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철 "격정시대"의 욕망연구(4)

2008-05-26     전유재

  본고에서 이데올로기 비판이란 용어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텍스트에 드러난 이데올로기인 마르크스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이란 뜻이 그 첫 번째이고,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본고의 입장 역시 다른 한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한다는 것이 두 번째 의미로 된다. 즉 텍스트에 드러난 이데올로기를 본고가 이데올로기적인 사고로 비판한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2장에서의 분석에서 축소된 최종 문제의식의 영역을 다시 살펴보면, 전부가 자본, 역사전통, 생존권의 가치맥락 내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아낼 수 있다. 항일 및 정권으로의 의지는 이미 확연하게 드러난 텍스트의 주제적 구성요소로서 자리매김이 되었다. 이것이 텍스트 내에서 형상화된 두 집단인 조선의용군이나 광복군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항임을 부연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상기 세 요소가 최종 주제적 층위를 결정하는 핵심요소로 간주될만한 요건을 갖추었다고 판단하고 3장의 논의를 여기에 집중시키고자 한다.

  3. 1 생존권, 자본, 역사전통과 시대의 욕망

  우선은 계급과 신분부터 따져보기로 한다. 계급과 신분이란 용어는 엄밀한 의미에서 동양학의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럽 역사발전과정의 고유한 패턴에 맞추어 설정된 특수개념들이며,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보통명사가 아니라는 인식론적 반성을 우선 선행할 필요가 있다. 계급이란 Class의 번역어로서 수학에서 쓰듯이 그냥 “집합”이란 뜻이다. 즉 어떤 개체들을 묶는 개념이다. 이에 반해 신분이란 일차적으로 “분수” 혹은 “몫”이라는 뜻으로 개체들을 묶는 개념이 아니라 그 개체 하나하나에 붙어 다니는 마크이다.

  계급은 계층과도 구분되는 용어이다. 단순한 집단이 아닌, 한 사회의 광범한 적대적 모순관계를 의식한 어떤 집합개념이고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설정하는 용어로서 마르크스주의를 의식하지 않고는 쓸 수 없는 용어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의 점유정도, 즉 경제적 불평등의 기준에 근거하여 <프롤레타리아 : 부르주아>의 적대적 관계를 상정한다.

  계급은 사회구성의 객관적 측면뿐만 아니라 주체적 측면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그 주체가 속한 계급의 의의와 역사적 역할에 관한 의식으로서 이것을 “계급의식”이라고 한다. 계급의식이 있는 계급을 대자적 계급으로, 계급의식이 없는 계급을 즉자적 계급이라고 하는데 대자적 계급이야말로 역사적 주체로서 본래의 계급내용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계급에 관한 기본 내용을 진일보 살펴보도록 한다.

  마르크스야 말로 제일 먼저 위대한 역사적 운동규율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규율에 근거하여, 일체의 역사상의 투쟁은 그것이 정칟종교·철학의 영역 중에서 진행되었든, 어떠한 타의식형태의 영역 중에서 진행되었든 간에, 실제적으로는 각 사회계급의 다소를 막론한 투쟁의 명백한 표현일 뿐이다.

  계층이란 용어는 이렇게 명확하다고 여겨지는 모순‧투쟁의식을 지닌 “계급”이란 용어보다는 중성적인 의미로 활용되는데 주로 미국의 사회학자들이 사용한다. 계층은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적 지위의 상하에 따라 비교적 임의적으로 설정된 층 구조를 구분하는데 활용되는 용어로서 이때 임의적 기준은 소득수준, 소비정도, 교육정도, 성별 등등에 근거하여 사회의 위신 정도를 종합적으로 나타낼만한 준거이다. 그러므로 계급은 사실 계층의 하위개념으로 포함시킬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사회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계급규정을 본질규정으로, 계층규정을 현상규정으로 보고 이 양자의 상관관계를 구조적으로 파악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이에 반해 신분은 한 인간의 사회적 특권 향유도의 상화에 따라서 결정되는 비교적 고정적인 현실질서이다. 신분은 현실적이고 대체로 상하귀천의 사회적 평가에 의한 명예나 위신 그리고 특권이 인습적으로 혹은 법제적으로 세습되는 경향이 강하다. 봉건제도는 인도문명권의 카스트나 서양 중세의 로드-배살의 주종관계, 일본 江戶德川막부시대의 幕番체제, 周나라의 조공체제 등 分域化된 위계질서를 근간으로 하는 신분사회이다.

