滿洲 체험을 다룬 노래들─ 동쪽은 두만강 간도살이 가는 물…

2008-11-12     동북아신문 기자

 李 東 洵
1950년 경북 김천 출생.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詩 당선,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제5회 신동엽 창작기금 수상. 시집 「개밥풀」 「물의 노레 등. 저서 「민족시의 정신사」 등. 편저 「백석시전집」 등.

방황, 탄식, 저항의식 담아 
  
  滿洲(만주)란 지명은 만추리아(manchuria)에서 유래된 말이다. 대개 중국의 동북지역을 통칭하는 용어로 北으로는 大興安嶺 북부 산지에서 南으로는 長白山 산지에 이르기까지 광대하게 펼쳐져 있는 지역이다. 지금의 연변 조선족자치주가 있는 지역으로 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 등 3개 지역이 이곳에 포함되어 있다. 그곳의 우리 동포들은 만주라는 용어를 매우 싫어한다.
 
  우리 동포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곳은 서북 간도 일대이다. 한민족의 간도 이주 역사는 조선 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로 기아와 궁핍에서 벗어나 보려고, 혹은 학정과 가렴주구를 피하여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갔던 것이다. 이를 越江(월강)이라 했는데 이들의 집단 이주가 점차 문제가 되자 韓中 양국에서는 越江 금지령을 내렸다. 하지만 밤에 몰래 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여전했다. 일제의 수탈정책이 가속화되던 1930年代 중반부터 다시 강을 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우리의 가요가 이러한 유랑민들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1920年代 후반부터가 아닌가 한다. 「방랑갯(이규송 작사, 강윤석 편곡, 강석연 노래), 「오동나무」(이규송 작사, 강윤석 작곡, 강석연 노래), 「부활」(이애리수 노래)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초창기 유행가에 담겨 있는 주제는 대체로 방황과 탄식, 그리고 저항의식 등이었다. 먼저 「방랑갯를 보자.
 
  <피 식은 젊은이 눈물에 젖어 낙망과 설움에 병든 몸으로 북국한설 오로라로 끝없이 가는 애닯은 이 내 가슴 누가 알거나>
 
  「방랑자의 노레란 이름으로도 불려졌던 이 노래 가사의 정신적 배경은 실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젊은이의 피가 식은 것으로 묘사되었으니 그 청년은 죽음의 나락에 빠져 있다. 그는 극도의 恐慌 속을 지향 없이 헤매고 있다. 이 노래는 만주 일대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이 비분강개한 심정으로 자주 불렀다고 한다. 「오동나무」는 진작 구전되어 오던 민요를 다시 정리 각색한 新민요풍의 노래이다. 그런데 이 노래의 5절은 매우 흥미롭다.
 
  <금수강산은 다 어데 가고요 황막한 산야가 웬일인가 에라 이것이 원한이란다 에라 이것이 설움이라오>
 
  당시는 일제의 무단통치가 휘둘러지던 시기였다. 그런데 어찌 이런 형태의 가사가 유통될 수 있었던 것일까? 지금 생각해도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과거 일제 때의 유행가들은 보통 3절까지 있는 것이 일반이었으나 가끔은 5절까지 연속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빼앗긴 조국의 자주독립이나 해방의식의 고취는 가사의 맨 뒷부분에 슬쩍 감추어져 있는 경우가 있었다.
 
  오동나무도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닐까 한다. 李愛利秀가 불러서 히트했던 노래 「부활」은 톨스토이의 소설 작품을 소재로 만들었다. 그런데 번역소설의 내용에 슬쩍 의지하여 민중의 부활의지를 고취시키는 방향으로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시베리아 찬바람이 지구상에 떨치니 거리는 죽은 듯하나 실상은 살았도다/버려지는 땅에서 들썩들썩 하면서 양춘가절 기다리며 나오기를 힘쓰네>
 
 
  「동쪽은 두만강 간도살이 가는 물」
 
 
  일제의 수탈정책 기관으로 가장 선두에 섰던 東洋拓植會社는 「東拓」으로 불려졌다. 울던 아이들도 「동척」이 온다면 울음을 그칠 정도였다고 한다. 전국의 모든 토지를 교묘한 방법으로 빼앗아 일본 이민들에게 양도하였다. 작게나마 제 땅을 가졌던 영세농민들은 일본인 소유의 토지를 대신 경작하는 소작인으로 전락하였고, 생활은 점점 곤궁해져만 갔다. 부채는 늘어만 가고 쌀독에는 양식이 바닥이 났다. 더 이상 자신의 고향에서 견디지 못하고 떠나갔다. 괴나리봇짐을 싸서 그 위에 달그락거리는 바가지를 매어 달고 소매에 눈물 닦으며 떠나갔다. 그들의 지향은 오로지 바람찬 북방이었다.
 
