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아본다.
그대와 사랑이 움튼 곳, 동북평원의 이름없는 내 고향 지형도가 상기도 손금보듯 안겨온다. 고향의 기차역은 꽤 높은 둔덕에 자리잡고있다. 객차는 아침저녁으로 한번씩 오갔고 승객은 별로 많지 않다. 평소 이삼십명정도 오르내린다. 홈을 빠지면 코앞에 큰길이 가로질러 갔고 큰길 건너는 꽤 큰 논벌이 마을을 포근히 품고있다. 역에서 동네까지는 삼사리 모래길이 곧게 나져있다. 서쪽에는 한족들이, 동쪽에는 조선족들이 살고있다. 역에서 뻗어간 황토길은 마을을 지나 다시금 논밭을 서너마장쯤 꿰지르다가 강기슭까지 달려간다. 얕고 너른 내에는 돌과 나무로 보를 쌓아놓았고 그 건너쪽 버들방천뒤로는 늪과 야초로 뒤덮힌 황막한 벌이 동서로 뻗은 야산에까지 닿아있었다.
우리 집은 마을 뒤쪽에 있었다. 남수와 복선녀네가 앞뒤집에서 살고 복선녀와 우리 집이 두집 건너 한줄에 자리잡고있다. 세 집은 기윽자를 이룬다. 남수가 뒤창문을 열면 복선녀가 뜨락에서 책을 보는 모습을 볼수 있지만 나는 보지 못한다. 남수는 뒤길로 빠져 굽은 울바자곁으로 나진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어왔다. 늘 우리 집 삽짝문앞에 서서 나를 불렀다. 진규야, 뭘 꾸물대 응? 하면 나는 좀 기다려, 조금만! 하고 변소간에서 소리쳤다. 녀석은 용케도 그 시간이면 찾아왔다.
삽짝문을 열면 앞뜨락까지 좁은길이 나져있다. 동쪽에 벼짚과 나무가리를 쌓아두었고 헛간(고간)이 그 뒤에 있다. 서쪽은 남새밭이였다. 삼간초가의 뜨락은 별로 넓지 않았다. 집안은 정지가 가운데에 있고 동서로 방이 있다. 왼쪽방은 공칸이 있는, 어른의 무릎보다 좀 높은 한족캉(중국식 온돌)인데 공칸은 남향쪽으로 냈다. 방은 미닫이로 가운데를 막아놓았는데 앞방은 할머니가, 뒤방은 큰형 진호와 작은형 진수가 차지했다. 부엌은 정지에 있고 가마니틀이 북쪽벽에 붙어있다. 서쪽방은 꾸밈새가 함경도식이다. 정지에서 신을 벗고 미닫이를 열고 들어서면 마루이고 그 밑은 판자를 걷어내고 엄마가 들어가 앉아 불을 지피는 부엌이다. 부뚜막이 구들과 붙어있다보니 겨울이면 솥의 김이 방안에 보얗게 껴왔다. 엄마가 그리 꾸며놓았다. 방 가운데에 미닫이를 내서 바깥은 량친 부모님이, 안쪽은 나와 녀동생 인애가 차지했다.
희붐한 새벽에 삽작문을 열고 나간다. 여섯시정각이면 정거장에 서행객차가 들어선다. 완행렬차는 들커덩거리며 사십분쯤 가야 현성에 도착한다. 가방을 메고 오르내리며 훑어봐도 복선녀를 찾을수 없다. 복선녀가 이북 개성시로 친척방문 간것은 시월말쯤, 어머님을 모시고 외삼촌네집에 놀러갔었다. 그 무렵에 나는 늘 새벽차를 탔다. 완행렬차는 가도가도 끝이 없다. 꿈을 깨고보면 두통이 몹시 났다. 인애는 나때문에 잠을 못잤다고 두덜댔다. 헛소리를 한단다. 혹시 선녀언니를 찾는게 아니냐고 허를 찌르기도 했다.
