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반가사유상 - 배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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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반가사유상 - 배우식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9.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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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시조 부분 - 당선작]

1

까만 어둠 헤집고 올라오는 꽃대 하나

인삼 꽃 피어나는 말간 소리 들린다.

그 끝을 무심히 따라가면 투명 창이 보인다.



2

한 사내가 꽃대 하나 밀어 올려 보낸 뒤

땅속에서 환하게 반가부좌 가만 튼다.

창문 안 들여다보는 내 눈에도 삼꽃 핀다.

무아경, 온몸에 흙물 쏟아져도 잔잔하다.

깊고 깊은 선정삼매 고요히 빠져있는

저 사내, 인삼반가사유상의 얼굴이 환하게 맑다.



3

홀연히 진박새가 날아들어 묵언 문다.

산 너머로 날아간 뒤 떠오르는 보름달,

그 사내 침묵의 사유가 만발하여 나도 환하다.

 

▲ 이근배씨
오늘의 시조가 어디까지 왔는가는 신춘문예 응모작품들이 내비게이션으로 보여준다. 분명한 것은 시조가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빨라지고 행렬이 늘어간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모국어의 경작을 꿈꾸는 천재들이 시조에 눈을 돌리거나 형식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일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지 않은 속에서 새 모습의 시조를 들고 나오는 신인을 만날 때 그 기쁨은 더하게 된다.

장은수씨의 '새의 지문', 변경서씨의 '일몰 앞에서', 배종도씨의 '천마도장니', 배우식씨의 '인삼반가사유상'이 각각 새맛내기의 솜씨를 보인 작품들이었다. '새의 지문'은 암사동 선사유적지에 있는 빗살무늬토기에서 새 한 마리를 꺼내들고 시간과 공간을 누비고 있는데 그만큼 한 깊이와 무게를 채우는 데 틈이 있었다. '일몰 앞에서'는 지는 해가 연출하는 스펙터클을 강렬한 채색으로 그리고 있으나 사람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지 않음이 걸렸다. '천마도장니'는 너무 사실(史實)에 매달려 더 넓은 시야를 갖지 못했음이 시를 가두었다.
당선작 '인삼반가사유상'은 오래 흙 속에서 사람의 모습을 하고 태어난 인삼뿌리에 생각을 입혀서 소리와 빛깔을 알맞게 구워내고 있다. 쉽게 찾아지지 않는 글감을 골라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사유를 명징한 이미지로 엮어내는 시적 기량이 믿음직스럽다. 앞으로 붓끝을 더 날 새워 시조의 틀을 새롭게 짜고 시상의 자유로움을 열어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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