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대생활과 문학
21세기는 동시시대(同時時代)이다. 어느 나라 어디에서 살든 같은 시간대에서 살고 있다.
방송은 지구 구석구석의 소식들을 시시각각을 전해주고, 신문은 거의 같은 시간대에 세계 각처에서 인쇄되어 배달된다. 각국에서 벌어지는 각종 운동경기는 생중계되고, 주요 회담과 회의는 뒷이야기까지 사진과 함께 보도된다. 아프리카 초원의 야생 동물들, 녹아내리는 북극의 빙하, 도시를 휩쓸고 간 미국의 토네이도, 사망자만 10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중국 사천성의 비참한 지진 피해 모습들까지 즉각적으로 생생하게 전해 준다.
인터넷의 발달과 보급으로 직장이나 집에서도 온 세계의 각종 소식들을 신속하게 접한다. 생활정보와 학문적 내용까지도 검색만 하면 쉽게 구한다. 여행 중에도, 해수욕장에서 휴식하면서도 곳곳의 소식을 보고 듣고, 안부와 정보 교환도 한다.
이제 현대인들은 어디에 있든 같은 시간대로 세계와 만나고, 같은 시간에 같은 정보를 교환 공유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삶은 앞으로 더욱 발전하여, 그 시간폭을 더 줄이고 보다 많은 접촉을 가지며 살아가게 할 것이다. 한 마디로 세계가 동시시대가 된 것이다.
또한 21세기는 동일국가 시대이다. 국가가 다르더라도 모두가 한 나라로 살아간다.
국가나 대륙(大陸)이 각기 혼자서 살 수가 없다. 문화와 문명의 급속한 발달은 세계를 하나로 만들고, 같이 사는 세상으로 바꾸어 놓았다. 다양한 교통의 발달은 국가를 초월하여 국제적으로 살게 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아침을 서울에서 먹고, 점심은 1만 피트의 기내에서, 저녁은 뉴욕에 도착하여 먹게 되었다. 현재 서울에는 100만명 정도의 외국인들이 우리와 함께 일하며 살고 있다. 일부 지역의 공장들은 외국인이 아니면 작업을 할 수 없을 지경이다. 이런 현상은 세계 주요 도시가 다 같다. 이제는 어느 나라도 자국민들만 살 수가 없게 되었다.
천재지변이나 기아와 질병도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산업 발달의 열기는 북극과 남극의 얼음과 히말라야의 빙하를 녹이고 있다. 아마존 유역의 삼림 남벌(濫伐)은 온 지구의 기온과 날씨를 변하게 하였다. 중동 지역의 원유 감산은 각국의 산업에 곧장 영향을 주며, 미국 증권시장의 기침소리는 우리의 주가를 폭락하게 만든다. 조류독감은 양계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온 세계의 문제가 되고, 광우병은 시작된 영국이나 미국만의 걱정거리가 아니게 되었다.
산업이 발달하고 다양화될수록 국가간 상호 의존성은 높아지고, 국가는 자체 능력만으로는 살 수 없게 된다. 인구의 증감과 능력 및 사회의 구조적 변화도 국가 단위의 삶을 허물고 있다. 어느 국가나 자기 나라에서만 살 수 없고, 자기 국민끼리, 같은 민족으로만 살 수가 없게 되었다. 외국 왕래는 더욱 빈번해지고, 타국에서 국적과 인종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인종과 국가, 종교와 사상, 문화와 학문의 차와 고유성이 허물어지게 된다. 함께 인정하고 의존하며 공생해야 한다. 국가는 자국 위주보다 국제적 개국(開國)이, 폐쇄 보호보다 개방 도입의 정책으로 전환된다. 국가적 경계는 무너지고, 모든 국가가 상호 보완적 관계로 협력을 구축하게 된다. 누구나 국내외 어디서든 같이 일하고 함께 살아야 한다. 세계가 한 국가가 되는 것이다.