  반면에 조선조는 과거제에 의한 군현제적 중앙관료제를 근간으로 하였는데 이것은 분역화되는 신분질서를 파괴시키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신분질서가 매우 유동적으로 엉성하게 상황적 요구에 따라 분포될 수 밖에 없는 중층적 구조를 지닌다. 물론 중앙집권적 관료제에 의해서만 다 질서 지워질 수 없는 어떤 분권적 질서도 공존하였으므로 중층적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에게서 계급개념이 대자적 계급의 주체적 역량에 근거한 계급투쟁으로써 사회정치문제의 해결을 위한 도구로서 자각된 것은, 곧 신분이 파괴되는 상황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계급이란 곧 역사적으로 신분의 파괴에서 비로소 발생한 개념이다. 즉 신분이 고착화되어있던 유럽봉건사회가 시민사회로 전환되면서 나온 개념이 바로 계급이다. 따라서 계급이 혁명을 탄생시킨 것이 아니라 혁명이 계급을 탄생시킨 것이다. 프랑스혁명 자체가 귀족혁명에서 시민혁명으로, 시민혁명에서 도시대중혁명으로, 도시대중혁명에서 농민혁명으로 번져나간, 왕권에 대한 신분질서의 연쇄반응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신분제는 서양사나 일본사의 중세 즉 봉건제와 결합되고 계급이라는 개념은 근세 즉 자본제와 결합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조선조나 당시의 중국이 중앙집권제에 속하지 봉건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위의 계급, 신분, 계층에 대한 논의를 따져보아 본 텍스트인 󰡔격정시대󰡕에서는 엄밀한 의미에서 <신분 : 계급>의 유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왜냐하면 우선 역사전통 속에서의 조선조는 중앙집권제이지 봉건사회가 아니었다는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 오히려 조선반도의 역사전통은 신분제를 파괴시키는 과거제도를 실행했던 것이다. 인용문⑩에서 조선의용군 대원들이 김구에 대하여 신분에 근거한 듯 한 발언을 하지만 정확한 논거를 제시 못하였다는 것을 이미 분석하였다. 그렇다면 조선의용군 대원들이 김구를 평가할 때 대략 신분의 영역에 종속된 의미로 해석하는 자체가 평면성을 띠게 된다. 그들은 윤리적 주체로서 역사전통적 기준에 근거하여 대략 봉건적 잔재의 의미로 ‘김구’를 평가하고, 태극기를 ‘대한제국’의 상징으로 보면서 과거의 봉건적인 요소로 여기는 경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봉건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사태였던 것이다. 인용문①에서의 홍길동에 대한 인식도 신분과 관련이 있는 느낌을 받지만 그것이 주인공의 욕망구조를 따져보아 외적매개에 속할 뿐이지 가장 근원적인 문제의식은 아님을 역시 살펴보았다. 더욱이 인용문⑭, ⑮를 분석해보아 주인공이 약자에 대한 동정, 인간의 기본 권리에 대한 주장을 펼치면서 신분에 대한 논의 자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계급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이다. 