이 너무 눈에 익어왔었다.

 

곧 탑승수속이 개시되였다. 우리는 커피숍을 빠져나갔다. 눈을 내리깐채 사색에 잠긴듯 일어서는 녀인이 괜히 마음 쓰이였다. 나는 그제야 생각이 났다. 그녀를 만났던 날과 장소와 이름이 유진이란것까지도. 그녀도 나를 알아본것일까?

 

나는 흔흔한 그녀 뒤모습을 흔상하며 바보처럼 미행했다.

 

아무리 봐도 그녀는 위불없이 내가 입었던 옷을 입고 내가 했던 말을 하고 내가 웃었던 웃음을 짓고 내가 풍기던 냄새을 피우고있었다. 비록 그녀는 내가 없었던 시간속에서 살아왔기에 낯설지만 내가 살았던 고장에서 왔기에 익숙했다.

우리는 한 고향사람인것을! 나는 오매불망 고향을 사랑했다.

 

그녀를 만났던 저녁을 나는 잊지 못한다.

정거장 넓은 뜨락, 북방특유의 양걸춤, 유난히 맑고 쨋쨋한 새납소리가 잔뜩 성세를 올린다. 빠른 절주로 울긋불긋 춤군들을 리드해나간다. 건드러진 멋과 유연하고 경쾌한 춤사위는 북방대륙의 풍토와 삶과 락을 잘 그리고있다. 오색불빛 명멸하는 거리로 수없는 간판들을 핥고 흔들며 건조한 열풍이 불어왔다.

 

그날 유진이는 부친과 개찰구앞에서 서성거렸다. 친구 남수가 싱겁게 팔소매를 끌었다. 그녀한테 나를 무슨 유망소설가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뭐가 달갑지 않은지 남수하고만 이야기를 나누는 그녀를 보자 나는 조금 실망했다.

그녀는 반백의 부친과 마찬가지로 어딘가 들떠있었다.

 

그 와중에 마침 렬차가 홈에 들어섰다. 나는 문득 손님들 뒤에 묻어나오던 웬 로친이 우두커니 서서 이쪽을 마주해 하염없이 눈물 흘리는것을 보았다. 그녀 부친이 로친한테로 허우적거리듯 뛰여갔다. 그녀도 우리를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갔다. 두 로인은 서로의 팔을 꽉 잡고 끄억끄억 울어제꼈다. 손님들이 모여들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왜 이제야 오냐? 얼마나 보고싶었는줄 아냐? 우리 이젠 서로 떨어져 살지 말자, 서로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미상불 내 고향 삶의 진풍경이였다.

 

그들이 떠나가자 친구가 실실 웃었다.

“궁금하지? 가만 생각해보면 사람사는것 재미있잖어?”

“자식, 뭔데 그래?”

“흐흥, 아까 유진씨말이다. 그집 아들놈과 우리 딸년은 한반이거든. 알고보니 그 녀잔 우리 마누라와도 중학교동창이더라구. 이제 들은 말인데 방금전의 그 로친말이야. 유진씨 아버님이 상처한후 삼년전에 맞아들인 새어머니라나? 두 로인은 합친후 줄곧 령감의 퇴직금으로 생활했는가봐. 로친은 령감의 손에서 매일 남새 살 돈을 얼마씩 받아 끼니를 장만하군 했대. 그런데 고지식한 령감은 로임에서 남은 돈을 몽땅 외아들한테 찔러주군 했다나? 아들이 그러지 말라해도 막무가내였나봐. 그래서 참다못해 로친이 한마디했대. 결국 대판싸움으로 번진거지. 그래서 로친은 화김에 짐싸들고 나가버렸다나? 허허.”

 

“그래? 어, 그래서?”

 

“하루, 이틀∼ 열흘을 기다려도 로친이 돌아오지 않으니 이번에 령감이 당황해난거지. 밥맛을 잃고 밤잠을 설치며 자식들한테 화를 내기 시작했던가봐. 아들을 원망하며 기어코 로친을 모셔오라 윽박질렀대. 허허, 사실 로친도 둘째딸네집에서 사위 눈치밥 먹기 그랬겠지. 령감의 짓은 괘씸하나 그래도 밤이면 등긁어주는 손길이 그리워났겠지. 그래서 령감님의 아들이 찾아오자 두말 안하고 따라나서더래. 허허, 늙으면 그렇게 되나봐, 아마?”

 

“그러니 늙어선 짝이 있어야 한다잖아.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것 몰라. 때가 되여야 머리가 트겠는지?∼ 가만, 얼마전에 난 로인들한테 이런 말을 들었다. 쉰부턴 말이다. 직함이 있으나 없으나 같고 예순만 되면 국장이든 아니든 같아지고 일흔이 되면 돈이 많든 적든 같아지고 여든이면 산사람 죽은사람이 같게 된다고 하더라. 허허.”

“참, 묘하네. 옳은 말이군그래!”

 

“그러니 우리들 삶의 진실은 부귀공명이 아니라 친지간의 정인것일세. 우리 인생 마지막에 남게 되는것은. 아마 그렇지 않을까?∼ 암, 그렇구말구!”

나는 친구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시선을 춤판에 던졌다. 새납소리, 북소리, 징소리 더더욱 요란해지는가운데 춤사위들이 울긋불긋 나붓기고있다∼

나는 그녀 뒤를 바싹 따라 탑승구로 갔다.

 

내가 아는 녀자와 나를 모르는 녀자, 단절감과 소통감이 동시에 엇갈려왔다. 나는 돌팔이화가 형의 필법이 생각났다. 유화 한폭이 눈에 선해난다. 해빛이 질퍽한 강뚝은 색채감이 너무 짙다. 진붉은색은 인간 세상사나 사랑따위를 알대로 알아버린 느낌을 랑자하게 펼치고있다. 가방 하나 어깨에 아무렇게나 걸친 그녀가 어디론가 떠나고있다. 얼굴에, 몸가짐에, 그림자 여럿이 비껴있다. 떠난 자와 떠나고있는 자, 또 떠나려는 자들의 그림자였다.

 

솔직히, 나는 그녀와 친해지고싶어졌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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