  일찍이 함경도 북청의 시인 李燦(이찬)이 詩 「북만주로 떠나간 월이」 등을 비롯하여 유랑민들의 처량한 심사를 詩작품으로 노래한 것도 바로 이러한 시기였다. 이 무렵에 발표된 가요 「오대강 타령」(김능인 작사, 문호월 작곡, 이난영 노래)은 바로 이러한 역사적 현실을 담고 있다.
 
  <북쪽은 압록강 뗏목 실어 오는 물/ 물 우에 자고 일고 몇밤이러냐/ 동쪽은 두만강 간도살이 가는 물/ 고향을 떠나갈 때 눈물은 깊어>
 
  긴 설명이 따로 필요 없다. 두만강 물살을 일러서 「간도살이 가는 물」이라 표현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민족의 삶과 처지를 그대로 그려낸 것이었다. 「국경의 부두」(유도순 작사, 전기현 작곡, 고운봉 노래)에는 압록강을 건너가는 한 渡江者(도강자)의 쓸쓸하고 비통한 심정이 반영되어 있다. 「눈오는 백무선」에는 함박눈이 펄펄 나리는 밤의 북국정서와 유랑민의 심정이 그려져 있다. 「애수의 압록강」(조명암 작사, 손목인 작곡, 이화자 노래)의 가사는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칼로 저미어 내는 듯하다.
 
  <아아 뗏목에 울며 간다/ 달빛은 푸르른데 세월도 야속하고 운명도 야속하다/ 아아 피눈물 흘리며 내 사랑 부른다/ 아아 아아 뗏목에 울며 간다>
 
  모든 것이 슬픔이었다. 자고 깨어나도 달라지는 것이 전혀 없었다. 상황은 갈수록 점점 더 나빠지기만 했다. 오죽하면 시인 李庸岳이 그 시대를 표현하면서 「욕된 운명은 밤 위에 밤을 더 마련할 뿐」이라고 절규하였을까? 「향수열차」의 노랫말에는 이미 강 건너 만주 땅으로 들어선 유랑민의 망연자실한 정서가 들어 있다.
 
  해 저문 저녁, 러시아식 페치카의 온기가 그리울 정도로 싸늘한 열차 안에서 외투로 둘러싼 몸을 오그리고 눈을 감으니 고향집이 눈에 떠오르더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아득한 유랑의 심리를 담고 있는 노래들은 부지기수이다. 「천리타향」(박영호 작사, 문호월 작곡, 남인수 노래)에서는 「아득한 지평선을 넘어 향방도 없이 눈오는 오로라 하늘 밑 어데선지 흐르는 고향」으로 그려져 있다.
 
 
  서러운 심경 대변, 高福壽가 으뜸
 
 
  방랑의식을 나타낸 또 다른 노래들로는 「오로라의 눈썰매」(조명암 작사, 김령 작곡, 남인수 노래), 「불멸의 눈물」(박영호 작사. 김송규 작곡, 김해송 노래), 「북국오천키로」(박영호 작사, 무적인 작곡, 채규엽 노래), 「국경열차」(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송달협 노래)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유랑극단」(박영호 작사, 전기현 작곡, 백년설 노래)과 「오동동 극단」(처녀림 작사, 이재호 작곡, 백난아 노래) 등은 유랑의 서러움을 대륙의 벌판을 떠돌아다니는 악극단에 비유함으로써 대중들의 큰 공감을 얻었다. 「간도선」(처녀림 작사, 이재호 작곡, 백난아 노래)도 암울한 시대와 유랑의 정서를 다룬 노래로 다시금 그 뜻을 음미해 볼 만하다.
 
  <희망길 간도선 사랑길 간도선/ 밤길에 지향 없는 밤길도 멀은 간도선/ 아아아 고동소리 바람에 불어/ 마음이나 본다 본다 서울을 서울을 본다 >
 
  만주의 유랑민과 그들의 서러운 심경을 다룬 노래를 많이 불렀던 가수는 단연 高福壽(고복수)가 으뜸이다. 그의 처량하고 쓸쓸하며 곧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우울하고 어두운 음색! 그러한 성음으로 高福壽는 만주 전역을 돌면서 「타향살이」(김능인 작사, 손목인 작곡)를 불렀다.
 
