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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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7.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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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미 자 수필>

아프다고 할가 쓰리다고 할가 분간키 어려운 가슴을 부여 안고 멍하니 허공을 쳐다본다. 소리 지를수도 없고 몸부림 칠수도 없는 무형의 바줄에 묶이운 심신은 다시 열병에 시달리면서 소리없는 신음을 삭이여 앙금을 받는다. 살갗위의 혹을 떼여버렷는가 했는데 살갗밑에 자라나는 종양이 악성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쇼크를 받지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 나는 왜 이다지도 괴로울가? 누구를 위해 이렇게 아플가? 가난을 모면하려고 타관에 돈 벌러 온 고향사람들이 자신을 버리고 가정마저도 버리고 살아가는 풍경을 보노라니 그 안타까움이 질식을 부른다. 괴로운 마음을 달래고 살아가야 할 정답을 찾고저 나는 남한산성의 약사사에 올라 깊은 고민을 시작했다.

 

떼에엥떼에엥ㅡ 고요한 정적을 깨뜨리며 울리는 산사의 종소리가 돌멩이가 되여 내 혼탁한 마음에 큰 파문을 일으킨다.

 

친구의 선택앞에

 

선화 춘성이 나는 40여년을 절친하게 지내온 죽마고우다. 한국바람은 우리셋을 조부들의 고향인  우리에겐 낯선 서울땅에 운명처럼 실어다 놓았다. 우리는 한달에 한두번이라도 시간만 나면 마주앉아 소주잔을 기울리면서 향수의 회포를 풀군하였다. 머나먼 고향을 떠나서 부모형제 가족의 품을 떠나서 힘든 타향살이에 우리는 서로가 정다운 고향이였고 그리움을 대신해주는 집이였고 외로움을 달래주는안식처였다.

 

그러던 어느 주말 우리셋은 오래만에 마주앉았다. 금방 저녁상을 마주했는데 춘성의 핸드폰이 울리는것이였다. 핸드폰을 받은 춘성이는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부랴부랴 단장을 하고 나가는것이엿다. 비밀이 없었던 가족 같은 우리사이에 안개 같은 미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튿날 늦은 오후에야 돌아온 춘성이는 자기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것이였다. <<어쩔수 없어 한국사람한테 시집오기로 했어. 이미 애아버지의 동의도 거쳤어. >>그러면서 현재 불법체류 때문에 불안해서 못살 것 같다면서 그 사람(한국사람)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혹처럼 달고 살아야만   빨리 국적을 올리고 애아버지도 형제들도 다 초청해 데려온다는것이다. 어쩔수없는 살기 위한  선택이라면서 리해해 달라는 청까지 부언한다. <<정말 그 길밖에 없을가? 정신을 좀 차리고 다른 길을 모색해볼가>> 나의 말에 그는 버럭 화를 내면서 <<집에 가도 할일이 없지 않느냐? 그 길외에 또 어디 살길이 있느냐? >>하는것이였다. 그 말은 마귀의 손톱마냥 내 가슴을 훑어 아픈 상처를 낸다. 현재 절실하게 도와줄수 없는 나의 한계가 안타깝기만 하다.

 

그후에 나는 전화로 허무한 선택이니 부디 신중하라고 하면서 한생을 후회없이 사는 것이 최선이니 절대 아들애한테는 미안한 선택을 하지 말고 엄마에 대한 아들애의 우상이 허트러지지말것을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의 진정어린 조언도 바다에 돌 던진격으로 끝나고 말았다.

 

자신의 처한 환경을 개변하려는 것은 나쁘지는 않지만 굴절된 사유에 그 수단이 너무 하찮아 마음이 괴롭다. 그래 우리 40,50대는 나라안팎으로 이다지도 살길이 막막하여 때아닌 때에 본의 아닌 선택을 해야 한단 말인가? 향상(向上)식 사유를 가진 뚜렷하고 당당한 선택이 없단 말인가? 물은 아래로 흐르고 사람은 위로 흐르는  인지상정(人之常情)도 거부하고 인격을 낮추고 할일 많은 대한 민국에서 밑바닥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친구의 소원이란 말인가?

 

한때는 대학교문을 나와서 큰 기업의 공정사로 활약한던때도 있었는데 왜서 머리들어 하늘을 보지 않는가? 태양은 언제나 머리위에서 빛난다. 머리숙이고 땅만 보면서 터널속으로  걸어가는 친구가 너무 가엾다. 친구를 잃을가봐 마음이 무척 아프다. 그리고 친구가 순간의 암흑한 현실을 모면하려고 하는 모호한 선택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헤여질가봐 무척 두렵다. 친구인 내가 이러듯 괴롭고 아픈데 가족의 아픔과 충격은 어디에 비할가? 세상이 다

 

그런데 하고 오늘은 무난하게 넘어갈것 같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만 질 상처다. 한사람의 헛갈린 선택으로 적잖은 사람들이 얼마나 긴 시간을 아파하고 괴로워할것인지를 친구여 부디 감안하라!