나는 손가락을 급히 인애의 입술에 가져갔다. 엄마 듣는다, 조용해라. 내가 정말 선녀를 찾더냐고 물었다. 얼굴이 나부죽한 인애가 캐드득거렸다. 나보다 다섯살 어리지만 제법 처녀꼴이 잡혀갔다. 인애는 나와 복선녀와의 관계를 눈치챘다. 그녀를 데리고 집에 들어가면 인애의 코가 항시 유리창에 납죽 붙군 했다. 까박거리는 까만눈은 말릴수 없다. 바로 뛰여나가면 계집애는 재빨리 숨을 곳을 찾아 뛰였다. 토끼간만해서 몸을 감추군 했다. 다짜고짜 목덜미를 잡아끈다. 애는 얼굴이 빨갛게 충혈되여 고개를 흔들어댔다. 자기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노라고 눈에 눈물을 글썽거린다. 복선녀가 나와서 마냥 곱게 풀어주었다. 나한테 눈길 주고는 괜히 얼굴을 붉혔다. 인애보고 자기가 좋은가고 묻는다. 인애는 말은 안하고 슬그머니 언니의 허리를 껴안았다. 그리하여 인애는 가끔 우리의 보초군노릇을 했다.
벼가을은 끝났고 타작은 시작되지 않았다. 집집마다 배추를 캐서 무져놓는다. 나는 지난해에 뜨락에 파놓은 김치움부터 손질했다. 봄부터 여름내내 물이 차있었기에 안은 반드시 손을 봐줘야 한다. 가끔 아버지와 함께 황토를 이겨 벽을 바르기도 했다. 엄마는 백토를 얻어다 물함지에 넣고 소금 몇줌을 뿌려 풀어놓는다. 하루저녁 잘 풀리도록 뒀다가 바깥벽이며 정지에 매질을 했다. 후에는 주로 회가루를 썼다. 할매는 남새밭의 빨간고추를 따서 하루 점도록 뜨락에 앉아 몇타래씩 꿰군 했다. 또 연한 고추잎을 뜯어 쑥대발에 늘어말렸다. 아버지는 남산에 가서 소나무버섯을 따오거나 지게로 풋나무를 해다 낟가리를 장졌다.
잠풍한 날, 마가을해빛은 아직 그런대로 따사롭다. 우리 집 네벽은 하얗게 단장을 했다. 처마밑에는 빨간 고추타래가 주렁주렁 걸려있고 빨간 꽈리도 매달려있다. 인애가 산에서 따온것이다. 탈곡이 끝나면 지붕을 한다. 가끔 봄에 나가 이영하기도 했다. 산뜻하고 포근한 초가는 어느덧 그림같이 아름답게 단장을 한다. 내 마음의 영원한 안식처 고향집, 생각만해도 황홀하고 포근해난다.
그 시절에 인애의 친구 선화를 보는 내 마음은 자못 야릇해났다. 맞띄우면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워한다든가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달아난다든가. 인애가 별랗게 번지는것처럼 사춘기겠거니 했다. 선녀는 애가 왜서인지 혼자 있기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선화의 어깨를 잡고 머리에 묻은 눈을 털어주었다. 애는 아무말도 안하고 가만히 서있었다. 얼굴 피부빛은 감실했고 눈의 동공은 까맣게 빛났다. 조금 튀여나온 이마에 불색빛을 띤 머리카락 몇오리가 나올거렸다. 숨소리가 유난히 쌔근거렸다. 젖가슴이 나오고있었다. 생각마저 엉큼해갔다. 너무 빨리 숙성해간다.
“선화 참 예뻐졌네, 요즈음은.”
“오빠두∼”
계집애는 몸을 꼬며 귀밑을 달궜다. 초롱한 눈길이 내 얼굴에 붙어왔다가 미끄러져내려갔다. 아무리 사춘기라해도 인애와는 틀렸다. 나는 어색하게 웃는다. 눈이 많이 내린다고 중얼거리며 인애를 불러주었다.
참말 밖에는 배꽃잎같은 눈이 쏟아지고있다. 그대로 펑펑거렸다. 후에 연변에서 십오여년 가까이 살면서 나는 그런 눈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갈수록 세차고 커져갔다. 온 하늘에 마구 흩날리는 거위털만 같았다. 나는 눈의 숫기와 빛깔과 촉감을 너무 좋아했다. 그렇게 쏟아지는 눈속에 가만히 서있으면 인차 눈사람이 돼가는 느낌이다. 마치 눈꽃들이 속삭이고 부르는 련가가 들려오는듯 싶다.
앞이 두대가 빠진 할매는 대통에 담배를 꾹꾹 밀어넣고 뻐끔거렸다. .
“명년에도 풍년이 들것네. 그래, 마, 실컷 내려라. 풍풍! 히야, 괭장하다.”