21세기가 동시시대, 동일국가 시대인 것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미 여러 국가들이 국가 정책을 국제적 정책으로 펴 나가고 있다. 중동지역의 갈등과 분쟁에, 남북한의 대치 상황에 열강이 나서고, 아프리카의 열악한 생활과 질병에 많은 나라가 원조와 구호 활동을 펴고 있다. 중국 신강성과 몽골의 사막에 나무심기를 한국과 일본이 매년 많은 예산과 인력을 들이고 있다. 황폐화한 아마존 유역에 묘목을 심고, 태안 원유 유출에 여러 나라 전문가들이 와서 조언 봉사와 연구를 하였다. 이 모든 정책과 활동은 세계는 한 국가이며, 따라서 모두 우리의 문제라는 인식이 바탕이 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 의식은 더욱 확장되어 초국가적 활동과 국제화 정책들이 보다 많이 전개되고 있다. 세계는 한 나라이고, 현대는 한 생활권이다. 그래서 서로 협력하며 함께 살아가는 시대, 그것이 바로 21세기인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읽고 전망하면서 대처하지 않으면 개인이나 국가나 뒤떨어지고 말 것이다. 문인도 문학도 이런 변화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2. 21세기의 한국문학 실태
20세기의 한국문학은 수량면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하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문학과 문인들이 다 대우받지 못 하게 만들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잘못된 등단제도, 몇 편의 작품으로 신인이 되는 풍토, 선별 게재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편집자의 생태 등, 이런 것들이 저질 문학을 양산하고, 별 노력 없이 문인 노릇을 하게 하고 있다.
양산은 문인이나 작품의 저질화로만 끝나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문학이 지닌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문장이 되어 있지 않은 것들이 많다는 점이다. 기초 문법은 물론, 맞춤법에 대한 기본도 갖추지 못한 것이 허다하다. 수식과 한정 관계, 시제와 경어법, 문장의 호응도 안 되는 문장들, 감탄사에는 무조건 감탄부를 찍고, 심지어는 글이 다 끝났는데도 마침표가 없는 것이 수두룩하다. 어떤 문인은 저명한 문인들의 작품을 거론하며 그게 맞다고 주장하는 한심한 실정이다.
글과 말은 다르다. 글은 의사소통만 이루어지면 되는 것이 아니다. 문학의 문장은 문법과 맞춤법은 기본이고, 오묘한 사상과 미묘한 감정까지도 담아내야 한다. 그렇게 때문에, 생각 없이 주고받는 말과는 달리, 글은 오래 고민하고 다듬는 노력이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글은 띄어쓰지 않아도, 소리대로 적어도, 문장부호가 없어도, 의미 전달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건국 60주년인 오늘날에도 비문(非文)이나 문법적으로 엉망인 글로 작품을 쓴다는 것은 국어교육의 탓만 하기에는 부끄럽고 한심한 일이다.
독일의 괴테는 수많은 시를 갈고 닦아 창작하여 딱딱한 독일어를 아름다운 문학어로 만들어냈다. 그렇다고 문법을 무시하거나 맞춤법을 임의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프랑스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은 그만두고라도, 작품을 제대로 쓰고자 하는 문인이라면 국어문법의 기초부터 먼저 익혀야 할 것이다.
글을 쓰려거든 문법부터 배워라. 작품을 쓰는 방법이나 요령을 배우기에 앞서 문장부터 제대로 쓰는 훈련부터 하라. 이 말은 모든 문인이 항상 명심할 말이다.
현대 한국문학의 문제점들은 많지만, 이 두 가지 이야기로 줄인다.
대량생산은 우수한 것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져온다. 개인이나 국가적으로나 많은 작품의 창작을 거쳐야 좋은 작품이 생산될 수 있다. 이제 한국문학은 양산을 뛰어넘어 질적으로 우수한 창작물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3. 지역문학의 상황과 방향
흔히 지역문학을 지방문학과 혼동하고 있다. 지방문학은 중앙문학의 상대적인 용어이고, 지역문학은 서울문학 부산문학, 정읍문학 영양문학 등 지역을 단위로 하는 문학이다. 서울문학도 25개 행정단위로 문인단체가 조직되어 서초문학 강동문학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3년말 기준으로 문학지 204종중에 서울에서 간행된 것이 154종(76%), 지방은 50종(24%)이었다. 그만큼 지방문학은 중앙문학에 비해 활동이 부진했었고, 지방 문인들도 서울로 모여들고, 서울 출입을 많이 하였다.
