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소피아 성당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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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소피아 성당의 변신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8.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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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의 수필 86>

  터키의 이스탄불에는 성 소피아 성당이 있다. ‘신(神)의 영지(領地)’라는 뜻을 가진 이 건물은 비잔틴 제국의 것인데,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최고 걸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름만도 32m에 높이가 56m나 되는 거대한 중앙의 돔을 비롯하여 여러 보조 돔을 갖고 있는 이 건물은 규모도 최고일 뿐만 아니라 내부 장식도 훌륭하다. 건축학적으로도 회교 건축과 유럽의 각종 건축 양식에 여러 가지로 막대한 영향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기독교의 성화(聖畵)와 회교의 장식물이 공존하고 있는데,특히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성화는 기독교 성화의 표본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성 소피아 상당은 또 몇 가지의 사실로 놀라운 감동을 하게 한다.


  먼저 이 건물은 큰 규모인데도 기본 골격이 온전하다는 사실에서 놀라게 된다. 이 지역은 옛날부터 지진이 잦은 곳이어서 일천 수백 년이란 세월을 견디어냈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는 당시 건축가의 남다른 지혜와 기술이 깃들여 있다.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 황제가 꿈속에서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

  󰡒이곳에 예루살렘의 솔로몬의 것보다 더 크고 더 훌륭한 성당을 지어라.󰡓

  그러면서 황제의 손안에다 동그란 원을 하나 남겼다. 원을 받아 보니 성 소피아 성당의 원형(原型)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당시까지는 지붕을 둥그렇게 한 원형의 건축물이 없었다. 황제는 로마의 건축가 안데미우스(Anthemius)와 이시도루스(Isidorus)를 불렀다. 그리하여,그들은 로마인들이 즐겨 쓰던 아치형을 연결하여 둥근 지붕을 만들었다. 이것이 서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둥근 지붕형 건물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최초의 것은 서기 325~360년에 지었는데,지금의 것은 16년이 걸려 537년에 완공된 것이라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1400여 년 동안을 잘 버티어 온 것이다.

  건축학적으로 공을 반으로 잘라서 엎어놓은 듯한 공법은 가장 튼튼한 방식이라고 한다. 입체적으로 360도에 걸쳐 중력(重力)을 골고루 분산시킬 뿐만 아니라,흔들려도 뒤틀림이 가장 적다는 것이다. 지진을 대비하는 최선의 공법을 당시의 건축가들이 찾아내고 시공한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지 모르겠다.

 

  󰡒나는 온 세상의 기둥이다. 너희는 나를 믿고 따르라.󰡓

  회랑 안쪽의 벽 위에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적혀 있는 글귀가 이 건물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아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성 소피아 성당이 살아남게 된 데에는 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서기 1453년에 오스만 터키가 이스탄불을 점령하였다. 터키는 회교 국가였기 때문에 성당을 파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워낙 단단하게 지어서 부수기가 여간 힘드는 게 아니었다. 새로 짓는 것이 더 나을 지경이었다.

 

  이때 당시 기독교인 동방정교의 사제(司祭)가 나서서 말리며 이렇게 제안을 하였다.

 󰡒이슬람교나 기독교나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다 같다. 이것은 하느님을 섬기는 성당이다. 그런데,어떻게 하느님의 성전을 부술 수가 있는가? 그 대신 이슬람의 3M을 설치하겠으니 파괴하지 말고 보존하게 해 달라.󰡓

 

  터키 황제는 이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래서,이슬람교의 상징인 첨탑 미라넷을 세우고,기독교 벽화는 덧칠하여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하였다. 비록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바꾼 셈이지만,성당 건물은 지금까지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점령국 황제에게 성전 파괴를 항의하며 보존을 건의한 사제의 용기와 지혜에 박수가 쳐진다. 또한 패망국(敗亡國)의 의미 있는 반대와 제안을 수용할 줄도 안 터키의 황제에게도 찬사를 보낸다. 임금이 된 뒤에 당나귀 귀가 되어버린 신라 경문왕(景文王)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제왕(帝王)이 된 사람만이 아니고 윗자리에 있는 사람은 언제나 남의 바른 말을 귀담아 들을 일이다.


  그런데,성 소피아 성당은 또 다른 사실로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도 인간적이어서 더욱 가슴을 울려 준다.

  이슬람교에서는 인간의 초상(肖像)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그래서,이슬람 사원에 가 보면 어느 곳에도 초상이 없다. 따라서,소피아 성당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하면서 모든 벽화들을 물감으로 덮어버렸었다.

 

  그런데,이 소피아 성당에는 망가지긴 했지만 기독교 관련 초상들이 남아 있는 것이다. 예수와 성모 마리아 ․ 천사 가브리엘,그리고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틴 황제와 비잔틴 성을 쌓은 데오도투스 황제의 초상 등이 그것이다. 특히,회랑의 중앙 현관의 벽에 남아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자익 초상은 신(神)과 인간(人間)의 모습을 반반 합쳐 놓아서 보기에 따라서는 신으로도 인간으로도 보인다고 해서 유명하다.

 

  이렇게 기독교의 초상들이 남아 있게 된 것은 터키의 황제 메흐멧(Mehmet) 2세의 관용(寬容)의 덕택이라고 한다. 그리하여,소피아 성당은 주민들의 마음속에 은연중에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하고,예수 그리스도와 마호메트의 은총이 함께 조화되어 내리는 특수한 사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런 관계로 이 사원에서는 이교도끼리 대화를 나누고 물건도 흥정하고 또 사랑도 나누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랑만은 내놓고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말 대신 꽃말을 이용하여 꽃을 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것을 셀람(selam)이라고 하는데, 오늘날 꽃이나 꽃다발 ․ 화환 등을 주는 풍습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성 소피아 성당은 4세기에 세워진 기독교의 성당이었다. 15세기에는 터키에게 점령되어 이슬람 사원이 되었다. 1934년부터는 박물관이 되어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관람하는 명소가 되었다. 하느님의 계시로 성당이 되고, 힘의 논리로 사원이 되고, 인간의 지혜로 관광 명소가 되었어도 천 수백 년 동안 그 모습 그대로 서 있다.

 

  이스탄불의 소피아 성당을 찾으면 인간의 위대한 업적에 놀란다. 그리고, 거기에 얽힌 훌륭한 사람들의 삶과 인간다운 삶의 방식을 보고 감동하게 된다. 돌아 나오면서는 이런 생각을 하게 한다.

 

  하느님은 언제나 하느님이요, 성당은 항상 성당인 것이다. 다만, 사람들의 마음이 각기 다르고 또 변하여서 제각각 달리 보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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