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 인터뷰] 영양 출신 소설가 강준용씨
주소도 휴대폰도 없이 바람처럼 떠도는'유령'
연극판에 놀다 소설가로 변신
문단 22년 90여편 작품 남겨
최근엔 팬들이 창작집 펴내줘
'내가 이렇게 고함친들, 천사의 서열 가운데 과연 그 누가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건가?'
'말테의 수기'를 완성한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는 2년간 극도의 정신·육체적 패닉(Panic) 상태에 빠진다. 하지만 '회심의 대작'이 그를 구원한다. 바로 총 10편으로 짜여진 '두이노의 비가'였다. 숙성의 세월이 필요했다. 릴케는 '이승 속 저승'의 날을 자청했다. 고독하기 이를 데 없다는 북부 이탈리아 아드리아 바닷가 절벽 위 두이노 성에 배수진쳤다. 1912년 1월 중순 어느 날, 절벽을 내려가던 릴케가 앙칼진 바람 소리에서 영감을 얻어 첫 구절을 푼다. 10년이 지난 1922년 2월 11일 토요일 오후 6시 펜을 놓는다.
2005년 봄.
두이노 풍의 비련의 작가가 한 애독자 팬클럽에 의해 에델바이스처럼 발견된다.
주식은 라면, 가진 거라곤 책과 수저밖에 없고, 더 가난할 것도 없는 고독한 작가를 위한 애독자 클럽, '초설회(艸雪會)(회장 김혜숙)'가 눈물겹게 돋아난 것이다. 지역 출신의 한 소설가 살리기 프로젝트였다. 45명의 강준용 지킴이는 현재 다음 카페 초설회를 축으로 품앗이 정신을 발휘, 작가의 생계는 물론 각종 출판, 특별 강연회 등을 지원중이다. 지난 해 12월, 14년 만의 첫 창작집 '숭선에서'(이유 刊)도 펴내주었다. 내친김에 오는 18일 오후 7시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출판기념회까지 연다.
# 유령 같은 소설가, 강준용는 칩거중!
소설가 강준용(56).
눈빛과 음성이 야수적인 그는 1952년 조지훈·오일도·이문열을 잉태한 문향(文鄕), 경북 영양에서 태어났다. 연극판에서 놀다가 86년 소설가로 변신했다. 습작 6년 문단 22년, 모두 90여편의 소설을 남겼다. 93년 '스콜', 2001년 '별나라를 지나는 소풍', 이 두 장편소설은 비록 그가 '무명(無名)의 행로'를 걷지만 그 내재율만은 '유명(有名)의 행로'임을 입증시켜줬다. 하지만 생활은 처참하게 망가졌다. 한 마디로'사선(死線)'이다. 영양실조 상태다. 그래도 돈한테 지지 않았다. 팬들은 바로 이 대목에서 '기립박수'를 보낸다.
주소도 휴대폰도 없다. 바람처럼 떠돈다. 그의 발은 '풍족(風足)'이고 다분히 '릴케적'이다. 도무지 연락이 안된다. 팬들도 그가 어디에 있는 지 모른다. 불러도 잘 오지 않는다. 초설회가 집필실과 기초 생활비 지원을 약속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대로가 좋단다. 팬들은 좀 서운했지만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 계획을 짰지만 허사였다. 만날 수가 없었다.
콧구멍 만한 서울의 한 주공아파트, 경기도 문산의 한 친척 집에 묻혀 산다는 얘기만 들린다. 있긴 있는 데 늘 없는 사람, 꼭 '유령'같았다. 밥 때문에 글을 팔아야 하는 처지임에도 그는 죽어도 그렇게 안하겠단다. "글은 발표하는 것이고 물건처럼 파는 게 아니다"라고 외친다.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처럼 "오직 작품으로만 자기를 펴보이겠다"고 선언했다. 자연 문단의 변방으로 밀려날 수밖에. 겁나지는 않았다. 기존 문단과 절교를 선언했다. 그 심사의 일단이 '숭선에서' 서문에 피력돼 있다.
"수준 이하의 작품을 포장해대는 적지 않은 평론가들의 작태와 유치한 글을 써서 문학작품이라고 자찬하는 수많은 문학가라는 사람들, 출판사의 사업성으로 양산된 베스트셀러로 둔갑된 작품들이 한국문학의 대표 작가와 작품으로 변질되는 것에 비애를 느꼈다."
그는 문학상 심사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평론가들도 그의 이름을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했던가. 평론가 방민호·임헌영·이태동·김성수는 그의 문학을 인정한다. 임헌영은 "산업사회에서 버림받은 인간상을 즐겨 등장시켜 그들의 비현실성을 냉혹한 상상적 리얼리즘 기법으로 묘파해 내는 데 특출한 솜씨를 발휘한다"고 호평했다. 심지어 작가 유민은 강준용을 '전설의 소설가'라면서 스스로 그의 제자임을 선언했을 정도다.
초설회를 만든 회장 김혜숙씨(53)는 "그는 말보다 작품을 실천하고, 이름이 알려지는 것도 원치않으며, 단지 자기 작품이 옳은 독자들에게 읽혀지길 원하는 진정한 작가라 여겨져 그를 위한 초설회를 만들었다"면서 초설회 태동 이유를 설명했다. 017-329-3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