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의 음악방송>
<연필 깎기와 연필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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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의 음악방송>
<연필 깎기와 연필깎이>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7.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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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의 수필세계 18

 

 문학박사, 수필가, 국어학자

  skc663@hanmail.net

 서울 서초문인협회 회장

 

  <신길우의 수필 49>


 백화점에 들어서면 음악이 들려온다. 다른 층으로 올라가도 음악은 들린다.

대개 오전이면 차분하고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오후에는 경쾌한 음악으로 바뀐다. 오전에는 사람들도 많지 않고 매매도 적어서 자연히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어 여유를 가지고 매장을 둘러보게 하려는 뜻이고, 사람들이 많아지는 오후에는 템포가 빠르고 흥겨운 선율로 매장의 분위기를 활기차고 들뜨게 하여 심리적으로 구매를 충동하고 서둘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에서이다.

 

백화점 음악은 층별 매장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보석이나 침구류 매장에는 재즈음악을 내보내고, 효도나 건강식품 매장에는 트로트 가요를 들려준다. 패스트푸드 지역에는 빠르고 강한 음악을 틀고, 대중식당도 점심식사 때는 빠르고 경쾌한 음악을 들려주는데, 레스토랑만은 반대로 되도록 느린 음악을 깔아준다. 상품에 따라 알맞은 음악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백화점의 음악방송을 대상으로 한 논문을 보면, 고소득층 사람들은 클래식이나 영화음악을 좋아하고, 저소득층은 대중음악을 좋아하며, 학생과 가정주부들은 클래식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래서 매장에 주부들이 많이 몰리면 백화점에서는 귀에 익은 클래식으로 바꿔서 구매의욕을 극대화한다고 한다.

음악은 신앙과도 관련된다고 한다. 기독교와 천주교 신자들은 비교적 조용한 음악을 좋아하고, 불교와 유교을 믿는 사람들은 정적(靜的)인 음악보다는 대중음악을 선호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음악 템포가 느리면 느릴수록 구매자들의 매장 체류 시간은 늘어나고, 음악이 빨라지면 그럴수록 사람들의 이동시간이 짧아지면서 같은 시간당 총 매출액도 높아진다고 한다. 백화점들이 주말이나 할인판매 기간, 대형행사 때 붐비게 되면 경쾌한 댄스곡을 트는 뜻을 이해할 수 있다. 홈쇼핑 방송마다 30~40대 주부들이 귀에 익은 빠르고 경쾌한 팝 음악들을 깔고 빠른 말로 설명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짧은 시간에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압구정의 한 백화점에서는 정오까지는 클래식이나 경음악을 내보내고, 12시부터는 경쾌한 팝 뮤직을 방송한다. 중장년층 고객이 많아서 오전에는 클래식이나 경음악이, 오후에는 팝 음악이 알맞다는 것이다.

어느 창고매장 특설 코너에는 소리공급업체에서 제공한 시냇물 소리, 파도소리, 다양한 새소리와 풀벌레소리 등을 방송하여 손님들을 시원하게 느끼게 하여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음악을 이용하는 것은 대형 매장만이 아니다.

서울 중심번화가에 있는 한 대형 서점에서는 정오까지는 경쾌한 클래식을 틀어준다. 하지만 점심시간 이후에는 클래식 위주로 내보내서 분위기를 고급스럽고 차분한 인상을 갖게 한다. 서점들은 음악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가끔 음악의 제목을 문의하고 음악 복사를 요청 받기도 한다니, 서점도 역시 음악의 영향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매출을 올리고자 음악을 최대로 이용하는 상술이지만, 가끔 그런 곳을 들리는 나로서는 어떻든 기분 좋은 일이다.


음악의 힘은 일찍부터 알려져 있다. 사면초가(四面楚歌)로 초패왕 항우가 자결하고, 도천수관음가(禱千手觀音歌)로 희명(希明)이 눈을 떴으며, 요정 싸이렌의 노랫소리에 오디세이 장군이 섬에 갇히기도 하였다.

태종의 5대손인 이주경은 당시 피리의 명수로 팔도에 소문이 난 사람이었다. 그가 황해도 지방으로 토지세[土租]를 받으러 갔다가 무리에게 잡혀 괴수 임꺽정 앞에 끌려갔다.