먼저는 텍스트와 관련된 평가를 보기로 한다. 󰡔격정시대󰡕에 대해여 빨치산문학의 계보이고 역사적 작가인 김학철에 대해 조선의용군의 사고가 너무 강한 나머지 “문학을 작가의 자전적 기록과 크게 구분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작가의 능력부족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 가해진 역사의 무게가 너무 막중했기 때문이다”는 평가도 세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첫째, 조선의용군의 사고가 강하다는 것은 2장의 텍스트분석에서 이미 알아보았고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다. 둘째, 작가의 자전적 기록과 문학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도 적절한 해석이라고 보아진다. 셋째, 󰡔격정시대󰡕가 빨치산문학의 계보라는 데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빨치산문학의 계보가 되려면 적어도 텍스트에 등장하는 조선의용군을 비롯한 여러 등장인물들이 본질적으로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사고와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텍스트를 분석한 결과 그것이 신분과 계급의 대한 해석 오류일 가능성을 2장에서 따져보았다. 그리고 조선의용군의 진정한 욕망구조는 "계급성"에 근거한 그것이 아니라 광복군의 민족주의적 욕망구조와 완전히 일치하다는 것도 이미 분석하였다. 즉 "생존권"을 가장 근원적인 문제의식으로 조선광복군 대원들이 반일을 욕망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는 등장인물 한정희를 분석한 인용문⑫에서도 "계급성"에 근거한 명확한 정의가 나타나지 않고 다만 모든 권력기구를 타파한다는 비약된 논리만 부각되는 것을 보아왔다. 주인공이 중국공산당 장군 팽덕회를 관찰한 인용⑧은 "프롤레타리아 국제 연합"을 이론적으로 해석하지 못하고 있고 인용문⑨은 조선의용군이 항일 자체에 대한 강한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중심의미로 된다.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한다는 등장인물 성재수에 대한 분석이 있는 인용문⑦ 역시 "민중발동 및 집단화된 무장투쟁"의 방법이 "테러"의 수단보다 훌륭하다는 정보를 제공해줄 뿐 계급성이 정확하게 드러났다고 확정적으로 판단하도록 근거가 되지는 못하고 있다. 인용문⑬에서 주인공의 직접적인 발화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계급적 기준에 근거한 원산대파업 노동자와 일본선원들의 연합이라는 판단을 주인공이 하고 있지만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리고 스기우라가 이재유를 도와준 것이 꼭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한 판단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분석을 진행하였다.

