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아름다운 인연 가운데 지음(知音)이라고 할 만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참 아름다운 인연이라고 할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친구 가운데는 죽마고우(竹馬故友)를 으뜸으로 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감정상의 문제지 죽마고우가 그대로 지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의 지음이란 언제부터 사귀였는가를 떠나서 진정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말하는 것이지요. 이 지음이란 말 자체가 종자기(鍾子期)와 백아(伯牙)의 고사(古史)에서 유래된 사실로서 충분히 설명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이상규 선생은 정말 지음지간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나는 만나기 전에 이미 이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이선생 역시 이곳 생활을 쓴 나의 졸저를 통하여 나를 조금은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만나자마자 곧 지음이 된 것입니다. 이 이역에서 이런 지음을 얻었다는 것은 참 큰 축복이라고 기뻐하며 감사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지음과 더불어 자주 만나지 못한다는 게 좀 아쉽습니다. 나는 연길에 살고 이선생은 서울에 살기에 그가 이곳에 올 때만 만나게 됩니다. 비록 일년에도 몇 번 만난다고는 하나 늘 아쉬운 이별이 되곤 합니다. 하지만 지음이라고 반드시 자주 만나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어디 있으나 서로 마음을 알아주면 지음이 되지요.
내가 이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아마 이곳 연길의 어느 호텔에서 열린 행사장인 것 같습니다, 그게 3년인가 4년 전인데, 그 때 내가 가서 축하를 하였는데, 거기서 처음 이선생과 만난 것 같습니다. 처음 만나는 순간 나는 좀 놀랐습니다. 내가 들은 이선생은 시인이요, 기업을 한다는 사람이었은데, 만나 본 선생은 전혀 시인도 기업인도 아닌 순수한 이곳 농촌의 농민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곳에 오래 살다 보니 대개의 경우 한눈에 한족과 조선족이 구별되고, 또 외국에서 온 한국인을 알아보게 되는데, 이선생은 아무리 보아도 이곳 사람으로 보이었습니다. 그의 외모에 관한 이야기 하나를 할 까요? 며칠 전 그가 나를 찾아 내가 있는 대학으로 오는데, 정문의 수의가 나를 만나러 간다고 하는데도 들여보내 주지를 않더라는 것입니다. 아마 나에게 돈이라도 구걸하러 오는 사람이라 여기고, 따돌린 모양이지요. 그는 그렇게 수수한 옷차림에다 수수하게 행동하니 누가 보아도 그가 한국의 저명한 시인이요, 기업가라고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생의 이런 수수한 외모는 그대로 그의 성품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전혀 꾸밈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진솔, 그것은 그대로 그의 인품인 것 같았습니다.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더욱 나의 선입견이 옳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꾸밈이 없을 뿐더러 전혀 사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몇 년째 이곳의 동포들, 특히 문인들과 그들의 일을 돕고 있음에도 전혀 나타내지를 않았습니다. 내가 들은 한 그는 그저 도울 뿐 어느 누구에게도 자랑하는 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가 거액을 들여가며 이곳의 문인들과 그들의 일을 위하여 좋은 일을 많이 하기에 모두들 한국에서 큰 사업을 하는 줄 알았는데, 이곳의 어느 한 사람이 몇 해 전에 한국에 가서 그의 댁을 방문하였다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는, 국가가 외환 위기를 맞아, 회사 사무실도 집에다 옮겨 놓고, 사업도 겨우 꾸려가는 형편이더라는 것이지요. 그러면서도 이미 약속한 돈이라면서 거액을 연길로 보내었더라는 것입니다.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입니까? 자기도 어려운 형편에 어떻게 중국의 문인들을 생각할 겨를이 있었겠습니까?
그가 왜 그토록 이곳을 사랑하며, 이곳의 문학을 위해 희생을 할까요?
내가 그에게서 들은 바로는, 그가 오래전 한국에서 어느 식당에를 갔다가 그곳에서 일하는 연변의 아주머니 한 여인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아주머니를 통하여 연변의 이야기를 처음 듣고 연변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변을 와 보았다고 합니다. 그 뒤에 일은 직접 듣지를 못하였습니다. 더 이상 말하지를 않아요. 그는 절대로 자기 자랑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내가 나름으로 그 뒤에 일을 유추하여 봅니다. 그래 연변을 찾아와서 직접 보고는, 백년이 넘게 외국에 살면서도 우리말 우리 풍속을 그대로 간직한 동포들에 대하여 외경(畏敬)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민족의 정체성을 고이 이어 주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리하려면 언어와 문학을 가꾸어 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위해 고군분투하시는 이곳 문인들에게 더 없는 고마움을 가지게 되고, 자연 그들과 그들의 일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용솟음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까지 오로지 그는 그 외로운 길을 걸어오고 있으리라 짐작하여 봅니다. 저의 이 짐작은 아주 정확하리라 여깁니다. 외람됩니다만 저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였으니, 이런 유추가 가능합니다.
나는 처음 그가 이곳을 후원하는 이야기를 듣고는 아마 아주 신심(信心)이 깊은 종교인, 그 가운데서도 기독교인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 분들이 이런 희생의 일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결코 이런 희생이 가능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만나본 그는 종교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에 나는 더욱 놀랐습니다. 그리고 더욱 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누구를 돕는다는 것도 깊이 따지고 보면 대개의 경우 그 밑바탕에는 조금의 보상이라는 것도 따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남들에게 알리어져 칭찬을 듣는다거나 하다못해 내세의 축복이라도 있다는 보상을 바라는 것이지요. 아니면 좋은 일을 하라는 신의 계시나, 절대적인 어떤 계율이나 명령 같은 것을 받아서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선생의 경우 전혀 그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사심이란 털끝만큼도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돕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귀한 일입니까? 그래 제가 이 선생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정말 우러러 보이는 것입니다. 그의 앞에서 나는 너무 초라하고 부끄러운 모습이라 언제나 기가 죽습니다. 나도 건방진 말이긴 하지만, 이곳 동포들을 나름으로 사랑한다고는 합니다.
그러나 이선생에게는 비교가 안 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나의 이곳 동포에의 사랑에는 내가 가진 종교로부터의 어떤 압박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거든요. 그 압박으로 하여, 조금 사랑한다고 흉내를 내며 살고 있는데, 이선생은 전혀 그런 압박도 받지 않으면서 순전히 자기 의지로만 이 좋은 일을 하니, 얼마나 위대합니까? 그래서 내가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순수한 사랑을 베푼다니, 참으로 위대한 분이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착한 분이라, 하늘도 도우셔서 이제 그 어렵던 사업도 다시 일으켜, 돈도 많이 벌어 집도 새로 지었다 하니, 참 기쁘고 반갑습니다.
세상엔 고마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이선생처럼 정말 아무런 압력도 받음이 없이, 그리고 아무런 보상도 생각지 않고 꾸준히 이런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어디 그리 흔하겠습니까? 불행이지만 나는 그런 사람을 많이 만나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곳에서 그런 이선생을 만나 내 자신을 여미고 귀감으로 삼게 됨을 무한히 기뻐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선생이 저 같은 사람을 그 바쁜 와중에도 꼭 찾아 주시니 더욱 영광으로 여깁니다.
이 선생님, 부디 오래 오래 건강히 지내시며, 자주 자주 제 연구실을 찾아 주셔서 그 순박한 웃음을 보여 주세요. 그러면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연변 북산 언덕 연구실에서-
2004년 4월 27일 안병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