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당당하고 떳떳해야 합니다.여러분들은 자기의 고향에서, 고국에서 살 천부적인 권리가 있는 분들입니다. 이 권리를 그 누가 빼앗을 수 있단 말입니까? 나라의 독립과 해방을 위하여, 일제의 탄압에 못이겨 살길을 찾아 떠났던 분들입니다. 저의 할아버지도 독립운동을 위하여 중국 상해임시정부에서 일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동제대학 졸업생이고 어머니는 남경대학 졸업생입니다. 해방이 되면서 우리는 상해에 살고 있었기에 배를 타고 인천으로 들어올 수 있었으나 여러 분들은 만주에 계셨기에 길이 막혀 고국으로 들어오지 못한 분들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오늘에야 고국 땅을 밟을 수 있게 되었는데 여러 분들을 불법체류자라고 단속하고 추방한다는 것이 말이나 됩니까?! 여기서 살 수 있는 천부적 권리가 있는 사람들을 합법적으로 일 할 수 있는 권리마저 주지 않는다는 것은 도저히 안될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찾아야 합니다."
일제히 터지는 박수 갈채, 자신들에 대한 절실한 이해와 격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너무나 오랜만에 심금을 울려 주는 목소리를 들었다. 더욱이 불법체류자에 대한 강제추방이 시행될 위험에 직면해 단 가마에 오른 개미신세가 된 이들에게 있어서 실로 난류가 아닐 수 없었다. 어떤 이들은 감격에 눈물을 흘렸다. 어두
운 그늘 밑에 숨어살며 고되고 힘들고 어지러운 일에 혹사를 당하면서 무시당하고 천대받고 차별 받던 서러움이 한꺼번에 목을 메웠다.
“나는 여러분들이 한국 사람들에 대해 원한을 품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한국 사람을 욕할 때면 나는 정말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나는 조선족도 아닙니다.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남을 천대하고 멸시하고 박대하는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한국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입니다. 나는 한국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여기에 나선 것입니다."
그랬다. 그는 바로 좋은 한국 사람이었다.
처음 한국에 발을 들여놓고 오갈데 없는 사람들이 머물러 편히 잠 잘 수 있게 하고, 싼값으로 밥을 먹을 수 있게 하고, 일자리 없는 사람을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병든 사람들을 무상으로 치료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을 동원해 우리 조선족들의 체불임금을 26억원도 넘게 되찾아주신 분이다. 그는 각종 심리적 고초를 겪는 이들에게 상담도 해주고 타향살이에 지친 사람들이 정신적 의지를 잃고 방황할 때 희망과 의지를 잃지 않고 열심히 살도록 힘을 부여해 주는 분이었다. 그는 우리 조선족들이 강제추방의 위기에 몰리자 우리를 위해 피를 토하며 단식투쟁을 벌려 싸워 이긴 사람이다.
그는 호소했다. “자기의 권리는 자기 손으로 찾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투쟁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당한 권리와 주장을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옳습니까?!”
“옳습니다!" 천둥 같은 함성이 터졌다! 대오는 즉시 출입국관리사무소로 옮겨졌
다. ‘고용허가제 신고절차 전면 수정하라’는 플래카드를 앞장에 세우고 기나긴 대오는 목적지를 향해 움직여 가고 있었다.
메가폰을 든 이의 선창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
끝도 보이지 않는 대오의 모든 사람들은 합창에 합류를 한다.
이 대오의 신세타령에 하늘도 목이 메였는지 서울의 하늘은 뿌옇게 흐리며 비를 쏟았다. 빗속에서 대오는 계속 앞으로 앞으로 움직였다.
대오 속에는 허리 굽은 할머니도 있었고 현장에서 상한 아픈 다리를 끌고 지팡이에 의지해 절룩거리며 따라서는 이도 있었다. 4시 반경, 서울 출입국사무소 정문에는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 앞에서 모두가 주먹을 부르쥐고 한결같이 외쳤다.
“잘못된 신고제도 불법으로 몰아간다”
‘불법이란 웬 말인가?!’
‘지병중인 환자에게 고용주를 찾아달라’
‘3D업종에 골병들고 정책에 한숨짓는다.’
이어 그들은 고국사랑과 민족사랑을 표명하면서‘대한민국 만세’와‘조선족 만세’를 외치고 또 외쳤다.
이는 더는‘아리랑’족속들의 비애가 아니라 그들의 단결되고 뭉친 활기찬 대행진
이었다.
(이틀후 노동부에서는‘선등록 후신고’라는 조치가 나와 그간 여러 이유로 신고하지 못한 동포들은 먼저 불법체류자라는 것을 확인 받고 신고하도록 편의를 제공하게 됐으나 한국 온지 1년 미만된 동포와 불법체류로 4년이상 된 동포 중 딱한 사정으로 도저히 갈 수 없는 동포들은 아직도 가슴 졸이고 있다.)
김청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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