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서정 5수 (송미자)
상태바
겨울서정 5수 (송미자)
  • 송미자
  • 승인 2013.02.18 00:00
  • 댓글 0

여보 겨울입니다


여보 겨울입니다

세상이 휴면상태
만물은 거부하지 않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씨앗을
모름지기 간직하고
조용히 깊숙한 안방에 들어
동면을 취합시다

여보 겨울입니다

락엽이 졌는데
그 어떤 재주로
꽃을 피운단 말입니까
그 어떤 저력으로
칼바람을 막겠습니까

여보 겨울입니다

눈앞에 피는 꽃을 보고
봄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요
운명의 계절을 감안하면
힘든 시간은 물이 됩니다

겨울은 숙명입니다
주어진 휴식의 계절에
꿈 너머 꿈을 디자인합시다



대한(大寒)


다 떠나보내고
다 떠나보내고
쓰고 독한 술로
터엉 빈 가슴을 채운
취기 짙은 사나이

쩡쩡 위침에
와들와들 숲은 떨고
부르르 주먹에
얼기설기 땅은 금이 가고
휘익 팔매질에
워어엉 하늘은 운다
하얗게 질린
하늘과 땅 사이를 메운
거치른 몸부림

고독을 못 이긴
사나이의 광기가 터졌다



바람이 스쳐 눈보라 인 자리



바람이 스쳐 눈보라 인 자리는
하늘의 구름이 내려앉은 자리

갈피갈피 꽃잎 자리
뭉게뭉게 목화 자리
첫날색시의 꿈자리
깨여보니
외버선 코신자욱
들에 분주히 고였어라

바람이 스쳐 눈보라 인 자리는
바다의 파도가 굳어진 자리

출렁출렁 양떼 밀려온 자리
쨔-쨔- 들말이 달려간 자리
첫날신랑의 꿈자리
깨여보니
무거운 나막신자욱
산야에 력력히 패였어라



눈의 자백


천길나락을
비명없이 뛰여내리고

바람의 채찍질에
소리없이 뒹굴었건만

발밑에 깔리우면
빠드득 빠드득
아픔을 호소한다

짓밟혀 자유를 잃을 때
령혼은 깨여나 운다


겨울강


강한자앞에서
더 강하게 굳어지건만
밑으로 흐르는
거침없는 물살은
정이 아니던가
해빛의 반사광보다
더 찬란히 웃고 있지만
속으로 여울치는
쉼없는 소리는
울음이 아니던가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내 눈에 익혀진
내 귀에 못 박힌
내 가슴 울리는

아-버-지-

댓글 0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