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痕迹) <우광훈의 장편연재 13>
제 3 장
1
밖에서는 눈이 오고있었다. 겨울에 들어서서 오래동안 오지 않던 눈이여서인지 펑펑 쏟아지는 눈을 보노라니 마음이 푸근했다. 창가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서있는 창호에게 안해 금화가 지나가는 말처럼 말했다.
<<캉아저씨 아프대요. 전화가 왔댔어요.>>
창호는 창가에서 돌아섰다. 놀라는 눈길이였다.
<<뭐? 언제? 근데 왜 이제야 알려주는거요?>>
금화가 낮게 대꾸했다.
<<어제저녁 몇시에 들어왔어요? 말해줄 사이가 있었어요? 캉아저씨 조카 리후이가 전화를 하더군요. 지병이래요.>>
<<그렇대? 당뇨합병증이면 곤난할텐데...>>
안해는 이미 부엌으로 가고 없었다.
창호는 밥상에 앉았다. 안해가 말없이 밥상을 차리고있었다.
<<미라는?>>
<<학교에 갔지요. 지금 몇시예요? 학교 다니는 애가 이제 밥먹으면 공부는 다 했지요.>>
창호는 쑥스러운 기색을 지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물음이라는 생각을 하며 창호는 어제저녁 술을 너무 마셔 필림이 끊어졌댔다는것을 상기했다.
밥상에 앉으면서 안해가 아무런 뉴앙스도 없이 말했다.
<<캉아저씨 좀 자주 찾아보세요. 불쌍한 분이라 하지 않았어요? 신세를 그렇게 졌다면서 살만하니까 잊으면 되여요?>>
창호는 안해를 흘끗 쳐다보았다. 안해의 얼굴에서 어떤 표정을 읽을수 없었다. 창호는 우유만 마시고 식탁에서 일어섰다.
<<요사이 좀 바빴어. 식당하고 노래방장식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지 않아? 어떻게든 오늘은 시간을 내서 가볼게. 뒤간도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더니 내가 그런지 모르겠어.>>
안해가 표정이 없는 가볍운 미소를 지었다. 창호는 그것을 외면하고 자기 방에 들어가 옷을 입었다. 갑자기 오늘 식당과 노래방복무원을 모집하기 위한 면담을 하기로 했다는것을 기억하고 먼저 캉아저씨에게로 가야 할지 아니면 면담을 먼저해야 할지를 잠간 망설였다. 캉아저씨한테 못가본지도 이미 수개월이 되여있었다. 한국에서 돌아온 이튿날 가보고는 여지껏 전화 한통도 하지 않고있었다. 당뇨병으로 앓고있는 그를 만났을 때 창호는 적어도 한달에 두번은 와보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정준태사장이 중국 투자를 결심하고 노래방과 식당을 경영하기로 락착이 나서부터 창호는 말 그대로 눈코뜰 사이가 없었다.
창호는 택시를 잡으며 먼저 캉아저씨를 보러 가야겠다고 결심을 내렸다.
캉아저씨네 집은 하이란시의 조선족들이 까마귀동네라고 부르는 미개발지에 있었다. 조선족들이 까마귀동네라고 부른는것은 그곳에 한족들이 많이 살고있기때문에 어떤 扁意가 있는것이 사실이였으나 환경적으로 볼 때에도 까마귀나 살만한 미개발지였다. 아직도 연탄을 때는 단층주택들이 주축을 이루어 옹기종기 눌러앉아있었고 두사람이 마주치면 코를 맞출만 골목들이 거미줄처럼 엉켜있었다.
캉아저씨가 이곳에 살게 된것은 문화혁명이 끝나고 정책락실을 받은후였다. 억울하게 <<우파>>가 된 사람들에게 원래의 대우를 해주라는 정책이 내려오자 캉아저씨는 이십오년만에 이 도시로 다시 돌아왔고 원래의 직장에서는 까마귀동네에 새로 지은 직원아빠트에 이사를 시켰다. 80년대 초라 이층이라도 층집이라는 명색에 그런대로 살만했지만 온 도시가 개발에 들어선 지금 이곳 사람들은 개발만을 눈빠지게 기다리고있을 뿐이였다. 난방도 없는 집에서 앓고있는 캉아저씨가 불이나 제대로 때고 사는지도 모르고있는 창호였다.
붉은 벽돌로 지은 이층집앞에서 창호는 택시에서 내렸다. 하얗게 흐린 하늘에서 쌀겨같은 내리고있었다. 마음이 우울해지며 자책이 들었다. 그러면서 빈손으로 내리고있는 자기를 발견하고 다시 택시에 오르며 가장 가까운 슈퍼로 가자고 택시기사에게 말했다.