 

애인이 되여 주세요

 

서울시 신설동에 있는 한집에 면접보러 갔을 때 주인과의 약속시간이 두시간넘게 있는지라 주위의 지리도 알아둘 겸 돌고있는데 <<연길양꼬치 延吉羊肉>> 이라는 간판이 다정하게 안겨오는것이였다. 고향에 온 기분을 느끼면서 행여 고향사람이라도 만날수 있지 않을가 하는 기대를 안고 문을 떼고 들어섰다. 연변말투의 40대 녀인이 반겨 맞아주는데 여간 반갑지 않았다.

 

나는 랭면 한그릇 청하면서 말을 건넸다. 한켠 테이블에서 맥주 마시던 남자손님 두분이 우리들의 말을 듣더니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것이였다. <<혼자 왔으면 우리와 합류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연변말투였다. 나는 쾌이 대답하고 건너가 앉았다. 서로 고향으로부터 입국시간을 묻고 현재 하고있는 일(직종)을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내가 혼자라는 말에 외롭지 않느냐 하고 묻는것이였다. <<외롭지 않다는 것은 거짓말이겠죠. 그래서 애들을 보살피고 공부도 같이 하면서 애들에게 정을 붙이고 몇 해 살려 합니다. 지난번에도 그렇게 몇해동안 돈 벌었거든요>>나의 말을 듣던 40대의 남자가 취기가 오른 말을 던진다.  <<너무 랭랭한 생활 같은데 혼자라는 것이 얼마나 힘드십니까? 저도 혼자인데요 애인이 되여줄수 없겠습니까? 서로 의지하면서 사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가요?>>나는 롱담으로 받으려고 입을 막고 웃으면서 지나치려 하였다. <<정말입니다. 전 롱담 아닙니다.>>그 남자가 너무도 정색을 하니 그냥 흘려버려야 할 말 같지 않아서  당돌하다는 느낌에 당황스럽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 동정의 잔물결이 인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한 고향이라는 리유 하나만으로 초면강산에 처음보는 녀자에게 <<프로포즈>>를 한단 말인가?

 

외로운 사람을 만나면 달래주고 싶고 같이 고독을 나누고 싶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이다. 언젠가 대림역에서 술에 폭 취해 세상을 체념한듯이 초점 잃은 눈으로 허공을 보면서 장탄식을 하던  한고향 남자의 슬프고 허탈진 모습이 마음 아프게  안겨오면서 다가서고 싶은 충동까지 느낀적 있었다.  혈육한점 없는 낯선 타향에서 한없이 외롭고 쓸쓸했던 나의 모습 같아서 이 세상에 한사람도 고독한 사람을 만나지 못해 쓸쓸이 살아갈 리유가 뭐란 말인가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외로운 사람끼리 서로가 위안이 되고 힘이 되여준다는 이것이 대한민국생활에서 애인을 사귀고 림시가정을 묶는 당당하고 합리적인 리유이다.

 

세상을 체념한듯한

허공에 딩구는 네 눈길앞에

나는 반짝이는 보석이고 싶다

 

구름처럼 떠도는

갈곳없는 네 령혼을

내 목에 스카프로 걸치고

 

사랑에 고갈된

사막 같은 네 가슴속에

내 푸르른 정이 오아시스로 펼쳐지고

 

고된 일에 지쳐

휘청거리는 네 육체를

내 품이 시몬스침대 되여 받아주고

 

다시 세상을 바라보는

보석 같은 네 눈에서

나는 고운 눈물이 되여 굴러 떨어지리

 

외로움에 절고 방황에  들뜬 사람앞에 애인이 되여 준다면 그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어느만큼 달래주고 그의 방황을 스톱시킬수 있을가? 순간의 고달픈 현실에서 해탈되려고 서로 애인이 되여주고 <<림시가정>>을 묶는다면  그 뒤에 일어나는 태풍의 위력을 감지 해보았을가? 사람의 마음처럼 간사한것이 없다. 정을 따라 흐르는 것이 인생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진대 사막에서의 오아시스 같은 인연의 맥을 짚어보면 상상할수 있을것이다. 이런 인연은 리지적으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하여도 서로가, 그리고 가족들까지도 상처밖에 남는것이 없지 않을것이다.

