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류연산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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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류연산 단편소설>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7.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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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집에는 고양이가 있었다. 여간 귀엽게 생긴 놈이 아니었다. 황갈색 바탕에 가무스레한 줄무늬가 가고 이마빡에는 제법 뚜렷한 왕(uang)자가 박힌 호랑이의 축도였다.

어쩌다 피지 못할 사정에 밀려 앞집으로 가게 되면 햇병아리처럼 깜찍한 계집애가 고양이하고 어울려 숨바꼭질 하는 것이 자못 흥에 겨웠다.

계집애가 헝겊오리를 쥐고 흔든다. 고양이는 방바닥에 찰싹 배를 붙이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바람처럼 휙 달려간다. 네 살밖에 안되었다는 계집애는 어른스럽게도 헝겊오리를 허공에 쳐들어 올린다. 이렇게 몇 번 허탕을 치고 나면 고양이는 시들해서 책상 밑으로 도망을 쳐버린다. 그러면 계집애는 헝겊오리 한끝을 고양이의 발치에 던진다. 혀로 입역을 싹싹 다시다 말고 고양이는 발로 헝겊오리를 툭 건드려본다. 계집애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능청스럽게 가만 있는다. 고양이는 다른 발로 친다. 그때 계집애는 눈에 띄지 않게 헝겊오리를 앞으로 조금 당긴다. 고양이는 엇바꾸며 쳐댄다. 헝겊오리가 조금조금 책상 밑에서 물려나온다. 잡힐 듯 잡힐 듯 하는 재미에 홀려 금시 토라졌던 마음이 풀렸는지 고양이는 살같이 돌격해 나온다. 계집애는 또 헝겊오리를 주어든다. 잔뜩 약이 오른 고양이는 폴짝폴짝 몸을 솟구며 디룽디룽 드리운 헝겊오리 끝을 이쪽저쪽 갈겨댄다. 그것이 재미있다고 계집애는 보동보동한 볼에 샘을 파며 캐득캐득 웃는다.
언젠가 나는 아들 엽이를 데리고 그 집으로 갔다.

계집애는 가마목에 앉아서 한창 신나게 고양이를 치장하고 있었다. 고양이 목에 구슬목걸이를 걸어주고 빨간 비단머리수건으로 등허리를 감고 있는 중이었다. 고양이는 귀찮다고 고개를 저으며 몸을 뒤로 뻗쳐댔다. 그러자 계집애는 조막손으로 고양이의 머리를 살짝 갈겨주는 것이었다.

“가만있어! 곱다 곱다하니까 흐물거리기만 하네.”

계집애가 종알대는 엉뚱한 말은 아침마다 이 집에서 울려오는 젊은 아낙네의 훈계를 본 딴 것이었다.

고양이는 뒹굴며 떼질을 쓰더니 끝내 손아귀에서 빠져나와 다람쥐마냥 쫑드르르 옷장 위로 바라올라갔다.

“미미, 못 내려오겐? 고까옷 입고 탁아소 가야지!”

계집애는 어머니를 흉내 내여 얄팍한 눈까풀을 까불까불하며 고운 눈을 흘겼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양이는 목에 걸린 목걸이가 성가셔 벗어 내리려고 마구 앞발질을 해대기에 여념이 없다.

“미미, 이리 온! 엄마 말 들으면 과자 사주마.”

