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다시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는가
<서울조선족교회 서경석 목사의 주장을 들어본다>
지난 5월9일 법무부는 지난 17년간 한국에서 불법체류 해 온 <한중수교 이전에 입국한 동포들>에 대해 선별구제 방침을 결정했습니다. 이들 중 1949년 10월1일 이전에 태어난 동포들, 늙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동포, 자녀를 키우고 살고 있는 동포, 중병으로 고통을 겪는 동포들에게 H-2비자를 주어 한국에서 5년간 체류하도록 허용하고 그 외의 동포들은 전부 중국으로 추방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로 인해 수교전 입국자의 30%는 구제받게 되었으나 남은 사람들은 다 추방당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방침을 도저히 찬성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국내에 체류하는 조선족에게 온정적인 조치를 취해, 점차 한국에서 살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그 경우 제일먼저 혜택 받아야 할 사람들이 바로 한국에 체류한지 17년이 넘는 <한중수교 이전에 입국한 동포>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명박 정부가 이들을 추방한다면 이는 앞으로 다른 동포들도 전부 추방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에 대한 추방조치가 다른 동포들에 대한 온정적인 조치를 불가능하게 하는 전례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수교전 입국자>에 대한 이번 조치를 격렬하게 반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조선족 동포사회는 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동포사회가 급속도로 소멸의 길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포들이 한국 기업을 따라 연변에서 상해, 청도 등 대도시로 이동하고 있는데 조선족 동포들은 자녀들을 전부 한족학교에 보내고 있어 자녀들이 급속도로 우리말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족들은 중국에서 차별을 받고 있지 않아 우리말을 잃어버리면 곧 바로 漢族의 일원이 되고 거대한 중국의 바다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조선족들이 이러한 위기를 알면서도 자식들을 한족학교로 옮기는 이유는 자식이 漢族학교를 나와야 중국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한국의 조선족정책도 큰 잘못이 있습니다. 조선족들은 중국말이 능숙하지 못하기에 중국에서 취업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를 쓰고 한국에 와 돈을 벌려합니다. 그러나 불법체류로 추방당하면 ‘내가 잘 살지 못하는 이유는 중국말을 잘 하지 못했기 때문이므로 내 자식은 반드시 중국어를 잘 하도록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자식을 한족학교에 보냅니다.
우리는 이런 조선족 사회의 위기를 방치할 수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앞으로도 계속 13억 중국시장에 의지해서 사업도 하고 물건도 팔며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2백만 조선족가 너무도 필요합니다. 이들이 통역을 하면서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를 연결시켜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선족사회를 존속시키자면 그들이 최대한으로 한국을 왕래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부유해져야 합니다. 일정기간 한국에 체류하면서 돈도 벌고, 한국어도 잘하고, 민족의식도 생겨야 합니다. 앞으로 조선족은 중국에서 흩어져 살더라도 자식들을 일정기간 한국에 보내 중고등학교 혹은 대학교를 다니게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조선족 동포에게 자유왕래, 자유취업, 자유거주를 허용하고 한국에서 기술을 배워 다시 중국에 돌아가 더 잘 살게 되어야 합니다.
또 동포들이 한국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게 하기 위해서는 2백만 조선족 중에 30만 정도는 한국에서 터를 닦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들이 한국민과 조선족을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하여 2백만 조선족 전체가 우리말을 유지하도록 만들게 됩니다.
앞으로의 조선족 정책은 불법체류자를 법으로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조선족 사회를 유지시키는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그 동안의 조선족 정책은 동포들을 한국에 못 들어오게 하고, 또 들어와서 불법체류 하는 동포들을 내쫓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조선족의 漢族化를 재촉할 뿐입니다.
조선족사회가 유지되면 한국경제에도 활로를 가져다줍니다. 과거에는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겨냥해서 제조업이 중국에 진출했지만 앞으로는 중국의 소비시장을 겨냥해서 소비재 산업이 중국에 진출해야 합니다. 조선족을 사업파트너로 삼아 프렌차이즈 사업을 중국에 진출시켜야 한국경제가 크게 성장합니다.
