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의 사색 <송미자 수필>

2008-01-18     동북아신문 기자

고대의 사람들은 겨울을 현동(玄冬)이라 일컸지만 내고향의 겨울은 백동이라함이 알맞다. 초겨울부터 이듬해봄까지 눈이 내리면 삼라만상은 하얀 눈속에 묻혀있다. 눈 내리는 밤은 달도 별도 보이지않지만 대보름날처럼 환하다. 눈이 내린후의 낮은 송곳같은 해살을 받아물었다가 뱉는 하얀 눈들의 재롱으로 하여 아물아물 부서지는 눈(眼睛)을 뜨기조차 어렵다. 하얀 빛의 무궁함에 끌리여 자아성찰의 계절임을 조용히 감안해본다.                

       깨끗한 눈송이 하늘에 날리여
       하얀눈이 나의 교정을 덮으면
       작은 오솔길을 거닐면서
       한줄기 발자국을 찍는다네
       깊게도 얕게도 곧게도 비뚤게도
       ……
    눈이 멀도록이 뻗어나간 두망강변의 하얀 유보도우에 친구들과 같이 젊은날의 랑만과 로맨스를 찍으면서 신나게 흥얼거리던 80년대의 대만의 류행가요가 오늘은 저도 모르게 마음을 동여맨다. 웬 일일가? 사락사락! 추억이 되어 내리는 눈이 아니라 령롱한 추억을 하얗게 덮어버리는 눈. 불혹(不惑)의 40세가 무서운가보다. 길을 재촉하는 나그네가 되여야하는가보다.

    뒤돌아보니 길지도 짧지도 않는 길에 깊게도 얕게도 곧게도 비뚤게도 찍혀진 발자국이 끝없이 내리는 하얀 눈에 덮히여 그 흔적조차 이리숭하다. 오! 인생도 또한 이러하지 않는가? 이리하여 무상의 인생이라 하였는지? 철없이 어리광치던 동년시절도 번뇌와 욕망에 몸부림치던 젊은 시절도 모두가 눈송이처럼 날리는 력서장에 덮히여 버리고 한 남자의 안해가 되고 아이의 엄마가 된 행복뒤엔  또 사업상의 위축과 갈등으로 인한 지겨움이 동반되면서 인생의 공허함과 무료함도 회피할 수 없이 감내해야 한다. 만끽된 삶이란 있을수 있을가? 좌절과 고독앞에서《세상은 모두가 나의것이 아닌 이상엡》하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남편과 아들애에게 의지한 삶의 안식처에 몸과 마음을 담그고 행복을 느껴보기도 하지만 필경은 그것도 삶의 한부분인 것이다. 친구를 찾아 술잔을 기울리면서 정도 나누어 보고 마작놀이, 주패놀이에서 자극을 찾아 스트레스를 풀어보기도 하였지만 남은 것은 쾌락보다 허무밖엔 없다.     

    지난가을 죽음의 마당에서 간신이 목숨을 건졌을 때 나는 진정 삶의 소중함과 그 의의를 깨달았다. 운전사에게 몸을 맡겼던 택시가 마주오는 찦차에 부딪쳐 펀펀했던 생명들이 시체로 바뀌였을 때 스스로도 자신의 걸려있는 목숨에 의혹과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할일이 있는 사람은 죽어지지 않습니다.》고희의 안병렬박사님께서 남은 여생의 할 일에 대하여 신심가득히 이야기하시면서 남기신 명언이 가슴에 촉촉이 젖어들었던 까닭은 또한 무엇때문이였을가? 살아야 하는 리유에 앞서 살기 위한 삶보다도 가치가 있는 일을 하기 위한 삶이 얼마나 거룩한가? 살아야 할 리유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생명으로 조물주가 알아봐주었다면 한번밖에 없는 생명을 어떻게 아낄것인가? 무상의 인생에 거미처럼 지렁이처럼 살다간다해도 생명보다도 더 값있는 인간의 높은 차원의 령성(靈性)을  갖고 싶은 것 또한 무상의 인생에 도전하고 싶은 나의 욕망이다. 그 어떤 가치가 있는 일을 하기 위하여 목표를 세워야할 년륜이다. 하나의 작은 세포로 흔적을 남기는것으로라도 백년을 살수없는 삶을 충실히 하고 싶다. 깊게도 얕게도 곧게도 비뚤게도 찍혀온 발자국이 하얗게 내리는 눈에 소리없이 묻혀버리듯 유혹에 웃고 번뇌에 울며 취해서 비틀거리면서 걸어온 인생의 자취를 조용히 력서장에 묻어버리고 다시 시작되는 불혹의 인생의 자욱을  하얀 길우에 곧게 열심히 찍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