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국적 허용의 의미와 그 범위의 확대 필요성

석동현 서울고검 송무부장 (검사장)

2008-05-23     동북아신문 기자
Ⅰ. 시작하는 말

법무부는 지난달 30일 대통령이 참석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서 최첨단 과학기술자 등 외국인 인재가 우리나라에 귀화하려는 경우와 선천적 이중국적자 등 비자발적 이중국적자가 병역을 마친 경우에 이중국적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보고했다고 한다. 법무부에서는 이미 작년 10월 외국인 정책위원회에서도 유사한 내용을 거론한 바가 있다.

다들 알고 있는대로 이중국적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몰이해와 부정적 정서는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이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국적법이 이중국적을 방지·억제하기 위해 두고 있는 규제조항은 그 경직성 측면에서 유례가 없는 입법례에 속한다.

사실 우리나라가 이중국적을 허용할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이중국적자는 생기게 돼 있다. 그러므로 제한적이든 전면적이든 이중국적을 허용한다는 것은 이중국적을 새로이 인정해주겠다거나 당사자에게 특혜를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중국적자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불합리한 규제를 폐지 또는 완화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법무부가 일정한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제한적이나마 이중국적을 허용하겠다는 것은 상당히 진일보한 조치로 환영할만 하다. 다만 법무부가 구상하는 사람들보다 이중국적 관련 규제의 완화가 더 시급한 대상이 많다는 점에서 차제에 그 허용의 폭을 넓혔으면 하는 생각이다.

Ⅱ. 이중국적 관련 규제의 완화가 시급한 대상과 그 이유

첫번째는 국내에 살고 있는 국제결혼 가정 자녀들의 국적문제이다. 지난 10여년간 우리 국민이 중국 조선족이나 동남아 국가 여성과 결혼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정부통계에 의하면 2005년도 한해 전체 혼인신고 건수의 13.6%가 국제결혼이다. 특히 농어촌 지역이나 도시 중하류 소득 계층의 국제결혼 비율은 거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이다.

문제는 1997년 부모양계혈통주의 개정에 따라 국제결혼 가정에서 외국인 부 또는 모가 한국에 귀화하기 전에 출생한 자녀중 상당수는 한국 국적과 외국 국적을 함께 취득한 선천적 이중국적자에 해당될 수 있으며, 이들에 대해 현행 국적법상 국적선택제도에 따른 규제가 적용된다는 점이다.

이들의 경우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성장했고 앞으로도 한국인으로 살아갈 사람들임에도 만 22세 전까지 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택하는 절차를 마치지 않으면 한국 국적을 상실하게 된다.

우려되는 점은 상당수의 국제결혼 가정에서는 자신들의 자녀가 이중국적이라는 사실 자체를 모를 수도 있고, 또 안다 하더라도 현행 국적법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외국 국적 포기사실 증빙 서류를 갖추고 국적선택신고를 하는 절차가 매우 까다로운 실정이다. 그로 인해 본인 의사에 관계없이 한국 국적을 상실하게 된다면 이중국적자의 수는 일부 줄겠지만 본인이나 그 가족에게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국 국적의 박탈로 이어지기 쉬운 현행 국적선택 제도를 아예 폐지하거나 혹은 대폭 손질해 국제결혼 가정 자녀들의 한국 국적선택 절차와 방식 등을 간소화하고 최소한 본인의 의사에 반해 한국 국적을 박탈당하는 일은 없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

두번째는 미국이나 캐나다와 같은 속지주의 국가에서 우리 국민의 자녀로 출생한 후 부모와 함께 귀국해 국내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문제이다.

이들중 부모의 빗나간 과욕이 빚는 이른바 ‘원정출산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며, 절대다수는 장단기 이민, 유학, 연수, 주재원 등으로 외국에서 지내는 동안에 현지에서 자녀를 출산한 후 귀국한 경우로 봐야 한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도 법이 정한 기한 내에 외국 국적을 포기않았다는 이유로 한국 국적을 박탈하거나 그밖의 이런 저런 규제를 가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한국 국민의 수를 줄이는 결과만 가져올 뿐 합당하지도 않고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 이들도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와 마찬가지로 한국 국적선택방식이나 절차를 간소화 하는 등으로 최소한 본인의 의사에 반해 한국 국적을 잃게 되는 일은 없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이제 이중국적자는 소수의 특별한 존재, ‘가진 사람’이 아니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서 이중국적에 관한 규제의 합리성 여부를 살펴야 할 것이다.

세번째는 재외동포들의 문제다. 재외동포는 외국에서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 장기 거주하는 재외국민과 거주국에 귀화한 한국계 외국인이 모두 포함된다.

재외국민중 외국에 장기간 영주해서 그 나라에 귀화할 여건이 되는 사람중 상당수는 외국 국적을 취득하면 곧바로 한국 국적을 상실하게 돼 있는 국적법 조항 때문에 귀화를 결심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외국에서 수십년을 살면서도 그 나라 기준으로는 외국인 신분이어서 유무형의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외국 국적을 얻더라도 우리 국적법에서 본인이 원할 경우 형식적으로라도 한국 국적만은 유지시켜 준다면(단, 한국 내에서의 공민권 행사는 일부 제한하더라도) 많은 재외국민들이 거주국에 귀화해서 그 나라의 공직에도 진출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된다면 현지 동포사회나 모국의 국제사회 내 권익 향상에 기여할 여지도 많아질 것이다.

한편 한국계 외국인들이 고급인재로서 국내에 스카우트 되는 경우 외에도 영주귀국, 국내투자 등의 목적으로 한국 국적을 회복하려면 우리 국적법상 반드시 6개월 내에 외국 국적을 포기해야 한다. 그런데 외국 국적을 포기하게 되면 그 나라에서 수십년간 세금을 납부한 결과로 받던 연금이나 기타 복지혜택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별도의 생계대책이 있지 않는 한 영주귀국하고 싶어도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한국계 외국인의 경우 공직 등을 맡는 경우가 아닌 한, 외국 국적의 포기를 강요하지 않는 방향으로 국적회복 제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할 것이다.

Ⅲ. 맺는 말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중국적 문제만 거론되면 기회주의 또는 병역기피 문제를 연관시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순간에도 국내·외에서 출생할 때부터 한국 국적과 외국 국적을 동시에 얻는 선천적 이중국적자들이 계속 생긴다는 점, 한편 이중국적이라도 여자와 병역 연령을 넘긴 남자의 경우는 병역문제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역설같지만 선천적 이중국적자들을 빠짐없이 군대에 보내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제도적으로 이중국적을 허용해 주고 문제삼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 내에서 외국인 행세하는 것만 엄격히 통제하되, 그밖의 점에 있어서는 외국 국적 보유여부에 관계없이 한국민으로 취급해 주어야만 군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며, 병역을 마치기 전에는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 없게 하면 될 것이다.

이중국적을 허용하는 대표적 국가인 이스라엘이 외국에 사는 자국민들에게 외국 국적 취득여부에 관계없이 자국 국적을 계속 인정해 주는 첫번째 이유가 자국내 위급사태 발생시 병역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임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요컨대 법무부에서 소수에 불과한 우수 외국인력 또는 병역이행자만을 대상으로 이중국적을 허용할 것이 아니라 이제 곧 성년기에 접어들 국제결혼 가정의 자녀들을 비롯한 이중국적자 전반에 대하여 현재의 너무나 경직된 이중국적 규제조항을 시대 여건에 맞게, 또한 당사자와 그 가족의 불편을 감소시켜주는 방향으로 정비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본다 법률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