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痕迹) <우광훈의 장편연재 38>

2009-01-04     [편집]본지 기자

9

택시는 좁아도 더 좁을수 없는 세멘트포장도로를 따라 위태위태하게 달리고있었다. 산들의 허리를 자르고 난 도로를 따라 달리는 택시안에서 창호는 아득하게 높이 솟은 산과 침울하게 어두운 계곡에서 번뜩이는 물의 흐름을 바라바보며 말못할 위압감과 불안을 느꼈다. 우중충한 산에는 신록이 짙어있었지만 북방의 수림과 같은 신선함이 없었다. 계절의 선명한 변화가 없는 탓인지 숲의 빛갈은 진록이 아니라 검푸름이였다.

택시는 산을 꿰지르고 절벽을 가로지르고 산굽이를 돌고 갈지자로 산을 타고 오르고, 그리고 령을 넘으며 달렸다. 두시간정도는 달렸을가 택시가 멈춰섰다.

<<도착했습니다...>>

어느샌가 창호는 잠들고있었다. 그 위험천만한 길에서 잠이 들다니, 사람이란 무엇에든 습관이 되는것은 잠간인 모양이였다. 택시료금을 내고 내려서니 아득하게 높은 절벽의 아래였다. 택시는 절벽아래의 자그마한 광장에서 창호를 내리워준것이였다. 광장은 한산하였고 불사에 쓰는 향이며 초, 그리고 간단한 관광상품을 파는 가계 몇개가 광장의 한구석을 차지하고있었다. 사람이 내리는것을 보고 가게를 지키던 사람들이 고개를 주삣거렸다.

<<저쪽으로 올라갑니다. 절은 저 산우에 있습니다...>>

택시기사는 말하면서 벼랑이 끝나는 부분에 길다랗게 올리뻗은 돌계단을 가리켰다.

창호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쪽으로 걸어갔다. 벼랑은 동서향으로 서있었고 남쪽을 바라보고있는 벼랑아래로는 크지는 않았으나 물살이 거센 내가 흐르고있었다. 은혜사로 올라가는 층계는 벼랑이 끝나는 시점의 가파로운 산아래에서 시작되고있었고 그 앞에는 산악의 기세에 눌리워 초라해보이는 산문(山門)이 서있었다.

창호는 산문의 편액을 쳐다보는 순간 느낌이 이상했다. 분명 은혜사는 맞았으나 무언가 잘못 리해하고있은 창호였다. 산문의 편액은 <<은혜사(隱慧寺)>>라고 씌여져있었다. 그러나 창호는 <<은혜사>>라고 이름을 듣는 순간 은혜(恩惠)라는 뜻으로 리해하고있었다. 그리고 호텔에서도 분명 그렇게 리해를 하고있었다. 관광안내서의 글자가 잘못된것은 아니였을것이였다. 그런데 창호는 두눈을 펀히 뜨고 그 글자를 읽으면서 은혜롭다라는 뜻의 은혜(恩惠)로 리해하고있었다. 은혜(隱慧)라는 의미와 은혜(恩惠)의 의미는 그 차이가 하늘과 땅사이였다. 숨은 지혜, 또는 감추는 지혜를 어찌 받아서 입는다는 뜻의 은혜(恩惠)와 비길수가 있으랴. 창호는 조선어의 특징상 발음이 같아서가 아닐가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왜 거의 본능에 가깝게 은혜(恩惠)라는 뜻으로 리해를 했을가? 누구의 은혜를 바라서일가? 왜 그런 바램이 그토록 뿌리깊이 심혼속에 심어져있은것일가? 유물주의교육을 받아온 창호로서는 불가의 은혜따위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도 심혼의 깊은 곳에는 누구인가의 은혜를 생각하고있었고 쉽사리 그것을 받을 준비가 되여있은것이였다.

창호는 암담해지는 자기를 보았다. 산우의 절로 올라가고싶다는 마음이 흔들리고있었다. <<은혜사(隱慧寺)>>라는 편액앞에서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고 속물적이라고 느꼈졌다.