  <타향살이 몇 해 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나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
 
  이 노래의 원래 제목은 「타향」이었다. 하지만 타향의 뒷부분에 「∼살이」라는 말을 붙임으로써 훨씬 설움과 고달픔의 직접성을 담아낼 수 있었다. 이 노래만 부르면 가는 곳마다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한다. 비록 눈물을 한 바탕 쏟아낼지라도 만주로 옮겨간 우리 동포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향수를 달래고, 삶의 고통을 이겨 가는 일에 위로가 되었다
 
  대개 창가 풍의 노래로 세 박자로 엮어진 소절을 느릿느릿 구성지게 풀어가는 高福壽의 노래는 저녁나절 일정하게 떨어진 거리에서 들려오는 아련한 라디오 소리로 들을 때 가슴속에 가라앉아 있던 삶의 슬픔 따위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한국인의 만주 체험을 다룬 가요를 찾아 정리해 보면 아주 그 저의가 수상한 노래도 간혹 눈에 띈다. 「할빈다방」(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 이난영 노래)과 「황하다방」(김영일 작사, 이재호 작곡, 백난아 노래) 등에 나타난 것은 현실의식이 완전히 제거된 상태로 오로지 단순한 이국정취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일제의 이민정책은 가요에도 반영되었다. 그들은 아마도 이민정책에 호응하는 附日歌謠(부일가요)를 만들라고 가요계에 압력을 행사했던 것 같다. 우선 1942년에 발매된 「목단강 편지(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이화자 노래)의 노랫말을 유의해 보자.
 
  <한 번 읽고 단념하고 두 번 읽고 맹세했소 목단강 건너가며 보내 주신 이 사연을 낸들 어이 모르오리 성공하소서>
 
  작중 화자는 조선총독부의 만주이민 모집에 지원하여 목단강 이북의 한 지역으로 떠나가 있는 듯하다. 그 남편이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던 식민지 조선의 아내에게 모처럼 편지를 보내왔다. 아내는 감격하여 성공하라고 말하며 2절에 가서는 「난초 피는 만주 땅에 흙이 되소서」라고 말한다. 그리운 남편더러 죽어서 그곳의 흙이 되라니! 1970年代의 용어로 말하자면 이른바 「시국가요」에 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제국주의자들의 그 어색하고 졸렬한 발상과 강압의 흔적이 눈에 띄게 표면화되어 있다. 이런 노래들이 더러 있었다. 「희망의 썰매」(김다인 작사, 김송규 작곡, 김해송 노래)는 몹시 수상하다. 달리는 썰매가 「사명」과 「희망」을 싣고 달린다 했다. 눈보라 속에 「軍刀」가 운다고 했으니 아마도 일본군대인가? 아니면 그 앞잡이인가?
 
  넌센스의 극치는 「만주신랑」(김다인 작사, 박시춘 작곡, 송달협 노래)이다. 「만주 흥안령 높은 고개 위에 내 사랑 새 태양에 신랑이 되자」고 하였으니 이 광경은 戱畵(희화)의 극치가 아닐까 한다. 이러한 노래들은 식민지의 가요가 만주체험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던 방황, 아득함, 슬픔 따위의 작품의식을 묽게 희석시키고자 했던 식민지 당국자들의 어설픈 문화정책의 반영 그것에 다름 아니었다.
 
  만주 체험을 다룬 가요는 지금도 여전히 역사적 생기를 빛내고 있다. 「타향살이」 「사막의 한」 「찔레꽃」 등은 예나 제나 우리의 심금을 애틋하게 울린다.●

 

 

 

 

우리 옛 가요에 나타난 돈

 

金素月의 「돈 타령」
 
 
  <되려니 하니 생각/滿洲 갈까? 광산엘 갈까?/되갔나 안 되갔나 어제도 오늘도/이러 저러하면 이리저리 되려니 하는 생각>
 
  이것은 詩人 金素月(김소월)의 「돈타령」이란 詩의 한 구절이다. 소월이 한창 落魄(낙백)하여 고향 부근에 머무를 때 신문판매업, 대금업 등 詩人의 신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가졌으나, 결국 실패하고 술과 방탕한 생활에 빠져들었을 때 쓴 詩 작품 중의 하나이다. 돈이란 것이 한 詩人의 삶과 정신에 이렇게도 유린과 상처를 주었다는 생각을 해보면 가슴이 메인다. 소월은 돈에 대해서 또 이렇게 말한다.
 