  빨치산문학의 계보가 되려면 적어도 마르크스주의의 구분법에 의한 "계급성"이 명확하게 드러나야 하는데 텍스트 분석 결과는 이것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자본에 근거한 "계급의식"이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데 대한 정확한 이유를 알아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자본제가 계급이란 개념과 직결된다면 자본제를 따져볼 수 있다. 따라서 자본의 속성 자체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브로델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인류문명의 피라밋을 그린다면 가장 저편에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인간의 물질생활이고, 그 위에 위치하고 있는 중간벨트가 시장경제이며, 제국(자본)주의란 가장 위에 자리매김 된 협소한 영역에 불과한 것이다. 시장경제 즉 교환경제는 등가교환이고, 제국주의는 국가 사이에서 성립하는 부등가 교환이다. 이 양자가 다른 차원에 속하는 문명의 양태임을 혼동하면 시장경제와 제국주의 양자를 구분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싸움이 여기서부터 비롯되었다고 그는 본다. 제국주의진영에서는 시장경제의 논리로 자본주의까지 옹호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고 사회주의진영에서는 물질문명 중 불가피한 교환(시장)경제까지 급진적으로 공격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큰 오류는 자본주의를 너무 “생산양식”의 측면에서만 규정한데에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생산양식을 독립해서 고찰하는 것보다는 소비와 교환현상을 먼저 알아야 그것과의 관련 속에서 생산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인용문⑩에서 조선의용군 대원들이 ‘이승만’에 대한 평가가 "자본을 대하는 인간의 윤리성"이고 그 윤리성이 "생존권"과 관계를 맺는다고 분석을 진행하였다. 이때 ‘생존권’이란 곧 "가장 저편에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인간의 물질생활"이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을 정확하게 지칭하는 것으로 된다. 이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자본의 역할이 어느 차원에서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조선의용군 대원들이 ‘생존권’에 기반된 ‘자본’을 논할 때 아래와 같은 문제에서 해석의 오류가 생길 여지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경제생활은 첫째, 인간이 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서의 기본 물질생활, 둘째, 등가교환 시장경제, 셋째, 부등가 교환 등 세 경제 유형에서 첫째에 속하는 최소한의 물질생활을 두 번째와 세 번째와 혼동함으로써 "계급성"으로 오인하지 않았나하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즉 기본 물질생활인 <생존권>을 <계급>을 가르는 자본기준의 논리로 오인하였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이 경우 조선의용군 대원들의 대화가 계급을 논하는 내용이 아니고 자본을 대하는 인간의 윤리에 속하기도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계급성"으로 오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격정시대󰡕의 역사적 작가 김학철은 어떤 과정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접하였는가를 알아보는 것이 진일보 문제를 명확히 하는데 필요할 것이다. 김학철이 마르크스주의 쪽으로 점차 기울어지기 시작한 것은 화로강(花路崗)으로 들어가 일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의 저서 󰡔가난 이야기(貧乏物語)󰡕를 본격 접촉하고 난 후였다. 이 저서에서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책으로 사치의 폐지, 사회정책, 사회주의 등을 제시했다. 이 저서의 문제의식은 ‘무엇 때문에 많은 삶이 가난해야 하는갗라고 할 수 있다. 즉 계급에 의한 구분은 이론적인 부분이 되는 것이고 그 문제의식은 ‘생존권’에 직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학철이 원산파업, 이재유사건에서 보아왔던 일본인의 행동을 계급적 문맥으로 소설화하고자 한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김학철은 조선민족혁명당에 입대하고 1940년 8월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마르크스의 󰡔프랑스 내전󰡕, 레닌의 󰡔국가와 혁명󰡕을 읽으면서 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굳히게 된다. 󰡔격정시대󰡕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성재수가 꺼내다 주는 책은 󰡔국가와 혁명󰡕이었다. (중략) 󰡔프랑스 내전󰡕, 󰡔철학의 빈곤󰡕, 󰡔가정, 사유제와 국가의 기원󰡕...... 이런 책들을 읽어나가는 동안에 선장이는 크게 변하고 또 성장하였다(2권, 40장, 262면)”고 소설의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김학철이 읽었던 마르크스주의 저서가 바로 위의 저서들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학철은 마르크스주의를 최종 신념으로 하고 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20세기 말 동유럽 국가들의 잇달아 붕괴되어 그는 곤혹을 느끼긴 했지만 자신의 신념에 대해 확신한다고 명백하게 표현한다.