올방자를 틀고앉은 할매의 앞에는 화로불이 놓여있다. 인애가 친구와 가래토시를 굽고있다. 가래토시입귀가 벌어지는대로 꺼내 정지칼로 쪼갰다. 속살은 두가닥의 창살모양인데 희고 고소했다. 눈오는 날은 세상이 곯아떨어지듯 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가끔 처마밑의 참새들이 짹째거리며 정적을 깨뜨려왔다. 더 깊은 정적이 뒤에 묻어왔다. 선화가 생각에 잠긴 나를 슬거머니 훔쳐봤다. 눈빛의 미세한 떨림까지 전해왔다.
나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부지중 꺼내고말았다.
“선화야, 진수형한테서 편지왔더라. 우리 선화 잘있느냐고 묻더라.”
그때 진호형은 사년째 군에 나가 있고 진수형도 이년째 연길 어느 화가선생님의 문하에서 그림공부를 했다. 진수형은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해결했다. 집에서는 일절 관계하지 않았다. 인애가 내 옆구리를 쿡 찔러왔다.
“오빠두 참∼”
선화의 얼굴이 수수떡처럼 벌게졌다. 눈에 벌써 눈물이 고여갔다. 부시시 일어나 밖을 나갔다. 인애가 나한테 눈을 흘기고는 급히 뒤를 따랐다. 얘, 얘, 소리쳐 부른다.
“자가 와 그런데에? 니하고 삐졌나?”
할매가 영문을 몰라 물었다.
애는 괜히 모욕감을 못이겨 그랬다. 애가 열한살쯤나던 해에 진수형은 선화를 홀랑 벗겨놓고 그림을 그렸다. 그 일로 형은 아버지한테 집에서 쫓겨나 오래동안 객지생활을 해야 했다. 네놈도 이제 다 컸으니 니 살도리 니가 알아 하라고 호령해서 내쫓은것, 선화의 어린 맘에도 상처는 여직 아물지 않고있었다.
시베리아의 찬바람은 일찍 불어왔다. 기온이 령하 30˚이하로 떨어져갔다. 이맘때면 다들 집에 들어앉아 겨우내내 놀음판으로 세월을 보낸다. 화토나 트럼프치기, 마작놀이가 성행했다. 바람은 바늘끝같이 맵짜게 정곡을 찌르면서 마구 가슴을 파고들어왔다.
복선녀는 정월 초순에야 귀국했다. 완연 숙성하고 깔끔한 처녀로 탈바꿈해 왔다. 까만 인조가죽구두에 통솔이 넓은 국방색바지를 받쳐입고 큰 무늬 누빈 미황색잠바에, 어깨에 체크무늬마후라를 걸치고 꿈결같이 나타나 웃고있었다. 나는 마침 뜨락의 눈을 치고있었다. 소리없이, 거짓말같이 서있던 그녀.
“야, 너 언제 왔어?”
말이 나오지 않아 나는 한참 입을 벌렸다.
“잘 있었어?∼ 정말 보고싶었다.”
미동도 하지 않은채 뚫어지게 나를 쳐다본다. 아, 당신의 연연한 미소는 당신의 숨결이 깃든 입술과 련정을 실은 눈매로부터 시작되는가? 그리고 웃는가 싶더니 급기야 눈에 이슬이 줄줄 맺혀갔다.
해가 바짝 나있었다. 참새의 무리들이 차고도 싱그러운 공기속으로 무리져 까맣게 날아다녔다. 어디선가 까치우는 소리가 유난히 맑게 들려왔다.
나는 촉감 좋은 복선녀의 손을 다정히 잡았다. 사람이 사람의 손을 잡아서 그렇게 좋을수가 있을까. 그저그저 좋아졌다. 그녀를 끌고 내방으로 들어갔다. 마침 돼지죽 주러 나오던 할매가 보시고 반색을 했다.
“야, 니왔꼬나. 언제 왔노? 엄마도 잘 다녀왔능고?”
“네∼ 그동안 잘 있어요, 할매?”
“잘 있다마다, 내사 매사 그렇지∼ 니 정말 이뻐졌다 잉?”
“아이구, 할매두∼”
나는 할매한테 눈을 흘겼다. 뭔가가 급해서 재촉했다.
할매는 복선녀를 무던히도 좋아했다. 아버지, 인애도 좋아했다. 엄마만은 싫어했다. 그녀는 우리 엄마가 있는가 살피는 눈치다. 집에는 다른 사람이 없다. 빈방이 좋다. 아무도 없는, 그리고 둘만의 빈방. 벼겨를 부엌에 쓸어넣어서 노란 장판구들은 쩔쩔 끓고있었다.
