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준희의연변일기7>연변은 이동중 또는 발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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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희의연변일기7>연변은 이동중 또는 발전중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09.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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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 맞은 연변동포 사회분위기는?

[활기참과 쓸쓸함의 양면 : 연변은 이동중 또는 발전중]

연변도 설날 준비로 분주하다.  가가호호 귀신을 쫓는 폭죽을 터뜨리면서 새해의 운수대통을 기원하고, 연길 서시장에는 "복"자를 파는 행상들이 대목을 맞아 손님끌기에 바쁘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에도 서시장은 열심히 물건을 팔고, 집요하게 흥정하는 사람들로 생기가 가득하다.

나도 "복"자를 사서 몇몇분들에게 신년 운수대통 기원의 뜻으로 선물하면서, 설날 분위기에 동참했다. 상해로 일하러 갔던 한족 왕씨도, 한국에 일하러 갔던 조선족 김씨도, 설날을 가족들과 보내기 위해서 먼길을 마다하고 연변 집으로 왔다.

방문취업제 이후 자유롭게 한국과 중국을 오가게 된 조선족들로, 2월말까지 장춘을 경유해서 서울로 가는 비행기 마저도 모두 예약이 끝났다고 뉴스에서 전한다. 연변에서 맞는 설날은 참으로 시끌벅적하고 분주해 보인다.

  흑룡강성 밀산에서 연변으로 온 A씨 가족


 연변을 몇번 방문하면서 나와 친한 친구가 된, 서점을 운영하는 A씨는 설날에 오갈데 없는 나를 가족모임에 초대해주셨다. 난 A씨 가족들과 함께 섣달 그믐날의 중국 전통이라는 "만두밴새 빚기"를 하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바깥에서 연신 터지고 있는 폭죽소리나, 설날의 흥분으로 들떠있는 서시장 거리와는 달리 A씨 가족의 설날 분위기는 단촐했다. A씨의 부모님과 A씨, 그리고 초대된 손님 나. 가족 친지들 대부분 한국으로 일하러 갔거나, 아예 국적을 얻어 그곳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A 씨의 어머니는 "더 올 사람은 없다" 면서 빈새빚기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A씨의 고향은 흑룡강성 밀산이다. 연변에서 동북쪽에 위치한 밀산은 러시아 국경과 접해 있고 연변보다도 훨씬 추운 곳이라고 했다.

 밀산의 조선족 마을에서 살았던 A씨 가족은 A씨가 고중(고등학교)을 졸업한 이후 흑룡강에서 가장 큰 도시 하얼빈으로 이사를 나왔다. A씨는 한족 고중을 졸업했고, 마을에서도 한족친구들과 접할 기회가 많아서, 한어(중국어)에 익숙하지만, 부모님은 조선족 마을에서만 사셔서 한족들과 함께 어울려 살기에는 한어가 그다지 능숙하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한족들이 살고 있는 하얼빈에 나와서도 잘 적응하지 못했고, 별달리 할일도 마땅치 않아서, 조선족이 많이 산다는 연변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그 이후 밀산의 가족과 친지, 친구들은 "한국바람"을 타고 하나둘씩 마을을 떠났고, 지금은 조선학교들도 문을 닫고, 땅도 한족들이 대부분 부치고 있다고, A씨 아버지는 안타까와 하셨다.

