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양대학교 조선족 유학생 윤정화의 이야기
2008-03-26 동북아신문 기자
"다시 배우는 역사 속에서 새로운 가교를 꿈꿔요"
한국 역사 공부 흥미롭고 두 가지 언어 자부심 크지만
'중국인일까, 한국인일까' 정체성 극복 커다란 숙제
여유있고 바른 삶 소망해요
"어릴때부터 한국에 와보고 싶었어요. 한류 문화가 한창 뜰 때 고국에 대한 관심이 생겼죠. 마음속으로 희망하게 되었어요. 베이징에 있는 전문대를 다니다 그만 두고 주변 권유로 다시 해양대를 선택했죠. 처음엔 정말 어려웠어요. 강의실에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었지요. 2학기에 들어서면서 조금씩 이해하게 되자 행복해졌어요. 배려해주는 친구들도 많구요."
할아버지 고향은 경상북도 선산군.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가 기술을 배우려 했던 할아버지는 중국을 거치는 도중 살 만하다고 생각, 랴오닝성에 자리를 잡고 가계를 이루었다. 그러한 가족의 역사를 간직하고 한국에 온 지 이제 일년차. 조선족 사회의 변화 속에서 정화 씨는 한류의 영향을 입은 세대이다.
"재미있어요. 한참 익숙해지는 중이라 더 집중할 필요를 느껴 방학 때도 집으로 가지 않고 계속 한국 생활을 체험했어요. 과외와 아르바이트로 시간을 보내구요."
그녀는 사이버 문화를 누리는 세대. 부모님과는 컴퓨터 화상채팅으로 만족, 혼자 공부와 새로운 꿈에 몰입해 있다. 바다를 좋아하는 게 다행이었다. 부산하고도, 해양대에서 사방으로 둘러싸인 바다를 누리며 그녀는 나름대로 개척의지와 성실한 열정을 배우는 중. 혼자 1년 반을 지낸 베이징 경험 때문인지, 원래 긍정적인 탓인지 그녀는 가족을 떠난 한국생활이 낯설지 않다.
"과목 중 한국 역사가 제일 재미있어요. 새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역사 대부분을 거의 처음 배우고 있어요. 성장하면서 조선족 학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지 않아 많이 듣지 못했죠. 고등학교 때 '어문'이라는 한국어책이 있지만 중국어 번역본으로 수업했어요. 한국사를 배우면서 작은 나라임에도 무수한 경쟁에서 꿋꿋이 살아남은 대단한 정신을 깨닫습니다. 민족의 끈질긴 의지가 놀라워요."
지금 학교 내 조선족 유학생은 2~3명으로 한족보다 적은 편. 같은 민족이라 편할 듯하지만 막상 부딪혀보면 현실은 또다르다. 사회체제도 틀리고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문화적인 차이가 크다. 중국에선 자신이 조선족이라고만 생각했다. 한국에 생활하면서 자신이 한국에서 외국인이고 유학생일 뿐이라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는 정화 씨.
"동기들은 재중동포로 여깁니다. 형제의식을 가지긴 하지만 내가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당황스러울 때가 있어요. 사상과 문화의 차이를 어떻게 흡수할 것인가가 더 큰 숙제겠지요. 처음엔 그냥 공부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매일매일 생각이 바뀌어져요. 개인적인 앎과 소질의 문제를 고민하게 되구요."
조선족은 이중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연령이 어릴수록 계층이 높을수록 중국을 조국으로 여긴다. 또한 조선이라는 민족적 자부심도 높다. 동아시아의 역사와 전통, 언어와 문화를 전공하는 만큼 한국과 중국의 시각을 비교, 얘기하고 싶은 게 많다. 수업방식에서부터 모든 문화적인 충격을 잘 극복하고 있는 정화 씨. 그녀의 희망은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 중국에 돌아가서 대학에서 강의하거나 언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것. 그 외 한국사회의 화합 공존이나 한국과 중국을 엮는 긴밀한 고리 역할 등 그녀의 할 일은 참 많을 것 같다.
"외국어나 외래어 등이 한국말 속에 섞여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었어요. 한국엔 좋은 점이 많아요. 우선 친절해요. 말씨가 예쁘구요. 지나치면서 서로 나누는 인사가 참 보기 좋아요. 마음이 따뜻하게 만들죠. 하지만 배타적이라는 생각도 자주 들어요. 고정관념이 많고 선입관을 잘 바꾸려하지 않는 것 같구요. 제일 행복했던 건 학교 내의 중국어학회에 들어가 수업했는데 스승의 날 케익을 받은 거예요. 정말 감동받았죠."