<<마음을 비우고싶은 사람이라면 한번 가보는것도 좋지요...>>

누군가가 말하고있었다. 그래, 그 차물집주인이 한 말이였다. 사람의 고기를 먹어보았는가 묻던 그 멍청해보이던 늙은이(?), 식인(食人)을 이야기하면서도 표정하나 변치 않던 그 사람도 마음의 비움을 알고있은걸일가?

창호는 산문앞에 서있었다. 산비탈을 타고 계단이 아득하게 올리 뻗어있었다. 붉은 기둥에 받쳐진 산문의 편액이 아무런 위엄도 없이 창호를 내려다보고있었다. 그것은 허상일뿐이라고 창호는 생각하고있었다. 식인(食人)자도 마음의 비움을 말할수 있다면 어느 마음은 또 항상 비지 않을수 있으리라...

창호는 산문으로 들어섰다. 계단옆에 안내판같은것이 서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산으로 올라가는 안내가 아니라 작은 게시판이였다.

<<은혜사로 올라가시는분들은 돌계단을 세면서 올라가십시오.>>

돌계단을 세면서 올라가다니? 여기에도 무슨 계시가 있는것일가? 그 게시판을 보면서 창호는 벼랑우에 있다는 절로 올라갈 최종 결심을 내렸다.

하나, 둘, 셋... 창호는 돌계단을 세면서 산으로 올랐다. 정신이 자꾸 흐트러졌다. 계단을 세라는것은 마음을 집중하라는 의미가 있겠으나 창호의 정신은 순간순간 삐뚤어지고있었다. 그리하여 몇개째던가 몇개던가 하고 다시 한번 확인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숨이 찼다. 창호는 기억하기 좋은 333개의 계단을 오르고 멈춰서서 숨을 돌렸다. 높이 올라온것은 아니였지만 아래의 산문이 조그맣게 보였다. 바람도 없는 고요함이 계곡을 적시고있었다. 문득 오랬동안 부르지 않았던, 소년시절과 청년시절에 수백, 수천번은 불렀던 노래의 가사가 생각났다.

<<종래로 구세주는 없다. 신선도 황제도 믿지 않는다...>>

자연의 웅위로움앞에서 자신감이라도 심고싶었는가? 부처님도 구세주일가? 구세주가 없다라고 하면서 구세주를 몰아낸자는 구세주를 쫓아낸 순간에 새로운 구세주로 등장을 한다. 마치 <<남의 격언을 믿지 말라>>라는 격언과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부처님은 중생을 인도하기 위하여 극락을 버리였고 극락을 버림으로 하여 극락으로 가셨다. 참으로 멋진 리유다. 세상의 섭리가 이런것일가?

창호는 다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이 끝나면서 벼랑에 굵은 통나무를 박고 널판을 편 잔도(棧道)가 나졌다. 계단은 많지도 적지도 않은 999개였다. 그래서 세여보라는 게시판이 있었는가? 무슨 의미일가? 999개의 계단이라...

절벽을 가로지른 잔도앞에서 창호는 망설였다. 발아래는 깊은 계곡이였다. 심연의 깊이를 가늠할수 없었고 아래서 흐르는 내물은 자그마한 실개천으로 보였다. 잔도에는 벼랑에 굵은 쇠못을 박고 그 쇠못에는 아기들 손목만큼한 쇠사슬이 고정되여 잔도를 걷는 사람들이 붙잡도록 되여있었다.

창호는 잔도에 올라섰다. 다리가 떨렸다. 그러나 이제 물러설수는 없었다. 나무판자가 당금이라도 부서져내릴듯 하고 쇠사슬을 거머쥔 손에서 땀이 나 미끌거렸다. 창호는 후들거리며 조심조심 잔도우를 걸었다.

잔도가 끝나면서 또다시 계단이 나타났다. 이것도 세여서 올라가는것일가 생각하며 창호는 계단을 밟았다. 하나, 둘, 셋...

마지막 계단을 밟으면서 창호는 좀은 놀라는 표정이 되였다. 역시 999개였고 계단이 끝나며 잔도가 시작이 되고있었다. 창호는 잔교우에 올라섰다. 처음보다 더 아득하게 높았지만 공포심은 처음처럼 살을 떨게 하지는 않았다. 벼랑아래의 계곡에서 흐르는 물은 말 그대로 한오리 하얀 실오리로 보였다. 냇가에 모락모락 모여있는 대나무숲이 파란 버섯처럼 보였다.

