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가서 일하고 싶다?
2004-03-08 운영자
허나 국익은 뒷전이고 리더십의 부족으로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가 칠레와의 FTA를 거부하여 스스로 살길을 끊는 모습을 보고, 이라크 파병안도 통과시키지 못하는 주제에 체통까지 완전히 잃어버린 방탄국회를 보면서, 대신 경찰버스가 전복되고 불타고 전경들이 얻어 맞는 살벌한 장면들을 보면서 마음이 참담해지며 앞날이 보이지 않고 어깨가 떨어진다.
집단이기주의로 서로에게 핏대를 높이고 삿대질하니 고국에서 쓰러질 때까지 일하고 싶던 마음을 접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우뢰소리만 크고 빗방울이 작은 강제추방이라도 항상 불안하다. 고용허가제로 인하여 불법체류자로 전락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하여 숨도 크게 못 쉬다가 언젠가는 치사하게 수쇄차고 죄인 취급받다가 쫓겨나게 될 테니까 차라리 추방당하기 전에 고마움도 많고 서러움도 있는 정든 서울이지만 떠났으면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 본다.
연변에 돌아가자니 시기상조이다. 이번에 연길에 가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거리에서 들리는 건 중국말 뿐이었다. 운전기사도, 영업원도 모두 한족, 심지어 조 선족들만 파는 고사리까지도 중국 여인들이 팔고 있었다.
우리가 떠난 자리를 중국인들이 몇 배로 메웠다. 그렇다고 빈 주먹만 부르쥐고 그 자리에 버텨 앉는다 해서 능사가 아니다.
앉아 밀리기 전에 해외에 나가서 눈도 틔우고 자본도 축적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먹고 먹히는 세상에서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떠야 된다고 여긴다. 때가 되면 그래도 대부분이 금의환향할 것이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하나? 미국에 가서 일하고 싶다. “거참, 웃기는 소리네. 25만 위안도 훨씬 넘는 돈이 드는 건 둘째로 가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가나?” 하면서 미친소리 취급하겠지만 타민족이고 불법체류자라 해도 수쇄를 채우는 사람이 없는데다 자가용도 몰고 다니고 가게도 꾸릴 수 있는 미국에 가서 일하고 싶다. 한국엔 일자리가 많아도 시름 놓고 일할 수가 없으니…. 우리 재중동포들은 중국에서는 우대 받는 소수민족이지만 부평초에 불과하고, 한국에서는 뿌리는 있으
나 싹틔울 수 없는 상황이다. 객관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내 마음의 심처에서도 ‘순수’가 있을 수 없다. 중국에 있을 땐 한국의 1만 달러 소득으로 나도 폼나는 듯 했고 어깨가 으쓱해졌다. 하지만 한국에 발을 들여놓고나니 접목된 나무에 열린 다른 종의 쭈그러진 열매로 보여지는 시각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해하기에 절대적으로 누구를 원망해 본적은 없다.
사실 지금까지 시시각각 내가 중국연변조선족임을 망각한 적이 없다. 중국사람을 욕보일까 싶어서 다니는 곳마다 몇 갑절 악을 써서 일하였고 자각적으로 청소하면서 공중질서를 잘 지키려고 애썼다. 2002년 KBS 올림픽 체육관에서 행사를 할 때 그 교회의 교인이 아니었지만 아는 이도 없이 혼자 남아서 마지막까지 청소하고 가는 길, 오는 길에서 휴지줍고 돌아오는 전철역에서 동포들이 버리고 간 우유팩이랑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서야 전철에 올랐다.
동포들의 행사 뒤에 제일 겁나는 것은 한국인들이 우리 중국을 웃을까봐서 였다. 종래로 한민족이라고 가깝게 스스럼 없이 생각해 본적이 없다.
하지만 중국의 앞날은 별로 걱정해 본적이 없다(물론 나라의 정치가 한 개인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은 문화대혁명을 통해 절실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의 정치엔 웬지 유난히 마음이 쓰인다. 중국인에게 黃山,黃河, 長江,長城이 重千斤이지만 우리 동포들은 그래도 한강, 백두산이 重千斤으로 언제 어디서나 제일로 가깝다.
중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중국국적이 낙인처럼 찍혀 있지만 그래도 몸속에서 용솟음치며 흐르는 피소리는 분명 배달민족의 소리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감격과 눈물로 제일 처음 배운 것이 애국가 1~4절이다. 그래서 금방 말을 번지는 애들에게 동요뿐 아니라 애국가도 꼭 가르친다.
TV에서나 혹은 어떤 행사에서 애국가를 부를 때 둘러보면 한국분들은 표정이 담담한데 나 혼자 눈에 이슬이 맺히고 목메인다.
이렇게 자세히 설명함은 우리 재중동포들이 돈만 밝히고 쫓아다니는 것 같지만 사실 마음 밑바탕엔 이러한 감정이 두둑히 깔려 있다는 것을 이해해 주기를 바람이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지구촌이 되어버린 오늘날 내 민족, 내 고향을 지킨다고 맹목적으로 앉아있기보다 타국, 타민족에 가서도 여러 가지 물질문명을 창조해내는 것이 결국 인류를 위하는 것이고 자기 민족의 긍지를 높이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도 退休費를 받으며 하고 싶은 PC를 즐기며 점잖게 살 수 있지만 일할 수 있는한 무의미하게 살고 싶질 않다. 그 누구를 물론하고 나를 배타만 않는다면 사회에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들의 ‘부엌데기’, ‘보모’로 사는 것이 싫지 않다.
물론 돈버는 재미를 제일에서 생략하지는 않는다. ‘집안에 앉아 있는 영웅보다 나 다니는 바보가 낫다’고 연변의 조선족들이 지금 세계로 더 크게 진출하여 성공한 후 다시 어엿이, 버젓이 돌아가 살 날을 기대한다. 그때엔 금삼각에 위치한 연변이 중국, 한국, 북한, 러시아로 통하는 다리로 되었으면 좋겠다.
그때가 돌아오면 그래도 한국의 국익을 첫 자리에 놓았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정쟁이 하루속히 결속되어 땅에 떨어진 정권과 경찰의 위상이 제대로 서고(죄많고 고약한 인간들이 싫어하면서도 자극적이고 어두운 뉴스에 눈귀가 쏠리는 점을 이용한 언론에도 문제가 많다.) 소수 밖에 안되는 재계도 세워주어 한국이 일하기 좋은 나라, 살기 좋은 나라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하여 한국에 등을 돌리고 싶은 마음을 돌려 너도나도 달려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고국으로 되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이정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