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취자, 우리는 누구인가?(6)
2월 7일, 한국에 와서 처음 맞는 음력설이다. 회사에 다니거나 노가다에 나가는 남성들은 5일정도, 음식업에 나가는 녀성들은 고작 하루뿐이지만 명절을 맞는 분위기만은 짙었다. 멀리 중국 고향에 있는 친척들에게도 전화로 명절인사를 하느라 분주했다.
설명절이라지만 중국에 있을 때처럼 대가정이 모여앉는 일은 드물다. 15~25만원짜리 세집이라 작아서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단란히 모여 앉을수가 없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모임이라지만 식당에서 1차, 노래방에 가서 2차를 걸치고 그대로 헤여지면 끝이라고 한다.
필자는 설날 아침, 서울에 도착하여 둘째 매형과 함께 설을 쇠였다. 사돈들이 모였지만 이전부터 면목을 아는 관계로 그닥 어색하지 않았다. 그들이 허물없이 터놓는 이야기중에 부부지간에도 일년에 두번이나 만날가말가 한다는 바깥사돈의 말에 너무 놀랐다. 울산건축현장에 가서 인터리어를 하는 사돈은 가담가담 휴식시간도 있지만 울산에서 서울로 왔다 가는 교통비와 시간때문에 음력설과 추석에만 집에 와서 안해를 만난다고 한다. 서울부근에서 일하면 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건축현장이란것이 어디 딱 한곳에 있는것도 아니라서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부부간이 함께 한음식점에 다니는 매형의 동생내외는 그래도 괜찮았다. 친척방문으로 2년전에 들어와 서울 잠실역부근에 자리잡은 그들은 부지런히 일하여 빚도 물고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고있었다. 매형의 제수분은 하루도 휴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저녁 10시에 나가 아침 10시에 들어오는데 온 하루 누워자도 잠이 모자라는 기색이였다. 그러면서도 어쩌다가 이렇게 많은 친척들이 모였다고 색다른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했다. 사돈네 부부는 이제 1년만 더 일하고 중국에 돌아가서 치킨점을 경영하겠다고 하는데 피곤기가 력력하였지만 그래도 퍽 행복한 모습이였다.
흑룡강성에서 온 매형의 사촌형은 일을 하다가 사고로 손가락을 잘릴번 했다고 하면서 손을 펴보인다. 오른쪽 식지와 중지, 무명지가 떨어져나간것을 붙여놓았지만 중지는 감각을 잃어 페지가 되였다. 재입국하여 정비차량을 운전하는 사돈은 그래도 국내에서보다 돈을 많이 벌고 또 새로 만난 사장님이 잘 챙겨주어서 마음고생은 하지 않는단다.
매형의 이모는 지금 채소농장에서 일하는데 중국에서도 농사를 짓던 부지런한 사람이라 일이 바쁘지 않다고 하면서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였다. 늙어서라도 자식들에게 도움을 줄수 있다는 그런 만족감에서랄가?
매형의 삼촌은 식당에서 그릇을 가시는 일을 하는데 남보다 로임을 적게 받지만 힘들지 않아 만족스럽다고 한다. 한국에 와서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살아가면 어려울것 없다는 이야기들이다.
방문취업으로 입국한 작은 사돈은 아직까지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놀고있었다. 3월쯤이면 일거리가 많을것이라면서 옆에서 말하지만, 어쩐지 놀고 먹는 필자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열심히 살아가고있었다.
돈을 적게 쓰고 나온 사람들이 이번 방문취업제로 나온 사람들이다. 그중에는 오자 바람으로 일자리를 찾아 일하는 사람들도 많다. 또 더 좋은 일자리, 더 편한 일자리를 얻고자 아직 일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하루라도 빨리 빚을 갚으려고 온갖 고생을 다 해온 사람들에 비하면 부담도 적고 그만큼 여유가 있는 모습이다. 일주일가량 일하고 직장을 바꾸는 사람도 여럿 만났다. 고추장 맛보기로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다가 아예 귀국을 선택한 사람도 있었다.
돈을 벌려고 무작정 달려왔지만 힘든 일을 꺼리거나, 중국식사유가 그대로 남아있는 사람들, 일하기 싫어하고 배우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제부터가 관건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고생할 각오, 이겨나갈 각오, 한가지 기술이라도 배울려는 각오, 하루빨리 한국생활에 익숙해질 각오를 해야 한다. 돈은 하늘에서 떨어지는것이 아니다. 바로 자기의 두손으로, 머리로, 힘으로 벌어야 한다.
매형은 내게 편하게 용역을 뛰라고 하지만 필자는 그것이 더 힘들것 같아 오늘 친구가 몸담그고있는 모 회사에 서류들을 보냈다. 또 시키는 일을 열심히 잘할것을 약속했다. 물론 난생처음 체력로동을 접하게 되였지만 악을 쓰고 남이 하는것만큼 일해보자는것이 필자의 생각이였다. 또 그래야만 진정 한국생활을 체험할수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길림신문 김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