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동맥은 교통이란다. 나의 핏줄은 서울 지하철로서 나의 스마일 중년을 만들었고, "재밋게" 늙을 내일을 만들 것이다.
중국에 있을땐 볶음채가 없으면 밥을 못 먹었는데 이젠 김치가 없으면 밥 못 먹겠고, 지하철이 없으면 촌보난행(寸步難行)이다.
1999년, 입국 이틀후에 이대에 사는 사촌언니네 집을 혼자 나서서 쉽게 2호선에서 4호선을 갈아 타고, 직업소개소에 가서 일을 찾아 했다. 그로부터 한국민들이 만든 기적과 지하철을 이용하여 억소리가 훨씬 넘어나게 벌어서 소비했다.
2000년 부터 "지하철로 떠나는 서울 여행"이란 map 을 들고 혼자서 지하철을 타고 월미도, 한강에 까지 가서 유람선을 탔다. 지하철을 이용하여 혼자서 서울의 크고 작은 공원, 문고, 사적지, 쇼핑센터, 재래시장, 체육시설과 명소는 거의 다 찾아서 유심히 살피고, 감상하면서 고국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어제와 오늘을 느꼈고, 배웠고, 알아 간다. 누가 뭐래도 한국과 소통이 가능하다고 우긴다.
지하철 덕분에 서울은 내 손금처럼 빤하다. 따라서 서울의 매 한 그루 나무, 매 한 포기 꽃과 풀, 빌딩 한 채, 매 사물 하나하나가 그렇게 애틋하고, 소중하고 귀할 수가 없다. 취객이 지하철 의자에서 앞으로 퍽 꼬꾸라 졌을 때 엄마와 여친을 뒤로 한 두 청년이 뛰어와 부축해서 일으켜 앉히고 휴대폰을 찾아서 연락한 다음, 다음역에서 부축해 취객을 내릴 때, 고국의 청년들이 그렇게 거대하고, 의젓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한국민들은 나에게 수 없는 감동을 선물하였다. 비록 외국인 등록증 소지자이지만 언제나 내 국적국의 앞자리에 놓인다.
아이러니 하게도 중국에 두 채의 아파트를 놔 두고, 달갑게 서울의 지하철을 내 집, 내 공간으로 삼는다. 방문할 일이 있어 혹간 일에 지친 친척, 친구들의 반지하 단간방에 가서 칼잠을 자고는 불편을 줄가 저어 되어 아침 일찍 살며시 일어나자 댓바람으로 편한 내 집 - 지하철로 뛰어 가서 손 씻고, 칫솔질 하고, 세수하고, 옷 갈아 입고 "화장"한다.
유명 백화점에 가서 각양각색의 고급 브랜드 상품이나 우아한 사모님들 감상하기도 좋아 하지만 그보다 지하철이 나를 만들어 가기엔 안성맞춤인 교실이다. 오라는 사람은 없어도 갈 곳은 많기도 하다. 매 驛舍를 흔상하고 평가를 내린다. 지하철은 의로운 사람, 외국인 선교모금, 구걸자, 잡상, 취중에 세상을 호령하는 사람.....그야말로 서민들의 萬花鏡이다. 승객들의 일거수, 일투족, 표정들을 슬며시 관찰하고, "연구"하고 배운다.
짝퉁 서울시민이 되어 활자로 찍힌 종잇장을 들고 읽거나, MP3를 듣기도 하고, DMB를 시청하기도 한다. 휴대폰은 진동으로 놓고, 톤(말소리)은 낮춘다.
오랜 세월의 지구중력과 인생의 무게로 축 늘어져 굳어진 얼굴 표정이 순간 포착되면 나도 그런 像이 될가 지레 겁나서 지하철을 운동장으로 삼고 인위적으로 내 눈귀와 입귀를 들썩 거리며 운동한다. 일에 찌들어 험상궂게 경직된 얼굴 근육을 이완 시키려고.
며칠전, 지하철에 올라서 습관적으로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눈에 힘주지 않고 살그머니 훔쳐 보았다. 두 중년의 서양남녀가 앉아 있었는데 여자는 눈을 반쯤 깔고 있었다. 남자와 나의 눈길이 허공에서 부딛치는 순간, 습관적으로 먼저 머리를 1도로 숙이면서 미소를 띄우니 그도 빙그레 하는 거였다. 찰나 나도 모르게 활짝 소리없이 웃어 버렸고, 그도 함박 웃음을 지어 주었다. 한 푼 팔지 않고 기분이 업(up) 되었다. 머리를 돌리면서 생각해 보니 이런 경지에 이른 내가 스스로도 "대견스러"웠다.
