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깅과 대포

<미국 육사 교정에서> <신길우의 수필 85>

2008-01-06     동북아신문 기자

  미국의 명문인 육군사관학교를 방문했을 때 맨 처음 눈에 띈 것은 조깅하는 학생들이었다. 백인 학생도 있고 흑인 학생도 있었으며 가끔은 여학생들도 보였다. 건물과 언덕 사이사이의 길가 보도를 따라 노란 츄리닝을 입고서 두세 명이 때로는 혼자서 달리는 모습은, 대학 구내에서 그러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사는 나에게는 색다른 것이었다. 해질 무렵의 교정에서 약간 쌀쌀한 날씨에, 그래서 가끔은 모자를 둘러쓰기까지 하고서 달리는 그들의 모습은 12월 중순의 회색빛 주변 풍경과 대조되어 한층 더 인상적이었다.

 

조깅은 물론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은 아니었다. 또, 하나의 교육과정이나 일과로 하는 것도 아니었다.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그러는 것은 더구나 아니었다. 그러기에 아무런 통제나 간섭도 따르지 않았다. 자기 스스로 하고 싶어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시간과 코스를 선택하여 스스로 실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조깅은 하기 싫은 사람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나 틈틈이 스스로 조깅을 한다는 것이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은 물론 아니며, 또한 좋아서 하거나 즐기고 있는 것도 아니란다. 그저 해야 되겠다는 생각에서 행할 뿐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육사생이라면, 그리고 미국의 장래를 이끌 지도자가 되려면 언제나 틈틈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스스로 닦아 나간다는 판단과 생각에서 그들은 조깅을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을 위해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의 결심에 의해서 스스로 단련하고 노력해 나가는 것이란다.

 

  따라서, 그들은 언제나 조깅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또 해낼 뿐이라고 한다. 모든 일을 자율(自律)에 의해서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자성(自成)의 삶을 그들의 조깅하는 모습에서 단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는 이것이 곧 미국 육사의 힘이로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그런데, 이들의 조깅은 실질적으로는 스스로의 체력 단련과 살찌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에서 하는 것이라는 안내자의 설명을 나중에 들었다. 그러나, 내게는 어떤 일을 개별적으로 자율에 의해서 스스로 실천해 나아가는 자성의 모습으로 담겨져서, 어둠이 깔리는 육사 캠퍼스를 뒤로 하는 차창에 한참 동안 그들의 조깅 모습이 어리어 보였었다.   


  미국의 육군사관학교는 뉴욕에서 서쪽으로 버스로 1시간 반이나 달려가야 할 만큼 떨어진 허드슨 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주변에 다른 어떤 시설이나 공장․ 대도시, 또는 명승지나 유적지도 가지고 있지 않다. 말 그대로 산과 강과 언덕과 골짜기가 어우러진 하나의 한적한 시골일 뿐이다. 웨스트포인트(Westpoint)란 말도 원래는 이곳의 작은 마을의 이름에 지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미국 육사를 가리키는 말로 되어버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다.

 

 따라서, 이러한 한적한 육사를 처음으로 들어서면 왜 이러한 곳에 미국인들은 육사를 세웠으며, 또한 어떻게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명문으로 만들어낼 수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캠퍼스를 돌아다니면서, 그리고 그곳이 미국의 건국에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진 곳인가를 알기 시작하면 이러한 의문점들은 사라지고, 그 지역 선정을 참으로 잘 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 육사의 언덕은 미국 독립전쟁 당시의 격전지요 승전지였다. 영국 해군들이 군함을 몰고 허드슨 강을 따라 쳐들어 올 때 이를 예상한 미국인들은 이곳에 강을 건너지르는 쇠사슬을 물속에다 설치해 놓고 기다렸다. 드디어 영국 군함들이 이를 지나오자 미국인들은 쇠사슬을 들어 올려 못 나가게 가로막은 뒤 사면에서 공격하여 섬멸시켜 버렸던 것이다.

 

  여기서의 영국 함대의 격파, 이는 곧 미국의 승리요, 그것은 나아가 자신들의 힘에 의한 확실한 독립을 미국인들에게 가져다 준 것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역사를 간직한 허드슨 강변의 이곳 육사 캠퍼스는 하나의 평범한 시골 언덕이 아닌 것이다. 이곳은 미국을 지키고, 미국을 독립시키고, 미국인들에게 자신감과 자긍심을 갖게 하는 커다란 의미를 지닌 곳인 것이다. 바로 그러한 곳에 미국인들은 육군사관학교를 세웠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여기서 그들의 역사를 자랑스런 교훈으로 삼고, 그들 선조들의 자주 독립 정신을 계승하면서, 명예와 인격과 능력을 최고 이상으로 하는 훌륭한 지도자들을 길러냈던 것이다. 그 결과 존경받는 두 명의 대통령을 포함한 많은 인재들을 그들은 배출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육사 캠퍼스 안 기념탑 주변에는 몇 대의 옛날 대포가 허드슨 강 쪽을 향하여 설치되어 있다. 다만 그때 그 격전과 환희의 모습은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다 담아 둔 채, 유유히 흐르는 허드슨 강물을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의미 있는 곳에 의미 있는 시설을 설치하여 국가 발전의 원동력을 만들어내는 그들을 생각하면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승전지인 울돌목[명량,鳴梁]의 쓸쓸한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어둠이 펼쳐지는 차창이 더욱 어둡게만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