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지 못할 꿈을 쫓는 인간존재의 허무(심사평)
전미경의 소설 평
《밤이여, 나뉘여라》는 인간의 내면에 자리하고있는 사랑의 감정에 대한 은밀한 성찰의 기획을 려로의 구조를 통해 서사화하고있다. 또한 작품에 인용되여있는 《안데르센의 꿈》처럼 도달할수 없는 대상에 다다르고자 하는 인간 의지에 대한 덧없음을 작가 특유의 흡입력있는 문장으로 보여준다.
영화감독인 《나》는 함부르크에서 자신의 영화시사회가 열리는것을 맞아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옛친구 P를 만나기로 한다. 미국 유명병원의 외과의로 이름을 날리던 P는 돌연 노르웨이로 거처를 옮겨 신약개발에 참여하고있다는것이다. 그러나 그의 집에서 머무르는 단 3일동안 자신의 선망의 대상이였던 P가 알콜중독자가 되였음을 알게 된다.
기억과 욕망이라는 신의 령역까지 인간의 힘으로 다스리려 하면서 이루지 못할 꿈을 쫓는 인간의 허망함을, 해가 지지 않는 북구의 황량한 풍경과 함께 그려낸다. 과거의 P의 모습이 플래시백되는 가운데 《내》가 그토록 선망했던 P의 비극적실체가 밝혀지는 과정이 극적으로 표현되여있다. 한사람을 그토록 찬란하게 밝혔던 천재성이, 그 빛을 모두 발하기도전에 급속히 사그라드는 P의 삶을 통해 인생의 비극성에 대한 강렬한 슴픔이 이 작품에 녹아있다.
- 심사위원회 총평
빛과어둠의미학을바탕으로한서사기법의탁월한성취
《밤이여, 나뉘여라》에서 보여주는 세계는 빛과 어둠을 경계지을수 없는 북구의 밤이다. 이 특이한 공간에 소리없는 절규로 자리하는것이 뭉크이다. 잃어버린 뭉크의 그림을 현실의 공간으로 끌어내려놓고있는 이 소설에서 우리는 인간의식의 파멸과정을 직접 보게 된다.
저명한 의사의 알콜중독이라는 상투적인소재를 놓고 펼쳐내는 환상적인 려로는 감정의 심연에 자리하고있는 사랑의 의미를 확인하면서 그 종점에 도달한다. 여기서 서사의 긴장을 살려내는 기법의 성취가 무엇인가를 알수 있다.
-심사위원 이어령(문학평론가)
천재와아이러닉한반전
《밤이여, 나뉘여라》는 백야와 뭉크의 그림 등의 이국정취로 이끌어가는 이향적인 공간의 시학과 더불어 아이러닉한 반전구조로 전락하거나 와해되여가는 천재적인 우상의 초상을 제시한 작품이다. 병의 천재화 또는 천재의 병리화 현상을 근원적인 모티프로 한 가운데 병적징후에 의해서 천재의 우월성이 한갓 초라하고 궁색한 중독자의 상태로 일그러지고 허물어져가는 소멸의 비극성을그린것이다. 여기서 자학과 타학의 사이를 오가는 인간실격의 현장을 확인시켜줌으로서 철저하게 어긋난 관계와 끝이 없는 욕망의 파괴성과 무서움을 환
기시켜준다. 이와 더불어 선망과 경쟁의 대상으로서 자아의 욕망이 대리투사
된 또 하나의 자아요, 자신의 거울상인 대상의 해체로 인한 자기환멸의 허망한 반응과 내적붕괴감을 그려냄으로서 이끌리기만 해온 검증자로서의 서술자 자신에 대한 반성적검증도 함께 병행시키고있다.
뿐만아니라《나》와 P와 M(그 안해)이 이루는 갈등의 삼각형의 한모라 할수 있는 M의 질식할 《절규》상태도 양각적으로 형상화한다. 따라서 10년의 시간적거리를 두고 3인이 이루는 사랑의 경합적 삼각형의 삼각관계를 립체적으로 이중화하는 위상반전의 구도화의 구성형태인것이다. 심신의 장애현상인 알콜중독자도 현대성의 본질인 병의 두 얼굴에서 가치화보다는 비인간화 효과에 기움으로서 오늘 우리의 현대적 삶의 조건과 상태가 과연 《건강한가? 병들었는가?》란 진단적인 이분법의 물음을 던져주고있다. 특히 X교수문제로 영웅 만들기와 허물기가 사회적사건이 되고있는 오늘의 현상황에서 우의적인 은유화의서사로서 다가오는것이다. 관계의 삼각형구도, 반어적전도, 불일치화와 대비,미래예시적인 장치와 복선의서사법과 함께 신선하고 감각적인 전경화된 묘사의 기법에 의해서 서사구조 전체가 안정된 형태로 전개된 작품이다. 그럼으로써기존의 서사방법을 독특하게 재편성하거나 새롭게 리모델링하는것에 능력을 발휘하고있다.
