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춘부도통아문(1881-1909)
육삼의 우리민족 이주사진 기행
2008-05-17 주성화
훈춘부도통아문(1881-1909) 옛터 1714년 간도에 훈춘 협령을 설치, 1859년 부도통급 협령으로, 1881년 훈춘부도통으로 승급시키고 간도의 대부분 지역을 관할하게 하였다. 훈춘부도통아문의 위치는 현 훈춘진 정화가이다. 부도통아문은 7칸으로 된 대문, 3칸으로 된 의문, 동쪽모서리에 각루 1개, 그리고 대청과 사랑채로 되었다. 1889년에 대문 좌 위쪽에 포대를 하나씩 앉혔으며 아문 밖 서남쪽모서리에 5칸으로 된 감옥을 지었다. 부도통부는 아문의 뒷 뜨락에 있었다. 1900년 짜리러시아가 불을 질러 대부분 건물이 없어지고 현재 아문 사랑채厢房의 일부분이 남아있다. 훈춘부도통아문의 제1임은 依克唐阿이다. 광서 15년(1889년), 이크탕아가 흑룡강 장군으로 승급한 후 정면우로와 남강 6개 사의 군민들이 훈춘에 있을 때 그의 공덕을 찬양하여 세운 것이다. 비석은 할바령 영마루 옛길 남쪽에 세워졌다. 비석몸체와 개두는 흰 돌로 조각되었고 롱대석은 사암으로 만들었는데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정면 중간 아래 부분의 네모난 테두리 안에 名留千古라는 글자가 새겨져있다. 비석은 1978년 여름, 대석두진중학교 한 교원에 의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