계집애는 깐질깐질 방바닥을 긁으면서 앵돌아진 듯한 고양이 기분을 달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질음 끝에 목걸이며 머리수건이며를 벗어 내린 고양이는 싫증이 난 듯 쭈그리고 앉아 괘씸하게도 발바닥을 핥는다. 잔뜩 애가 난 계집애는 빗자루를 쥐고 고양이를 때리려고 강종강종 뛰었다……

볼일을 마친 나는 아들여석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금시까지도 남의 집이라 찍소리도 못하던 엽이는 집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고양이를 내라고 찡찡거렸다. 장난감 토끼며 범이며 강아지며를 내놓고 얼리고 닥쳐도 무가내였다. 옷장 위랑 막 올라가는 고양이를 내라고 발버둥을 치는 데는 도저히 달래낼 방법이 없었다. 애난 김에 엉덩짝을 둬 번 가볍게 때려주었더니 성깔이 더러운 녀석은 한 구들 줄느런히 세워놓은 장난감들을 마구 발로 차고 손으로 쥐여 뿌렸다. 결국 녀석을 안고 상점으로 가서 오래전부터 감질을 낸 세 바퀴 자전거를 사주고서야 겨우 ‘무례한 안탈’을 눅잦힐 수가 있었다.

며칠 후 퇴근하고 돌아오니 아내가 쿨쩍쿨쩍 우는 엽이의 이마에 약을 발라주며 다시 그럴 테냐고 다짐을 받고 있었다. 야들야들한 이맛살로부터 눈까풀까지 다섯줄의 깊은 굴뱀이 져있었다. 어찌된 일이냐고 눈이 둥그레져서 물었더니 아내는 앞집께로 눈을 주며 자초지종을 말했다.

아내가 저녁준비를 서두르는데 밖에서 뛰놀던 엽이가 씩씩거리며 집으로 들어오더니만 자전거를 끌고 배척배척 나가더란 것이었다. 길에 나가 자전거를 탈 때면 큰애들의 성화에 매양 어른을 보호자로 옆에 세워놓는 놈인데 같이 나가자는 떼질도 없으니 별스럽게 생각된 아내는 뒤쫓아나갔다. 그런데 녀석은 왕청같은 앞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활짝 열린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녀석은 자전거를 옆집 계집애 앞에 가져다놓고 뭐라고 옹알거리며 계집애의 품에서 고양이를 받아 안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벌써 자전거타기가 싫증이 나니까 또 고양이가 욕심났던 모양이었다. 철없는 귀여운 것들의 엄청난 바꿈질에 장마별처럼 방긋 웃던 아내는 다음 순간 얼굴이 굳어졌단다. 자전거가 욕심은 나지만 고양이를 주자니 아까웠던지 계집애는 ‘약조’를 어기고 비실비실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엽이 녀석은 사내랍시고 완력으로 누를 잡도리를 하고 접어들었는데 그때 어찌어찌하여 고양이의 발톱에 부상을 입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우습기도하고 가슴도 아팠다. 세 돌도 안찬 녀석의 어벌이 큰 소행에 귀여움이 커가는 만큼 고양이를 길러서 애를 기쁘게 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되기도 했다. 얼마나  부러웠으면 다른 사람은 손도 못 대게 하던 자전거와 바꾸려고 들었겠는가! 어른들 보기엔 어줍잖은 일 같지만 천진한 아이들에겐 커다란 충격이 되어 일생 잊혀지지 않는 상처로 옹 맺힐 때가 종종 있는 것이다! 나는 그길로 시장을 일주했다. 동시장으로부터 서시장, 하남시장을 샅샅이 훑었지만 고양이꼬리도 눈에 띄지 않았다. 닭개짐승처럼 주인의 손에 목돈을 쥐여줄 대신 귀여움을 사는 몫으로 도리어 밥과 고기붙이를 축내기만 하는 놈이라서 상품으로는 되지 못하는가보다.

그날의 그 헛걸음의 아쉬움은 나의 마음에 꺽쇠처럼 걸려 종시 풀려지지를 않았다. 고양이의 발톱자리가 아물면서 더뎅이가 앉은 엽이의 이마를 볼 때마다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 못한 죄의식에 찌르릉 가슴이 저려났다. 그러던 차 앞집 고양이가 잔뜩 불어 만삭이 된 배를 안고 뚱기적거리며 나다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내가 엽이를 임신하였을 때 남산같이 부풀어 오른 배를 어루만지며 흐뭇한 심정으로 분만을 고대했던 것처럼 나는 은근히 고양이가 새끼 낳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한 마리 달라고 해서 천진난만한 동심에 별빛을 주려는 타산이었다.

