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잡지를 갖는 것은 조선족이 살아 있다는 증거"
창간 30주년을 맞는 중국 조선족 한글 문학지 <도라지> 김홍란 주필과 함께
조 남철 ; 먼저 김홍란 주필의 <문예시대> 해외동포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중국동포작가만을 대상으로 하는 해외동포문학상으로 알고 있는데 수상소감을 말씀해 주시죠?
김 홍란 ; 네, 고맙습니다. 이번에 부산의 문예지 <문예시대>에서 해외동포문학상의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번이 세 번째 수상인데 중국의 동포문인들을 위한 문학상이라는 점에서 새삼 뜨거운 동포애를 느끼게 됩니다. 더 열심히 우리 민족의 얼과 문화를 지켜나가라는 뜻으로 알고 제 있는 힘껏 노력하겠습니다.
조 남철 ; 지난 11월 28일 중국 길림성 길림시에서 <도라지> 창간 30주년 기념행사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순 문예지가 30년의 역사를 갖는 일이 쉽지 않은데 중국 땅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조선족 동포들이 30년의 역사를 갖는 문학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한국인에게도 큰 놀라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창간 30주년을 축하하며 <도라지>를 간략하게 소개해주셨으면 합니다.
김 홍란 ; <도라지> 잡지는 문화대혁명이 금방 끝난 1977년 5월, 신상걸, 남영식, 문창남, 고신일 등 길림시의 문학인들의 피타는 노력과 길림시 문화국, 길림시 조선족 군중예술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태어났습니다. <도라지> 잡지는 2003년 7월 길림성 1급 간행물에 평의되고 2006년 중국 조선문 간행물 심독(审读) 선진집단으로 평의되었으며, 2005년에는 인터넷 <도라지>문학사이트를 개설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도라지>는 중국조선족 순문학지로서 당당하게 자리매김하면서 우리 민족의 문학인재를 키우는데 한몫을 단단히 해냈습니다. <도라지>는 최근 10년간 전국 성의 조선족 중견작가, 중청년소설가, 시인, 평론가들이 대거 참여한 창작회, 필회와 중국 조선족 당대문학 연구회를 28회 개최하고 길림지구 조선족 창작 강습반, 작가 창작좌담회, 소설 탐구회를 10여회 개최하였으며, 많은 신진과 현지작가를 굳건히 키워내기도 했습니다.
특히 <도라지>는 창간 30주년을 계기로 <길림지구조선족작가작품집>과 <도라지 우수작품정선> 등 작품집을 출간하였으며 북경 중앙민족대학 조선 언어문학학부와 <도라지> 잡지사가 공동으로 '중국조선족문학의 현황과 전망'을 테마로 학술세미나를 펼치기도 하였습니다. 또 하나 <도라지>의 특징이라면 시보다는 소설과 수필 중심의 잡지라는 사실입니다.
조 남철 ; 거듭 그 동안의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알기로는 중국 땅에 <도라지>이외에도 적지 않은 한글 잡지가 있는데 간략하게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김 홍란 ; 말씀하신대로 중국의 동포사회에는 다양한 한글 잡지가 있습니다. 그 중 문학지로는 <연변문학>, <장백산>, <도라지>의 세 잡지가 있습니다. 먼저 역사가 가장 오래 된 잡지로는 연길에서 발간하고 있는, 연변작가협회의 기관지이기도 한 <연변문학>이 있습니다. 이 잡지는 연변작가협회가 1956년에 만들어졌으니 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잡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현재 작가협회의 주석은 허용석 씨이며 주필은 김삼 씨가 맡고 있으며, 잡지의 특성을 말씀드린다면 다른 잡지에 비해 시를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신인발굴에도 힘써 연변대학 조문계(한국의 국문학과) 학생들의 글도 많이 실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길림성 장춘에서 발간하고 있는 <장백산>입니다. 이 잡지는 원래 길림성 통화시에서 창간된 잡지였는데 현재는 장춘시 민족사무위원회의 기관지의 성격을 띄고 발간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성 정부의 지원을 이렇게 저렇게 받고 있습니다. 길림신문 사장이기도 하신 남영전 시인이 사장, 이여천 작가가 주필을 맡고 있습니다.
이 잡지는 장편소설과 실화 등의 산문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3년 후에 창간 30주년 행사를 가질 계획이니 이 잡지 역시 그 역사가 만만치 않은 셈입니다. 이 밖에도 하얼빈시에서 발간되는 <송화강>, 목단강 지역에서 발간된 <은하수>, 요령 민족 출판사의 <갈매기>등이 있는데 이 잡지들은 현재 상업지로 바뀌었거나 폐간되었는데, 그 만큼 중국에서 우리글로 잡지를 발간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증거라고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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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남철 ; 예, 정말 중국에서 한글 잡지를 운영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지 잘 알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들 한글잡지가 조선족 동포들에게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요?
김 홍란 ; 글쎄요, 조선족 정체성의 한 상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문자로 된 잡지를 갖는다는 것은 우리 민족만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조선족이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문자가 없어도 민족은 유지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학을 통해 민족의 존재이유가 증명되고, 그 문학이 존재할 수 있는 터전이 바로 한글 잡지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한글 잡지의 존재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조 남철 ; 말씀을 듣고 보니 더욱 조선족 동포들의 한글잡지가 갖는 의미가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현재 잡지를 운영하는데 있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 홍란 ; 말씀하신 것처럼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개혁개방 이후 우리 한글잡지도 시장경제에 내몰리게 되는데 조선족 사회의 변화에 따른 독자수의 급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예전에는 나라에서 일정 규모의 지원을 했기 때문에 경제문제에 대한 걱정이 별로 크지 않았는데, 현재는 잡지사 자체가 소요경비의 많은 부분을 떠맡게 되었습니다. 또한 작가수도 예전보다 줄어 좋은 작품을 확보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당연히 순수 문학지가 아닌 상업지로의 변신을 요구하는 세력이 있는데, 저는 힘들기는 해도 문학잡지로서의 정통성을 지켜 나갈 생각입니다. 다만, 다행스러운 것은 예전에 문단을 떠난 작가들이 다시 문단에 돌아오기 시작하고 신인들의 경우도 그 수는 예전보다 적지만 질적으로는 우수한 신진대오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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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김홍란 주필, 조남철 본지 편집위원장 | ||
조 남철 ;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혹시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김 홍란 ; 우선 이렇게 말씀을 나눌 기회를 주신 재외동포신문에 감사드립니다. 중국 조선족을 비롯한 재외동포들의 문제에 이렇게 열정적인 관심과 성의를 보여주는 신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 동포들은 기쁘게 생각할 것입니다.
모국의 여러 분들도 중국 동포를 비롯한 재외동포들에게 더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제가 어렵게 한글 잡지를 끌어 나가는 것이나 여러분이 전 세계 한글 잡지나 한글 문학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결국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조 남철 ;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모처럼의 한국방문이 유쾌하고 의미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김 홍란 ; 네, 감사합니다.
재외동포신문/ 재외동포신문 조철남 편집위원장