  한국생활 청산하고 연변생활에 서 새생활하는 A씨


 연변에 와서 살던중, 아버지가 한국에 먼저 일을 하러 가게 되고, 아들 A씨가 가고, 어머니가 차례로 가게 되면서, 이 가족은 10년이상 한국에 체류하면서 일을 해서 돈을 모았다. A씨는 젊고 건강하고 일을 잘해서, 최고의 일당을 받으면서 건설현장에서 일을 했지만, "지겨워서 더 이상 할 수가 없어" , 작년 여름, 10년간의 "불법체류 노동자" 생활을 청산하고 연변에 와서 정착중이다. A씨 가족은 한국에서 번 돈으로 새 아파트를 장만하고, 서점을 개업하였다. 서점은 생각보다 잘 되고 있지만, 이 가족은 연변에서 "재정착" 하는데 첫 몇 달간 애를 먹었다고 했다. 중국의 교통질서, 공중위생, 친절도 등을 한국과 비교하면서 연변생활의 답답함을 불평하면서도, 깨끗하게 새 단장된 아파트에, 넓직한 새 텔리비젼에, 새 소파에, 모든 것이 새 것인 집에 살게 된 것도 뿌듯하다.
 

 섣달 그뭄날의 만두밴새를 빚고, 맛있게 먹은 후, 나는 가족들과 "삼성 고화질 평면" 텔리비젼으로, "우리결혼했어요"의 새해 프로그램을 A씨 가족들과 한껏 웃으면서 시청했다. A 씨의 어머니는 "중국방송을 보기는 봐야하는데" 하시면서도, 연변에 돌아온 후에도 계속 한국방송만 시청하고 있다고 했다. 그 넓직한 "삼성"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전달되는 한국에 대한 정보와 인기 드라마들은 이 가족들을 한국과 더 단단하게 정서의 끈으로 묶어 놓는듯 했다. 하지만, A씨 부모님은 별다른 일거리도 없고, 알고 지내던 친구들도 모두 떠난 연변생활은 단조롭고 심심하다고 했다.
 젊고 미혼인 A씨도 연변생활에 안정을 찾아가면서도, 극도로 무료하다고 했다. 여가시간을 이용해, A씨는 매일 "공부"를 한다. "주식공부". 전날의 그래프들을 분석하고, 동향을 파악한다. 그의 책상에는 중국어로 된 주식책이 몇권이나 있고, 수첩에는 주식에 관련된 정보들이 빼곡하다. 언젠가는 연변에서 제일 큰 서점을 운영하고 싶다는 A씨는 열심히 "공부중"이다.

한족 이주노동자들 유입이 많은 연길시

 저녁식사 후, 나는 A씨와 함께 마작놀이를 구경하러 갔다. 연변에서 살다가 상해에서 회사사장의 운전기사를 한다는 왕씨, 연길의 교통경찰인 관씨, A씨의 단짝친구인 양씨가 모였다. 모두 한족친구들이다. 왕씨는 어렸을때 하북성에서 가족과 함께, 양씨는 16세때 산시성에서 누나와 함께 연변으로 이사왔다.


 연변 왕청 출신인 관씨가 그 넷 중 연변의 제일 토박이이다. 다들 여기저기 다른 곳으로 돈벌이 하러 나가기 전에는 줄곧 붙어 다녔는데, 어른이 되고, 밥벌이가 바빠지면서, 설날에나 겨우 모여, 마작놀이를 한다. 연변은 "조선족 자치주" 이고, "연변대학교"가 있고, 조선족들이 많이 모여 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 나고, 지나간다.

 왕씨나 양씨처럼 다른 지역에서 온 한족들, 그리고 조선족 집중지역을 찾아 다른 지역에서 이사온 산재지역 출신의 조선족들, 연변대학교를 가기 위해서 "유학"온 조선족들, 연길에 쉴새 없이 들어서는 아파트를 짓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끊임없이 이주하는 한족 노동자들. 단촐하고, 약간은 쓸쓸하게 설날을 보내는 A씨와 같은 가족들이 많을테지만, "한국바람"으로 조선족들이 다 빠져나갔을 것만 같은 연길 거리는 분주하고 활기차다. 연변의 사람들은 "이동중"이고 연변의 공간은 "발전중"이다.  이 연변의 쓸쓸함과 활기참의 이중적 양면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 연변일기의 새해 과제인듯하다.

▶ 권준희 : 듀크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

<다음에 계속> 중국동포타운신문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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