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12일 열린 재외한인학회 연례학술대회에서 ‘디아스포라 정체성 유형과 언어(Paradigm of Diaspora Identity and Language)’라는 주제로 발제한 김 게르만 국립 카자흐스탄 교수가 고려인 사회의 정체성을 분석하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김 교수의 주장은 재외동포의 정체성과 관련해 이론화 작업이 박약한 우리 학문풍토에서 크게 주목받았다.
서울 서초동 외교센터에서 ‘상호 인식과 정체성: 재외동포를 바라보는 시각들’이란 주제로 열린 이번 학술대회는 내년 고려인 이주 150주년을 앞두고 고려인 동포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 재외동포들과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이날 ‘독립국가연합 고려인의 사회정체성과 언어사용실태’라는 주제로 발제에 나선 윤인진 고려대 교수는 “고려인 대다수가 러시아어를 모어(母語)로 사용하고 현지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도 소수에 불과한 데다 현지어를 배우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조차도 적었다”며, “소련이 해체되고 독립국가연합(CIS)이 만들어진 지 20년이 넘었지만 이들 나라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의 현지어 구사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향후 주류 사회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1991년 구소련이 해체된 뒤 세워진 CIS 국가의 고려인들이 현지어 적응에 지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다수의 고려인이 구소련 방식대로 생활하는 것에 익숙한 반면 환경 변화에는 적응하지 않으려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실현되지 못한 귀환: 1945-50 소련의 사할린 하의 한인 귀환 문제 검토’라는 주제로 발제에 나선 방일권 한국외대 교수는 “그 동안 알려진 것과 달리 소련 당국이 해방 이후 상당기간 사할린 한인을 귀환 시키려는 의지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며, “여러 차례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를 살리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혐한 시위를 통해 보는 재일코리언 사회의 변용’이란 주레로 발제한 김웅기 홍익대 교수는 “민족교육문제는 자국민 보호와 직결된다”며, 본국정부의 재일동포 민족교육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재외한인학회 초대 회장으로, 지난 10월 세상을 뜬 고(故) 이광규 서울대 명예교수를 추모하며 재외한인 연구에 남긴 고인의 업적을 회고하는 자리도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