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서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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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서리(소설)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7.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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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도문학 특집-강재희>
한때는 젊음이 남아돌아 주체할수 없었을때가 있었다. 우리는 그때를 청년이라고 부른다.


저녁술을 놓기 바쁘게 그들이 찾아가는 곳은 말라깽이네 허름한 헛간을 개조하여 만든 곁채였다. 백곰과 삼식이 그리고 똥개까지 그들 넷은 한식구가 되다싶이 저녁마다 모여서 어떻게 보냈으면 좋을지 모르는 시간을 보내였다.

말라깽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와 동생들뿐이여서 엄연이 가장이였다. 그들에게는 언제나 조심해야 되고 신경쓰이는 아버지의 눈길이 닿지 않는 이곳이 천당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저마다 가져다 모아놓은 살림이란 언제 어디서부터 물려왔는지 모를 퉁소하나에다 역시 고물이 다 되여 도금이 벗겨지고 음색도 맞지않는 하모니카 하나 그리고 표지와 앞뒤의 책장이 찢어져서 속통만 남은 재목이 무언지도 모르는 소설책 서너권이였다. 그외에 제일 값진 재산목록 일위인 반도체라지오한대는 말라깽이가 가장의 권력으로 없는 살림에도 주장을 하여 돈을 짜내여 산것이고 다른사람은 감히 부모에게 입도 뻥긋 못할일이였다.

그들이 모인후 첫 일과는 언제나 말수가 적은 삼식이의 퉁소소리로 시작이 되군 하여였다. 누구한테 음악을 배운적도 없는데 삼식이는 퉁소를 제법 사람의 가슴이 서늘하게 구슬피 불줄 알았다. 말라깽이는 하모니카를 불었는데 다른사람들도 불어 봤지만 마음먹은데로 잘 되지않자 모두들 포기해 버려서 하모니카는 말라깽이 몫이 되고 말았다. 똥개는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소설책을 읽었는데 기분이 좋을적에는 마춤법과 발음법도 무시하고 문장을 엉망으로 만들어 큰소리로 읽군하였다. 할일없는 백곰은 똥개보다 별로 낫지도 않은 실력인데도 항상 똥개의 틀린데를 꼬집으며 티격태격 다투었다.
<<똥개야, <동침하여 즐기였다.>지 <동치미>가 멌고. <김치>는 아니고? 이노무자석아! 내가 허리끈 졸라매고 배굶어 가며 공부시켜 났드니 배웠다카는기 고 까지가?>>
<<이노무 백곰이 머라카노.. 니노무 자석은 공부하라꼬 핵교보내났드니 반두들고 물괴기나 잡으로 댕기고 머 배웠노 물으니까 책보안에 다 있다고? 이 못난놈아 머리속에 여어야제 책보안에만 여 댕기면 머하노.>>
둘은 서로 어릴적의 일을 들추면서 한참동안 서로 어른노릇을 할려고 목청을 높이였다.

그들이 보는 소설책들은 날마다 그 한페지만 보기에 아무렇게나 방에 던져도 저절로 그 페지가 펼쳐졌다. 그들은 소설의 제목이나 전반 내용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성묘사를 한 그대목만 보고 또 보아서 거의 외울 정도였다. 례로 <<수호전>>의 서문경과 반금련이 간통하는 대목과 <<씀바귀꽃>>의 왕간지와 숙화의 정사장면같은것이였다.

한참동안 떠들썩하게 법석을 놓고 나서야 고대하던 시간이 되였다. 아홉시 이십분 반도체라지오에 겨우 신호가 잡히는 한국방송의 <<흘러간 옛노래>> 방송시간이 된것이였다.
외국방송만 들으면 무조건 이적(敌台)방송을 듣는 것으로 치부되여 적발만 되게 되면 특무요 반혁명이요 하는 어마어마한 죄목이 씨워져서 큰 경을 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각별히 조심을 하였다. 다행인것은 말라깽이네 집 이웃들이 모두 한족이여서 조선말을 못알아듣고 그들에게 별로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었다.

