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포 김일광..“고국이 저에게 새 생명 주었어요.”
암보다 무서운 뇨독증
김일광은 일찍 베이징 일어무역학원을 졸업하고 당지 모 무역회사에서 10여 년간 근무하면서 무역건으로 자주 한국을 오갔다. 2004년 4월 그는 출국 기간을 넘긴 까닭에 불법체류자가 되었다. 그러다가 식당에서 술을 마시다가 옆에서 친구들이 싸우자 주인이 신고하는 바람에 구속돼 강제출국까지 당했다.
그러던 그에게 지난 2월 26일 또 불행이 닥쳤다. 베이징 모 무역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구토가 나고 머리가 아파 베이징 모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더니 병원에서는 뇨독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뇨독증은 암보다 무서운 병이라고 한다. 뇨독증에 걸리면 콩팥이 기능을 상실해 몸의 노폐물(독소)이 빠지지 못하기에 혈액투석을 하지 않으면 사흘도 못 넘겨 생명이 위협을 받게 된다. 콩팥이 노폐물을 걸러주는 작용을 못하니 감각이 없어 병환을 예방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그는 하루건너 한번 씩 혈액 투석을 해서 피를 바꾸다보니 한 달에 치료비 2만5천 위안(한화 500만)이씩 썼다. 이는 한국에 나가 있는 아버지, 어머니, 누나가 꼬박 한달 동안 벌어서 쓰지 않고 보내도 모자라는 돈이었다. 이때 김일광이 나이 겨우 서른 두 살이었다.
온정의 손길이 이어져
김일광의 부친 김해동(62)은 동포1세로 한국국적을 회복하였고 그의 가족들도 모두 한국에 나와 있었다. 김해동씨는 일가친척 없는 중국에 중병을 앓고 있는 아들을 혼자 둘 수가 없었다. 무조건 한국에 데려와서 치료해야 했다. 그러나 강제추방 당한 아들을 어떻게 데려오고 병원과는 또 어떻게 연계를 해야 할 지 막막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생각한 곳이 사단법인 한중경제친선교류협회였다.
협회의 김일남 상임이사는 김해동의 전화를 받자 인터넷에서 카톨릭 강남성모병원을 찾아 신장이식수술에 대해 문의를 하였다. 그런데 신장이식수술은 쉽지가 않았다. 강남성모병원에서 신장이식수술을 기다리는 환자만 해도 1만 5천여 명이나 됐다. 장기가 쉬이 나지지 않기에 수술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김해동씨는 가족들을 모아놓고 자식의 신장수술 일로 회의를 열었다. 아들의 혈형은 O형이었는데 마침 가족 모두가 O형이다 보니 너도나도 김일광한테 신장을 이식해주겠다고 나섰다. 김일광 어머니와 아버지, 누나, 친 고모까지 넷이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다. 결국 기타 세 사람은 이런저런 병 때문에 불합격 판정을 받고, 그중 나이 제일 젊고 건강한 망내 고모 김순돌(47살)씨만이 합격점을 받았다.
병원도 찾아놓았고 신장을 이식해줄 사람도 찾아놓았으나 이제는 환자를 입국시키는 게 문제였다. 출입구관리법을 위반해서 강제출국 당하면 동포들은 입국규제가 5년이다. 수술이 한시가 급한 상황이기에 빨리 환자를 입국시켜야 했다.
김일남 이사는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D책임자에게 이사실을 말씀 드리고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 분은 사실이라면 인도적 차원에서 도와주어야 한다면서 출입국 심사팀에 지시하여 해결하게끔 했다. 책임감이 높고 동포애의 뜨거운 가슴을 지닌 출입국 심사팀의 구병모계장은 김일광의 사연을 소상히 듣고 김해동을 위로하면서 젊은이의 생명과 관계되는 일인데 최대한 삐른 시일내에 입국하도록 하겠으니 걱정 말고 필요한 서류를 빨리 제출하라고 하고는, 본인이 직접 카톨릭 강남성모병원과 중국 베이징 모 병원에 전화를 해서 사실확인 작업을 하였다. 한편 김해동은 중국에 돌아가 김해광과의 부자관계 증명, 김해광과 고모 김순돌과의 친족 사실관계 증명을 영사확인 공증까지 받아서 법무부에 보냈다. 친족 확인 작업이 정확하고 신속하게 끝나자 구계장은 인차 김일광의 입국규제를 푸는 일에 착수하였고, 김일광은 마침내 사증인증번호를 발급 받아 신속히 입국할 수 있었다.
그때를 돌이켜 보며 김해동씨는 “정말이지, 구계장님이 직접 나서서 인차 입국규제를 풀어주지 않았더라면 제 아들놈은 죽은 목숨입니다. 그놈은 오직 고국에 와서 가족의 도움을 받아야 살 수가 있어요, 저의 6형제들과 사촌 이내의 자식들이 모두 한국에 있으니까요”하고 눈물이 글썽해서 거듭 감사를 표시하였다.
성공적인 수술과 정성어린 간호
입국 후 김일광은 인차 외국인등록증 수속을 하고 입원수속을 밟았다.
지난 11월 3일 카톨릭 강남성모병원 수술실에는 환자 김일광과 그의 고모 김순돌의 수술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고모의 신장을 조카한테 즉석 이식하는 수술이었다. 아무리 조카라고 해도 자기의 신장을 떼어 주는 고모는 많지 않을 거다. 병원에서는, 적지 않은 친인척들이 신장을 환자에게 떼어주겠다고 해놓고 정작 수술 날이 오면 안 되겠다고 뺑소니치는 경우가 많다고 하면서 김 순돌씨를 칭찬하였다.
최고의 의사가 집도에 나서서 수술은 신속하고 안전하게 진행되었다.
조카에게 신장을 떼어준 김 순돌씨는 입원 나흘 만에 싱글벙글 웃으면서 퇴원을 한 후 스무날쯤 중국에 가서 푹 쉬겠다고 청도에 있는 고향집으로 갔다.
한편, 카톨릭 강남성모병원 신장내과 담당의사와 간호사들은 김일광에 대한 입원치료와 관리 및 점검을 철저히 했다. 간호사들은 매일 몇 번씩 소변 량을 측정하고 상태를 점검하는가 하면, 신장내과 담당의사 양철우 교수는 퇴근 무렵이면 꼭꼭 찾아와서 깐깐히 진찰을 하였고 따뜻한 말로 위안을 해 주었다.
정성이면 돌 위에도 꽃이 핀다고 했다. 수술 10일 만에 환자의 건강은 20일 전에 수술한 환자보다 더 빠르게 회복되었다. 현재 김일광은 침상에서 내려와 절로 화장실을 다닐 수가 있고 밥도 혼자 먹을 수가 있게 됐다. 이제는 신장기능이 정상적으로 회복되어 출원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
김해동씨는 또 한번 눈물을 흘렸다. “정말 조국이 우리 일광이를 살려주었습니다. 만약 법무부 구병모 계장님이 일광이의 입국규제를 풀어주지 않았더라면, 또 강남성모병원에서 뛰어난 의술과 정성어린 간호로 치료를 해주지 않았더라면 우리 일광이는 절대 살 수가 없어요. 우리 일광이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제 신체가 회복되어 사회에 나가면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 정말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겠습니다. 여러 분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다시 한 번 드립니다.”
이동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