  「있을 때에는 몰랐더니/없어지니까 네로구나」
 
  하기야 詩人이 돈만 따라다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 이는 얼마나 천박한 광경일까? 그렇다고 해서 詩人이란 이유 때문에 반드시 돈과 담을 쌓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또 너무 가혹하다. 누구에게나 물질의 일정한 충족은 있어야 한다.
 
  詩人은 작품에서 다시 돈이 인간에게 보내오는 말을 대신 전해 준다.
 
  「내가 누군 줄 네 알겠느냐/내가 곧장 네 세상이라」
 
  그리하여 돈은 인간에게 그 쓰임새에 따라서 축복이 되기도 하고, 저주가 되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의 가요들 가운데엔 돈을 통하여 서민적인 삶의 애환을 그린 부류의 노래가 많다. 먼저 「낙화유수 호텔」(화산월 작사, 조자룡 작곡, 김용환 노래)의 노랫말을 살펴보자.
 
  이 노래는 가수 金龍煥(김용환)이 불렀는데 전체 세 절로 구성되어 있다. 1절은 밤늦은 거리의 노점에서 카바이드 불을 켜놓고 싸구려 唱歌(창가) 책을 판매하는 가난한 청년의 삶을 다루고 있다. 2절은 무성영화 변사를 다루었으며, 3절은 역시 밤거리에서 엿목판을 들고 다니며 고학하는 대학생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은 제각기 이러한 일들을 하면서 깊은 밤이면 모두 같은 숙소로 돌아온다. 그곳이 여인숙인지 하숙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작가는 「낙화유수 호텔」이라는 표제를 붙여서 숙소를 코믹하게 높이고 있지만, 기실은 식민지 수탈경제 체제 하에서 안정된 삶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떠도는 떠돌이 군상들을 다룬 것에 다름 아니다. 그 노랫말의 1절은 다음과 같다.
 
  <우리 옆방 음악가 신구잡가 음악가/머리는 상고머리 알록달록 주근깨/우스운 가스 불에 봐요링을 가져와/(대사) 자, 장구타령 노랫가락 개성난봉가 뭔가 없는 건 빼놓고 다 있습니다/에, 또 눈물 콧물 막 쏟아지는 낙화유수, 자 단돈 십 전 단돈 십 전/싸구려 싸구려 창가 책이 싸구려 창가 책이 싸구려>
 
 
  수박·밀감·아이스크림 장수
 
 
  만요의 대가 김용환은 이 노래를 庶民風(서민풍)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탁하고 걸쭉한 목소리로 부른다. 싸구려 唱歌 책을 거리에 늘어놓고 팔면서도 흐릿한 가스 불빛을 배경으로 바이올린 연주까지 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呼客(호객) 행위의 일환이었으리라. 노래의 작가는 청년의 이러한 활동을 짐짓 추켜세우며 음악가라고 호칭한다. 이것은 민중에 대한 격려와 위로를 주려는 작가의 의도에 다름 아니다.
 
  노래의 뒤에 곧바로 이어지는 대사는 露天 서적상 청년이 연주를 끝낸 다음 둘러선 관중들에게 외치는 생존의 절규이다. 『단돈 십 전!』이라고 약장수처럼 부르짖는 청년은 가파르고 고달팠던 식민지의 현실을 눈물겹게 뚫고 헤쳐간 서민들의 꿋꿋한 표상으로 보인다.
 
  「시큰둥 야시」(처녀림 작사, 이용준 작곡, 박향림·남일연 노래)도 이와 유사한 계열의 노래이다. 이 노래의 가사에는 모두 세 사람의 직업이 나오는데 이러한 구성법도 앞의 노래와 같다. 수박 장수, 나쓰미캉(밀감) 장수, 아스쿠리(아이스크림) 장수 등이 바로 중심 인물들인데 이는 작가가 설정한 서민들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모두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살아가는 서민들이다. 이 노래는 남성 가수와 여성 가수가 상인과 관중, 혹은 해설가의 위치에서 번갈아 가며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남) 수박사료 (합) 옳소 수박/(남) 애기 낳는 수박이야/(남) 아들을 날려면 아들 수박 딸을 날려면 따님 수박 막 골라잡고 십 전이야 막 골라잡고 십 전이야/(여) 아서라 저 마누라 거동 좀 보소/아들 난단 바람에 정신이 팔려/이 수박 저 수박에 꼭지만 따 놨네 헤이/(합) 맙시사 수박이나 장수 헤이 헤이 빵꾸가 났네/(남) 헤 헤 헤 헤>
 
