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년고개와 소화제

<신길우의 수필 83>

2007-12-26     동북아신문 기자

  초등학교 시절에 읽은 것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지방에 삼년고개가 있었다. 이 고개를 넘다가 한 번 넘어지면 3년밖에 살지 못한다. 그래서 삼년고개를 넘을 때면 누구나 조심에 조심을 더 한다. 까딱하다 넘어지면 3년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할머니 한 분이 삼년고개를 넘다가 그만 잘못하여 넘어지고 말았다. 그는 낙담하여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는 하루하루 날짜가 가는 것을 세며 서러워하였다. 사람들마다 찾아와서 달랬으나 할머니의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자신이 죽는 것이 분하고 억울하기만 하였다. 할머니는 죽을 날만 손꼽아 보며 한숨과 근심 속에 나날을 보냈다.

 

 이것을 들은 한 젊은이가 할머니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삼년고개에서 한 번밖에 안 넘어지셨지요?”

  이 말에 할머니는 기분이 나쁜 표정을 지으며 쏘아붙였다.

  “그럼 여러 번 넘어지길 바랬어?”

  젊은이는 빙긋이 웃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니까 3년밖에 못 사시지요. 여러 번 넘어졌어야지요.”

  이 말에 할머니는 화가 나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놈이 날 보고 죽으라네. 이놈아, 내가 여러 번 넘어졌으면 거기서 죽었지 여태 살았겠어? 망할 놈 같으니.”

  그러자 그 젊은이는 여전히 웃으면서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제 말을 들어보세요. 한 번 넘어지면 3년 살지요? 그러니까 두 번 넘어지면 6년을 살고, 세 번을 넘어지면 9년을 살게 되지요. 그러니까 이왕 넘어지실 바에야 여러 번 넘어져야 오래 살지 않겠어요?”

  이 말을 들은 할머니는 그 길로 삼년고개로 달려가서 몇 번이고 뒹굴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경험을 교단 초년 시절에 겪은 일이 있다.

  한 학생이 찾아와 조퇴를 시켜 달라고 하였다. 머리가 아프다는 것이다. 손으로 이마를 만져보니 열이 있었다. 그 학생은 공부도 잘 했지만, 무엇보다도 착실한 것이 마음에 들었었다. 지각도 한 번 없는 완전 개근자였다.

  그때 순간적으로 내가 먹던 소화제가 떠올랐다. 소화제는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고, 그래도 계속 아프다면 보내 주자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말없이 서랍을 열고 소화제 한 봉지를 꺼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 약을 먹어 봐. 내가 먹는 것인데 약효가 그만이야.”

  그러면서 어깨를 토닥거려 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래도 계속 아프면 조퇴하러 오너라.”

  그런데, 그 학생은 오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지나도 수업이 끝나도 다시 오지를 않았다. 종례 시간에서야 그를 보고 물었다.

  “OOO, 너 아프다더니 괜찮니?”

  그 학생은 벌떡 일어나 이렇게 대답하였다.

  “네. 다 나았습니다.”

  얼굴 표정도 밝았다. 소화제를 먹고도 머리 아픈 것이 낫는다? 나는 도리어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그런데 그 학생이 교무실로 찾아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그 약 참 좋던데요. 선생님께서 잡숫는 약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가는 그 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어이없어 혼자 중얼거렸다.

  ‘소화제가 좋긴 좋은가 보다. 머리 아픈 것도 소화시켜 버리니까.’


  이 두 이야기에서 정반대로 사태가 바뀐 것은 바로 확신에 찬 믿음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것은 같은 상황을 보고도 의식의 전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한 번 넘어지고는 앓다가 오히려 떼굴떼굴 구른 것도, 아파서 조퇴하겠다던 학생이 도리어 병이 나아버린 것도 모두 틀림없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같은 사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보고 받아들이는 의식에 따라서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문제가 있을 때 의식의 전환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생각하게 해 준다. 또한 모든 일은 틀림없이 된다는 확실한 믿음으로 행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러한 믿음이 없이 일할 때 성취율은 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굳은 믿음은 언제나 실천(實踐)을 만들고, 의식(意識)의 전환(轉換)은 새로운 삶을 열게 한다. 의식의 전환은 모든 지도자가 생각해야 할 일이고, 믿음에서의 실천은 성취자가 가져야 할 덕목이다. 이 두 이야기가 떠오를 때마다 생각하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