말라깽이가 라지오를 켜고 체널을 맞추고 하는동안 똥개와 백곰은 서둘러 필기장과 연필을 챙겨 말라깽이와 삼식이에게 바쳤다. 실력이 부족한 둘은 달갑게 심부름을 하였다. 아나온서의 말이 끝나고 노래가 흘러나오면 말라깽이와 삼식이는 한사람이 한단락씩 엇갈아가며 열심히 가사를 베끼였다. 그 장면은 마치 영화에 나오는 지하공작자가 전보문을 베끼는것과 방불했다.
허나 신호가 약하여 어떤 구절은 알아 들을수가 없었다. 그럴때에는 하는수 없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다음번에 보충을 할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베껴모은 옛노래가 이백수 가까이나 되였다. 말라깽이와 삼식이는 이 노래책 이름을 <<유행가 이백곡>>이라고 지었다. 날마다 하는 이 수업에 그들에게는 백년설, 남인수, 고복수, 김정구, 이난영, 황금심, 백난아등 삼십년대의 유행가 가수들의 이름이 당시의 한국대통령이름보다 더 익숙하였다. 겨우반시간 옛노래시간도 아쉽게 끝나고 말았다.

시시껄렁한 잡담들을 하다보면 시간은 거의 자정이 되여오고 그래도 집으로 자러 가기는 싫고 백곰이 배를 깔고 엎드려있는 똥개를 덮치며
<<아, 그리운 님이여!>>
하고 <<씀바귀꽃>> 속 왕간지와 숙화의 그대목을 외웠다. 둘은 서로 붙어서 실랑이를 하다가 지치자 그만두고 백곰이 이번에는
<<말라깽이야! 거 술 남은거 없나?>>
하며 말라깽이를 어깨로 쿡쿡 떠받았다.
<<술은 있는데 안주거리가 있어야지.>>
그들은 재간껏 술을 구해다가 비축을 해 놓았었다. 술 구하기가 어렵던 시절이였지만 제가끔 능력을 다해 구해 오니 여간해서 술이 안떨어졌다.
삼식이가 아무말도 없이 슬그머니 나가 버리고 셋은 그냥 잡담이나하고 있었다.

담배한대 태울 시간이 지났을가 삼식이가 역시 나갔을때와 같이 슬그머니 돌아왔다. 들어와서는 시물시물 웃었는데 오른손을 검정 솜저고리 밑에 넣고 있었다. 압섶이 불룩해서 다들
<<뭔데?>>
하고 의아해 했다. 삼식이는 아무말도 없이 솜저고리 밑에 감추었던걸 꺼내였는데 뜻밖에 닭이였다.
<<어이, 어디서 났어?>>
다들 눈이 휘둥그레가지고 묻자 삼식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태연히
<<우리집꺼다.>>
했다.
<<니 낼 너거엄마한테 디지도록 혼나는거 아이가!>>
말라깽이가 미리 겁을 내자 삼식이가
<<낼은 낼이고 우선 묵고 보자.>>
하며 백곰과 똥개를 보고
<<똥개야, 빨리 물 안 끼리고 머하노! 백곰은 빨리 식칼 찾아다가 닭모가지 비여라 닭이 아직 안죽었다. 말라깽이야 니는 웃채에 가서 양념 같은거 좀 찾아오고… 감자 몇알하고…>>
왠만해서는 말이 없는 삼식이가 이때는 로련한 지휘관이 되였다.
그제야 모두들 정신이 돌아온듯 삼식이의 지휘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똥개는 태생으로 특이한 오리처럼 비트적거리는 걸음으로 급히 벼짚가리로 벼짚단을 뽑으려 갔고 백곰은 히여멀끔한 얼굴에 북극곰같은 우람진 체구인데도 표범처럼 민첩하게 삼식이의 손에서 닭을 빼앗듯이 받아쥐고는 흥이나서 흥얼흥얼 코노래까지 나왔다.말라깽이는 삵괭이처럼 소리없이 웃채의 문을 열고 양념과 감자를 훔치듯이 가만이 가지고 나왔다…

여럿이 손을 대니 닭료리는 금방 되였다. 삼식이는 또한 음식솜씨가 웬만한 아낙네들보다 나았다. 닭고기가 익어가는 구수한 냄새에 모두들 군침을 삼켰다.
닭고기가 익기 바쁘게 그들은 커다란 양재기에 퍼담아가지고 방으로 가지고 들어왔다.그들은 양재기를 에워싸고 빙 둘러 앉았다.말라깽이가 술병을 찾아내서 사발에다 가득 부어서 그들은 돌아가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저가락과 숱가락들이 부지런히 양재기속을 들락거렸고 술도 쭉쭉 잘내려 갔다.
잠간사이에 한양재기던 닭고기가 국물만 조금 남았고 술도 두병이나 마셔버렸다. 조금 남은 국물조차 백곰이 양재기체로 들어 말끔히 마셔버렸다.
모두들 게트림을 하며뒤로 나누웠다. 트림 조차도 술내음과 닭고기 향이 섞이여서 그렇게 달고 향기로울수가 없었다.
<<와ㅡ 잘묵었다! 삼식아, 고맙대이.>>
백곰이 안해도 되는 인사를 하자 삼식이가
<<인사 안해도 댄다. 다음번에 너거집 닭이다.>>
하고 대답을 하고 다들
<<그래 맞다.>>
했다.
<<우리집이면 우리집이다. 내가 큰놈으로 한놈 잡아오마.>>
하고 백곰은 장담을 했다. 새벽이 다 되여서야 제각기 집으로 자러 갔고 말라깽이는 뒷설거지를 한참이나 더 하고야 자리에 누웠다.