  거리의 수박 장수 앞을 지나가던 한 여성이 수박에 관심을 보이자 상인은 어떻게든 수박 한 통이라도 팔아볼 생각으로 온갖 좋은 말을 골라서 구매자의 환심을 얻으려고 한다. 그런데 출산과 관련한 덕담에 홀딱 넘어간 여성이 이 수박 저 수박에 꼭지만 따놓고 수박은 사지 않은 채 그냥 돌아가 버렸다.
 
  결국 하루의 수박 장사를 망쳐버린 노점 상인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역시 漫謠風(만요풍)으로 다루고 있는데, 수박 장수가 행인을 향해 『막 골라잡고 십 전이야!』라고 외치는 대목에서 삶의 애환을 물씬 느끼게 한다.
 
  이 노래의 3절은 아스쿠리(아이스크림) 장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아이스크림을 먹게 되면 우는 아이 달래는 것은 물론이요, 정든 님도 달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만병을 통치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이 虛風(허풍)이라는 사실을 모든 행인들은 환히 알고 있다.
 
  이 허풍이 삶의 날카로운 예각을 한 순간 무디게 해주는 弛緩(이완)의 효과를 지니고 있음에 우리는 주목하자. 사실 코미디라는 것도 어떤 부분에서는 삶을 일시적으로 즐겁게 해 주는 허풍의 효과가 아닌가? 이 노래는 만요가 지니고 있는 기능을 십분 활용하여 우리를 즐거움 속으로 이끌어 간다.
 
 
  김정구의 「월급날 정보」
 
 
  돈을 통하여 서민적인 삶의 애환을 다룬 또 다른 노래로는 「월급날 정보」(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김정구 노래)와 「사각봉투」(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장세정 노래) 등이 보인다. 고용 근로자들의 일상적 삶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술 좋다 안주 좋아 얼근한 세상/곱빼기 약주 술이 제격이란다/부어라 꾹꾹 눌러 잔이 터지게/애걔 애걔 고까짓 것 한 모금이다/으으 정말 취한다//에 좋다 세월 좋아 노래도 좋지/창 가락 장단 맞춰 춤도 추어라/아서라 이러다간 바람나겠네/응 술맛 쓰것다//찢어진 월급봉투 손에 들고서/마누라 잘못 했소 빌 생각하니/아찔한 머리 속에 찬바람 불어/건들건들 술잔 드는 손이 떨린다/으으 술맛 싱겁다>
 
  두 번째로 돈을 다룬 노래들은 부조리한 현실과 모순 투성이의 세태 풍자 내용을 담고 있다. 세계적 경제 공황의 여파에다 식민지 수탈경제 체제에 시달리는 현실의 중심을 파악하지 못하는 식민지 백성들의 무의식, 무감각에 대한 비판이다. 이런 관점에서 「명물남녀」(범오 작사, 강홍식·안명옥 노래)의 노랫말은 매우 신랄하고 직접적이다.
 
  <1. (남) 이 몸은 서울 명물 깍두기/모던 보이 대표하는 장난꾼/새빨간 넥타이 날 좀 보세요/서울서 나 모르면 실수지
 
  2. (여) 나는 또 누구신데 이러우/직업부인 대표하는 웨이트레스/하나꼬상 고싱끼에 잠은 못 자나/얼간들 녹이는 데 제일이야
 
  4. (여) 웨이트레스 무서운 힘 모르나/광산대왕 아무개도 그렇고/누구누구 이름 있는 세력가들도/우리들 여자에겐 녹았지
 
  5. (합) 세상은 불경기에 빠져도/한가한 인간들은 꽤 많어/장난꾼인 깍두기가 서울 흔들고/웨이트레스 세력에는 놀라워〉
 
  이 노랫말에는 깍두기라는 건달과 하나꼬라는 술집 여급이 등장하고 있다. 깍두기는 세칭 모던보이(Modern Boy)다. 술집 여급 하나꼬는 이른바 당시의 직업부인을 대표한다고 냉소한다. 모두가 금광을 찾아서 헤매 다니던 黃金狂(황금광) 시대에서 金脈(금맥)을 찾아 노다지로 한몫잡은 사람을 「광산대왕」이라 일컫고 있는 듯하다.
 