우리는 손을 잡고 마주보다가 둘다 슬그머니 웃어버렸다. 순식간에 서로를 껴안았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코끝을 간질구는 크림내가 알싸하게 풍겼다. 조선구루분(크림)일까? 내손과 마음이 어느덧 그녀의 살맛에 익숙해져있음을 알았다. 그녀를 방에 눕혔다. 머리카락을 살살 쓸어넘겨주고 이마에 가만히 입술을 가져다댔다. 내 입술이 뜨거워지는지 그녀의 이마가 싱그러워지는지 몰랐다. 길고 촉촉한 그녀의 속눈섭이 물기젖은 눈망울을 살그머니 덮어버렸다. 버릇처럼 그녀의 목을 만지고 귀볼을 주무르고 볼을 쓰다듬었다. 목구멍이 뜨거워갔다. 속에서 불뭉치같은것이 자꾸 치받쳐올랐다.
그녀는 숨을 죽인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속옷 목깃으로부터 아래로 살며시 손을 밀어넣었다. 손가락끝에 만지워졌고 스치워졌다. 그 촉감을 뭐라 형용하랴. 숨이 한죽은해져갔다. 그렇게 크고 부드럽고 탄성이 있는것. 그녀의 모든 향기가 꽃몽오리처럼 단단히 뭉쳐져있는 곳. 그녀의 의식이 해비를 머금고 신비하게 비껴간 언덕에서 무엇을 기다려 장미처럼 고즈넉이 숨을 죽이고있는 곳. 할매가 돼지울에서 죽을 주면서 뭐라고 소리쳤다. 밖에서 인애의 무리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렸다.
복선녀가 내손을 쳐낸것은 다음순간이였다.
“안돼, 이러지 마, 제발!”
“왜?∼”
“그냥∼내말 들어줘 응?”
순간 힌둥 나뒹군채 나는 그녀를 쳐다보았다. 왜 그리 빼냐고? 그녀도 나도 얼굴이 벌거우릿해져있었다. 이마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고 그녀가 살그레 웃었다. 다가와서 말없이 나를 품어주었다. 그녀의 품에 안긴 나는 자기를 견딜수 없었다. 언제부터 꿋꿋해진 아래도리가 터질것같았다. 그녀를 생각하다 새벽녘에 몽설을 하는 경우가 잦아져갔다. 그녀는 사뭇 모든 상황을 눈치채고있는것 같았다. 손이 내 아래배에 가서 매삼거렸다. 나는 그것을 잡아 내 속옷아래로 밀어넣었다. 어쩔수없이 나의것이 잡혀졌다. 평소에 나는 그녀의 손이 뱀껍질처럼 차고 이슬기가 돋은 이끼같이 촉촉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의 손은 말할수 없이 뜨거워나있었다. 그녀의 생각과 숨결이 깃든것처럼. 그것을 꽉 잡고 차츰 죄여왔다. 숨을 한번씩 내쉴 때마다 죄임을 번복했다. 나는 두팔로 그녀 목을 끌어안았다. 입술과 입술을 맞댔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런 동작에 스스로가 놀랐다. 그녀의 입술을 파고드는 혀끝은 반쯤 닫긴 이들에 자꾸 걸렸다. 마침내 깐깐하고 굳건해진 입문을 열어젔혔다. 혀끝의 촉수가 맞쳐오다가 주춤해졌고 가만히 뻗어왔다. 풀내에 딸기물냄새가 실려있는 입술에 젖내까지 나는듯싶었다. 우리는 프로처럼 서서히 교감을 시작했다. 어쩔수없이 격렬해졌다.
그녀의 손동작도 빨라지고 거칠어졌다. 나의, 녀자에 의한 첫사정은 마침내 분출하고말았다. 부끄럽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것은 없었다. 충동적으로 몸을 떨면서 생명의 성애를 나는 온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오래동안 그 상태로 있었는지 몰랐다. 흡사 삼라만상이 잠들어버린것같았다. 여직껏 가져보지 못한 마음의 평화를 찾은것같았다. 우리의 생명에 이 좋은 평화가 있다는것이 마냥 경이로웠다. 그리고 그녀한테 감사했다.
나는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눈이 감기고 잠이 오는것 같았다. 그녀는 개성에 갔다온 이야기를 했다. 문화대혁명전에 이곳 길림에서 살다가 건너간 외할머니는 일흔셋이라 많이 로문해있었다. 세살적에 갈라졌으니 친외할매라는 느낌이 없다. 그래도 외손녀라고 이것저것 섬겨주고 고와해주니 피는 못속이는가 보다. 외삼촌은 시청의 비서인데 꽤 잘나가고있었다. 그들 모녀를 데리고 판문점도 돌아보고 평양에 데려가서 수령님사적관이며 만수대고향집이며 공원을 구경시켜주었다.
