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땀으로 행복빚는 젊은이
- 맨주먹으로 열심히 살아 장가도 들고 슈퍼도 경영 -
2004-02-16 운영자
그가 바로 로투구진에서 맨주먹으로 연길에 들어와 마른일 궂은일 가리지 않고 자금을 축적해 현재 철남1선종점지역에서 24시간 슈퍼를 운영하고있는 김덕수씨(36살)이다.
김덕수씨도 한때는 미래에 대한 불확신감으로 방황한적이 있었다고 한다. 술에 절어 "노세 노세 젊어서 놀이..."로 젊음의 정열을 묵새기기도 하고 잔치집, 생일집에가 취해 란동을 부리기도 했으며 싸움질을 해 적지 않은 보상금을 물기도 했다.
그러던 그에게 할빈고모의 출현은 인생의 분수령으로 되었다. 고모는 63세의 고령임에도 연길기차역부근에 10여평방메터되는 세집을 맡고 기차역부근의 자그마한 골목에서 과일장사를 벌려갔다. 할빈시에 자기 집도 있고 퇴직금도 나와 만년을 편안히 보낼수도 있었지만 더욱이 자식들이 이젠 효성하겠다며 극력 만류해도 나절로 벌수 있을 때까지만 벌어보겠다고 나선 고모의 행동에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되었다.
"해보자. 오금도 옮겨놓기 힘들어하는 고모도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새파랗게 젊은 내가 맨날 빈둥빈둥 놀면서 부모님한테만 의지할수 없지 않는가? 열심히 일하고 사노라면 앞날도 보이겠지."
1995년도 막가는 겨울철에 그는 형님 김덕지(41살)씨와 함께 과일장사를 벌려나가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고모가 건강상 원인으로 할빈에 돌아간후 이들은 생존의 랭혹함과 고독감을 뼈저리게 느꼈다. 쌀살 돈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세집값을 낼 시간도 아득바득 다가온다. 석탄도 이제 곧 바닥이난다. 낯설고 물선 고장이라 어디에 가 도움을 청할곳도 없다.
김덕수씨는 그때 일을 회상하면서 "젊은 혈기 하나만을 믿고 낯선 고장에서 삶을 개척한다는 것이 그처럼 어려운걸 그때야 알게 되었습니다. 랭혹한 현실로 하여 더욱 분발하게 되더군요"고 한다.
이때부터 이들은 일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하기 시작했다. 낮에는 삼륜차를 갖고 과일도매시장에 가 과일을 도매해와 10여평방메터밖에 되지 않은 세집에 쌓아놓은 후 다시 역전에 가 짊싣기, 석탄실이, 나무부리우기, 구들고치기, 층집에 쌀을 메여올려다주는 등을 가리지 않고 하고 밤에는 낮에 도매해온 과일을 싣고 철남야시장에 가 밤 12시, 지어 새벽 1시까지 팔기도 했다. 이처럼 마른 일 궂은일 가리지 않고 한 보람으로 일정한 자금을 모으게 되었고 통이 크게 과일장사를 벌려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이듬해부터 당지의 6집의 수박밭의 수박을 도거리로 사다 철남야시장에 팔기도 했는데 이곳에서 수박무지가 가장 큰 과일상으로 되었다.
언제부턴가 너무나 열심히 살아가는 그이 모습을 눈여겨 지켜보는 로인 한분이 있었다. 1999년 깊어가는 가을의 어느 하루, 로인은 김덕수씨를 조용히 불러 그의 신상에 대해 일일이 물어본후 너무나 열심히 살기에 참된 처녀를 소개하겠다며 자기 딸을 소개해주었다. 이렇게 만난 두 청춘남녀는 점차 열애에 빠져 이듬해 결혼하고 복스러운 아들까지 보았다.
한가정의 호주로 된 김덕수씨는 더욱 열심히 일했는데 조양천진의 한 포장기계공장에 가 전기 용접도 하고 보이라불도 땠으며 양고기뀀점에서 일하기도 하고 상점에서 일하기도 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아 드디여 지난해 12월 19일 철남 1선종점부근의 급유소 동쪽에 있는 슈퍼를 임대맡았다.
이 슈퍼를 임대맡은 후 김덕수씨는 더욱 바빠졌다. 비록 아버지와 형님 김덕지씨가 와 도와준다고 하지만 과일, 채소, 식품, 술, 담배 등을 빠짐없이 구입해야 하고 하루 24시간 영업해야 하기에 집에 가 귀여운 아이를 안아볼 시간조차 없어 안해가 아이를 데리고 와야 아이의 얼굴을 잠깐 볼수 있다고 한다. 그는 일이 힘들고 고달픈 것은 참고 견딜수도 있지만 잠을 마음껏 자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고역이라 한다.
더 큰 슈퍼를 갖는 것이 꿈이라고하는 김덕수씨는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뛰고 있다. <연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