  한데 성전처럼 존숭하며 그토록 열심히 읽고 또 참답게 배운 󰡔소련공산당사󰡕가 수십 년이 지나가지고 마치 날조의 표본과도 같은 헛문서였음이 드러나게 되니 나는 당혹감과 동시에 허망하기가 이를 데 없다.

- 수십 년 동안을 성스러운 믿음 속에서 내처 속으며 살아오다니!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나의 신앙은 조금도 변함이 없으니 이 또한 기괴한 인연이 아니겠는가.

- 베토벤의 작품이 후대의 서투른 지휘나 연주자의 잘못으로 불협화음이 빚어졌다고 해 그 작품을 만든 베토벤의 위대함이 의심받아서는 안 된다.

- 이러한 견해에 나는 전적으로 동감을 표시한다.

- 모든 실패는 다 위대한 당을 1인 독재의 도구로 전락시킨 데서 빚어진 것이다.

  상술한바와 같이 마르크스주의는 김학철의 신념이었다. 그러나 텍스트의 주인공 서선장이 인용문①, ⑭, ②, ④, ⑮, ⑨ 등등에서 보여준 사고나 행위를 보면 마르크스주의의 계급 개념과는 거리가 있고 오히려 생존권에 대한 강한 호소가 지배적임을 알 수가 있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역사적 작가가 스스로 강조하고 있기에 계급성 외에도 마르크스주의에 어떤 중요한 다른 개념이 있는가를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의 소유정도에 근거하여 <프롤레타리아 : 부르주아>를 구분하여 사회실천적인 해방을 강조한다. 이것은 곧 사회 공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공 : 사>가 역사전통 속에서는 어떻게 체현되었는가를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전통적으로 조선반도는 어떠한 기본 <공 : 사> 의식구조를 지닌 문명연속체인가를 진일보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텍스트의 주인공, 조선의용군, 광복군의 윤리적 욕망주체로서의 성향을 파악하는데 진일보 다가설 수 있게 될 것이다.

  조선반도의 문명은 자체적인 고유한 속성을 지니면서도 유교문명권에 속한다. 따라서 <생존권>의 영역에 속하는 <생민권>의 논의를 심층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증국의 그것과 비슷하기에 중국의 경우를 먼저 보기로 한다.

  청대에는 청초부터 청말까지 불과 300년 사이에 그 이전의 역사에서는 볼 수 없는 격렬하고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즉 그때까지 왕조의 입장에서 지주의 입장으로, 그리고 마침내 반지주계급의 ‘국민’ 입장으로 변화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국민’이란 바꾸어 말하면 천민(天民)으로서 곧 생민(生民)이다. 유사배의 언급을 들어보도록 한다.

 “이른바 민권(民權)이란 사실은 부권(富權)이다. 처음에 민주는 가장 평등하고 공화는 가장 자유로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떠한가? 자유란 부자의 자유, 평등이란 부자의 평등에 불과하여 빈민의 고통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나는 감히 단언하겠다. ‘[민권주의는] 자리주의(自利主義)라고...... 사회주의는 자사자리(自私自利)없이 오로지 공도진리(公道眞理)에 의해 사회의 진화를 꾀한다...... 나는 감히 단언하겠다. ’[사회주의]는 지공무사(至公無私)의 주의이다(유사배, 「新論民族‧民權‧社會三主義異同」󰡔시론집󰡕).

  여기에서는 자유를 부자의 자유와 빈민의 자유로 분열 대립시키고, 더욱이 전자는 소수자의 자사(自私), 후자는 다수자의 지공(至公)이라는 윤리도덕적인 구분까지도 부여한다. 자유에 대한 이런 부자와 빈자의 파악은 마르크스주의자가 불변의 진리로 삼는 바이며,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파악방식이 마르크스주의에서 촉발되어 나왔는가 하면, 일괄적으로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소수=부호(富豪)와 다수= 세민(細民)이라는대립구도나소수=독점= 私에대한다수=균분=公이라는 구도는 중국에서는 거의 고대이래의 전통적인 관념이다. 중국에서는 부르주아적 자유와 프롤레타리아적 자유라는 자유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적인 파악방식이 충분히 전통적인 통념과 융합하는 그 무엇이었다.

  조선반도의 전통적 공과 사에 관한 일반적인 견해도 살펴보도록 한다. 조선시대의 주자학자들은 수양론을 염두에 두었다. 수양론에는 공과 사에 대한 구분이 있더라도, 그 형식적 구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자아를 공이라는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실천적인 노력이 요구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나라가 불운하거나 흔들릴 때 우환의식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율곡은 당대의 현실에서 특히 백성의 삶을 근심하는 공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아! 나라의 참혹한 화가 오늘날보다 더한 때가 없었고, 백성들의 여위고 쇠약함도 오늘날보다 더한 때가 없었다. 참혹한 화를 겪고 있는 때에 여위고 쇠약한 백성을 부리면서 게다가 또한 선비들의 기운을 꺾고 여론을 막으며 나라의 명맥을 손상시켜 백성을 몰아붙인다면, 닥쳐올 근심과 헤아릴 수 없는 환난은 장차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정도가 될 것이다.

