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국적 조선족을 보듬어 안다

2008-03-23     동북아신문 기자
 07년 10월 어느 날 경찰이 한 여자를 헤드록(오른 팔로 목을 감아 조르기)을 걸어 청주출입국사무소 3층 조사실까지 질질 끌고 와 내려놓고 불법체류자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황망히 도망가다 시피 사라졌다. 


신병을 넘겨받은 조사과장에게 그 여자가 다짜고짜 하는 말‘야! 이 ××같은 놈아! 너 생긴 꼴이 재수없게 생겨먹어서 팔자가 더럽겠다, 너 같은 꼬락서니를 보니 여러 사람 잡았겠다. 재수없는 놈!!!’하고 고함을 친 뒤 책상위의 컴퓨터, 책꽂이, 필통 등 닥치는 대로 집어 던져 순식간에 사무실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고는 울면서 사무실 바닥에서 뒹구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


이명화(74년생),

중국 동포인 그녀는 지금부터 10년도 더 전인 지난 1996년 3월 한국인 양씨(54년생)와 혼인하여 같은 해 9월 한국에 입국했다. 1998년 8월 졸지의 사고로 남편 양씨가 사망하자, 이명화는 살기 위해 식당 파출부에 전념하며 살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중 2000년11월 식당에서 알게 된 한국인 이씨(72년생)를 만나 재혼을 하고 딸도 낳아 범칙금도 내고 비자도 받아 문제없이 사는 듯 했다.

 

또 한번의 불행이 찾아왔다. 남편 이씨가 바람을 피워 딴살림을 차리고 있는 것이었다. 식당에서 일하랴, 애기 키우랴 정신없이 바쁜 본인 고생을 마다하고 신랑은 다른 여자와 딴살림을...


2003년1월, 하는 수 없이 엄마를 닮은 딸을 꼬~옥 가슴에 안고서 이를 악물고 다시 이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현실은 혼자 애를 키우고 돈도 번다는 게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그래도 잘도 참으면서 광주, 부산, 안산 등지를 전전하다 2005년도에는 다시 불법체류자 신분이 되어 강화된 단속을 피해 아무도 연락이 되지 않는 곳 충청도 보은으로 숨어들어 한 식당에서 자리를 잡았다 .

 

다시는 결혼을 하지 않으리라는 맹세를 하고 살았으나, 본인에게 끔찍이 잘해주는 비닐하우스 실내낚시터를 하는 윤씨(64년생)만나 마음의 위안을 얻으면서 동거생활을 하며 그럭저럭 살던 중, 윤씨 낚시터에 불이나 순식간에 거지신세가 되었다. 이건 또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찌 이 여인에게 이렇게도 가혹한 형벌을…….

 

또한 다니던 식당에서도 비록 불법체류자 신분이지만 부산, 안산등지 큰 식당 서빙에 단련된 몸이라 부지런하고 친절하여 시골 사람들과는 다르게 사장으로부터 총애를 받자, 다른 여자들로부터 질투의 대상이 되어 ‘왕따’가 되자 심적으로 견딜 수가 없었다. 세상 모든 것이 자기를 외면하고 있었다. 다른 중국 여자들은 한국에서 국적도 얻고 잘도 살아가고 있건 만 나만 왜 이럴까? 무국적자, 불법체류자, 그리고 왕따 신세...


사람이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다. 실성한 사람처럼 웃다가 울고 그리고 울다가 웃고, 고함을 치고...


급기야 술에 만취해 동거남을 발로 밟아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마시던 술병으로 얼굴을 때려 눈 부위를 10센티나 찢고, 경찰서에 들어가 집기를 부수고 경찰들을 향해 갖은 욕설을 퍼붓고... 그야말로 광인의 길을 걷고 있었다.


2007년 9월 이렇게 미쳐버린 이명화를 동거남 윤씨는 도저히 돌볼 방법이 없었다. 병원에서도 불법체류자라고 정신과 치료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2차에 걸쳐 청주의료원에 이명화를 데려다 내팽개치고 와버렸다. 청주의료원에서는 불법체류자를 경찰에 신고를 하고, 경찰은 청주출입국에 신병을 넘기고...

그래서 2007년 10월 이명화가 경찰관으로부터 헤드록에 걸려 끌려오다시피 청주출입국사무소에 신병이 인계되게 된 것이었다.


이명화로부터 갖은 욕을 먹은 조사과장 정상진은 정신을 가다듬고 동거남 윤씨로부터 그간의 경위를 전해 듣고, 우선 청주의료원 원장을 찾아가 ‘불법체류 문제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우선 이명화에 대해 우선 정신과적 치료’를 간곡히 부탁하고, 이명화를 미치게 한 원인을  하나둘 해결하면 정상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주의료원은 정과장의 부탁을 수락하고 정신과적 치료를 시작했다. 거기서도 이명화는 병원원장, 의사, 간호사를 향해 온갖 욕설과 집기를 부수는 등의 행패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하지만 차츰 차도를 보였고 입원한 기간 동한 정과장은 수시로 면회를 가, ‘불법체류 문제와 국적취득문제는 책임지고 해결하겠으니 안심하고 몸 건강하라’고 타일렀다. 

 

그 후, 하늘도 감동 했는지 정과장과 청주의료원의 정성으로 4개월이 지난 지금 이명화는 90% 이상 정상인으로 돌아와 동거남 곁으로 퇴원했다. 그리고 임신까지 했다. 이 소식을 늦게 전해들은 김광효 소장님은 적극적으로 벌금을 면제하고 국적을 회복시킬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여, 2008년 2월말 3년 가까운 불법체류자 신분을 범칙금을 면제해 해방시켰다. 지금 본인과 동거남 윤씨는 정과장과 출입국의 고마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수년간 미친년이라고 방치되어 아무도 돌보지 않던 한 여인이 출입국공무원 한 사람의 작은 관심으로 무사히 남편의 곁으로 또한 우리 사회의 품속으로 돌아 왔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나아갈 진정한 사회통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도 청주출입국사무소 직원들은 우리의 작은 관심을 기다리는 또 다른 이명화를 찾아 나선다.


청주출입국사무소 채만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