앞으로 중국이 잘 살게 될수록 한국에 오려는 동포의 숫자가 줄어들 것입니다. 때문에 지금 동포들을 잘 대해 주어 동포들이 한국인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해야 합니다. 외국인 노동력이 필요하면 조선족부터 써야 합니다. 우리는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사회통합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한국은 지금 인구감소를 걱정합니다. 해결책은 한국인의 출생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조선족 동포로 하여금 漢族化하지 않고, 일부가 한국국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조선족은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일제시대에 도저히 살 수 없어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후손입니다. 그들은 해방직후 귀국길이 막혀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이들의 귀국문제가 반드시 논의되었어야 했지만 동포들의 대량귀국을 원치 않았던 한국과 중국은 이들의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외면하였습니다. 그후 외국인노동자로 한국에 온 조선족들의 강력한 투쟁의 결실로 이들 중 일부가 국적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지금도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주장하면서 미주동포와 동일한 대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2백만 조선족사회를 유지하는 방안은 단 한 가지, 조선족사회와 한국사회와의 관계를 끊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점을 5만명의 국내 화교와 대만과의 관계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국내화교들은 자식들을 대만에 보내어 공부시킵니다. 조선족도 자식들을 한국에 보내어 중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공부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조선족 사회의 소멸을 막을 수 있습니다.
물론 조선족에게 영주권을 주는 정책은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국의 노동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한중수교 이전에 입국하여 이미 17년 동안 한국에 체류해 온 동포들부터 영주권을 주어야 합니다. 영주권이 아직 이르다면 우선 H-2비자라도 주어야 합니다. 지금 정부는 이들 중 30%가량에게만 H-2비자를 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수교전 입국자 전부에게도 주어야 합니다. 정부가 조선족에게 온정적인 대책을 세운다면 제일 먼저 혜택을 받을 사람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이들을 추방시키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온정적인 대우를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미국과 일본에 거주하는 동포들과는 달리 중국과 구 러시아에 거주하는 동포들을 차별해 왔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차별적인 재외동포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지난 노무현 정부는 재중동포에 대한 차별을 시정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 왔습니다. 그래서 불법체류자에게도 온정적인 조치를 취하여 H-2비자를 주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하였고 나아가 밀입국자와 가짜 이름으로 입국한 사람들까지 다 구제해 주었습니다.
또 수교前 입국 동포들에 대해서도 인도적인 차원에서 이들을 강제출국 시키지 않았습니다. 법무부가 중국동포가 조국에서 불법체류자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차별로 인한 제도적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또 이들은 조국에서 살 수 있는 천부적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암묵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후에 이런 동포포용정책은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이번 법무부의 방침은 법 지키기와 상관이 없습니다. 정말 법 지키기가 중요했다면 자녀가 있으면 구제하고 그렇지 않으면 추방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부를 구제한 것은 국민의 분노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딱한 사람들을 봐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방침은 동포포용정책에서 동포포기정책으로의 전환을 의미할 뿐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자기 동포를, 그것도 17년 동안 범법행위 없이 살아 온 동포를 불법체류자라고 추방하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법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국익의 관점에서 조선족정책을 세워야 합니다.
저는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하에서 조선족 동포들의 권익옹호를 위해 힘써 왔습니다. 이를 위해 10일간, 17일간, 23일간, 10일간, 18일간 도합 다섯 번 단식투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수교전 입국자들을 추방시킨다면 저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고 국내체류 동포들을 추방시키는 것이 과연 국익에 부합하는가하는 문제를 행동으로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조선족 동포를 모아 촛불시위를 하고 단식투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족들은 전부 이 문제에 힘을 모을 것입니다. 수교전 입국자에게 시혜를 주지 않으면서 방문취업제로 온 사람들에게 시혜를 줄 수는 없기 때문에 동포들은 전부 이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할 것입니다.
수교전 입국자 전원에게 영주권을 주는 것이 당장 불가능하다면 H-2 비자를 주어야 합니다. 일부에게만 선별적으로 주면 안 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단식을 피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전혀 원하는 바가 아니지만 환갑의 나이에 다시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몸을 상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기를 호소합니다.
2008년 5월 20일
서경석 목사
5월 18일(일)부터 매우 일요일마다 저녁 6시에 서울조선족 교회 앞에서 촛불집회가 모입니다. 지난 18일에는 雨중에도 3백명의 동포들이 촛불집회를 가졌습니다. 이번 25일에는 더 많은 동포의 참여를 호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