지하철 교실에서 배운대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맞닥뜨려 스마일 표정을 지으면 간혹가다 "이쁜 아주머니"란 소릴 들으면 일에 짓눌려 반백을 살아 온 거칠은 피부에 미안하게 생긴 얼굴, 감출 수 없이 비죽 솟아난 삼겹살=나잇살을 혼자 거울에 비추어 보면서 어처구니가 없어서 큭큭 웃는다.
아무 여성이나 "이쁘다"는 말이 서울사람들이 습관적으로 던지는 인사치레인 줄 빤히 알고, 코믹으로 여기지만 기분은 과히 나쁘지 않다. 그저 지하철 교육이 볼품없는 자연산인 내 얼굴에 빛을 뿌려줘 못남을 감싸 줌이 감사할 뿐이다.
내 머리속에 굵은 허벅지는 여성호르몬 분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각인되어 있다. 돈을 팔아 에스트로겐약을 사 먹지 않아 암도 예방할 수 있고, 근육을 강화할 수 있으면서 감사하다는 말도 들을 수 있는 일거삼득의 효과를 위하여 노약자가 저 쪽에 보여도 반사적 일어나 붙잡아 모신다. 그러면서 "먼저 나이 먹어 미안해요"란 유머도 배우고,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한다.
그날도 60여세로 부티는 없지만 편하게 생긴 안노인 한 분을 앉히고 서니, 그 분은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어찌 서서 가겠냐?"고 염려 하셨다. 고생 많이 하셨다지만 순진하고, 천진하고, 낙관적인 마음이 없으면 가질 수 없는 얼굴표정과 애교가 만땅인 몸짓, 손짓은 꼭 중학교 여학생 같이 귀여웠다. 연세를 물으니 72세란다. 염색한 적 없다는 머리는 몇가닥 만이 은빛을 내고 있을 뿐이었다. "된서리 내린 내 머리카락이야 어쩔 수 없고, 부티나게 늙을 수는 없지만은 앳된 마음으로 돌아가서 저런 귀여운 얼굴 표정으로 "곱게" 늙어 타인에게 시각 오염은 주지 않으리라!" 맘속으로 굳게 맹세했다.
여행등으로 오는 가족, 친지들은 거의 모두 지하철에서 만났는데 지하철은 친인을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고 느끼는 장소이기도 하다. 지하철에서 개미허리를 하고 있는 날씬한 서울 아가씨들을 볼때마다 군살이 붙은 딸을 떠올린다. 그리곤 주일마다 전화로 "밥 먹지 말라, 다이어트하라"고 닥달한다.
어느 하루, 숙대입구역에서 차문이 열리더니 나의 어머니처럼 몸집이 있는 안노인이 승차했다. 반사적으로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니 나의 어머니처럼 흔쾌히 감사를 일삼고 있는 분이셨다. 신경이 쓰여서 저쪽 차문 옆에 가 서 있었는데 자리만 나면 앉으라고 난리다. 내가 손사래를 하여도 포기하지 않으셨다. "애기엄마, 애기엄마,"(나의 어머니는 젊은 여성분들을 모두 그렇게 부르셨다)하면서 기어이 자리에 앉히고 마는 그 노인이 마치 세상 뜬 어머니 같아서 봇물처럼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을 수 없었다. 어머니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 붙들어 매고, 태연하게, 티가 안나게 들먹이는 어깨, 흐르는 눈물은 처치했지만 지금까지도 그때의 그 심정이 오롯이 남아 있다.
수십만명이 몰켜 사는 대도시의 길거리에 사람 그림자는 얼씬도 않고 차들만의 행렬이 이어지는 원인을 지하철에서 알아 냈듯이 지하철은 문제 풀이집이다. 한 번은 지하철에서 젊은 여인이 두 마리의 강아지를 자기의 갓난 쌍둥이 아기보다 더 살틀히 보듬고 있어서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줄곧 의문으로 삼았다. 그 후, 많은 세월 관심 갖고, 관찰하면서 그런 행위를 이해하게 되었다.
10년 전보다 배로 많아져 콩나물 시루처럼 빼곡히 들어선 승객들을 보면서 "외국인"으로서 괜한 걱정을 한다. "대한민국이 서울민국으로 되지 않을가?! 한치보기로, 편할대로 하다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는 봉변을 당하진 않을가? " 그러면서 노무현 전대통령의 균형발전 정책을 그리워 하기도 한다.
멋진 에쿠스나 벤츠는 못 되어도, 지하철처럼 거무튀튀하지만 아무에나 필요하고, 편안한 존재로 되리라.
오늘도 서울 지하철은 지축을 뒤흔드며 힘차게 달려 나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준다. 활기차게 열심히 노동하고 살게 할 것이고 나란 인간을 완성 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