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류수(落花流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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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류수(落花流水 2)
  • [편집]본지 기자
  • 승인 2009.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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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흑룡강신문 신춘문예 수상작품 - 리동렬 장편연재>

짐자컨대 한 일년후의 이맘쯤이면 나는 아마 거기에 가있을것이다. 천도끼, 당신이 우리의 족속에로 또한번 귀순했던 고장, 소시적 내가 가본 그곳에는 강이 하나 있었다. 폭이 별로 넓지 않으나 그런대로 수량이 꽤 많은 강이다. 백두성산에서 발원하고있는 전설의 강, 우리 족속들에게는 영원한 푸른 두만강으로 불리우고있다.

 

나는 산등성이에 서있었다. 나의 발밑은 가파른 산비탈이고 태고적부터 강물이 충적해놓은것 같은 꽤 너른 평지가 나져있다. 약간 불색을 띤 땅은 참빗으로 빗어놓은듯 곱게 이랑지워져있고 여나문채의 기와집과 초가가 그곳에 삶의 터전을 잡고있다. 외계와 떨어진 이곳 쪽빛하늘과 가파른 산과 절벽과 강 사이 허허공간들에는 유난히 눈부신 해빛이 가담가담 우짖는 물새나 산새의 울음소리들을 곱게 튕기며 이상한 적막을 빚고있다.

 

적막, 아니 고요, 나는 그 자체를 사랑했다.

내가 선 자리, 여기에서 당신은 지나간 력사의 이날에 실컷 오줌을 누었다. 그것을 빼들고 오래오래 누런 호수물을 뿌렸다. 당신은 침을 뱉고 이를 간다. 다시는 저 강을 넘지 않으리라 맹세한다. 반도 저쪽, 동족상잔의 전쟁터에서 미군에 포로되였다 풀려나온지 삼년 이개월이 나던 해였다. 당신이 잡힌 곳은 경북 락동강부근, 당신이 WP(전쟁포로)라 쓴 미군이 발급한 옷을 입고 갇혔던 곳은 부산포로수용소이다. 후에는 거제도수용소로 옮겨갔다가 한 이년후 포로교환때에야 구사일생으로 풀려나왔다.

 

강을 건넌 당신은 내가 지금 보고있는 저기 어느 초가에 찾아들었다. 당신은 주인이 해준 감자밥을 정신없이 퍼먹다 쿡쿡거리기 시작했다. 당신 뒤에는 귀밑머리 희끗한 주인 아줌마와 곱게 숙성한 그집 딸이 지켜보고있다. 오열이 이내 그녀들한테까지 번져갔다.

 

저녁무렵 당신과 그집 딸은 강가 모래톱에 나가앉았다.

강물은 오로지 묵념하듯 하염없이 흐르기만 했다.

처녀는 고개를 숙이고 모래톱에 락서만 했다. 웬 사내의 이름을 썼다 지우고 또 쓰군 했다. 기실 그녀는 약혼남이 있었는데 약혼자는 전쟁터에 나가 좀체로 돌아오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그녀가 쓰고있는 이름은 당신과 한소대에 있던 전사와 동성동명이요 미군 전투기의 기총소사를 받아 당신의 품에 안겨 유언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죽어간 미남아였다. 퀭해서 죽은 눈꺼풀을 내리쓸어줄 때 당신의 손에는 시뻘건 피가 질벅히 묻어있었다. 총알 하나가 왼쪽머리를 빗겨나간것이다. 그 이야기가 끝나기도전에 그녀는 외마디소리를 지르며 기혼해넘어갔었다.

 

삼년후에 당신은 또다시 이곳 물가를 잊지 못해 찾아왔다. 당신은 그때까지도 강가에서 매삼거리고있는 그녀를 찾아낼수 있었다. 그날밤 깊은녘에 녀인은 당신의 방으로 간소한 술상을 챙겨들어왔다. 선선히 옷고름을 풀면서 당신과 하루밤을 기약했다. 눈물과 탄식과 신음과 열광속에서 안타까운 밤은 각일각 서광을 재촉했고 야속한 수탉은 어느결에 희붐한 새벽빛을 감지하고 홰를 치기 시작했다.

이튿날아침, 그녀는 당신의 뒤를 따라나섰다. 빈몸으로 묵묵히, 모든것을 단념하듯, 녀인은 영영 이 고장을 떠나고싶어했다∼

 

나는 가파른 산비탈에 붙은 오솔길을 찾아내리기 시작했다. 나의 전설의 초가집이 아직 남아있을지 궁금했다. 내 생명 최초의 비밀을 간직하고있을 터전을 찾고싶었다. 그날밤 당신들의 축축한 숨결을 느끼고싶었고 우연과 필연속에서 내가 생겨난 생명의 비밀을 알고싶었고 그날밤의 온도와 습도까지 감지하고싶었다.

 

나는 내 생명의 근원지에 서있다. 어차피 저 강물처럼 떠나게 되여있다. 나는 내 아버지와 엄마의 아들이란데서 영원히 자유로울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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