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민족에서 도시민족으로?: 조선족 도시노동자의 유예된 희망<권준희의 연변일기 4>

2009-01-06     동북아신문 기자

많은 조선족 지식인들과 언론인들은 조선족 사회 내 인구감소를 심각한 문제로 제기해왔다. 연변대 허명철 교수는 <전환기의 연변조선족>에서 조선족 사회가 당면한 핵심적인 문제점으로 조선족 집거구의 변천을 지적하고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조선의 파산 농민들은 만주로 대량 이주하기 시작했고, 벼농사 중심의 조선족 집거구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1992년 중국정부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선포하면서, 조선족 사회도 중국사회 전반의 개혁개방 분위기에 반응하게 되었고, 90년대 초반부터 도시나 한국으로 대량 이주를 통하여 새로운 생존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반복적이고 집중적인 이주의 결과, 출산율은 현저하게 저하되었으며, 조선족 농촌 집거구는 심각한 해체를 경험하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맥락 속에서 조선족은 “농촌민족”에서 “도시민족”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인가? 화룡 출신 한 남성의 이주경로는 중국의 변화와 맞물려 조선족 농민의 삶을 이해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준다.

연변 화룡에서 온 42세 A 남성은 한국어 시험을 통과하여 방문취업제로 작년에 한국에 입국했다. 화룡 농촌마을에서 부모님과 어려서부터 농사를 지었고, 농촌 마을에서 적당한 혼처를 찾지 못해, 31세가 되어서야 결혼하게 되었다(결혼연령에 대한 생각은 상대적인데, 이 남성은 본인의 결혼이 “아주” 늦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을의 조선족 소학교가 폐교하였고, 농촌마을에서 아들의 교육이 어렵다고 판단되어, 화룡시내로 이주하였다. 같은 화룡 내라고 하지만, 농촌생활과 도시생활은 천지차이였다. 농민으로 살 때에는 따로 월급을 받지 않지만, 일정량의 곡식이 매년 보장되고, 1년의 농사일을 본인이 계획하고 추진할 수 있지만, 도시민으로서의 삶은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그 사장을 위해 일을 해야만 했다. 또한 농촌에서는 소비지출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았지만, 도시에 와서는 모든 것을 직접 구입 지불해야할 뿐만 아니라, 각종 세금에 대한 부담도 커졌다. 이 남성은 다음과 같이 화룡시내에서의 생활을 회고했다. “농촌보다 시내에서 더 고생했다. 농촌에서는 농사만 지으면 되지만, 도시에 와서, 인맥도 별로 없고, 계속 공장과 건설현장을 옮겨 다니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즉, 화룡 시내에서의 5년간의 도시민으로서 살아가면서, 이 남성은 불안정한 직장을 전전하면서, 더 높은 수준의 수입과 소비를 동시에 요구받았다.

이 남성은 “도시민족”으로 거듭나기 위한 출로로 “한국행”을 선택하였다. 다들 간다는 한국에 작년에서야 나왔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은 고달프고 힘들지만 아주 “재미있고”, 기회가 있다면 “계속 살고 싶다” 그는 강조했다. “깨끗하고”, “문명하다”는 한국을 경험하면서 동시에,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한국인 동료들과 일하면서 “이게 자본주의구나”라고 터득하게 되었다. 이 남성은 한국인들이 장악하고 있는 배달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한국인들의 불성실함과 진득하지 못함에 비하면, 본인의 성실함과 꾸준함이 한국시장내에서 훨씬 경쟁력 있다고 자신감도 보였다. 그렇다면, 이 남성은 화룡의 농민에서, 화룡의 도시민으로, 한국의 도시민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일까? 도시민이 되고자 하는 이 남성의 욕망은 “서울에 살고 있다”는 존재 자체만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일까?

이 남성은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계속 중국집에서 배달일을 한다. 한 달에 두 번 쉴 수 있지만, 쉬는 날이 꼭 정해져있는 것도 아니다. 이메일 보내고 인터넷 하는 법도 배우고 싶고, 화상 채팅하는 법도 배워서 중국에 있는 부인과 아들과 더 자주 연락하고 싶다. 책도 읽어보고 싶고, 서울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한국 사람들의 생활도 관찰해보고 싶다. 하지만, 한 달에 두 번 겨우 찾아오는 휴식은 이 남성을 “도시민”으로 거듭나게 하는데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방문취업제 비자가 노동을 허락하는 5년 동안 부지런히 벌어야 한다. 돈을 벌어 연길시내에 아파트도 사고, 아들 교육도 연길에서 시키고 싶다. 그 꿈을 생각하면서, 이 남성은 오늘도 복잡한 서울의 한 오래된 동네를 오토바이로 누비면서, 서울을 알고, 도시민으로서의 삶을 알고자 하는 욕망을 유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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