창호는 슈퍼에서 필요이상의 식품과 보건품들을 사가지고 캉아저씨네 집문을 두드렸다. 창호의 인내가 막바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할만큼한 시간이 지나서야 캉아저씨의 먼 조카가 되는 리후이가 문을 열었다. 리후이는 문밖에 창호가 서있는것을 보고 얼굴에 활짝 웃음을 날리며 탄성을 질렀다.
<<아야! 우리 창호오빠네?!... 난 위생비 받으러 온 사람이줄 알고... 어서 들어와요...>>
리후이는 부산을 떨면서 창호의 손에서 물건들을 받으며 방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삼촌! 창호오빠가 왔어요!...>>
방에서 발음이 똑똑하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어서 들어오라고 해라...>>
목소리에 낡은 풀무소리가 섞이여있는듯 했다.
침대우에 누웠던 캉아저씨가 창호를 보고 반기며 바닥에 내려서려고 일어나 앉았다. 오른 손에는 삼십여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하얀 장갑이 끼여있었다.
<<내리지 말아요. 무슨 귀한 손님이라고...>>
창호는 캉아저씨를 침대우에 눌러 앉게 하고는 침대가에 앉았다.
<<어때요, 몸은? 바쁘다는 핑계로 오래동안 와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캉아저씨는 습관적으로 왼손으로 창호의 어깨를 잡아 당기며 마른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괜찮아. 인생에 싸울수 있는 기회가 두번 있는건 아니야. 선택한 길이라면 되돌아설 생각을 버리고 나가야 해... 난 이미 살만큼 살았으니까 너들 기억만 해주는것으로 만족했다.>>
창호는 캉아저씨가 자기가 사직을 한 사실을 알고있다는것을 알아챘다.
<<저도 잘했는지 못했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덩덩한 기분이거든요. 그리고 서비스업이란 생각조차도 해본적이 없는데...>>
리후이가 옆에서 말했다.
<<누가 뭐 알고서 시작하는것 있어요? 돈벌라는 시대에 돈 쾅쾅 벌어야지 다른건 관계할 것 없어요. 그까짓 기자 월급이 몇푼이라고 련련하겠어요? 오빠 잘한거예요. 이땀 나도 오빠 회사에 가서 일할란다...>>
캉아저씨가 그러는 조카를 바라보며 온후한 미소를 지었다.
<<넌 먼저 시집이나 가거라. 서른살이 된 계집애 보는게 꼴이 안좋아.>>
<<시집가 뭘해요? 남자들 시중이나 하라구요? 전 그런 바보짓 안해요. 지금 남자들 믿을만한게 있는줄 아세요?>>
창호가 목소리를 높이고있는 리후이를 바라보며 청산류수처럼 쏟아지는 그의 말을 중동무이했다.
<<너 그렇게 독설을 할거니? 나도 남자인데...>>
<<오빠는 다르죠. 하향세대니까 우리하고 세대가 틀리지 않아요?>>
리후이의 말은 틀리는 말이 아니였다. 불과 십년차이였지만 사고방식은 시대가 아니라 세기의 차이가 있는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은 창호였다.
<<그래, 알았다. 넌 신세대고 난 할배세대니까 이담부터는 오빠라고 하지 말고 삼촌이라고 불러.>>
그러자 리후이가 까불거리는 눈으로 캉아저씨를 보며 대답했다.
<<그럼 우리 삼촌은 뭐가 되지? 오빠가 아저씨라 부르니 증조할배?>>
<<어?...>>
세사람은 기분좋게 웃었다. 캉아저씨가 장갑을 끼지 않은 손으로 창호의 손을 잡았다.
<<넌 원래 순한 놈이였는데 상업이라니 근심이 되지 않는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제 그렇게 되었다니 말리지는 않겠다. 넌 감성적이여서 랭혹한 경쟁에서 싸우기가 힘들거야. 아무튼 마음을 크게 먹어야 해. 그리고 일을 시작했으면 영웅의 마음을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 삼국때 류비는 빌빌 울기를 잘했고 손권은 계략에 능했고 조조는 영웅을 끌어모으는 능력이 있어 서로가 달랐지만 모두 나라를 세우고 삼국정립의 정국을 이끌어간 사람들이다. 력사의 평가가 어떻던 그 사람들게는 공동한 점이 있는데 그게 그들에게서 나타난 영웅의 기라는것이야. 난 너가 일을 시작하면서 그런 영웅의 넓은 흉금을 가지고 시작하기를 바란다. 작은것에 집착하지 말고...>>
캉아저씨는 오래동안 이야기를 했다. 마치 이제 하지 않으면 다음번 기회가 없을가 두려운듯 쉬라는 권고를 물리쳤다.