 

90년대로부터 류행되여 밀물처럼 번져가는 <<애인>>(情婦)이라는 인연은 사회의 세포인 가정을 녹이는 아편으로 등장하였다. 건전한 신앙과 인생의 가치관이 너무 미약한 40,50대들이여, 가정의 핵심을 이루는 기둥이 비뚤어지면  사회의 주류를 이루는 가정이 몰락한다. 가정이 없으면 사회란 있을수 없다.  2002년 동남 아시아를 강타했던  쓰나미보다 더 큰 태풍이 아니, 여호와가 내린 노아의 홍수보다 더 큰 재난이  우리에게 덮치고 있다. 

  

연변녀자

 

직업소개소를 통해 강남의 한 가정집에 입주할때였다. 소개소소장은 그 집에 가서 연변녀자라고 말하지 말고 흑룡강에서 왔다하라고 부탁하는것이였다. 왜서 그래야 하느냐고 물으니 연변녀자들의 이미지가 너무 나빠 적잖은 집들에서 꺼린다는것이였다. 참 언찮다하기보다 쓰디쓴 흰트였다.

 

오상에서 교원으로 일하다가  퇴직하고 한국에  온 아주머니와 사귀였는데 하루는 같이 길을 가고 있었다. 길을 묻는 연변말투의 녀자와 맞띄엿을 때 그녀자에게 길을 가르쳐준후 뒤에 대고 <<튀>>하고 침을 뱉는것이였다. 내가 갈등이 있는 사이냐고 물으니 <<아니요. 연변녀자는 꼴도 보기 싫어>>하는것이였다. <<저도 연변 녀자인데요 >>라고 하니 <<아니야. 자기는 근본도 스타일도 연변녀자가 아니야>>하는것이였다. 나는 어이없어 먼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때로부터 먹은 마음 하나가 바로 언제어디서나 당당하게 <<연변에서 왔어요>>하고는 지적이면서도 강직하고 부지런한 의미지로 교양 없고 랭혹하고 욕심 많은것으로 알려진 연변녀자의 의미지를 바꿔놓고 싶었다.

 

 

허나 한 고향 동창생의 비극은 나에게 또 한번의 절망을 주면서 나마저도 연변녀자라는 것이 혐오스러워 스스로도 얼굴에 침을 뱉고 싶은 충동을 주었다. 몇해전 고향에서 인철씨가 한국에 갔다가 반년만에 골회가 되여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했었다. 사망원인은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에 뇌출혈이라는것이였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인철씨의 가까운 친척을 통해 들었는데 자살이라는것이다. 그 원인은 몇해전에 한국에 온 마누라가 반년사이 딱 한번밖에 만나주지 않고 소식도 없었다는것이였다. 입국한 시간이 얼마 안되여 의사소통도 잘 되지 않고 적응이 안되여 갖은 스트레스도 많은데다가 안해의 배신을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워서 삶을 포기하는 절망에 이른것이였다. 그 외에도 부부가 같이 한국에 와서 남편을 버리고 도망가는 녀자들이 한둘이 아니였는데 거개가 연변녀자들이라는것이다. 미꾸라지 한두마리가 개울을 흐린다고 물론 억척스럽고 착실히 살아가는 연변녀자들이 다수이지만 인철의 비극은 너무나도 침통한 교훈을 제시한다.

 

그것은 어느 한사람의 인생에서 소홀함과 경박해서 빚어진 일이 아니라고 느꼈다. 인철씨의 장모를 보면 수십년 가도주임공작을 하면서 허다한 가정에 문제가 있으면 조해사업을 잘하여 연변과 길림성의 모범까지 되고 많은 사람들의 두터운 신임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다.. 그런데 인철씨안해 외 삼형제는 모두가 리혼을 한 상태이다. 그러면 후천적 교육이 모자라서 이런 비극이 생긴것도 아닐 듯 싶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뿌리의식이 너무 박약하여 인연을 중히 여기지 않는 고질 때문에 가정도 초개같이 버리는 것이 우리 사회가 허물어 지는 근본적 원인인것이다. 최저한도로 인철씨의 안해가 <<내 아이의 아버지>>라는 인연을 감지 했더라면 그 정도로 랭혹하지 않았을것이고 이런 비극은 회피될수도 있었을것이 아닌가? 처녀들이 해외로 시집가는 것 말고도 유부녀가 리혼을 하고 해외결혼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사회의 조류가 된 것은 바로 우리의 뿌리의식이 너무 박약하기때문이다.

