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의 집’ 전용병원 5월 개원
“3D 떠맡은 외국인 근로자 건강만은 책임져야”
2004-03-30 운영자
지난 28일 오후 서울 가리봉1동 ‘외국인 노동자·중국 동포의 집’ 2층 무료 진료실. 20평 남짓한 공간엔 자원봉사를 나온 의사와 간호사 20여명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진료하고 있었다. 진료실과 계단·복도에는 60여명이 줄지어 진료를 받거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재작년 9월부터 무료 진료를 해온 강훈치과 원장 강정훈(姜政勳·41)씨는 “매주 일요일마다 이곳에서 무료진료를 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20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어느 순간 ‘나는 정말로 헛되게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고요.” 김해성(金海成·43) 목사는 전용병원 설립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외국인 노동자들을) 죽여서 귀국시키면 뭐하나. 질병 발생 초기에 잘 치료해서 돈도 벌게 하고 한국 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은가.”
김 목사가 12년 전 세운 ‘외국인 노동자의 집·중국 동포의 집’은 현재 경기도 성남, 서울 구로구, 경기도 안산과 광주, 양주 등 5개 지역 센터를 두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무료 진료를 하고 있다.
그 사이 김 목사는 사망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시신을 직접 수습해 장례를 치르거나 본국 송환을 도왔다. 그의 손을 거쳐간 외국인 노동자만 1200여명. 매년 100명 가량의 ‘죽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뒷바라지한 것이다.
김 목사는 이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현재 인연을 맺고 있는 의사·간호사들과 함께 외국인
근로자들을 제대로 진료해줄 전용병원을 설립하기로 했다.
병원을 열 장소로 한신교회 이중표 목사의 도움으로 외국인노동자의 집 서울센터 바로 옆에 있는 6층 건물의 60여평을 임차했고, 추가로 60평을 더 얻을 계획이다. 병원의 원장은 소아과 전문의 이완주(李琓柱·여·59) 박사가 맡기로 했고, 함께 일할 자원봉사 의료진을 찾고 있다. 이들은 오는 5월 초에 개원한다는 목표로 건물 리모델링과 의료 기자재 구입을 추진하고, 자원봉사자도 모집하고 있다.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 실태 조사를 위해 방한한 중국사회과학원 정신철(鄭信哲) 박사는 “한국에 온 중국교포와 외국인들에게 잘 대해주는 것이 그 나라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과 노동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초대 병원장을 맡을 이완주 박사는 “이번에 세우는 병원은 아마도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전용병원으로는 세계 최초일 것”이라며 “한국인이 하지 않는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건강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인도네시아 출신 보나르 파사리브(28)씨는 “돈 없어 병원 갈 꿈도 꾸지 못했는데, 우리를 위한 병원이 생겨 정말 기쁘다”며 “한국이 더욱 따뜻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