  󰡔격정시대󰡕에 등장하는 조선의용군도 공공을 프롤레타리아로, 부르주아지를 사로 여기고 있다. 이것은 곧 <생존권 및 자유>에 관한 내용이다. <김구 : 이승만>을 대립시키던 윤리적 태도에서 이 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즉 나라와 개인 생존권을 도모하는 것이 조선의용군의 기본 자세였던 것이다. 율곡이 백성과 나라를 대하는 기본 태도와 조선의용군이 자본을 대하는 윤리적 태도 및 항일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모습에서 본질적으로 공통되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근대는 단순히 자본뿐만 아니라 국가, 민족이 혼융되어 서로의 영역 속에 침투해 들어가던 특수한 격정시대이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침략의 형태를 띠면서 타 국가를 식민화하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되는데 본 텍스트의 가장 큰 배경이 바로 식민지 조선반도와 반식민지 중국대륙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국갇민족·자본> 삼위일체 구조와 영향력에 대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특히 주인공이 태극기를 바라볼 때 “너절하게” 느끼던 감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의 상징-태극기”라고 간주할 수 밖에 없었던 갈등심리를 심층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선은 과연 “대한”에 “제국”이라는 개념을 쓸 수 있는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국가, 자본, 민족은 일본 같은 경우의 봉건제에서는 엄밀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즉 봉건국가(영주, 왕, 황제), 도시, 그리고 농업공동체이다. 이것들은 다른 ‘교환’의 원리에 기초해 있다.

  첫째로, 국가는 수탈과 재분배 원리에 기초해 있다. 둘째로, 그러한 국가기구에 의해 지배되고 상호 고립된 농업공동체 내부에서는 자율적이고도 상호부조적이며 호혜적인 교환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 셋째로,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서 시장, 즉 도시가 성립한다. 시장원리는 상호합의의 화폐교환이다. 봉건체제는 바로 이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침투하면서 붕괴하였다. 한편 자본주의경제는 절대주의 왕권국가 즉 제국주의를 낳는다. 상인계급과 결탁하여 다수의 봉건국가(귀족)을 쓰러뜨림으로써 폭력을 독점하고 타 국가를 침략하기 시작한다.

  식민지 조선반도는 바로 그 시대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일본에서는 국가의 기반에 시장경제의 침투와 함께, 도시 계몽주의와 더불어 그때까지 자급자족적이던 각 농업공동체에 화폐경제가 강하게 침투하면서 해체되는 동시에 그 공동성(상호부조나 호혜제)을 민족 안에서 일부분을 회복하였던 것이다. 민족과 국가가 진정으로 결합한 것은 부르주아 혁명에서이다. 프랑스혁명에서 자유, 평등, 우애라는 삼위일체가 주창된 것처럼 자본, 국가, 민족은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통합된다. 그러므로 근대국가는자본제=국가=민족의 삼위일체로 융합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자본제=국가=민족은 삼위일체이기 때문에 강력하다. 어느 것을 부정하려고 해도 결국 이 고리 속으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다. 이 세 가지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각기 다른 ‘교환’원리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자본주의만을 타도하려고 하면, 국가의 관리를 강화하게 되거나 민족의 감정에 가로막히게 된다.