 

내가 처녀때 할머니께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꼭 신신당부하시던 그 말씀의 의미를 오늘에야 깊이 깨달았다.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서 (남자가)맏이던 둘째던  관계치 말고 사람이 똑똑하고 가문이 좋으면 된다.  량친이 건전히 계시느냐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는 삼대집이면 더욱 좋다. 그런 집으로 애들을 시집 보내라. 그런 집은  인연을 중히 여기니 사람을 귀해해서 대접을 받을것이니라 >> 우리가 시집갈때는 맏며느리로 들어가는 것을 많이 거부하는 풍조가 일었는지라 <<둘째부터 낳지요 >>하는 롱조까지 생겼던것이다. 그런 의식속에서 자라난 것이 오늘날 인연을 초개같이 여기고 가정도 서슴없이 뿌리칠수 있는 뿌리의식을 상실한 우리의 난해한 인생가치관이라 해야겠다. 나무도 뿌리가 있고 한해살이 풀도 뿌리가 있어 뿌리, 가지, 이파리가 하나의 생명을 완성하는데 하물며 인간이 뿌리가 없단 말인가?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부모 없는 자식이 어디 있는가? 지난날 부모를 거부했던 녀자들은 오늘날 자신의 부모자리조차도 쉽게 포기한다. 물론 그 과정에는 말 못할 고초가 있다 해도 끈끈한 인연이라는 이 끈은 녀자들이 엄마라는 이름으로  잘 꽈야 할것이다 오직 가정을 지키는 길이 자식을 지키는 길이라는 것을 왜 모른단 말인가? 한사람의 인생에서  아름다운 인연은 인생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버지, 어머니, 자식이라는 이 인연보다 더 완미하고 견고한 인연이 또 어디 있을가? 돈이란 이 인연을 위한 수단이지 인생의 전부나 목적이 아니잖는가?

 

인생에는 정답이 없는가

 

언젠가 동창생들과 마주 앉아서 수다를 떠는 가운데서 인생에는 정답이 있느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쟁론했었다. 대부분이 없다고 한다. 나는 있다고 주장했다. 살아가는 과정에는 인생은 천층만층 구만층이라 정답을 찾기 어려워도 결과는 꼭 정답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부지런한 농부에게 풍년이 차례지고 게으른 농부에게 흉년이 차례지듯이, 또 언제나 선은 선으로 악은 악으로 흐를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흥부와 놀부 >>의 이야기가 바로 인생의 정답이다.

 

선량하고 부지런한 사람에게는 흥부박이 열릴것이요 악하고 게으른 사람에게는 놀부박이 열릴것이다. 그리고 제비는 박씨를 꼭 봄에 물어다 주었다. 아무리 선량하고 부지런해도 가을엔 열매를 바라고 씨를 뿌릴수 없는것이다. 가을은 즐기는 계절이라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무리 해빛이 따스한들 일조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어찌 씨를 뿌리랴? 얼마 남지 않은 저 해볕을 한껏 받으며 영글어가는 것이 식물의 순리이며 자연의 리치인데  인간도 자연의 일속이 아닌가? 불혹을 지나 지천명에 이른 40,50대는 인생의 가을에 접어든것이다.

 

지금 나의 가슴속에서는 쓰디쓴 열물이 흐른다. 토하고 싶어도 토할 수 없는 열물은 위장을 통해 식도를 치밀어 올라 울컥거리면서도 오바이트는 되지않는다. 통증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쓰라림. 나는 왜서 이다지도 괴로운 고민을 하는걸가?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아플가?

나는 내가 아픈 매를 맞아 울리는 종(鍾)처럼 느껴진다. 오직 맞아야만 울려퍼지는 종, 그 종은 아무나 울리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종소리 선당의 종소리 산사의 종소리는 고달픈 수련을 거친 목사 신부 스님만이 울릴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누구를 위하여 그 종을 울리나? 16세기 영국의 시인 존던의 시가 수백년 애송된 리유를 알았다

 

어느 사람이든지 그 자체로서는 온전한 섬은 아닐지니

모든 인간이란 대륙의 한 쪼각이며

또한 대양의  한부분이여라

만일 흙덩이가 바다물에 씻겨 내려가게 될지면

유럽땅은 그만큼 작아질지며

만일에 모래벌이 그렇게 되더라도 마찬가지이며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의 령지가 그렇게 되더라도 마찬가지여라

어느 누구의 죽음이라도 나는 감소시키나니

나란 인류속에 포함되여 있는 존재이기때문이여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를 위해 사람을 보내지는 말지어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니라  

 

 

2007년 7월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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