잔도를 통과하고나니 또다시 계단이 나졌다. 다만 이번에 계단으로 쌓은 돌은 푸른 청석(靑石)이였다. 이것도 의미가 있는것일가 생각하며 창호는 첫발을 내밀었다. 하나, 둘, 셋...

계단이 끝나는 순간 창호는 갑자기 깨닫는바가 있었다. 역시 999개의 계단이였다!

그러니까 <<은혜사>>로 오르려면 세번의 999개 계단을 밟아야 하는것이였다. 무엇을 의미할가? 삼(3), 구(9)라, 그러면 삼구 구중천에 오른다는 뜻이리라. 마지막 단계의 계단이 푸른 청석으로 된것은 푸른 하늘과 잇다는다는 뜻이 되리라. 불심을 얻음의 고난함을 이야기하려는것일가? 숨은 지혜, 또는 감추는 지혜를 얻으려면 구중천에 오르듯 천신만고를 겪어야 함을 암시하려는것일가? 그런 암묵적인 계시를 품고있는것일가?

절이 보였다. 보라빛을 띠고있는 유리기와가 번쩍이고있었다. 절로 들어가는 길은 하늘빛이 물든듯한 파란 포석이 깔려있었다. 노란색을 올린 담안에 아담하게 대웅보전이 들어앉아있고 그 옆으로 편전(便殿)이 자리잡고있었다. 그리고 다른 건물은 없었다. 작은 암자라면 암자인셈이였다. 절 마당에는 년륜을 알수 없은 측백나무가 서있었고 절 주위에는 아름드리 소나무 몇구루가 서있었다. 그러나 필경은 보아온듯한 소나무였으나 이파리는 하얀 분가루를 쓴듯한 북방의 소나무는 아니였다. 뱀처럼 뒤탈린 소나무가지는 세월과 빗바람의 세례속에서 그 흔적을 남기고있었건만 장엄함보다 처량함이 깃들어있었다. 이 높은 산, 벼랑우에 서있는 절처럼 소나무도 세월의 이야기를 하나의 주름과 이파리속에 담고있었다.

창호는 절로 들어가는 대문우의 <<은혜사>>라는 편액에 다시 한번 눈길을 주고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러면서 <<은혜사>>라는 의미는 숨기는 지혜를 말할가 아니면 숨는 지혜를 말할가 하고 또 한번 생각했다.

대웅전안으로 들어가니 크지 않은 금빛 불상이 모셔져있었다. 다른 절에서 보아온것과 특별한곳은 없었다. 천신만고 공포에 시달린것을 생각하니 좀은 억울했다. 기대했던것만큼의 장엄함이나 특별함, 규모같은것이 없었다. 아무튼 왔으니까 인사나 하고 가자고 창호는 향과 초를 사서 불을 붙여 불전앞의 향로에 꽂았다. 합장을 하고 머리를 드니 대웅전안에서 서성거리는 승려들의 회색 승복이 피끗 스쳤다. 순간 비구절인가 하는 감촉이 스쳤다. 회색승복을 입은 스님이 머리에 쓴 둥그런 검은 모자가 보였기때문이였다. 소림사에서 그런 모자를 쓴 비구니를 본 기억이 되살아났다. 조금은 충격적이였다. 그 많은 계단을, 그리고 그 아슬아슬한 잔도를 비구니들이 다녔을것이라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숨이 찼다.

창호는 대웅보전에 들어가 기부함에 돈을 넣고 합장을 하고 인사를 하고 세번 절을 했다. 머리를 드니 부처님이 그 영원한 미소를 짓고 창호를 내려다보고있었다. 그러나 소림사의 달마동에서 느끼던 그런 감동은 없었다. 모셔져있는것은 화려한 금빛에 싸여있는 하나의 우상일뿐이라는 관념이 창호의 내심 저변밑에서 살아숨쉬고있었다.

창호는 절을 마치고 일어서서 한동안 부처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불상이 자비로 가득한 미소를 창호를 향해 짓고있었다. 그러나 창호의 뇌리에서는 숨은 지혜냐, 숨기는 지혜냐 하는 싸움이 한창이였다.