  지금까지의 설명은 모두 봉건제가 엄존했던 서유럽 중세나 일본의 경우를 상정하여 분석한 것이다. 그러나 신분과 계층, 그리고 계급을 설명하면서 이미 지적했지만 조선반도나 중국의 경우는 중앙집권제이지 봉건제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국가-자본-민족적 고리가 서로를 물고 들어가는 현상 중 일부를 연출하기는 하지만 “제국”의 형태는 전혀 아니다. 자본이 고도로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때는 정부기구 자체가 없기에 그것을 위해 조선의용군이나 광복군 모두 정권을 욕망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생존권 획득을 욕망하는 가운데서 조선의용군이 태극기를 바라보면서 “대한”을 “제국”이라고 이해한 것은 잘못되었다. 봉건제가 아닌 중앙집권제에서 ‘국갗와 ‘민족’은 이미 통합된 상태로 조선반도에 존재하였지 근대에 와서 양자가 결합한 것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제국주의 형태로 <국갇민족·자본> 삼위일체로 침략을 감행하던 시대에 조선반도는 특히 <자본>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침략에 의한 생존권 및 정권 상실과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조선반도는 역사, 전통적으로 자민족의 고유한 속성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같은 동양권 유교문화에 속해있던 중국의 그것과 비슷한 <공 : 사> 개념을 역시 갖고 있었다. 즉 근원적으로는 동일한 윤리의식을 역사전통 속에서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슈펭글러에 의하면 역사전통의 고유한 문화는 自己動力에 의하여 생사의 주기를 갖는 유기체로서 타에로 환원할 수 없는 그 자체의 특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그 유기체를 그 유기체답게 만드는 본질은 타 유기체에로 전환되지 않는다. 그 유기체는 “그 자체에 고유한 생각, 자기 자신의 정열, 자기 자신의 생명·의지·느낌, 그리고 자기 자신의 죽음”을 가질 뿐이다. 그러므로 한 문화와 타문화 사이의, 즉 한 유기체와 타 유기체와의 교섭은 결국 “정교한 오해의 기술(art of deliberate misunderstanding)"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 한 문화와 타문화 사이에 그 형식(forms)은 전달 가능하지만 그 정신(spirit)은 전달 불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타문화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수용에 있어서 단순한 형식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도 어느 정도 수용될 가능성도 있다. 그것이 근원적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을 정도로까지 수용자가 수용하는 것인지 아닌지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지 전혀 수용이 안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슈펭글러의 언급도 그렇고 역사적 작가인 김학철이 마르크스주의를 신념으로 천명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사실 문화와 문화 사이에서는 항상 격의(格義)가 일어난다. 중국에서 불교와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이던 과정을 후쿠나와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중국사람들은 先秦時代에 이미 독자적인 문화를 완숙시켰기 때문에 외래문화의 수용에 있어서 매우 까다로웠다. 중국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외래문화는 두 줄기밖에는 없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그 하나는 불교요, 또 다른 하나는 맑스·레닌主義이다. 그리고 兩者의 受容過程에 있어서 매우 유사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조선반도에서나 중국대륙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였던 조선의용군도 위의 인용문에서와 똑같은 과정을 거쳤을 가능성이 크다. 즉 마르크스주의가 조선의용군이 전달되었지만 정신적인 것은 역사전통에 근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르크스주의가 조선반도의 역사전통에 의해 格義가 일어나고, 또 조선반도의 역사전통도 마르크스주의에 의해 격의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간접 접근의 방식으로 중국의 경우를 보면 다음과 같다. 중국공산주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주의 서적의 서구적 원의를 밝히는 작업보다는 마르크스주의 강령들이 중국사회의 내재적 문맥에서 의미하는 것을 밝히는 작업이나 그 漢譯된 마르크스주의가 중국 전통사상과 어떻게 관련을 갖는가 하는 것을 밝히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格義된 중국마르크스주의, 즉 마오이즘(Maoism)의 정체라 하여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중국의 마르크스주의는 그 지시체(reference)가 서구로 건너간 것이 아니라 곧바로 중국의 전통철학사로 올라가 버린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 수용에 있어서 이루어진 格義는 쌍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가 중국언어와 사상에 의하여 格義되었다고 한다면, 또 동시에 그 格義된 마르크스주의가 또 다시 중국의 전통사상을 格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모택동은 1940년에 쓴 󰡔신민주주의의론(新民主主義義論)󰡕에서 이러한 쌍방향 格義의 자세를 밝히고 있다.