대동강건너는 주체탑, 대동강 이쪽은 정무원, 그 뒤로 대학습당, 조선혁명전쟁승리기념관이 있다고 복선녀가 말했다. 나는 주체가 뭐냐가 물었다. 사람으로 놓고말하면 주대같은것이겠지뭐, 그녀가 대답했다. 사람이 주대있게 살아야 하듯 나라도 제주대있게 살아야 한다는 뜻인것 같았다. 주체라? 나는 그 말이 참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했다. 강적에 비굴해하지 말고 제정신으로 살란것, 복선녀의 손이 다시 안으로 파고들었다. 내것은 그냥 살아있었다. 어차피 우린 또 한번의 격정을 겪어야 할것이다.
복선녀가 팔푸렛트가 뭔지 아냐고 물었다. 아버지의 책장에서 우리는 누렇게 뜬 대한민국사전을 꺼냈다. 팔푸렛트가 아니고 팜플렛, 이였다. 가철한 작은 책자. 소논문, 특히 시사문제에 대한 소논문, 이라 해석했다. 그러니 선전물같는것이겠구나. 그녀가 중얼거렸다. 어머니가 어릴적에 사촌오빠한테 들은 팜플렛, 에 대한 말이 생각나서 밥상에 앉았을 때 주위사람들한테 물었더니 누구도 모른다고 고개 흔들었단다. 삼촌을 접대한 집은 평양에서 꽤 급이 있는 댁이였다.
그중 나이 지긋한 로인이 왜 그걸 묻느냐고 했다. 어머니는 사촌오빠가 연변에서 항일투쟁을 했는데 김책이란 분하고 잘 다녔다. 그때 사촌오빠가 열일곱살이고 김책이란 분은 스물넷이였다. 드문드문 강을 건너와서 김도 매주고 했는데 솜씨가 날렵하기로 번개같았단다. 엉덩이 뒤주머니에 꼭 팜플렛을 넣고다니면서 짬짬이 읽더라고 말했다. 이북에 김책시가 있으니 그분은 아마도 중앙위원쯤은 될것이다.
그런데 그 팜플렛을 해석한 로인이 바로 기념관의 책임자였다고 한다. 그덕에 그들 모녀는 국빈처럼 떠받들리워 삼시 세때 성찬대접을 받았단다. 평양에서 강원도쪽으로 한 60리를 가면 대성산릉원이 있다. 전문 항일투쟁렬사들을 안장한 곳. 꽤 가파른 산비탈에는 가운데에 층계를 만들고 좌우로 렬을 내서 렬사들을 고이 모셨다고 한다. 그들 모녀는 준비해간 꽃다발을 묘지에 드렸다. 안내를 맡은 분이 그들 모녀한테 물었다. 우리가 중국조선족동포들을 왜 이렇게 잘 대접하는줄 아느냐고? 그것은 항일전쟁 당시 우리가 두만강을 넘나들면서 제일 어렵게 싸울 때 당신들은 같은 민족으로서 목숨바쳐 도와나섰기때문이요, 형제와 전우가 되여 피를 나누며 환난속에서 같이 싸웠기때문이다. 우리는 당신들을 영원히 잊지 않는다고 했단다.
그 말을 끝내고 복선녀는 한참 침묵했다. 눈언저리가 발그스럼해졌다.
“감동되더라. 정말, 피를 나눈 형제그 말이 왜 그리 가슴속을 울리던지?”
“그렇겠네. 잘 모르겠지만∼”
“겪어보지 않았으니까. 울엄만 몰래 울었다. 아마 울엄만 영원히 그쪽 편이 될거야. 일본놈들만 아니였다면? 울엄마가 중얼거렸어. 우리 가슴속에는, 옆꾸리 갈비뼈에는, 늘 쪽바리들에 대한 원한이 단단히 맺혀있다. 오랜 세월동안 응이 되여 뼈처럼 굳어져있다. 굳은 날 무릎이 아파나듯 생각만해도 거기서 통증이 온다, 그 원쑤를 절대 잊지 않을거라고 하시더라. 그도그럴것이, 김책이란 분과 친하게 지내던 사촌오빠가 일본순사놈들한테 잡혀서 총살당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셨으니까!”
“그래? 으응∼ 그렇겠구나!”