  이들은 유명한 술집을 찾아다니며 흥청망청 돈을 뿌리고 다닌다. 세상이 아무리 불경기와 식민지의 억압에 시달린다 한들 그것은 자기와 무관하다. 이런 건달과 술집이 성업중인 서울 장안의 타락한 풍속도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서울 형편과 비교해 보아도 재미 있다.
 
 
  시골 부자들 풍자한 「왕서방 연서」
 
 
  돈을 다룬 세 번째 주제의 형태는 농민적 삶과 국토에 대한 애착으로 연결되는 모습이다.
 
  「포곡새 천지」(박영호 작사, 김교성 작곡, 미쓰코리아 노래)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데, 포곡새의 布穀(포곡)은 뻐꾹새의 音譯(음역)으로 일년 농사의 풍년을 염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터가 좋다 삼천리요/기둥이 좋다 백두성산/수를 놓으니 오곡일세 얼씨구 좋다 지화자/ 아무렴 그렇지 좋구 말구/쌀 풍년 돈 풍년이 안 좋고 어쩌랴/에헤 포곡새 소리가 흥겨운데/한바탕 꽹과리 소리가 더 멋이로구나>
 
  삼천리 강산과 국토의 조종인 백두산을 다루면서 은근히 민족적 자부심을 고취시키려 하고 있다. 이 노래의 전체 구성에는 쌀 풍년, 돈 풍년, 님 풍년, 자손 풍년, 命(명) 풍년 등이 한 바탕 덕담으로 열거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덕담이 구체적 현실의 내용과 아무런 인과관계를 갖고 있지 않음으로써 매우 단순하고 속이 텅 빈 나열에 그치고 만다는 허전함이 있다.
 
  이런 노래들보다 한층 실감을 주는 작품이 돈에 대한 세속적 욕망과 그 덧없음을 노래한 것들이다. 대표적인 노래 몇 곡을 들어보자. 「명랑한 부부」(김용호 작사, 손목인 작곡, 김정구·장세정 노래)의 가사는 팔자에 없는 헛된 꿈을 꾸다가 망신만 당하고 말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남) 노다지를 파내면은 부자 될 텐데/수천만 원 그 많은 돈 무엇에 쓰나/(여) 멋쟁이 양장과 구두 사 줘요/(남) 빙글빙글 세계일주 구경도 하지/(합) 노다지야 노다지야 어데 가 묻혀 있느냐/(2절 생략)/(남) 노다지를 파내어서 부자 되면은/(여) 새 자동차 웃벙거지 훌쩍 벗겨서 당신과 단둘이 마주 앉아서/(남) 서울의 장안을 빙빙 돕시다/(합) 노다지 공상놀이 이남박 뒤집어썼네>
 
  「웃벙거지 훌쩍 벗긴 자동차」는 서양식 無蓋車(무개차)를 표현한 것으로 우리들로 하여금 웃음을 유발시킨다. 마지막 結句(결구)에서 노다지 꿈을 꾸는 공상놀이가 결국 바가지만 뒤집어쓰는 광경으로 귀결된다. 여기서 바가지는 냉엄한 현실의 또 다른 표현이다.
 
  덧없는 황금광 시대에 진종일 노다지를 캐러 다니는 사람을 조롱하고 있는 「눈깔 먼 노다지」(김성집 작사. 조자룡 작곡, 김용환 노래)도 앞의 노래와 같은 계열에 속한다.
 
  이 밖에도 돌고 도는 돈의 속성을 노래한 「물방아 사랑」(박영호 작사, 박시춘 작곡, 남인수 노래), 아무리 황금을 향해 노력해도 결국 원래의 모습인 「本錢(본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고백하세요 네」(박영호 작사, 김송규 작곡, 장세정 노래)도 우리의 관심을 끄는 노래들이다. 애욕의 대상을 향하여 재산의 덧없는 탕진을 다룬 「왕서방 연서」(김진문 작사, 박시춘 작곡, 김정구 노래)는 당시 색주가 집을 드나들며 가산을 모두 날려버린 시골부자들의 가련한 광경을 풍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