갑자기 하나의 감촉이 있었다. 하나의 눈길이 자기를 주시하고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숨소리를 죽였다. 모든것이 고요했다. 바람소리나 나무잎 흔들리는 소리도 없었다. 이 정적이 어디서 왔는지 창호는 알수 없었다. 그래, 그가 부처님에게 절을 할 때 비구니가 목탁을 두드리고있었다. 그 목탁소리가 끊긴것이였다. 갑자기 숨이 턱에 닿는듯한 가쁜 숨소리가 들리고 낮으나, 부르짖는듯한 목소리가 창호의 귀를 때렸다.

<<창호?!...>>

그것은 목을 타고 나온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였다. 하늘나라 저 먼, 회환의 아득한 저 먼 흘러간 나날들에서 현실로 다가오는 메아리였다.

창호의 가슴이 하나의 이름을 부르고있었다.

<<카이란!...>>

그랬다. 그것은 카이란이였다. 승복(僧服)을 입은 카이란이 창호를 바라보고있었다!...

카이란이 창호를 바라보고있었다. 절밖의 소나무아래에서 카이란이 창호를 지켜보고있었다. 창호를 바라보는 눈에는 슬픔도, 아픔도, 기쁨도, 그 표정은 없었다. 다만 느낌으로만 알수 있는 애수가 살며시 배여나오고있을뿐이였다. 조용하게 카이란이 물었다.

<<호우마(잘있었어)?>>

이 한마디 물음으로 근 삼십년의 기다림과 추억은 마침표를 찍고있었다.

<<어떻게 이곳에?...>>

카이란은 먼 산들의 릉선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세월은 그녀의 눈가에 수많은 주름을 잡아놓았고 아름답던 피부를 까칠하고 가무잡잡하게 물들여놓았다. 둥그런 모자에 채 가리워지지 않은 뒷덜미우에 빡빡 깎은 파란 머리가죽이 드러나있었다. 그 치렁치렁하던 머리는?...

승복을 입은 카이란은 많이 여위여있었고 늙어있었다. 젊은 날의 미모는 다 빠지고 없었다. 크고도 아름답던 눈은 가늘어지기 시작했고 잔잔히 흐르는 내처럼 맑고 선명하던 눈동자도 찾아볼수 없었다. 단 한사람의 비구니가 창호를 마주하고있을뿐이였다. 이제 세속의 모든것에 무관심한, 아무런 격동도 하지 않을수 있는 비구니가 단아한 모습으로 돌걸상우에 앉아있었다. 작은 바람이 불변서 카이란의 길다란 승복의 옷자락을 흔들었다. 손등은 승복의 긴 소매에 가리워 보이지 않았으나 마른 나무가지 같은 손가락이 아무런 표정도 없이 무릎우에 놓여져있었다.

<<캉아저씨의 동생이 이곳에서 살고있잖아. 그래서 인연이 닿은거였어...>>

카이란는 과거를 생략하고 또 생략하고있었다. 산동에서 있을수가 없어 캉아저씨가 가르켜준대로 캉아저씨의 동생을 찾아왔다. 그래서 이곳에 남게 되였다. 이런 뜻이리라.

<<아이가 있었댔잖아?! 임신중이였다면서?...>>

카이란의 눈가에서 창호만이 알아볼수 있는 떨림이 지나갔다.

<<캉아저씨 동생의 집에는 의탁할수 없었어. 길에서 아이를 낳게 되였어. 혼자 사는 아주머니 한분이 구해주고... 그 아주머니는 문화혁명이 일어나면서 강제로 환속이 된 비구니였어...>>

창호는 덥석 카이란의 손을 잡았다.

<<아이는?!... 그럼 아이는 어떻게 되였어?!....>>

카이란은 창호에게 잡힌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창호에게 잡힌 손끝이 떨리고있었다.

<<아이는 남자애였어. 태여날 때 이미 숨이 없었어.>>

카이란은 말을 끊고 동안을 침묵했다. 그러다가 표정 없는 눈에 물기를 실으며 말을 이었다.