이튿날아침 삼식이는 잠결에 어머니가 닭장문을 열고 닭에게 모이를 주는 소리를 듣고는 지은 죄가 있는 지라 바깥의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어제 분명 닭장문을 닿아 걸었는데…족재비가 물어가지는 몬할긴데…>>
<<족재비는 무신 족재비 엊저녁에 안들어 온거지.>>
<<엊저녁 모시줄때 내가 세여 밨다 아인교. 이녁은 알지도 못하면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잠간 다투시는것 같드니 금방 잠잠해 졌다. 삼식이는 안도의 숨을 내 쉬였다.

이렇게 제집 닭로부터 먹기 시작하여 며칠건너 한마리씩 먹다보니 똥개네 닭까지 네마리를 얼마안가서 다 먹어 버리였다.
어른들도 얼마간 눈치를 챈것 같았으나 옛날부터 젊은이들이 이런 장난을 하였고 또 제집 자식들이고 하니 과히 나무람을 하지 않았다. 허나 벌려놓은 지랄이라 쉽게 그만둘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누구집의 닭을 먹을가 머리를 짰다.

며칠동안을 궁리를 하여 그들은 묘한 수를 생각하여 내였다. 그들과 나이가 비슷한 처녀들의 집을 골라 그들집의 닭을 서리해 오는 것이였다. 그리고는 닭고기를 먹을때 닭을 서리해온 집의 처녀를 청하여 같이 먹는 것이였다. 그때는 남녀 청년들이 가끔씩 한데 모여 술마시고 오락도 하였기에 처녀들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터이였다.

궁리가 모아지기 바쁘게 그들은 실천에 옮기였다.
먼저 숙이네집부터 시작하기로 하였다. 삼식이가 닭장안의 닭을 잡아내고 똥개는 망을보고 백곰은 숙이를 불러내여 데려오는 책임을 맡고 말라깽이는 집에서 준비공작을 하기로 분공이 되였다.

삼식이가 똥개를 데리고 나가더니 얼마안되여 볕이 커다란 붉은 수탉한마리를 잡아 왔다. 삼식이는 닭서리 하는데 도사였다. 닭장문을 살며시 열고 닭장안으로 손을 넣으면 제일 바깥쪽에 앉은 놈은 어김없이 수탉이였다. 수탉도 가장노릇을 하느라고 암탉들을 안으로 몰아넣고 자기는 문앞에서 파수를 보는 것이였다. 손이 닭에게 닿아도 닭장안에서는 닭들이 화들짝 놀라서 푸닥거리거나 큰소리로 울줄 모른다. 그저 가벼운소리로 꾸꾸꾸 하면서 닭장안으로 됫걸음질 칠 뿐이다. 닭의 목을 살살 쓰다듬으면 닭은 목을 쭉 내미는데 그때 손으로 닭의 목을 꽉 쥐여버리면 닭은 찍소리도 못내고 날개만 두어번 푸닥거리고 만다. 이렇게 잠시만에 쥐도새도 모르게 닭을 잡아서 커다란 솜외투속에 감추고 오면 길에서 누구를 만나드라도 탄로가 날리 없었다.

삼식이가 돌아오자 백곰은 숙이를 찾으러 갔고 말라깽이는 미리 끓여놓은 물로 인차 닭을 튀하기 시작했다.
숙이는 백곰을 따라 들어오며
<<너거 닭 잡나.>>
하드니 인차 눈치를 챈듯
<<너거 우리집 닭 잡아 왔지?.>>
했다. 백곰이 시물시물 웃으며
<<이기 어데 너거집 닭이고, 불러바라 대답하는가.>>
하며 비위를 부렸다.
결국은 숙이도 주저앉아 같이 닭고기를 먹었고 함께 도적배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온동네를 들추어 봐도 그또래의 녀자들도 몇 안되였다. 얼마 안가서 또 <<끼니>>가 떨어졌다. 그대신 식구만 서넛이 더 불군 꼴이 되고 말았다. 식구가 많아져서 이제는 닭 한마리로는 어디 붙일데도 없었다. 한끼에 적어도 두마리는 가져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한동안 닭서리를 중단하는 수밖에 없었다.