그런데 그 후로 나는 오랫동안 고양이를 보지 못했다. 앞집 문에는 밤낮으로 차가운 자물쇠가 잠가져 있었다. 썩 후에야 나는 그 집의 부부간이 이혼을 하고 떠나갔음을 들어서 알았다. 촌 같으면 당날로 온 마을이 들썽할 ‘대 사변’인데도 앞뒷집에 살면서도 나는 감감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가까울수록 멀기만 한 각박한 시내 인심에 혐오를 느끼면서도 그것에 젖어들고 있는 나를 나는 놀랍게 발견했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적인 것이었고 고양이 새끼를 얻지 못하게 되었다는 아쉬운 생각이 한 머리에 꼴딱 차올랐다.

그날은 비가 구질구질 내렸다. 책상을 마주하고 시간이 바쁜 글을 긁적이노라니 문득 밖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야웅!’하고 귀결에 들려왔다. 나는 유리창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차가운 비가 때리는 앞집 창문턱에 고양이가 몸을 옹송그리고 앉아있었다. 어디에 가서 새끼를 낳았는지 통통하던 배는 홀쪽하게 꺼졌고 잔뜩 오그려 붙인 늘씬한 허리의 털은 무엇에 뜯겼는지 듬성듬성 빠져있었다. 게다가 비에 젖은 털이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어서 여간 처참한 꼴이 아니었다. 고양이는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창턱을 맴돌았다. 한곳에 정착해 사는 미물이라 붙인 정을 잊지 못해 찾아온 모양이다. 그러나 문은 어디라 없이 꽁꽁 잠겨 들어갈 틈서리라곤 없었다. 보금자리를 잃은 불쌍한 고양이에 대한 연민의 정을 담고 나는 펄쩍 문을 열었다. 고양이는 문소리에 머리를 돌려 불을 뿜는 듯한 번쩍이는 눈으로 나를 경계해보았다. 나는 고양이를 놀래울 세라 발밤발밤 다가가 닁큼 붙잡았다.

“야웅!”

고양이는 손에서 빠져 달아나려고 몸부림을 치며 구슬피 울어댔다.
비에 갇혀 집안에 비죽비죽 울며 트집만 쓰던 엽이 녀석은 고양이를 보자 기분이 풀려서 해해거렸다. 녀석은 나한테서 고양이를 받아 안자 어머니한테로 아장아장 걸어가며 “엄마, 곱다. 해해해……”하고 좋아서 야단이었다. 그런데 낯선 집, 낯모를 사람들 속에 떨어진 고양이는 엽이가 앞집 계집애처럼 뽀뽀를 하려는 데도 고개를 탈며 한사코 호의를 거절했다. 그러나 유정 무정은 사귈 탓에 달렸다고 엽이가 과자도 주고 자기의 국그릇의 고기점도 건져주는 데야 그냥 서먹서먹할 수가 없었다. 날이 새고 밤이 오고 또 날이 새고 밤이 오는 새에 옛일을 잊고 새 정을 붙인 고양이는 엽이와 곧잘 장난도 치고 밤이면 녀석의 잠자리 속으로 기어들기도 했다. 앞집의 파열은 우리 가정에 새로운 내용과 웃음과 괘락을 가져다준 셈이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이었다. 앞집 나그네가 자전거에 계집애를 태워가지고 웬 사람과 함께 나타났다. 이혼판결서에 남녀간에 집을 꼭 같이 나누어가지게 되었으므로 팔려고 왔던 것이다. 여전엔 분세수를 곱게 한 계집애가 옆으로 지나갈 때마다 진한 향내가 풍겨왔는데 이번에는 그런 향내가 없었다. 보동보동 살찐 뺨은 어딘가 여윈듯하고 방금 망울을 터진 꽃처럼 곱게 벌려져 있던 작은 입술은 앙다물려있고 하냥 웃음이 방글거리던 머루알 같은 까만 눈에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그늘이 비껴간 듯싶었다. 내외간의 분열은 천사 같은 계집애한테까지도 턱없이 불똥을 옮겨간 것이 분명했다.