자신이 머무는 그곳에서 주인의식을 가진다면 그 삶은 충분히 진실과 보람을 누리리라. 역사 속에서 자신의 독특한 문화와 정체성을 깨닫는 건 축복이다. 또 역사를 인식한다는 건 건강한 자각이기도 하다. 그 내용을 성실로 채워나는 것이 주변을 사랑하는 방법이라 확신하는 정화 씨다. 밝고 경쾌한 웃음 속에는 생명감에서 번져나오는 다양한 감성과 열정이 오롯했다.
"중국에 있을 때 풍물놀이를 처음 봤는데 매우 신났어요. 흥겨운 리듬이 인상적이었죠. 단둥에서 보았던 한국 텔레비전 속의 맛집들 골목골목을 뒤져가며 찾아다니고 싶어요. 부산이 좋은 건 싱싱한 회가 있다는 것이에요. 또 한국에선 옷 쇼핑이 어려워요. 사이즈가 너무 작아요. 늘 편한 옷 중심으로 입었는데 여기선 다이어트를 해서라도 유행에 맞추어야 하는 게 답답해요. 과외를 하면서 연예인들 알아맞추기 게임을 해보았는데 인물 특성이 거의 비슷해 맞히기 어렵더군요. 몸매나 생김새 등이 모두 비슷해서요."
모두 톡톡 튀는 듯해도 실제 개성이 없는 획일적 사회를 지적하는 말이다. 수능시험 끝나고 부모님 선물로 성형수술했다는 동기들이 많아 깜짝 놀랐다는 그녀는 성형문화에 아직 낯설다. 아무리 그래도 자연스러운게 가장 좋다는 그녀의 소신. 탁구, 수영, 등산 등 취미도 여느 학생들처럼 소박한 정화 씨. 기특하고 겸허한 그녀의 꿈은 또한 단호하고 야무지다.
"도전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보다 실패하더라도 도전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경쟁에 쫓겨 바쁘고 힘든 삶보다는 스스로를 위한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요. 진정한 가치란 주변 환경과 조화롭게 지내는 것이 아닐까요. 비록 나쁜 일이라도 생각을 좋게 하면서 항상 긍정적으로 수용하려고 합니다. 이해하는 입장에 서고자 노력하지요."
하여 어떤 고단함 속에서도 인간은 꿈을 꾸는 것이리라. 한순간씩 초월해내는 고통, 한순간씩 기울이는 열정이 바로 특별한 개인의 역사가 된다. 이 역사가 또한 인류의 역사이기도 한 것.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가족과 행복한 것이 아름답다고 믿는 그녀야말로 특별한 유쾌함이 아닐까.
"할아버지나 그 위 조상들 살았던 한국은 제게 고국입니다. 조선족이라 태어날 때부터 써온 두 가지 언어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도 취직에 있어 유리한 입장이에요. 중국도 아니고 한국도 아닌 조선족만의 독특한 문화에 대한 자부심도 커요."
그러나 문화적 유산과 정체성 문제도 간단하지 않고 정신적인 유대도 쉽지 않은 문제. 문화적 정서의 차이 때문에 한국 친구들에겐 심정적인 걸 전달하는 데는 설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같은 표현을 사용할 때나 비슷한 문화를 경험할 때 정서적 유대감이 강해짐을 느낀다.
"집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제사를 모시고 새해에는 웃어른께 세배를 드리고 세뱃돈을 받아요. 집에서 된장이나 김치를 담가 먹구요. 이러한 전통문화는 유지될 필요가 있죠. 문화란 특정한 추상이 아니라 오래 세대를 거쳐 이루어진 구체적 삶인 만큼 그 하나하나가 다 소중합니다. 조선족은 남녀 구분 없이 제사상에 음식을 올리는데 한국에서는 유교사상 때문인지 남자만 음식을 올리는 것이 놀라웠어요."
다문화시대, 다양한 문화가 역사를 역동적으로 살아있게 한다. 인간은 누구든 자신의 문화로 한 페이지 역사를 쓰는 중이다. 그녀는 자신이 도전하고 있는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잘 이해하고 있을까. 그녀의 말처럼 타인을 향한 배려가 그 생동감의 원천이 아닐까. 정화 씨의 꿈은 또한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다. 삶이란 항상 자신을 향해 스스로 여는 무한한 문. 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그녀의 환한 눈동자 속에 봄은 더 푸릇푸릇 진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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