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천, 그리고 윤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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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천, 그리고 윤이상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7.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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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베이징올림픽, 세계를 비추는 동양정신으로-<남중 칼럼>

장대천(1899-1983)

윤이상(1917-1995)


 장대천과 윤이상, 그들은 매우 다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매우 닮았다. 중국인과 한국인, 미술가와 음악가, 내륙 출신과 바닷가 출신 등이 그들의 다른 점이다. 그런 이질적 요소들을 찾다보면 아시아 곳곳마다 남아 있는 뼈저린 아픔의 흔적도 그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장대천은 자유주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는 반면, 윤이상은 사회주의적인 성향을 보였다는 점이다. 그들도 이념적 대립의 희생자들인 셈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조국의 분단’ 때문에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작고했다는 점, 둘 다 자기분야를 대표하는 위대한 예술가라는 점, 그리고 각기 그 분야에 큰 영향을 남긴 사람들이라는 점, 조국을 떠나 오래도록 유랑생활을 한 점 등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동양의 오랜 석굴이나 고분의 벽화에서 얻은 그들의 예술적 영감을 재창조하여 세계예술의 지평을 새로이 열었다는 위대한 업적이 있다는 점이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이다.     


돈황 석굴 벽화

강서고분 고구려 벽화


 대풍당(大風堂) 장대천은 중국 사천성 내강출신이다. 팔대산인 주탑(周耷)과 석계(石谿), 석도(石濤) 등에게서 서화를 배우고, 1917년에는 일본의 고도인 교토에서 한동안 염직을 배우기도 하였다. 그는 부유(溥儒)와 함께 남장북부(南張北溥)라 불리는 정도의 미술적 경지에 도달하였다.

 특히 1940년부터 2년 7개월 동안 둔황 천불동에 가서 고대의 벽화의 기법과 정신을 관찰하고 익히면서 세화(細畵)와 색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예술의 경지를 체득해나갔다. 그 이후 그의 예술정신은 황산과 노산 등의 명산대천을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얻은 우주적인 붓놀림을 통해 개성적인 묵과 색의 일가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의 조국 중국은 분단되었고 정처 없이 타향을 떠돌며 살 수밖에 없었다. 1947년 홍콩에서 시작하여 대만, 인도,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이 그가 살았던 곳이다. 파리와 뉴욕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피카소에게 동양의 필법과 회화정신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1978년 다시 중국의 대만으로 건너가 작고할 때까지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회화는 한 마디로 ‘모든 중국적 양식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바탕으로 만년에는 서양적인 양식까지 소화해낸 그야말로 대가(大家) 중의 대가라고 할 것이다.


연운효애(燃雲曉靄) ․ 장대천 작

통영 야경 ․ 윤이상의 고향


 윤이상은 경남 통영에서 출생하였다. 서당과 보통학교를 수료하고 1935년 일본 오사카의 음악학교에서 공부한 후 1937년 귀국하여, 통영여고 ·부산사범학교 교사를 역임하며 광복과 한국전쟁을 겪었다. 이후 56년 프랑스 파리국립음악원에서 수학하였다. 1959년 독일 다름슈타트음악제 때 쇤베르크의 12음계 기법에 한국의 정악(正樂) 색채를 담은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을 발표, 유럽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 서울로 강제소환 되어 옥고를 치렀다. 2년 후 세계음악계의 구명운동을 힘입어 풀려나기는 했지만 그의 조국은 그를 버렸다. 그는 1971년 독일에 귀화하였다. 정확하게는 망명인 셈이다.

 72년 뭔헨올림픽 개막축하 오페라 <심청>을 비롯하여 150여 작품을 남겼다.

 그는 한국의 악기의 음색을 서양악기로 표현하였다. 하프는 가야금을, 플루트는 대금을, 바이올린은 해금을 대신하는 식이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 <영상>에는 북한을 몇 번씩이나 드나들며 살펴보았던 고구려 벽화의 이미지가 스며 있다. 그의 작품은 도교, 불교, 유교 등을 망라하는 동양정신의 ‘압축파일’인 셈이다.

  그는 그만큼 조국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만년의 그는 남쪽의 조국과 북쪽의 조국 모두로부터 외면당한 채, 쓸쓸히 이국땅에서 숨을 거두었다.

베이징올림픽주경기장


 2008 베이징올림픽, 이는 모든 아시아인들의 또 다른 자부심이다. 이 인류적 행사가 더욱 빛나기 위해서는 모든 갈등과 대립을 넘어서는 대축제의 마당이 필요하다.   천안문 광장에서 ‘장대천 기념전’과 ‘윤이상 음악제’를 동시에 개최하면 어떨까?

모든 아픔을 극복해온 아시아인들의 정신적 역량이 이제는 온 세계의 모순을 치료하는 빛으로 뿜어져 나오지 않을까?

 장대천과 윤이상, 그들은 어두운 아시아의 동굴에서 빛을 찾았다. 중국과 고구려 정신의 만남, 이제 그 빛은 세계인류를 비추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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