나는 감정이 무딘것이 부끄러워났다. 복선녀네 가정일인데도, 우리 민족 모두의 일이겠는데도, 그런 강렬한 분노나 적의감같은것이 생겨나지 않으니까. 그런 마음이 생긴다는것은, 얼마나 뼈에 사무쳤기때문인가를 생각해봤다. 이번에 그녀의 모친은 남편의 인민군제대증명서를 떼러 간것. 그녀 부친은 남수아버지나 우리 아버지와 한 부대에 편입되여있었다. 중국 동북군에서 싸우다가 1950년 1월에 함께 비밀리에 두만강을 건너갔고 인민군에 재편되자 반년쯤 훈련과 정비를 거쳐 6.25전쟁 발발 당시 곧바로 전쟁에 투입되였다고 한다.
파죽지세로 서울까지 짓쳐들어간 그들은 대전을 거쳐 대구, 부산쪽으로 밀고나갔다. 해방을 눈앞에 둔듯 했다. 복선녀네 부친의 고향은 대구광역시부근의 어느 작은 촌락, 락동강전투를 겪으면서 가끔 소시적의 고향집을 떠올렸지만 기억은 삭막했다. 다섯살적에 부친의 지게에 얹혀 떠난 땅이였으니까. 또 이데올로기전쟁에서 군인에게는 판단이 필요없다. 피스톤의 축에 단단히 응축된다. 전쟁이란 거대한 소용돌이속에서 피스톤은 힘찬 추진력이 있어야 아군 모두가 사는 길이다. 전쟁에 반한 인간의 존재는 위력적이고도 위대하다. 그리고 죄악적으로 무자비하고 무의미하기도 하다. 자료를 보면 당시 군인과 민간인 사망자수는 이백만이 가까웠다. 인류력사상 최대규모의 동족상잔전쟁으로 기록되고있다. 진격, 진격, 낯선 땅이지만 낯설지 말아야 할 땅에서의 결전! 하지만 미군의 인천등륙작전이 시작되면서 전쟁형세는 삽시에 뒤바뀌졌고 나의 아버지도 락동강전선에서 포로가 되고말았다.
시초에는 부산포로수용소에 갇혔다가 거제시포로수용소로 옮겨갔다. 나는 화면자료에서 미군이 포로들에게 흰가루살충제를 머리와 몸에 사정없이 분무하는 사진을 보았다. 서캐와 이와 벼룩을 잡고 예방하기 위한것인데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했다. 굶고 매맞고 처결당해 송장으로 끌려나가는 기막힌 사진들, 거제도수용소는 17만 5천명의 포로가 갇혀있었는데 미군은 포로가 포로를 다스리는 방법을 썼단다. 그들가운데 힘이 센자, 권력이 있는 자들을 련대장으로부터 소대장으로 임명해놓고 미군은 밖에서 총을 들고 탈출만 막았다.
그런 운영방식은 또다시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한껏 양상시켰는바 그들 내부에서는 이내 친공세력의 해방동맹조직과 반공세력의 대한반공포로조직이 형성되였고 그로 말미암아 하루에 삼사십명씩 수많은 목숨이 죽어나갔다. 해빛,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의 따사로온 빛을 쬐러 철조망근처에서 알몸으로 서있는, 어느 포로를 찍은 사진 한장이 유난히 내 마음을 움켜잡았다. 더부룩이 엉킨 머리카락과 피골이 상접한 얼굴과 모든것을 포기한듯 망연해하는 표정과, 그래도 한오리 따사로움을 바라는 본능적인 삶의 욕구가 력력히 그려져있다. 혹, 그 사람은 나의 아버지일수도, 남수나 복선녀의 아버지일수도 있었다.
나는 조선족지원군포로들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로 써보려고 애쓴적이 있다. 소재는 꽤 수집했으나 아무리 어찌해도 당시 상황에 대한 분위기나 느낌이 제대로 닿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할매가 얻어들은 기억의 편린들이 더 생생했다.
“마, 굶어죽꼬 맞아죽꼬, 무지 많이 죽었다더라. 그것을 보면 니 애비도 참 살아남은게 용하니라. 하루는 니 애비가 영문 모르고 남쪽에 집이 있는 포로를 돌봐줬다가 쌩 혼이 났다잖어? 니 애비사 의사였으니까 환자 돌보는거야 직책이지. 건데 나쁜놈을 돌봐준다구 립장 분명히 하라 모진 구타까지 당했다지 않겠어?∼ 휴, 넌 절대 군대에 가지 말거라!”
