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100주년기념관, 재중동포들 "여기가 고향인데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2008-05-19     동북아신문 기자
우리가 합법적으로 산 건 딱 ‘두 달’ 입니다

 

 

 

   
▲ “여기가 고향인데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농성장 복도 벽에 부착된 구호가 불법체류 중국동포들의 절박한 심정을 대신해 주고 있다.
“17년간 산 땅을 무조건 떠나야 합니까?”

한․중 수교 전 입국한 중국동포의 강제추방을 반대하며 서울 종로 5가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관 3층 복도에서 4일째(19일) 농성 중인 40여명의 중국 동포들은 강제추방의 불안감을 옆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으로 애써 달랬다.

농성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50~60대 동포들은 허리통증과 감기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들이 더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단속반에 붙들려 강제출국을 당할 수 있다는 압박감이다.

   
▲ 김덕복(56. 길림성)씨는 한국에서 머무는 동안 이미 중국 가정은 파탄이 난 상태다.
“여기가 고향인데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농성장 복도 벽에 부착된 구호가 이들의 절박한 심정을 대신해 주고 있다. ‘중국동포들도 마음 놓고 조국에서 살고 싶어요.’ 농성장 벽에 부착된 중국 동포들의 절박한 구호가 이들의 마음을 대신 전해주고 있다.

쉰 살에 한국으로 와서 올해 68세가 됐다는 한 조선족동포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먼저 말을 건네 온다.

“얼마 전에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이제는 어머님 얼굴도 모르겠다’고 그래요. 손자도 있다는데 손자 얼굴도 보지 못했습니다. 손자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이게 말이 됩니까?”

여기저기서 가슴 근처까지 눌러두고 있던 말들을 한두 마디씩 흘러놓기 시작한다. “여기는 전부 생과부, 홀아비 뿐입니다.” “화병 없는 사람들이 없어요.”

옆에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던 최란(56세. 흑룡강성)씨는 할머니의 아들 이야기가 마음을 움직이게 했는지 “17년을 한국에서 보내는 동안 이미 중국의 가정은 산산이 쪼개졌다”는 말로 그동안의 서러움을 털어놓는다.

“이미 중국에는 가정도 없고 집도 없는데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살아도 여기서 살아야 되고 죽어도 여기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최씨는 그러면서 이제는 “중국말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여기’ 사람이 다됐다”는 말을 덧붙인다.

최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허영단(55. 흑룡강성)씨가 말을 받는다. 허씨는

   
▲ 허영단(55. 흑룡강성)씨는 얼마 전 딸 결혼식이 있었는데도 가지 못했다.
먼저 “거짓말장이가 다 됐다”는 말로 말문을 연다.

“지금은 어디 가서도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다 믿어요. 얼마 전에는 딸이 결혼을 한다니까 주위에서 축의금까지 다 보내 주더라구요. 식장까지 온다는 데 한사코 말렸어요. 딸이 결혼한다는 소식에 기쁜 나머지 주위 사람들에게 말은 했지만 엄마도 가지 못하는 결혼식이잖아요. 중국에서 하는데 불법체류자인 엄마가 어떻게 갈 수가 있겠어요. 결혼식 간다고 식당일을 3일 쉬기까지 했어요. 딸 결혼식인데 식당에 나오면...”

말끝을 흐린 허씨는 한국 생활 17년 동안 자신에게 남은 건 “서글픔이고 초라함이다”는 말과 함께 다시 눈가를 훔친다.

허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김덕복(56. 길림성)씨가 수첩을 꺼내 바닥에 펼친다. “이게 뭔 줄 아십니까. 각서입니다. 돈을 빌려준 남자를 검찰에까지 데리고 가서 받아낸 것입니다. 하지만 조선족에게는, 더구나 불법체류자인 조선족에게는 이런 각서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안 주면 그만입니다.” 김씨가 돌려받지 못한 돈은 그가 여기서 중국으로 가기 위해 몇 년을 쓰지 않고 모은 돈이었다.

   
▲ 최란(56세. 흑룡강성)씨는 “17년을 한국에서 보내는 동안 이미 중국의 가정은 산산이 쪼개졌다”는 말로 끝내 눈물을 보인다.
“그 돈만 돌려받기만 해서도 제가 이처럼 불법체류자 신분은 안됐을 겁니다. 벌써 중국으로 갔지.” 하지만 여기서 17년을 넘게 생활하는 제일 눈에 밟히는 것은 가족이다. 간병인을 하며 생활해 왔다는 이금순(54. 요령성)씨는 “작은 애가 7살 때 한국으로 건너왔는데, 그 아이가 26살이 될 때까지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다”며 눈시울 붉혔다.

복도 여기저기서는 순간 흐느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때 복도 맨 안쪽에서 한 아주머니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우리가 한국에 와서 합법적으로 산 기간은 딱 두 달입니다. 처음 들어와서 한 달, 그리고 연장해서 한 달...”

그 말이 모두의 가슴을 또 한 번 쳤는지, 이번에는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시선을 복도 천정으로 돌렸다.

모를 일이다. 우리는 지금 염치가 없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둔감한 대한민국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은 않은지. 그래서 우리는 지금 부끄러움을 느껴야 되는 것은 아닌지.

최모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