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거리
<신길우의 수필 94>
엘리베이터 속에서는 누구나 불편해 한다. 사람들끼리의 공간과 거리가 너무 좁고 가깝기 때문이다. 출퇴근길의 복잡한 지하철 속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는다. 서로 몸이 닿거나 마주 바라보게 되어서 그렇다기보다는 너무 줄어든 공간과 거리에서 오는 현상인 것이다.
공원 벤치에 혼자 앉아 있을 경우 사람들이 모두들 멀찍이 있을 때면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또, 빈 의자를 사이에 두고 말을 건네 오는 사람은 어딘지 정 없게 느껴지고, 커다란 방 한가운데에 책상만 하나 덜렁 놓여 있는 곳에서는 누구든지 허전함과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모두가 공간과 거리가 너무 넓고 멀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이처럼, 사람과 사람이 유지하는 공간과 거리는 우리들의 삶에 여러 가지로 영향을 준다. 언어학에서는 공간학이라 하여 그들이 갖는 의미와 규칙들을 추려내고 연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민족성과 국가 사회적 특성과 삶들의 개성 및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서 각기 달리 나타나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또한, 그것이 무시되거나 깨졌을 경우에는 불편 불안 고독감을 느끼게 되고, 때로는 불쾌감과 오해의 시비까지도 벌어지게 되기도 한다.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남미 사람들이 북미 사람들보다 대화할 때 보다 접근함을 밝혀냈다. 남미인들이 너무 떨어진 듯해서 가까이 다가서면 북미인은 자신이 밀린다고 느끼고, 그래서, 북미인이 뒤로 물러서면 남미인은 그가 거만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한, 아랍 사람들은 이들보다 훨씬 근접해서 말하는데 서로의 얼굴에 숨결이 느껴질 정도라고 한다. 이러한 거리는 미국인의 경우에는 정감 있는 성적 친교와 관련되거나 아니면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고 한다. 슬라브족이나 게르만족의 경우도 비교적 대화 거리가 가깝다는데, 한국인은 아마 거리가 가장 먼 것으로 생각된다.
민족에 따라 대화 거리가 이렇게 다른 것은 생활 풍토에서 연유되는데, 추운 곳에서 사는 슬라브족은 체온이 아쉬워서, 게르만족은 전통적인 수렵 생활에서 생긴 공격성에서, 또는 반대로 해치지 않겠다는 증명으로 각각 접근하며, 아랍인들은 오랜 유목 및 이동 상업 생활에서 사람들이 마냥 반갑고 또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서로를 접근하기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 한국인들이 거리를 가장 많이 두게 된 것은 오랜 정착 생활로 서로를 너무나 잘 알기에 접근할 필요가 없었고, 또한 덥고 습기가 많은 기후여서 서로의 접촉이 오히려 불쾌하고 짜증나게 만들기에 그리 된 것 같다. 예의를 중시한 생활도 하나의 이유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예의의 거리는 어느 민족이나 접촉 거리 중 가장 먼 거리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공간량은 개성과도 관련이 깊다. 내성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보다 더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공간과 거리는 상황과 분위기에도 영향을 받는다. 애정 영화를 보러 서 있는 사람들은 가족 오락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보다 더 밀착된다고 한다.
이런 인간간의 거리는 친밀거리, 평상거리(쾌적거리), 예의거리로 나누기도 하는데, 친밀거리는 친밀감을 나타내는 거리로 가장 가깝고, 평상거리는 안도감을 주고 활동하기에 알맞은 거리이며, 예의거리는 서로의 관계에 따른 예의를 나타내는 거리로 가장 멀다. 같은 개념의 거리라 하더라도 민족과 개인에 따라 달라진다. 친밀거리의 경우 아랍인과 연인들 사이의 미국인들은 20cm 정도이고, 남미인들이 30cm, 미국인 친구간은 30~50cm라고 한다. 한국인은 보통 50cm 정도인데 모자 사이나 연인 사이는 이보다 더 접근된다.
평상거리는 서구인이 1~1.5m인데 한국인도 그 정도 된다. 예의거리는 미국인이 1.5~5m이고 한국인은 2m 이상이다. 미국인 점원과 손님 간의 거리는 50~80cm인데 이 거리는 우리에게는 친밀거리로 인식되어 오해받기도 한다. 한국인의 예의거리는 큰절하기에 알맞은 거리라고 하겠는데,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 말의 거리도 예의거리이다.
그런데, 이런 거리를 너무 좁히거나 넓히면 불쾌감이나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친밀거리를 가질 연인이 예의거리를 지키면 불만 표시나 애정이 식은 것으로 인식될 수 있으며, 반대로 남남의 남녀가 친밀거리를 유지하면 남들로부터 보통 사이가 아닌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평상거리를 지켜야 할 모르는 이가 친밀거리로 다가오면 누구나 위기감을 느끼게 되며, 예의거리를 좁히면 무례하다거나 건방지다고 판단하게 만든다.
물론 평상거리에서 담화를 나누어주는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다정하고 친절하게 느껴지며, 다정한 친구와의 대화는 즐겁기만 할 수 있을 것이다. 친밀거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연인끼리는 아마 끝없이 사랑스럽고 즐겁기만 할 것이다. 친밀한 사람끼리는 더욱 근접하려 하고, 남남끼리는 평상거리를 유지하려는 것은 본능이다. 예의거리는 교양인이 지킬 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모든 거리의 유지는 결국 인간이 스스로 살아가는 데에 가장 알맞고 필요한 공간의 확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공간과 거리를 지키는 데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인간은 수많은 관계와 관계로 맺어지고 유지되는 존재이다. 따라서, 그 여러 관계에 따라 지켜야 할 공간과 거리는 매우 중요하게 된다. 너무 멀리해도 안 되고, 너무 가까이해도 문제가 생긴다. 내 마음대로 공간을 좁히고 늘리거나, 내 기분대로 거리를 줄이고 늘여서는 안 된다. 더구나, 자기중심으로 제멋대로 살아가려는 풍조가 자꾸 늘어만 가고 있는 오늘날에 있어서는 말이나 행동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공간과 거리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졌으면 한다. 더구나, 대부분 복잡한 도시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이런 인식과 마음가짐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자기 주위의 공간과 거리를 알맞게 지키면서, 멀어지면 가까이 다가가고, 너무 가까우면 적당히 거리를 두는 슬기가 정말로 필요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