복무원모집 면담이 있었기에 창호는 조마조마해 하며 일어섰다.
<<저 일이 넘 바뻐서 이제 일어날게요. 자주 찾아올게요.>>
<<그래, 어서 가봐. 나같은건 근심말고, 바쁜데 찾아다니느라 하지마...>>
캉아저씨는 말하면서 창호를 유심하게 바라보다가 불쑥 말길을 돌렸다.
<<너 카이란 소식 있니?>>
<<네?!... 카이란 소식이라니요?! 레이카이란말이예요?>>
캉아저씨는 대답이 없었다.
<<왜 갑자기? 아저씨 카이란 소식 알고있어요?>>
캉아저씨는 이윽토록 대답이 없다가 머리를 저었다.
<<아니, 내가 어떻게 걔 소식 알수가 있겠니? 됐다 어서 가보아라. 널 보니 카이란 생각이 나서 물은거다.>>
창호는 무언가를 짚어보려는 듯 캉아저씨를 쳐다보았으나 얼굴에 다른 빛은 없었다.
<<그럼 저 갈게요. 더 아프면 병원에 입원을 하시던지...>>
그러면서 창호는 리후이에게 말을 돌렸다.
<<너 자주 와서 돌봐드려. 그리고 일 있음 자주 전화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눈은 멎어있었다. 창호는 마음이 묵직했다. 어쩐지 아릿한 슬픔이 가슴을 적셔오고있었다. 카이란을 묻는 캉아저씨가 심상치 않았으나 입을 다물면 다시는 열리지 않는 그의 성격을 알고있었기에 창호는 그런대로 더 캐묻지 않았다.
캉아저씨는 창호가 처음 하향했던 곳에 추방되여있던 우파였다. 스믈다섯에 우파가 되여 강제로동을 하던중 오른 손을 상했는데 상처는 나았으나 그후부터는 이상하게 손바닥이 마르는 증세가 있어 세수를 하거나 빨래를 하는 일을 할 때를 내놓고 언제나 하얀 면장갑을 상한 손에 끼고있었다. 농촌에 하향하여 처음 캉아저씨를 만났을 때 창호는 캉아저씨가 지식인 출신이여서 폼을 잡는줄로 알고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캉아저씨도 우파로 되여 도시에서 쫓겨난 사람이고 장가도 못가고 혼자 살고있다는 것을 알고난후에는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라는 동질감이라 할가 창호는 캉아저씨를 무척이나 따랐다.
캉아저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배치받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우파로 되었고 흑룡강 강제로동소에서 삼년간의 강제로동을 하고 나서 시골 오지인 따구쟈에 추방을 당한 사람이였다.
따구쟈에서 캉아저씨가 살던 집은 동북지방의 만족식 집이였는데 삼간집이 아니라 부엌에 방이 하나인 두간집이였다. 후에 창호가 카이란과 사랑을 하게 되자 캉아저씨의 집은 창호와 카이란이 밀회하는 장소로 자주 리용이 되었다.
카이란과 헤여지기전날 밤 창호와 카이란은 캉아저씨네 집에서 보냈다. 캉아저씨는 그들에게 집을 내주고 마구간에서 잦고 창호와 카이란은 마지막 리별의 아픔과 약속을 반주로 사랑의 비극적결말을 연기해나갔다. 그날밤 카이란은 이십년 간직해왔던 처녀성을 창호에게 희생으로 받쳤고 이튿날 아침에는 붉은 천과 꽃으로 장식한 결혼마차를 타고 울면서 시집을 갔다. 그날 창호는 신부를 데리러 온 사두마차를 보았고 마차에 오르지 않으려고 발악하는 카이란을 보았다. 그리고 친척들의 손에 의해 결혼마차에 올려졌을 때 카이란이 부르짖던 소리를 들었다.
<<창호! 넌 남자가 아니야!...>>
그날저녁 창호는 이불짐 하나를 메고 따구쟈를 떠났고 영원히 따구쟈를 기억에서 지우리라 생각했다. 그때로부터 따구쟈사람들은 창호는 실종이 되었다고 믿고있었고 창호를 자식처럼 생각하고있던 캉아저씨마저도 하이란시의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는 그날까지 그렇게 생각하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