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봄의 나무(외 다수)
육삼의 문학노트
초봄의 나무
춥겠다.
알몸으로 버티고 서서
눈물 없이
쓸쓸함이
한없이 괴롭겠다.
허전한 마음 끝없겠다.
여울져 오는 벌레의 몸 뒤짐도
담을 길 없고
거친 바람의 손목도
잡을 길 없어
늘쌍 보일 듯한 거리 밖에 홀로 있어
아름답겠다.
충실하겠다.
뿌리는 살아서 굵어지고
봄빛이 의상처럼 감겨지고
무수한 함성이 달려오고
누군지 잊혀지게
어여쁘겠다.
행복하겠다.
그리고 또
행복하겠다.
봄비
파도에 보서지면
하얀 꿈이
저 편서 잠자다
진실을 가로 찔러
모락모락 망울이 피어나고
잊혀진 추억이 땅 헤집고
꽃술은 빗속에 닿다.
주름살 지우며 석양이 거둬지고
연소하는 지심의 표층이
溫柔하게 장식되고
병아리 같은 걸음마
하늘 얼굴 문지르다.
피곤이 몰려들어
두 눈 고이 감다.
어느 하루
짧은 오후의 한토막이
진달래 가지 끝에 쌓이어 포근하다
투명한 하늘이
차분히 내려 앉아
파랗게 숨쉬고
바람이 층계를
훨훨 내리다
대화가 이루어지고
꿈이 이어지고
어느 오후엔
연분홍빛이 어리고
구름이 뽀얗게 얹혀지다.
흐린 날
한밤중 꺼져버린 흰 재처럼
쓰러지는 낙조 밟는 조수처럼
저절로 떨어지는 노란 꽃잎처럼
매달려 숨 가쁜 맑은 이슬처럼
한여름 밀려드는 푸른 냇물처럼...
키 높이 하늘이 허무하고
숨 쉬면 푸름이 슬퍼지고
번뇌는 게으름처럼 소리 없이 쌓이고
고달픔은 계집처럼 독 오르고...
하늘 나는 새
갈 곳은 어디?
영원한 자세
바람 가르며
신의 눈빛이
가랑이피 스쳐 化되면
나는 하늘의 깊이에서
지그시 눈 감다
불타 남은 옛 자리에
파의 물질이 밀려오고
의념은 스스로 기어나와
집게 같은 삼위공간을 벗어나다.
시간을 타고 앉으면
층층의 울타리 안에서
소리 없는 장난이 심해지고
나는 금자탑 아니면
어느 운하를 마주 향해
눈먼 학처럼 웅크리고 앉아
천서를 읽듯이 늙어가고 있다.
못다 지은 꽃의 아름 속에
부푼 육체를 털어놓고
어느 새벽 같은 점에서
어머님 자궁으로 돌아가다.
비어 있는 묘지
부연 대기의 고압 속에
추상의 두께로
이승과 격려하며
영혼의 독재 꿈꾸다.
아리따운 육체는 흙으로 귀속되고
진공의 장에서
마음은 실종의 대화를 시작하다.
비어있는 묘지의 울타리에
축축한 바람이 불어와
때때로 하늘에 얹히고
초롱같은 밤의 벌레들이
저승의 소식을 이승에 전하고
별빛은 물질의 근본을 읽다.
생각날 때면
공중에 倒立하여
신경 쉬우며
낯설어지는 감각 되찾다.
나와의 대화
긴 밤 거룩한 목숨을 패며 앓다가
새벽이면 영글어 오는 하늘 열리고
가을 열매 빛깔이 전도되어
닳아버린 腦皮層이 탈피하다.
제법 아름다운 그림은
햇빛의 매듭에 걸어놓고
참말이지 어느 날은
안으로 끝없이
눈먼 밤길을 헤치다.
찬 손끝이
닿아지는 어느 곳에서
태공처럼 날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