 

임꺽정은 그를 알아보고 깍듯이 모셨다. 그리고서 나서 그의 도당을 달밤에 한데 모아놓고 피리 한 곡조를 청했다. 그의 피리 소리에 여기저기에서 훌쩍거리기 시작하더니 한 곡조가 끝나기 전에 서로 붙들고 우는 울음마당이 돼 버렸다. 이렇게 실컷 울려준 대가로 그는 안전하게 귀환하게 되었다. 임꺽정은 피리의 감동 카타르시스로 불안이나 공포 근심 걱정, 그리고 향수를 말끔히 씻어내고 사기를 돋우었던 것이다.

6․25사변 때 미국의 희극배우 밥 호프가 위문공연에서 1개 연대를 웃기고 나면, 그 연대는 중화기중대의 전력만큼이나 증진되었다고 한다.

 

감동을 주면 근심 걱정 불안 공포 스트레스 등이 해소가 된다. 올림픽 시상식에서 애국가가 울리면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나 관중이나 다 눈물을 흘리고, 장례식 발인에서 요령잡이의 가락으로 상여가 움직이면 상주나 문상객이나 다 같이 눈물을 흘린다. 음악은 감동을 쉽게 강하게 일으키는 가장 센 예술이다.

 

사람을 감동(感動)으로 치료한다는 감동치료라는 것이 있는데, 종교감동법과 교육감동법과 예술감동법 세 가지가 있다. 음악은 예술감동법 중에서 최고 최강의 방법이니, 그것을 영업에 이용한다고 하여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더구나 음악도 듣고 그 분위기까지 즐기는 나 같은 이에게는 그것을 탓할 게 하나도 없다.

눈 오는 날이면 영화 <러브 스토리>(Love Story) 의 주제가를 틀어주어 매상을 올렸다는 그 커피숍이나, 비오는 날이면 뮤지컬 주제가인 <Singing in the rain>을 방송한다는 과천 서울랜드에 가볼 일이다. ☺



<신길우의 수필 50>


  연필 깎기와 연필깎이


모처럼 누님 댁에 들렀더니, 두 생질 부부가 아이들을 두엇씩 데리고 놀러와 있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후의 어린이들이었다.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심이 부러진 연필 하나를 들고 와서 제 할머니에게 보이며 이른다.

“할머니. 오빠가 이랬어.”

누님은 힐끗 바라보고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오빠보고 깎아 달래라.”

그때 오빠가 연필깎이를 들고 나타났다. 연필깎이를 가지러 간 사이에 여동생이 연필을 집어들고 왔던 모양이다. 그 아이는 부러진 연필을 연필깎이에 넣고 손잡이를 돌렸다. 몇 번 돌리자 연필은 금방 예쁘게 깎여 나왔다.

 

나는 연필깎이를 달래서 살펴보았다. 마치 장난감 같이 생겨서 아이들이 좋아하게 생겼다.

"연필은 칼로 깎아야 예쁘단다."

나는 옛날 생각이 나서 칼을 가져 오라 하였다. 나는 연필을 집어서 칼로 깎아 나갔다. 아이들은 연필을 굴려가며 한 모서리씩 깎아 가는 모습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더니 쓰던 연필들을 다 가져왔다. 나는 그들의 관심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설명을 하며 연필들을 깎아 주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큰애에게 연필을 깎아 보도록 하였다. 왼손으로는 연필을 붙잡기만 하고, 오른손으로는 쥔 칼로 당근 껍질을 벗기듯이 했다. 나는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칼등을 밀어가며 깎도록 시켰다. 아이는 여러 번 한 뒤에야 서툴게나마 연필을 깎을 줄 알게 되었다.


연필 깎기는 연필을 깎는 일이고, 연필깎이는 연필을 깎는 도구이다. 두 말의 발음이 같지만 그 뜻은 전혀 다르다.

연필 깎기, 연필을 칼로 깎는 것은 어린 아이들에게는 쉽지가 않은 일이다. 어른들로서는 손이라도 벨까 걱정도 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연필깎이이다. 실제로 연필깎이로 연필을 깎아보면 아주 쉽고 금방 된다. 그래서 요새 아이들은 연필을 깎아달라지 않는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연필깎이가 없었다. 누구나 칼로 연필을 깎았다. 과도나 주머니칼을 주로 사용했지만, 때로는 부엌칼로도 깎았다. 면도칼 같은 것은 물론 없었다.

연필을 깎을 때에는 왼손 네 손가락으로 연필을 감싸 쥔다. 오른손에 칼을 잡고는 칼날을 연필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왼손의 엄지손가락으로 칼등을 가만히 밀며 적당한 두께로 베어지도록 칼의 각도를 잡아 밖으로 밀어낸다. 칼날과 연필과의 각도가 작을수록 얇게 깎인다.