포로교환을 거쳐 귀국한 포로들의 심경도 한껏 긴장해났다. 남쪽이든 북쪽이든 대방이 준 옷들을 벗어내치고 빤즈바람으로 욕설을 해대기 분주했다고 한다. 아니면 루명 벗기 바빴기때문이다. 역시 이데올로기의 연장선인 셈이였다.
남수아버지가 내 코를 잡고 틀어놓았다.
“왜 거기서 살지 않았냐구? 허, 니놈은 별것 다 알라꾸그래 잉? 양키놈들이 활개치고있는 땅에서 죽치고 살수 있나, 생각해보문 모루것나? 허허.”
그것이 대륙 깊숙이 들어와 이곳에 안주한 까닭인것이다.
그런데 복선녀부친은 아예 손사래질을 했었다.
“허허, 니네 아부지, 순웅이한테 물으면 더 잘 말해줄기다.”
당시 나는 아버지한테 묻기 어려워했다. 집에서 당신은 조만에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수굿하고 담배만 피우고 일만 찾아하셨고 간혹 꽥 소리가 터지면 집안은 쥐죽은듯 고요해졌다. 평소에 남편을 쥐락펴락하던 엄마도 겁을 먹고 자식들한테 눈치 주기가 바빴다.
그래도 당신은 나한테는 너그러운 편이다. 자식들중 나를 제일 고와했다.
그날 우리는 울밑에 봉숭아가 피기 시작한 뜨락에 앉아있었다. 정오의 따사로운 봄빛이 아버지의 얼굴에 너울거렸다.
“묻지 마라, 허허. 그 아픈것들을 왜 알라꾸그래? 그냥, 잊고 사는기다, 잊고∼ 배불리 먹고 등 따시면 행복이니라, 명심하거라.”
잊고 사는기다? 단순한 그 말이 진리같았다. 가령 잊혀지지 않겠지만, 작은 단지에 붕어나 모래무치같은 물고기를 넣고 소금을 뿌리고 꽁꽁 봉해서 푹 삭이는것, 나는 아버지의 몸에서 그런 삭혀지고 쿠린 냄새를 맡았다. 그게 곧 행복인지는 단정하기 어려웠다.
복선녀가 내 팔을 툭 쳤다. 샐쭉 웃으며 동을 달아왔다.
“왜 그래? 정신 어디에 팔고?∼ 우리 아버지의 그 일은 말이다. 남쪽에서 포로가 된거니 거기서 증명해줄 사람을 찾을수 없는게 아니니? 당시 상황도 복잡하고 충분한 근거도 갖고있지 못하니 미안하지만 당분간은 어찌해줄 방도가 없다고 하더라. 좀 더 기다려보란데 희망 있겠는지 딱히 모르겠다.”
나는 소식이 있겠지 뭐, 안위했다. 별 관심 갖고있지 않은듯해 미안했다. 진수형네 외가집도 함북도 송림시에 있다고 화제를 돌렸다.
진수형은 다섯살 때에 엄마와 함께 송림에 놀러 갔단다. 외삼촌은 매일 찌프차를 타고 출퇴근했고 휴일이면 그들 모녀를 데리고 산천경계를 구경시켜주었다. 그때 어린것의 기억에는,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조선말을 하고 집이며 거리가 깨끗하고 맛나는것이 많고 새옷이며 구두같은 생활용품들이 흔했다는것, 너무 신기하고 좋았나보다. 지금 말하면 미술관의 화전도 구경했다. 그때부터 진수형은 그림에 각별한 흥취를 갖게 되였단다. 그 이야기를 할 때 진수형의 나이는 열두살, 우리는 뜨락에서 땅따먹기를 놀았다. 때꾹 흐르는, 얄궂게 찌프린 낯에 따가운 해볕이 사정없이 쏟아져내렸다.
“그때말이다, 외삼촌이 날 자기네가 기르겠다구 했거던. 갈 때도 남겨두라고 말리는데두 울어머니가 부득부득 고집을 쓰더라. 나 없으면 못산다구, 페 끼치지 않겠다구. 난 이담 크면 꼭 송림에 놀러 가겠다. 화전에 가보니 야, 그림들 괭장히 잘 그렸더라. 이번에 가면 또 구경해야지. 난 화가가 될거다. 니도 가보고싶지? 헤헤, 니 내 말 잘 듣는다면 생각 좀 해보고 데려갈께, 약속한다, 히히.”
함북도 송림이 어디에 있는지 나는 모른다. 너무 멀고 요원한것 같다. 진수형한테 이젠 엄마가 없다니 불쌍했지만 그곳까지 가보았다니 너무 부러워나기만 했다.
