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맞는 ‘3·8절 부녀절’
2004-04-01 운영자
이국 타향서 맞는 3·8절 기분이 말이 아니다.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하고 이리저리 엉킨 감정의 뭉치… 아침내내 마음의 포말은 가라 앉을 줄 모른다.
한국에 오기전에 3·8절은 그렇게도 즐거웠다. 3·8절이 오면 남편은 속에 있든 없든 말이라도 “여보, 오늘은 3·8절이니 오늘은 내가 아침을 할게요. 푹 쉬시오” 한다. 그러면 진짜 기분 좋아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우리 종이공장 산하 각 직장들에서는 3·8절이 오면 운동대회, 문예프로 유희를 벌인다. 저녁에는 만찬회. 참, 기분도 좋았지. 일년내내 허리에 바느실로 꿰맬 새도 없이 챗바퀴 돌 듯 돌다가도 이 날만은 명절의 기분에 푹 잠긴다. 헌데 지금은…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고 이 어구는 지금의 나나 동료들의 처지에 어쩜 이렇게 잘 맞을까?
나는 한국에 있는 친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 올려봤다. 미자, 그녀는 천식으로 힘들게 버티고 있다. 설미 엄마, 그녀는 어쩌다 일자리를 구했다는게 함바집(식당)이다. 그 식당에서 일하는 그녀는 아침 4시 반에 일어나 하루 종일 바삐 돌아다녀야 한단다. 그렇게 일하다 보니 화장실 가는 사이가 휴식 시간이 된단다.
송희는 몇 년을 거기서 일하더니 몸은 삐쩍 말라 병원서 진단을 받고 한달간 휴가를 보내겠단다. 일 욕심이 많은 그녀가 휴식이란 말을 입밖에 낼땐 얼마나 힘들었으면…
정숙이, 그녀한테서 며칠 전 전화가 왔었는데 지금의 가정부를 그만 두어야 하는 처지란다. 한국에 돈을 벌러 온다고 몇년을 브로커들과 실갱이질을 하다가 130만원을 5% 이자로 꿔서 끝내 입국하였다. 그런데 지금 그 일자리에서 나와야 하는데 다른 일자리는 없고, 내가 홈페이지를 통해 얻은 정보로 연락했더니 임금이 70~80만원이란다. 130만원 받다가 어찌 그 임금을 받으며 일할 수 있을까.
이런 친구들은 나처럼 3·8절의 소감같은 소외감에 빠질수 있을까? 몸뚱이가 아프고, 일에 지치고, 일자리 구하느라고…
언젠가 KBS2 프로 ‘주부 세상을 말하다’에서 조정래 작가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자식을 키우는 일은 한 세상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 말이 내 마음에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켰었다. 그래, 우리 여성들은 자식의 앞날을 위해 (한국에 나온 여성 대부분은 자식의 공부 뒷바라지 때문이다) 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이 고생은 값진 고생이겠지?
아침에 컴퓨터를 켜놓고 엉덩이를 붙이기 바쁘게 두 아이의 울음소리에 뛰쳐나가 달래고, 청소하고 이것저것 하니 오후 1시. 급급히 컴퓨터 앞으로 들어오며 ‘이 아이가 또 컴퓨터를 다쳐놨구나’ 입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문을 닫으려다 말고 천천히 들여다보니 나와 채팅하려고 강 선생님이 몇 구절을 적어 놓았다.
“난님, 3·8절을 축하드립다.”
내가 “반갑습니다. 강 선생님”하고 ‘보내기’를 누르니 컴퓨터는 ‘너무 늦었어’하듯 보내기가 되질 않았다. 강 선생님, 죄송해요! 이 글을 통해서 나마 한마디 사과드립니다! 조선족교회 홈페이지에 ‘색스폰’님이 재한 동포여성들에게 보낸 선물은 은은한 선율을 타고 내 가슴에 스며 들며 한껏 부풀어 오른 포말을 싹~ 가라앉혀 놓았다.
이 명절을 만들려고 제의한 클라라제트킨분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데 이제 1년 아니 2년 후면 오늘의 3·8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서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리라! 재한 동포여성 여러분, 3·8절을 즐겁게 보내십시요!
난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