음력설이 다 되여 오던 설대목이였다. 그들은 오랜만에 다시 닭서리를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동네 서쪽에 외따로 있는 장씨 성을 가진 한족집의 닭을 훔치기로 결정 했다. 한것은 장씨네 집이 외따로 있는 것도 있고 그집 아들이 말라깽이네와 동년배여서 평시에 가깝게 지났기에 장난반으로 그집을 택하였다.

그들은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려 네사람이 몽땅 나섯다. 달이 없는 밤이지만 눈이 하얗게 덮여 과히 어둡지는 않았다. 장씨네 집앞에 도착한 그들은 우선 살거머니 출입문의 문고리를 밖으로 걸고 미리 준비한 나무젓가락을 끼워 놓았다. 집안에서 누가 갑자기 뛰쳐 나오는것을 방비하기 위하여서였다. 그리고는 똥개를 망보게 하고 셋은 허리를 굽히고 닭장앞으로 다가갔다. 먼저 삼식이가 닭장문을 열고 팔을 닭장안으로 밀어 넣었다. 한참을 낑낑거리며 팔을 한껏 뻗었지만 닭이 손에 닿지 않았다. 한족의 닭장은 조선족의 닭장과 달리 굴처럼 깊어서 손이 들어가자 닭들이 안으로 들어가 버려 근본 손이 닿지 않았다. 곁에서 보던 백곰이 삼식이를 밀어내고 제가 팔을 넣어 보았지만 역시 손에 닭똥만 묻히고 허사였다. 그래서 말라깽이가
<<닭은 연기를 젤 무스버한다. 뭘로 연기를 피우면 저절로 나올긴데…>>
했다. 그말에 삼식이가 입고 있는 솜옷의 헤여진데를 쥐여뜯어 솜을 한뭉테기나 감아 쥐였다. 백곰이 막데기 하나를 찾아와 막대기의 끝에 솜뭉치를 동여서 불을 달았다. 메케한 솜타는 냄세가 코를 찔렀다. 말라깽이가 막대기를 받아 닭장안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닭들이 제발로 걸어 나오기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도 닭장안은 쥐죽은듯 조용했다.
기다리다 못한 백곰이 갑자기 벌떡 일어서드니 닭장 지붕을 번쩍들어 제껴버렸다. 지붕이 날아가 버리자 닭들이 놀라서 꼬꼬댁, 꼬꼬댁! 하며 푸닥푸닥 우리밖으로 날아 나왔다. 삼식이가 한마리를 잡고 백곰이 한마리를 잡고 말라깽이는 미처 잡지도 못했는데 똥개가 어,어! 하며 경기난 사람처럼 팔을 휘두르며 먼저 저만큼달아났다. 튀여! 하고 웨치는 백곰의 소리와 함께 집안에서 밖으로 출입문을 부딪치는 소리가 쾅 하고 났다. 다행이 밖으로 걸어 놓았기에 첫방에는 열리지 않았다. 두번째 부딪쳐서 문이 열리였을때 말라깽이네는 저만큼 달아나고 있었다. 힐끔 뒤를 돌아보니 두억시니같은 장씨네 삼형제가 제가끔 기다란 멜대를 추켜들고 마러거 빠즈디! 초우니마! 서라, 섯! 하고 고함을 지르며 펜티바람으로 쫓아오고 있었다. 말라깽이네는 똥줄이 빠지게 동네 밖으로 뛰였다…

나지막한 관목들이 무성한 늪변두리를 지나서 무작정 벌판을 향하여 뛰던 그들은 동네가 안보일 정도로 멀리 뛰여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모두들 숨이 턱에 닿아 그데로 눈우에 털석털석 주저 앉았다. 한참 숨을 돌려쉬고 나서 삼식이가 쥐고있는 닭을 보고 백곰이 하하하…하고 크게 웃었다. 닭의 두다리를 쥐고 뛰여서 닭머리가 언제 나무가지에 걸려 떨어졌는지 빈목만 쭉 빠져있었다. 삼식이가 니꺼는! 해서 백곰이 제가 쥐고있는 닭을 바라보니 역시 머리가 없었다.
그들은 정신나간 사람들 처럼 배꼽을 잡고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어 제쳤다.

그후로 그들은 다시는 닭서리를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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