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서 한국인의 쓸쓸한 추석맞이
“추석이 되니 가족 생각이 나는데 비행기 값조차 마련하기도 힘드네요” 베이징에서 무역업에 종사하고 있는 A모(34)씨는 계속되는 불황으로 인해 올 추석에는 한국의 고향을 찾을 계획을 포기했다. “수요가 없어서 돈이 말랐다”며 “비행기 값조차 마련하기도 수월치않다”고백한다.
중국에 값싼 상품을 구해 한국으로 보내는 업무를 하는 그의 회사는 최근 한국의 경기침체에다 고환율까지 겹쳐서 구매자들의 주문이 뚝 끊겼다. 10명이 채 안 되는 직원이지만 추석을 눈앞에 두고 다시 2명을 정리해고 해야만 했다. 얼마 전부터 한국에서 송금하던 운영자금이 사무실 임대료를 제외하고는 뚝 끊겼다. 영세한 규모의 본사에서는 “너무 힘드니 어떻게든 2달 정도만 버텨보라”는 대답만 되풀이 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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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며칠 전부터 피로가 쌓일 때마다 받던 1시간 50위안(한화 약 8500원)짜리 안마를 과감히 끊었다. 가까운 거리는 택시를 타던 습관을 버리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등 ‘전방위 절약모드’로 전환해 모든 비용을 줄여 나가고 있다. 최근 본인과 직원들의 식사를 10위안(한화 약 1700원)에서 9위안, 다시 8위안 (한화 약 1400원)짜리 도시락으로 바꾸었다. 김씨는 “이 조차도 힘 들다. 그러나 지금은 버티는 게 중요하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베이징의 한국인 대상 자영업도 추석을 맞아 불황의 연속이다. 올림픽 기간 비자발급 제한으로 교민 수가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개학을 맞이하여 유학생들이 속속 돌아오고 있지만 구매력은 예년과 같지 않다. 한인촌 왕징에서는 식당의 주인과 간판이 자주 바뀐다. 손님이 찾지 않으니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 자꾸 업종을 변경하는 것이다. 이를 테면 ‘오징어전문→ 순대국밥 → 회’로 바뀌는 식이다.
왕징에서 요식업을 하고 있는 B(42)씨는 “올림픽은 몇 년 전부터 베이징 교민들에게 막연한 희망이었다. 누구나 다 많은 이들이 베이징을 찾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희망은 오히려 절망으로 돌아왔다. 교민 수는 줄고 단속은 더 강화되었다”고 토로한다.
중소사업가와 자영업자들의 고충 뿐만 아니다. 몇 달째 계속되는 고환율로 인해 한국에서 송금 받는 유학생들이나 주재원들의 지갑은 더 얄팍해 졌다. 위안화 강세로 원화가치가 급속히 떨어지면서 2년 전만 해도 100만원을 환전하면 8000위안 정도를 손에 쥘 수 있었지만 지금은 6000위안 정도를 받을 수 있을 뿐이다. 현지 교민들은 실질적인 원화가치가 30% 정도 떨어졌다고 보고 있다. 대부분 중소기업에서는 주재원들의 급여를 한국통장으로 지급하고 환차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왕징에 사는 주부 C(26)씨는 “주재원 남편의 매달 들어오는 월급만 믿고 작년에 은행에서 대출 받아서 아파트를 구입했는데 차질이 생겨 걱정이 태산이다. 대출금을 갚아나가자니 생활비가 모자라고 이제는 베이징 부동산 가격이 폭락해서 팔 수도 없다”고 하소연 한다.
학비 송금에 어려움을 겪는 학부모가 늘어나면서 휴학하는 베이징의 한국 유학생도 급증하고 있으며 생활비가 부족해 알바를 찾는 유학생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인건비가 싼 중국에서 알바자리 구하기는 만만치 않다. 운 좋게 개인 가정교사를 구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고가 알바인 술집 등의 유혹도 늘고 있다. 베이징의 모 대학에 재학 중인 D(21)씨는 “돈이 궁하다 보니 ‘옆에 앉아서 술만 따라주면 된다’는 알바를 고려해본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인민대 3학년에 재학 중인 E(20)씨는 1주일에 3일, 하루 4시간씩 중국어 가정 교사로 일한다. 1대1 중국어 수업은 1시간당 40위안 (한화 약 6,800원)선. “부모님이 송금해주시는 돈은 식대를 제하면 400~500위안에 불과하다”며 “물가가 올라 남는 돈으로 마트에서 장을 한번 보 면 남는 게 없다”라며 한숨을 내쉰다.
고환율이 계속되어 실질 소득이 감소하니 현지 기업은 복리후생비 등을 축소하고 가계는 외식이나 여기 비용을 줄이게 되어 결국 한국인을 주로 상대로 영업을 하는 중국 한인사회 경제전체가 얼어붙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올해 발효된 신노동법과 세제 개편 등으로 중국의 사업 환경이 악화되어 가면서 사업에 실패한 이들로 베이징 한인사회가 점점 슬럼화 되어 가며 실업자들이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현지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한 교민은 “올해 내내 힘들었는데 한가위가 되니 더 가슴이 아프다”며 “그러나 한국인들끼리 유사업종에서 밥그릇 싸움을 하다가 경쟁력 없는 교민들이 속속 중국을 빠져나가는 한인 경제가 적정규모화 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베이징= 도깨비뉴스 객원리포터 이동기
원제목: 쓸쓸한 한가위, 눈물 젖은 기회의 땅 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