<<죽은 애를 낳았어. 아마 그 애를 먹어서 다시 내 배속에서 살릴수 있다면 난 그애를 먹었을지도 몰라...>>

카이란은 얼굴을 돌렸다. 측면으로 보이는 카이란의 입가가 경련을 일으키고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애를 살리고싶어 그 애를 먹고싶었다는 녀자, 그때 그 녀자의 아픔을 어떻게 상상할수 있겠는가. 누가 그 아픔의 깊이는 표현할수 있을것인가?!...

<<이제 가자. 카이란, 나 너에게 못해준거 다 해줄게. 나하고 돌아가...>>

카이란은 손끝을 움직여 창호의 손가락을 잡았다. 창호를 바라보는 눈이 자비로 가득했다.

<<돌아는 갈거야. 그러나 지금은 아닐야...>>

창호는 카이란이 환생을 말하고있음을 알았다. 설음이 북받쳤다. 눈물이 흘렀다. 그 오래인 그리움과 기다림이 이것이라니?!...

구름 한송이 없이 하늘은 맑갛게 개여있었다. 수리개 한마리가 하늘에 외롭게 아스란히 높이 떠있었다.

<<안돼! 이제 우리 돌아가자!...>>

대답이 없었다.

가부좌를 하고계신 부처님은 말이 없었다.

... ...

청석을 깐 돌계단은 여전히 정확하게 999개였다. 마지막 돌계단우에서 창호는 몸을 돌렸다. <<은혜사>>는 이미 시야에서 벗어나있었다. 창호와 카이란은 이제 하늘과 땅사이처럼 가깝고도 먼곳에 있는것이였다. 창호가 올라간다면 999개의 계단만이 남았을것이지만 내려간다면 위험이 기다리는 잔도와, 999개의 화강암 돌계단이, 그리고 또 그런 잔도가, 그리고 999개의 화강암 돌계단이 기다리고있을것이였다. 그리고 땅이 기다리고, 어디론가 가는 길이 기다리고있을것이였다.

카이란은 창호와 헤여져서의 기나긴 방랑생활을, 산동에서부터 사천으로의 이동을, 배부른 몸으로 거리에서 쓰러졌을 때 강제로 환속한 비구니의 도움으로 출산하는 과정을, 그리고 문화혁명의 결속과 함께 그 늙은 비구니를 따라 절로 들어오게 된 과정을 생략하고있었다. 그 아픔과 절망과 슬픔과 고독과 외로움의 과정을 생략했었다. 결과가 없는 과정이라면 그 의미도 사라지는것이였다. 사랑이 결과가 없다면 사랑때문에 있었던 모든 과정은 여전히 무의미가 되여버는것이 아닌가. 인생도 그럴지 모른다. 결과가 없는 인생이라면 그 인생이 가졌던 기쁨과 슬픔의 모든 과정이 누구에게 의미를 가질것인가? 오호라! 누구의 인생에 결과가 있은것인고...

카이란은 무언으로, 생략으로 이것을 말하고싶었을것인가?...

그래, 창호도 모든것을 생략했다. 카이란의 아버지 죽음을, 카이란의 남편이 미쳐버린 일을, 이십여년의 그리움과 추억조차 생략하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말하고싶지가 않아서라 듣는자에게 이 모든것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았기때문이였다.

살다보면 사람은 상처를 입게 되리라. 상처가 아물어 허물이 남고 누구에게 허물을 보이며 상처를 이야기할 때 그 허물은 이미 아픔을 모른다. 다만 죽음으로 가는 날까지 그 허물이 따라는 주겠지만 그것은 어느날인가의 상처의 흔적일뿐이였다.

과거도 그렇게 하나의 흔적으로 인생이라는 과정에 남는것이였다.

창호는 마지막 돌계단을 우에서 <<은혜사>>를 향해 합장을 하고 머리를 숙였다. 이때였다. 절벽을 때리며 녀자의 길다란 부르짖음소리가 울려왔다. 그리고 가슴이 터지는, 절통한 통곡소리가 우울한 계곡을 메아리쳐 울렸다.

카이란이 울고있었다!

카이란이 통곡을 하고있었다!...

그것은 카이란이 속세에 던지는, 창호에게 다하지 못한 마지막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