-심사위원 이재선
(문학평론가, 서강대 명예교수)
사랑에대한미망,혹은소리없는절규
《밤이여, 나뉘여라》는 인간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하고있는 사랑의 감정을 진지한 언어로 추적하고있다. 소설의 이야기에서 활용하고있는 려로의 구조는 의식의 내면을 향한 은밀한 성찰의 기획을 서사화한다. 해가 지지 않는 북구의 황량한 풍경을 배경으로 이야기에 동원하고있는 여러가지 모티프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병치와 대조의 효과를함께 빚어낸다. 사랑의 기억과 그 욕망을 소재삼아 이 소설이 도달하고있는 참주제는 비극적이다. 사랑에 대한 미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채 나락으로 빠져든 인간의 파멸을 보여주고있기때문이다. 리성적인것과 감성적인것의
대결구도에서 인간은 언제나 감성적인것에 얽혀 삶을 탕진하는법. 감성의깊
은 늪에서 건져올리는 사랑의 의미는 오로라처럼 환상적이지만 그 소리없는 절규는 파멸의 현실앞에서 더욱 절실하다. 오늘의 한국소설이 가벼움의 서사에 빠져들고있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 작품은 소설적주제의 진정성을 새로이 평가해볼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기법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무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던 작가의 기존작품들의 한계를 한단계 넘어서고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밤이여, 나위여라》를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하는데에 주저하지 않은것은 이같은 소설적성취에 전적으로 동의했기때문이다.
-심사위원 권영민
(문학평론가, 서울대교수)
깨달음을 거부하고 삶의 자리에
천부적재능, 우수한 두뇌를 타고나서 힘들이지 않고 인생의 고지를 선정하는 사람과 그와 겨룸으로써 자기존재를 확인하는 사람 사이의 평생에 걸친 긴장관계를 다룬 소설은 이전에도 많이 있었다. 그럼에도 정미경의 《밤이여, 나뉘여라》는 《절규》에 그토록 많은 련작이 있을수밖에 없는것과 같은 리유로 인간본질의 비극을 그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날카롭게 천착하고있다. 그림이 도난당한 빈 자리에 관객이 자기의 얼굴을 놓음으로써 새로운 《절규》가 탄생하듯이.
화자인 내가 평생의 우상이였던 P를 찾아가는데서부터 시작되는 이 소설의 이야기뒤의 진짜 이야기는 《나》의 가슴을 소리없이 펑펑 뛰게 하는 긴장감이다. 《나》의 내면정서이면서 동시에 독자에게도 전이되는 그 긴장감은 《내》가 P에게 씌운 자기욕망의 신기루가 걷힌 뒤에도 깨달음으로 바뀌지 않는다. 존재의 자기증명이 가장 극명해지는것은 무엇을 이루었느냐 하는 결과로서보다 긴장감을 《사는》 바로 그때이기때문이다.
-심사위원 서영은(소설가)
나를 인도하는 빛
《밤이여, 나뉘여라》는 차근차근 밟아간 정공법이 돋보이는 소설이여서 나는 기럭아비처럼 발걸음을 모두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알코홀릭의 사내가 절규하며 모습을 드러내는데는 그만 두눈을 감는다. 모든 좋은 소설은 읽는 사람을 작품속에 동참시킨다. 수많은 뭉크를 만나 어떻게 이 절망을 빠져나갈가 허우적거리는 내앞에 어디선가 빛신호를 보내온다. 또다른 뭉크의 얼굴! 나타나 나를 인도한다.
-심사위원 윤후명(소설가)
절실하지만 서늘하게, 진지하지만 비켜서서
-문학의 한 태도
정미경의 《밤이여, 나뉘여라》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소설이 갖춰야할 여러 가지 덕목을 골고루 갖추었고 정석대로 밀고나가는 성실함과 진지함이 큰 장점으로 여겨졌다. 또한 다양한 문화적 기호와 자료적 지식이 적절히 배치되여서사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매력적으로펼쳐지는 이국의 려정을 배경으로 마치 파국을 예고하듯 등장인물사이에 점점 고조되는 긴장감이 이 소설을 끝까지 흥미롭게 읽도록 만들어준다.
-심사위원 은희경(소설가)
존재의 허무, 그 황량함의 보고서
정미경의 《밤이여, 나뉘여라》는 우선 스케일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소설의 구조 자체가 그러하고 일견 익숙한듯하면서도 형상화하기 힘든 《천재의 질병화》라는 주제를 다루고있다. 전작들에서 보여준 작위적인듯한 《빡빡함》에서 벗어나 유연한 품새를 갖췄다는 고른 평을 받았다. 또한 이 작품이 앞으로 작가의 《터닝 포인트》가 될거라는 의의를 두고 거듭 얘기했다.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일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되풀이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의대를 졸업한 뒤 영화감독으로 변신한 《내》가 LA에서 잘 나가는 외과의사로 지내다 어느날 면역학연구를 위해 노르웨이로 옮겨가 사는 친구 P를 방문하는것이 이 소설의 중심줄거리다.
그리고 나와 P사이에 한때 내가 사랑했던 녀자이자 현재 P의 안해인 M이 등장한다. 독일 북부 키일에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려로형 구도속에 북구의 황량한 풍경이 한 인간의 소멸화과정과 잘 겹쳐져있다. 천재 또한 《아웃사이더》에 속하는 종족일가? 그 내면의 허무를 들여다보기가 이 소설의 참주제일것이다. M과 함께 찾아간 뭉크미술관에서 마주친 《절규》와 현재의 M를 상징하는 《마돈나》. 그 관계들사이에서 전염병처럼 번지는 존재의 허무. 다음날 이 두 작품이 도난당한 뒤 내가 그곳(운자 크레보)을 떠나오면서 소설은 비로소 완성된다. 수인의 밤처럼 나뉘여지지 않고 질기게 이어지는 백야의 고통이 서늘한 여운으로 길게 남는다.v
-심사위원 윤대녕(소설가)
(도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