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호의 만주일기 <16> 너무 미안했던 옥수수 장사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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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의 만주일기 <16> 너무 미안했던 옥수수 장사 아주머니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09.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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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에 5 위안이 뭐기에' 나의 여유없음에 얼굴이 화끈
남에게 손해 좀 보더라도 마음의 문을 열어놓았더라면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지평선까지 끝없이 펼쳐진 만주의 옥수수밭.
하얼빈에서 길림 가는 기차는 시간을 거슬러가듯이 느릿느릿 움직였다. 웬만한 역은 다 정차를 하니 시간이 바쁠 것도 없는 나 같은 관광객에게는 구경하기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아예 창 쪽에 자리를 잡고서 내리는 사람과 타는 사람 표정도 살피고, 서는 역마다 역의 이름과 주변 풍광을 완상하면서, 그야말로 완벽한 구경꾼이 되는 것이다.

두어 시간 달려서 어느 역에 기차가 멈췄다. 역이 작아서인지 내리고 타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선로 옆에 마중 나온 사람들 사이에 한 아주머니가 옥수수를 들고서 다가왔다. 옥수수가 먹음직도 했지만 불쌍한 생각도 들고 해서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가격을 물었다. 세 개씩 한 묶음으로 된 옥수수는 우 콰이(5위안)이었다. 오 위안짜리가 없었다. 내가 십 위안짜리를 내밀자 아주머니는 잔돈을 찾기 시작했다. 기차가 곧 출발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물건과 돈을 동시에 주고받는 것이 거래의 상식이다. 그러나 아주머니가 주머니에 잔돈을 찾는 순간 기차가 서서히 움직였다. 아주머니는 한 손에 옥수수를 한 손에 돈을 찾으며 기차를 따라 움직였다.

상황이 조금 더 급해지자 아주머니는 일단 옥수수를 내게 건네고 잔돈을 찾기 시작했다. 기차가 점차 빨라진다. 아주머니도 따라오면서 잔돈을 찾는다. 나는 안타깝게 십 위안짜리를 내밀며 제발 제발하고 있었고, 잔돈이 잘 보이지 않는 아주머니는 더 빨라지는 기차의 속도를 따라 마침내 뜀박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도 모두 아, 아, 소리를 지르며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나도 여차하면 옥수수를 던져 줄 속셈이었다.

마침내 아주머니는 가까스로 잔돈을 내밀었고 십 위안짜리와 교환할 수 있었다. 그제야 그 아주머니는 휴,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아마 아주머니는 평생 그런 뜀박질이 처음이었는지 모른다. 그놈에 오 위안이 무엇이라고….

그 순간 나는 아주머니가 안 됐다, 라는 생각보다도 나의 어리석음에 스스로가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 그놈의 오 위안이 무엇이라고, 그 아주머니를 그렇게 힘겹도록 했단 말인가. 진작 아주머니가 거스름돈을 찾을 때 그냥 십 위안을 줬으면, 얼마나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을까. 아니 기차를 뛰듯이 따라 올 때만 해도 그냥 십 위안짜리를 아주머니에게 던져버렸다면….

내게 그런 선심을 베풀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왜 그랬을까. 왜 나는 얼마 되지 않은 잔돈(한국돈 600원)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거래는 반드시 정확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그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인간관계에 손해를 끼친 것이다. 한심한 그 행동을 내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평소에도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만큼 여유가 없었다는 말이 된다. 그때 문득 백석의 시가 떠올랐다.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 같이 차게 울었다.


백석은 여행길에서 만난 여인에게 나처럼 정확한 거래를 하지 않았다. 배고파 옥수수를 달라며 우는 아이를 때리는 여인에게 그냥 옥수수만 사지는 않았다. 서러워 울었다는 표현은 시인이 거래 이상의 인정을 베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결국 어린 딸이 죽은 것도, 그리고 뒤에 '여승'이 되기까지 시인은 여인에게서 관심을 끄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남에 대해서 손해 볼 자세로 언제나 마음에 문을 열어놓고 있는 시인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옛날 애인 '자야'여사는 죽으면서도 백석을 못 잊어 2000억 원이나 되는 큰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면서 백석을 위하여 써 달라고 하지 않았던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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