그런데,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시군마다 문인단체가 조직되고 문학지들이 속출되어 지역문학이 활발해졌다. 관련 시설도 갖추고, 문학 행사와 활동에 대한 지원도 많아졌다. 이제는 시군 단위로도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① 컴퓨터와 인터넷의 등장으로 창작과 출판의 용이, ② 지역 문인의 증가로 자체 활동 가능, ③ 문학지 동인지 등 작품 발표의 기회 증가, ④ 자치단체와 외부 지원의 증가, ⑤ 지역 문인들의 활동 의욕 증가, ⑥ 중앙과 다른 지역과의 접촉과 왕래 증가 등의 결과이다.
여하튼 오늘날의 지역문학은 활발하며 지역문단은 발전하고 있다. 너무 비대하고 지나치게 중앙 중심의 편협된 운영으로 지탄을 받고 있는 중앙문학과는 달리, 지역문학은 앞으로 국가 사회의 지방화정책에 힘입어 지역 중심의 지역문학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지역문학이 더욱 발전 성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노력이 더 필요하다.
첫째, 지역 문인들이 더 많이 등장해야 한다. 신인 발굴과 기성인의 영입에 노력해야 한다.
둘째, 혼자보다 함께 활동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월감이나 자만심보다 같이 발표하고 대화하며 함께 즐기면서 협력하고 격려하는 삶이 중요하다.
셋째, 지역문학단체의 광역화와 교류가 필요하다. 창작은 혼자서도 가능하지만, 활동은 단체일 때 보다 활성화된다. 시군 단위만의 문학 활동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인접 지역과의 합동 행사나 상호 교류, 나아가 지역광역화도 필요하다.
넷째, 각종 문학 행사와 여러 활동의 내실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참여가 줄게 된다. 구태의연한 방식은 버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을 도모하여, 참여자의 재미와 참여의 폭을 넓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예술과 문화와의 접목도 필요하다.
다섯째, 문학관과 기념물, 유적 등의 설치와 보존 활용도 중요하다. 이들에 대한 각종 자료의 수집과 전시, 시청각 교육과 해설, 관람과 안내 등을 통하여 문학의 활성화와 보급을 기해야 한다. 관련 표지판 설치와 안내지도 발간 배부 등도 필요하다.
그밖에도 추진할 만한 일은 많다. 모든 것은 지역마다의 처지와 여건에 맞춰, 계속적으로 연차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문학 활동으로 끝나지 않고, 그것이 바로 그 지역의 문화 활동이며 문화적 삶이 되게 하여야 할 것이다.
4. 마치며
문화시대라는 21세기는 예술이 더욱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학도 감동과 깨달음을 주며 생활 속에 파고들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국가나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꼭 권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칼보다 붓이, 돈보다 문학 한 권, 한 구절이 더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미국 링컨 대통령이 스토우 부인이 쓴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을 읽고 흑인노예해방을 결심하였고, 제정 러시아 알렉산드로 2세는 투르게네프의 <사냥꾼의 일기>를 읽고 농노해방을 결심하였다. 신라 신문왕은 설총의 <화왕계>를 읽고 크게 깨달았고, 조선의 숙종은 김만중의 <사씨남정기>를 일고 인현왕후를 폐출하고 장희빈을 들인 것이 잘못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문인 문학인들이 원고료도 인세도 못 받고 있다. 책은 공짜이고, 문학 강연이나 토론은 무료로만 여긴다. 행사에 시낭송으로 초대된 문인한테는 차비도 줄 생각을 않는 실정이 21세기 한국의 문인에 대한 실정이다.
그래도 문인과 문학작품이 양산되고 있다는 것은 한국문학의 성장을 크게 기대하게 한다. 문화생활이 높아지면서 점차 예술 분야에 관심이 주어지고, 점진적으로 감동을 받고 깨우치고자 하는 추세로, 문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질 것이다. 중앙과 지역에 차등이 사라지고, 어디서나 활동할 수 있으며, 오히려 시군 지역이 보다 적극 지원하는 현대에는, 지방화시대와 함께 지역문학도 활발하게 꽃을 피울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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