그들이 흥정을 끝내고 돌아가려는 때에 공교롭게도 고양이를 안고 나온 엽이와 계집애 사이에 싸움이 붙었다. 녀석은 고양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계집애는 기어이 빼앗아내려고 하나로 엉켜 붙어서 밀고 닥치고 했다. 한참 실랑이질을 하던 애들은 제힘으로 되지 않으니까 울먹울먹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후원을 청하는 것이었다. 엽이 뒤에는 나하고 아내 그리고 할머니까지 서서 웃고 있었다. 그러나 계집애의 뒤에는 이혼 후로 얼굴이 축가고 고민으로 눈정기를 잃은 외로운 나그네가 휘주근히 서서 어색한 웃음을 터 갈라진 입술에 물고 있었다. 얼굴이 발개서 아버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계집애는 응대가 없자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금시 두 눈 가득히 눈물이 맺혀서 방울져 뺨 위로 흘러내렸다. 나그네는 딸의 가냘픈 어깨를 꼭 껴안고 눈물을 닦아주며 달랬다.

“울지 말아, 할배집에도 고양이가 있지 않니, 저걸 또 가져가면 할배랑 할매랑 욕한다.”

“싫어! 할배 집 안 갈래! 미미하고 엄마 집에서 놀래!”

계집애는 흐륵흐륵 느껴 울었다.

“고운 애는 떼질을 안 쓴다. 인젠 엄마 집두 아빠 집두 없단다. 우린

할배집에 가 있어야……”

나그네는 뒷말을 잇지 못하고 얼굴을 돌려 일찍 신혼생활의 단꿈을 키워왔고 또 희망의 딸을 낳아 길렀으나 지금은 남의 소유로 넘어간 집을 망연히 바라보며 한숨을 지었다. 그 무거운 한숨소리는 말소리보다 곱절 더 처량하게 울렸다.

그 모양을 보는 나의 가슴은 쓰르르해 났다. 나는 조용히 엽이를 달랬다.

“엽이야, 남의 걸 가지는 애가 좋은 애냐?”

엽이는 도리머리를 지었다.

“그럼 미미를 돌려주자꾸나.”

“싫어!”

엽이 녀석은 입이 뾰조록이 나오더니 기분이 뒤탈릴 때마다 항상 내드는 방패막이인 울음을 내뿜었다.

뜰은 두 아이의 울음소리로 진동했다. 그 소동에 놀란 고양이는 “야옹!”하고 소리를 지르며 엽이 품에서 빠져나와 울바자를 타고 쫑드르르 지붕 위로 올라갔다.

나그네는 안가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딸애를 우격다짐으로 자전거에 앉혔다. 어린이는 언제나 어른들의 소원대로 물건처럼 움직여 가기마련이다.

계집애는 떠나가면서도 지붕 위에 불안스럽게 앉아 영문을 몰라 두릿거리는 고양이를 향해 앙증한 두 팔을 벌리고는 “미미, 미미……”하고 목 메여 불러댔다. 서럽고 처량한 그 계집애의 자지러진 흐느낌소리가 멀리 서서히 사라지자 나의 마음은 어쩐지 갑갑하고 부산해졌다.

나는 엽이를 으스러지게 끌어안았다. 순간 애를 얼싸안을 때마다 우주를 얻은 듯 뿌듯해지던 정다운 물결은 어디로 싹 흘러가버리고 어쩐지 전에 없이 코끝이 짜릿해나면서 눈물이 푹 솟았다.

198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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