  중국의 현재의 새로운 정치와 새로운 경제는 고대의 구정치와 구경제에서 발전해 내려온 것이다. 중국의 오늘날의 신문화는 고대의 구문화에서 발전해 내려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자신의 역사를 존중해야 하며, 역사를 割斷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존중은 역사에게 일정한 과학의 지위를 허락하는 것이며, 또 이것은 역사의 변증법적 발전을 존중하는 것이다. 옛을 찬양하고 지금을 비난하는 것도 아니고 어떠한 봉건적 독소를 찬양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2장의 분석에서 조선의용군이나 주인공이 자본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문제 삼은 것을 계급성에 근거한 것이라고 보는 것 보다는 역사전통의 윤리적 범주에 의해서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텍스트 주인공의 여러 행위 및 사유 역시 계급성에 의한 해석보다는 이런 역사전통에 기반된 윤리가 우세하다는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정교한 오해의 기술”에 의해 마르크스주의와 역사전통의 어떠한 부분이 서로를 格義시키는 과정만은 분명 있게 된다.

  아울러 언급한다면 김학철은 민족주의를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민족적 감정은 누구보다도 강하였다. 역사전통은 구체적으로 민족 구성원들에게 담겨있기 때문에 이런 정감은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이 극히 드물게 살고 있는 북경에서 살자니 사람이 마치 분재가 돼버린 것 같아서(뿌리가 땅속에 내리지를 못한 것 같아서) 마음 한구석이 늘 비어있던 터라 나는 그 (연변 조선족)자치주로 가기로 결정을 했다.

주덕해를 비롯한 몇몇 옛 전우들이 거기 있어서 반연이 좋은 것도 물론 한 이유였다.

  이런 민족적 감정이 단순히 정서적 차원의 그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보다 중요한 고찰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전통의 안목으로 살펴보는 작업을 계속 진행하여 그 실체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우선은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도록 한다.

  첫째, 신분과 계급이란 용어는 동양의 고유 개념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조선조와 중국 청나라는 중앙집권제에서 과거제도를 실행하였기에 신분제도를 파괴하는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본 텍스트의 주제적 층위에서 가장 근원적인 내용을 신분이나 계급성으로 구분하여 표현할 수 없다는 점을 밝혔다.

  둘째, 텍스트에서 조선의용군이나 작가의 ‘자본을 대하는 윤리적 태도’ 중 자본의 효용가치의 차원을 오인하였을 가능성을 알아보았다. 경제생활은 첫째, 인간이 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서의 기본 물질생활, 둘째, 등가 시장경제, 셋째, 부등가 교환 등 세 경제 유형이 있다. 텍스트에 등장하는 조선의용군과 작가가 첫째에 속하는 최소한의 물질생활 즉 <생존권 수호>를 두 번째와 세 번째와 혼동함으로써 계급성으로 오인하지 않았나하는 추측할 수 있다.

  셋째, 역사적 작가가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한다고 스스로 천명하지만 텍스트의 기본 내용은 이것을 그렇게 강하게 증명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오히려 그것은 역사전통 속에서의 기본 <공 : 사> 기본개념에 더 부합되는 점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정교한 오해의 기술”에 의한 格義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넷째, 근대에 식민지 조선반도는 <국갇민족·자본>의 삼위일체에 의한 일제 침략으로 말미암아 고난을 겪게 되었고, 시대의 욕망은 생존권 및 정권창출이었음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러한 생존권과 정권창출을 욕망하는 과정에서 역사적 작가나 텍스트의 조선의용군이 ‘대한’을 ‘제국’으로 잘못 이해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즉 <국갇민족·자본>의 삼위일체가 식민지 조선반도에서 작동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이해하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일본제국주의와 ‘대한제국’은 서로 다른 배경에 있었다. 하나는 침략자고 하나는 그 침략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을 소유한 주체였던 것이다.

  다섯째, 김학철의 󰡔격정시대󰡕를 빨치산 문학의 계보로 정의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지는 않다고 정리하였다. 왜냐하면 빨치산 문학의 계보로 되려면 적어도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한 소설이 되어야 하는데 󰡔격정시대󰡕는 이 점을 잘 증명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