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여자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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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여자로 살고 싶다
  • 동북아신문 기자
  • 승인 2006.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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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무로 한국에 나가 2년간 체류하고 귀향한 나는 늦게나마 이른바 '도시진출'의 꿈을 실현하고 현소재지에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한국 체류기간이 짧아 별로 벌지 못한 원인도 있지만 남들이 하는 아파트생활에 어딘가 거부감이 들면서 사구려 세집을 맡고 식당일에 나섰다.

 

귀동냥으로 도시에 진출한 우리 조선족들의 생활실태를 얼마쯤 알고 있었지만 음식점에서 일하다보니 더욱 실감나게 체험할수 있었다. 조선족이 많이 모이는 조선족식당은 이들의 생활을 엿볼수 있는 거울이였다.

 

때가 되면 삼삼오오 떼를 지어 젊은이들이 식당에 들어선다. 그중에는 젊은 녀성이 한둘씩 끼여 있는데 마작패가 아니면 '애인'관계다. 이런 녀성들은 술도 제법 마셨는데 마시고 나면 울고 불며 주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함께 온 남자와 뭔가로 다투다가 당장에서 매를 맞는 녀자도 있었다. 식당일이나마 일거리를 찾아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며 술이나 마신다면 나도 저 꼴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미칠 때면 소름이 끼친다.

 

내가 근무하는 식당은 현소재지에서도 경기가 비교적 좋은 식당인지라 손님이 많았고 그래서 일도 힘들었다. 일손이 바쁠 때면 팽이처럼 돌아야 했는데 지어 화장실에 다녀올 틈도 타기 어려웠다.

 

육체상 고달픔도 어렵지만 정신상으로 받는 스트레스도 무척 지겨웠다. 식당일을 하다보면 아는 사람들과 마주치는것도 피면하기 어려웠다. 귀향해 한 달도 안 돼 식당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 "돈에 미쳤냐? 그까짓것 뼈 빠지게 일해 봤자 얼만데? 편히 놀다 다시 한국에 가!"하고 무작정 훈계하는 사람도 있다. 그나마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익숙한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태도니 마음이 동할 때도 있었다.

 

특히 로임을 받을 때면 더욱 충격을 받게 된다. 아글타글 일하고 받는다는 한 달 로임이 한국에서의 일당벌이 꼴이다. 한국에 갔다 온 우리 조선족 젊은이들이 귀향 후에도 일하지 않는 원인의 하나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전에 농촌에 있을 때도 도시생활을 하려면 소비가 많은 줄은 알았지만 요즘 직접 몸을 담고 보니 더욱 진실하게 느껴진다. 걸음마다 돈을 써야하는것이 도시주민들의 생활이다.

 

쓰기 위해서는 벌어야 할것이다. 물론 한국에 가 목돈 벌고 귀향한 사람들은 앉아 먹고 놀아도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얼마나 견지할지 걱정이다. '강물도 쓰면 준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고 일확천금의 기회는 없을 것이고...50대 녀인으로서 귀향 후 식당일을 택한 원인이다.

 

식당일에 시달려 며칠 쉬는 동안이였다. 내가 집에서 쉬고 있다는것이 알려지자 전화련락이 오기 시작했는데 마작 놀자, 노래방 가자, 술 한잔하자는 전화가 대부분이였다.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한번 두번 찾아다니노라니 처음과 달리 거부감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사치한 그 생활방식이 좋았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것이 이런 경우를 말하는가 보다.

 

날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 놀랐고 그래서 나는 다시 일거리를 찾아 다녔다. 일에 바쁘다면 전화성화도 덜했기 때문이다. 단시일 내에 맞춤한 일거리를 찾기 어렵고 때마침 모내기가 한창인지라 나는 삯일에 나섰다.

 

모내기를 하려면 짝을 무어야 했다. 그러나 현소재지는 물론 70여 세대가 모여 사는 조선족 동네에서도 나와 짝을 무어 삯일을 하려는 녀성을 찾기 어려웠다. 하는수 없어 한족들과 짝을 무었다.

 

몇 해 만에 맡는 흙냄새였고 그래서 너무나 반가웠다. 이런 흙냄새를 멀리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난다니 안타깝기만 하다.

 

도시에 진출해 새롭게 삶의 터전을 개척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촌에 있으면서도 흙을 꺼린다니 더욱 그러하다.

 

흙에 산다 해서 꼭 농사해야 한다는것은 아니다. 농촌의 어렵던 그 삶을 잊지 않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다. 이런 삶이라면 도시생활을 한다 해도 남의 눈총과 손가락질은 받지 않을것이다.

 

농촌에서 일로 잔뼈를 굳혀온 나였고 일이 내 삶의 전부인것으로 알아온 나다. 이런 나를 유치한 인간이라고 눈을 흘길 사람도 적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일'이야말로 생활의 진미이고 인생의 향기임을 굳게 믿는 나다.

 

현소재지에 자리 잡은 나지만 이른바 도시병, 즉 게으름과 고독과는 담을 쌓은 살을 살아갈것이다. 도시병을 방치하는 데는 일이 가장 좋은 약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식당일도 파출부도 가리지 않는 나다.

 

나는 일하는 녀성으로 살아가고 싶다.

 

흑룡강일보/상지 안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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