 

연필은 깎인 길이가 일정하고 깎아낸 자국이 고르게 되어야 예쁘다. 6모가 진 연필을 면을 중심으로 깎으면 깎여 나가는 시작 부분이 한일 자[一] 모양으로 일정하게 된다. 모서리마다 깎으면 W자 모양으로 꽃무늬를 이룬다. 원통형 연필이면 시작 부분을 직선이 되게 하거나 반달 모양 무늬를 이루도록 깎고, 깎인 부분을 칼날을 수직으로 세워 살살 긁어서 둥근 원뿔 모양으로 다듬는다. 저학년용 연필은 짧게 깎고, 고학년용이나 중고생들 연필이면 길게 깎는다. 연필심도 그에 맞추어 굵고 짧게, 또는 길고 가늘게 다듬는다. 어릴수록 힘주어 눌러 쓰기 때문에 짧게 깎고 심은 굵게 하여야 한다. 제도용 연필은 더욱 길게 깎고 심도 가늘게 한다. 도화용 연필은 반대로 심을 굵게 한다. 연필심의 길이가 너무 길면 잘 부러지고, 너무 짧으면 금새 닳는다. 지나치게 뾰족하면 끝이 잘 부러지고 너무 굵으면 글씨 획이 커지면서 글씨 모양이 살지 않는다.

연필 자루에는 무늬나 획을 새기기도 한다. 칼날로 선만 하나 둘 긋거나 살짝 도려내기도 하며, 송곳이나 칼끝으로 찍어서 예쁜 무늬를 넣기도 한다. 자기 소유를 표시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지만, 미적 감각을 살려낸 예술 창작의 출발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쁜 무늬를 새긴 연필은 쓰기보다 자랑하는 재미로 가지고도 다녔다.


그런데, 지금은 칼로 연필을 깎지 않고 연필깎이로 깎는다. 연필깎이는 종류도 많고 모양도 다양하다. 값도 싸서 집집마다 없는 집이 없다. 그러니 연필은 연필깎이로 깎을 수밖에 없고, 연필은 으레 연필깎이로 깎는 것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연필깎이로 연필을 깎는 것은 쉽고 편리하다. 다칠 염려도 없다. 그래서 아이들도 잘 깎을 수 있다. 하지만 연필깎이로 깎으면 원통 모양으로 같은 길이로만 깎인다. 어느 것이나 다 똑같은 경사로 똑같은 모양이 되어버린다. 내것도 네것도 똑같다. 마치 공장에서 기계로 똑같게 만들어낸 제품들과 같다. 누구의 연필을 보든 하나같이 무미건조한 모습의 연필이 되고 만다.

 

연필깎이로 연필을 깎는 것은 연필의 모양만 맛없게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칼을 사용하는 손재주를 배우지 못하게 한다. 깎고 다듬는 재주를 익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무늬를 넣고 아로새기려는 창의력과 미적 감각마저 기를 기회를 잃게 한다. 자기가 깎고 다듬은 연필이어서 아끼고, 마음에 들게 표하고 무늬를 새겨서 정을 붙이게 하는 삶의 맛을 맛보게 하지 못하게 한다. 연필을 그저 필요할 때 사용하고 부러지면 금방 연필깎이로 편리하게 깎아 쓰는 것으로만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볼펜과 사인펜이 필기구를 대표하고 있다. 만년필마저 퇴조하고, 연필의 사용도 일상에서는 자꾸 줄어가고 있다. 아직은 글자를 배우는 어린이들이 연필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연필 깎기마저 연필깎이에만 의존하는 삶이 되어버렸다. 어른들도 연필 깎기의 여러 기능과 효용성을 생각하지 않고, 연필깎이를 사 주는 것으로 책임을 다 한 양 여긴다.


손재주와 기술, 창의력과 예술감각, 이런 것들은 어려서부터 길러져야 한다. 편리성과 용이성만 강조하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기계의 부품 같은 삶을 하게 만든다. 이미 우리는 서양 상점에서 암산으로 금방 끝난 것을 점원들이 계산기를 두 번씩이나 두드려 보고서야 돈을 받는 지체(遲滯)와 불편함을 많이 겪어 왔다. 이제 우리 학생들마저 어려서부터 계산기를 이용해 와서 계산기가 없이는 간단한 셈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다. 연필깎이도 계산기처럼 편리하게는 하지만 우리를 어리석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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