우리 엄마는 그 말 듣고 코웃음을 쳤다.
“걔가 그런 말을 다하던? 꼴값에, 그런 말을 다해?∼ 부러워말아라. 이담 엄마가 널 데려갈게, 구경 실컷 시켜줄게다. 평양이랑, 금강산이랑, 응?”
“건데 진수오빠말이야∼”
“뭔데?∼ 허어참, 어서 말해야 알지?”
복선녀는 우리 가족에 대해 의문이 많아보였다.
“진수오빠 친엄마는 세상떴다지?∼”
“응, 차사고로∼ 그래서 진수형이 우리 집에 왔데. 우리 아버지가 바로 그의 친아버지니까. 재미있지? 허, 우리 큰형 진호도 마찬가지래. 진호형네 엄마도 페병으로 돌아가셨대. 그러니 우리 아버지는 녀자가 셋이였다. 지금 우리 엄마가 세번째였고∼ 난 생각만해도 우리 아버지가 몹시 이상해난다. 그런 분이, 내 말은 우리 아버지같이 좋은분이 어떻게 녀자를 셋이나 할수 있었을까?∼ 안 그러니?”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하게? 너네 아버지보다 좋은 남자가 어디 있다구? 맘씨 무던하지, 일 잘하지, 집안 잘돌보지, 우리 마을 숨은 명의가 아니니? 외지서며 동네분들이 문턱이 닳아떨어지게 찾아와도 어디 한번 낯 찡그리더나. 그런데도 딴 의사들처럼 드러내놓고 병보지 않지, 불쌍한 환자들의 돈 벌지 않겠다고 그런다더라. 듣자니 니네아버진 군의였다지? 우리 아버지가 그러더라. 호, 녀자 셋을 한것도 운명이래, 이래 말하면 니가 어찌 생각할지 몰라도, 어쩌면 녀자복이 많아 그런지 모르겠다구 하더라. 호호.”
“녀자복 좋아하네. 우리 엄만 그때문에 얼마나 심술 피운다구그래? 우리 아버진 울엄마한테 꼼짝 못하고 그냥 당한다, 허허.”
“그래말이다. 난 너네 엄마가 무섭더라, 성질이 좀 그렇지?”
이때 공교롭게도 정지문 여닫는 소리가 났다. 복선녀가 혀를 홀랑 내밀었다. 범이 제소리하면 온다더니 우리 엄마가 어느새 미닫지문을 열지 않는가? 해서 둘은 도적질하다 들킨 놈팽이처럼 괜히 낯들을 붉혔다. 복선녀가 인사할 겨를도 없이 엄마의 눈이 순간 새초롬해갔다. 여기와서 내 아들하고 무슨짓을 하느냐, 힐문하는 눈빛이다.
“다 큰것들이!∼”
엄마는 낯을 찡그렸다. 시퍼런 대낮에 문 닫아놓고 잘들 논다? 그런 꾸중이였다. 나도 심한 모욕감이 들었으니 복선녀야 여북하랴? 엄마가 너무했다. 나도 이젠 어른이잖은가. 부모의 간섭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처녀와 사귀고싶었다. 얼굴이 발갛게 익어 쩔쩔매는 그녀를 보자 나는 분통을 터뜨리고야말았다.
“엄마두, 뭘 하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응?”
“왜, 내가 말을 잘못했니? 동네사람들이 알면 너희들이 그런줄 알겠다.”
“그런줄 알다니? 우리가 뭐 어쨌게요? 아이 유치해! 그런줄 알라면 알라지. 흥흥, 구데기 무서워 장 못쓸까? 칫.”
“요놈새끼, 이젠 다 컸다고 말대꾸하는것 봐라. 난 싫다, 싫다는데두 그래. 내 아들한테 그런 소문나는게 싫단말이다.”
“에이씨, 엄만?∼”
그러든말든 당신은 태연히 아래목에 올라와앉아 왼쪽무릎을 날카롭게 세우셨다. 머리를 반듯이 쓸어넘겨서 뒤로 쪽을 지어 꽂은 상아뼈비녀며 작고 꼿꼿한 눈, 앙다문듯한 입술, 엄마의 독기는 정말 못말렸다. 나는 어떤 경우라도 먼저 고집을 꺾어본적이 없다.
나는 화가 나서 견딜수 없었다. 안절부절못하는 그녀의 손을 끌고 밖을 나갔다.
“그럼 갈게요, 잘있어∼”
복선녀는 괜찮다는듯 곱게 인사까지 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