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투 동굴의 돌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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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투 동굴의 돌계단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10.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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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길우의 수필 167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프 북쪽에 바투(Batu) 동굴이라는 커다란 석회암 굴이 있다. 그 굴의 입구에는 272개의 돌계단이 있는데, 가파르기까지 하여 몇 번을 쉬어야만 오를 수 있다.

   굴은 지름이 20~40m나 되는 원통형으로 이어지는데, 갖가지 기묘한 바위 형상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늘어서 있다. 굴의 끝부분은 보다 큰 둥그런 원형 광장을 이루고 있다. 천정은 트여서 주변의 푸른 나무들과 함께 파란 하늘이 올려다 보여 신비감을 느끼게 한다. 그 뚫린 구멍으로 밝은 햇살이 기둥을 이루며 내리비춰서, 마치 무대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 바투 동굴은 쿠알라룸프르에서 가까울 뿐만 아니라, 이처럼 기묘하고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다. 특히, 굴의 입구는 물론, 중간중간과 끝의 광장에는 많은 신들의 형상과 제단들이 설치되고 항상 촛불이 타고 있어서 날마다 관광객들과 함께 참배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처럼 유명한 바투 동굴에는 다음과 같은 애절한 사연이 얽힌 이야기가 전해 온다.

 

   바투 동굴의 산에는 한 여신이 두 아들을 데리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맏아들은 영특하나 게으르고, 둘째아들은 아둔하나 매우 근면하였다. 여신은 둘 다 사랑하며 행복하게 지냈다.

   어느 날 여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망고라는 과일을 한 개 얻었다. 그런데 망고는 혼자서 다 먹어야지 갈라서 먹으면 생명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과일이다. 여신은 망고를 아들에게 주려니 문제가 되었다. 반으로 쪼개서 주면 두 아들의 생명이 절반으로 줄어들겠고, 한 아들에게 주려니 다른 아들이 마음에 걸렸다. 여신은 궁리 끝에 아들들에게 이렇게 제안을 하였다.

   “이 과일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다. 그러나 혼자 다 먹어야지 갈라서 먹으면 수명이 그만큼 줄어든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세 바퀴 도는 사람에게 이 과일을 주겠다.”

   둘째아들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바로 이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부지런히 지구를 세 바퀴 돌았다. 그리고는 어머니에게로 와서 망고를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대답하였다.

   “둘째야. 망고는 바로 어제 네 형이 먹었단다.”

   깜짝 놀란 둘째아들은 어머니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어머니. 형은 걸음도 느리고 게으른데 어떻게 저보다 더 빨리 돌 수가 있습니까?더구나 형은 한 번도 저를 앞지른 적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조용히 설명을 하였다.

   “네가 떠난 뒤, 형은 매일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더라. 그러더니 바로 어제 갑자기 일어나서 나한테 와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어머니입니다’ 라고 말하고는, 내 주위를 세 바퀴 돌았단다. 그래서 형에게 준 것이다.”

   둘째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뒤돌아 나오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세상에, 어머니도 못 믿겠다. 제일 아름답다는 말 한 마디에 매일 놀며 잠만 잔 형에게 앙고를 주다니……. 쉬지도 못하고 지구를 세 바퀴나 돈 나는 뭐란 말인가?”

   그러나, 이 어머니가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는 삶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며 산 끝자락 절벽 위에까지 다달았다. 그리고는 중턱에 커다랗게 뻥 뚫린 동굴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결심을 하였다.

   “그렇다. 삶이란 할 일을 최선을 다하여 해내는 데에 보람이 있는 것이다. 어머니도 못 믿는 이 세상에, 사람이 살지도 못하는 이곳까지 고행을 통하여 올라오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

   바투 동굴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많다. 이들 중에는 가끔 고행을 하며 오르는 사람도 있다. 올라가는 길은 매우 가파르다. 모두 돌계단인데, 좌우와 중간의 세 칸으로 나뉘어 있고, 그 사이사이에 돌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272개의 돌계단은 평생에 짓는 죄의 가짓수이며, 고행하며 계단을 오를 때마다 한 가지씩 속죄가 된다고 한다.

   내가 내려오는 참에도, 어깨 위에는 무거운 짐을 메고 무릎에다 수건을 동여매고서 두 무릎으로만 돌계단을 하나씩 기어오르는 젊은 남자가 있었다. 그 뒤에서는 같은 복장을 한 두 사람이 지켜보며 뒤따랐다.

   그 나이에 무슨 죄가 그리 많을까? 분명 속죄(贖罪)보다는 한 가지 간절한 소망이 있으리라. 그리고 꼭 들어주리라는 굳은 신심(信心)으로 그런 고행을 할 것이다. 여름 무더위에 땀이 비오듯 흘러내리는 얼굴이며, 피까지 붉게 스며 나온 무릎받침 수건을 두 손으로 붙잡고 무릎걸음으로 어기적거리며 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느라니 문득 그 젊은이가 성자(聖者)처럼 보였다.
   어머니도 못 믿는 세상, 굳은 신심으로 간절한 소망을 이루려는 피나는 고행, 바투 동굴의 이야기는 한낱 전설일 수가 없는, 삶의 지표를 알려주는 살아있는 이야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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